- 한국사회만큼 이념대립이 심한 나라도 드물다. 그러나 인신공격과 막말로 얼룩진 싸움이 이념논쟁의 전형은 아니다. 미국 내 이념논쟁은 지극히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미국 보수층의 ‘디바’로 불리며 말과 글을 통해 진보세력을 조목조목 신랄하게 비판해온 앤 코울터의 시각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언론과 문화계의 진보 성향을 비판한 책.
현대사회의 이념전쟁은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사회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물질적 풍요를 어느 정도 이룬 나라들은 ‘거리에서의 싸움이 아니라 머릿속에서의 싸움’(복거일)을 받아들여야 한다. 이념논쟁이 우리 못지않게 치열한 곳이 바로 미국이다. 그 과정에서 몇몇 스타 논객도 떠올랐다. 오늘은 그중 한 사람인 앤 코울터를 소개하려고 한다.
앤 코울터는 우리에겐 낯설지만, 미국 보수계의 대표 논객이자 베스트셀러 저술가다. 1961년생이니 올해 만 48세다.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현재도 맨해튼에서 살고 있는 독신여성이다. 저술과 강연으로 돈을 많이 벌어 맨해튼 고급 아파트와 플로리다 별장을 갖고 있다고 한다.
금발의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늘씬한 몸매에 한쪽 어깨를 드러낸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타임’이 선정한 100인에 뽑혀 행사장에 나왔을 때 그녀를 지지하는 미국 보수층은 환호했다. 그녀를 따라다니는 ‘보수의 디바(Conservative Diva)’라는 수식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음을 확인시켜줬다.(‘보수의 디바’는 ‘타임’이 2005년 4월25일자 미국판 커버스토리에 앤 코울터를 등장시키면서 붙인 제목이다.)
그녀는 본래 변호사였다. 코넬대와 미시간대 로스쿨을 나와 연방항소법원 판사 서기로 일하다 보수 성향 로펌으로 자리를 옮긴다. 1994년 폴라 존스가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상대로 성희롱 손해배상소송을 내자 존스 측 변호사를 도와 일한 것을 계기로 정치와 연(緣)을 맺는다. 1995년 공화당이 의회 다수당을 차지하자 상원 법사위원회에서 일하게 된다.(폴라 존스 사건: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아칸소 주지사이던 1991년에 폴라 존스란 여인한테서 고소를 당했다. 클린턴 주지사가 호텔로 자신을 끌어들인 뒤 오럴섹스를 요구하는 등 성적으로 희롱했다는 것이다. 사건이 터졌을 때는 클린턴의 바람기가 공개되는가 싶어 존스의 주장에 솔깃한 사람이 많았지만, 나중에 존스가 사건을 미끼 삼아 누드잡지에 등장해 출연료를 챙기는 등 도덕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진실성이 떨어진다는 쪽으로 여론이 기울었다. 폴라 존스는 1998년 클린턴 측으로부터 85만달러의 위자료를 받고 소송을 취하했다.)
‘독설의 디바’
앤 코울터가 정작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은 MSNBC라는 케이블 채널이 새 뉴스 프로그램을 신설하면서 정치평론가로 그녀를 발탁하면서부터다. 지성미와 섹시미를 갖췄다는 평가를 들은 그녀는 특유의 냉소적이고 신랄한 말투로 이목을 끌었다. 그러던 그녀가 ‘보수의 디바’로 우뚝 서게 된 것은 펴낸 책들이 잇따라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면서부터다.
1998년에 펴낸 첫 책이 ‘극악무도한 범죄와 경범죄: 빌 클린턴을 소추한다(High Crimes and Misdemeanors: The Case against Bill Clinton)’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1997년 르윈스키 스캔들을 일으킨 클린턴이 탄핵을 당하기에 충분한 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7주 연속‘뉴욕타임스’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4년 뒤 2002년에는 ‘중상모략(Slander·국내 번역)’이란 책을 냈는데 역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8주간이나 지킨다. 그러나 정작 ‘뉴욕타임스’는 서평을 싣지 않았다. 저자가 ‘뉴욕타임스’를 향해 “위선과 편견으로 가득하다”고 ‘씹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미국의 정계와 언론계, 문화계가 ‘진보를 우대하는’ 진보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각종 매체가 얼마나 어떻게 진실을 왜곡하고 경시하는지를 정밀한 논리와 팩트(fact)로 설파했다.
“진보주의자들은 스스로가 옳다고 병적으로 믿고 있다. 여기에 광적인 증오심까지 갖고 있다. 당신들이 진보주의자들을 빨갛게 달구어진 꼬챙이로 찔러도 그들은 당신들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그들이란 미합중국의 상원의원이며 ‘뉴욕타임스’의 편집인이고 뉴스 앵커이며 TV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완전히 고삐가 풀려있다.” 짧은 인용에서 느껴지듯 그녀의 말투는 지극히 공격적이며 신랄하다. 한마디로 ‘독하다.’
진보 좌파를 반역자 집단이라고 몰아붙인 책.
앤 코울터는 이듬해 ‘진보파에게 어떻게 말할까(How to Talk to a Liberal)’라는 평론집을 낸 데 이어 2006년에 진보파의 반(反)종교적 성향을 비난한 ‘무신(Godless)’을 펴냄으로써 미국 보수논객의 스타로 자리매김한다.
눈치 안 보고 직격탄
미국 보수층이 그녀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저것 눈치 보지 않고 좌파 진보주의자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리기 때문이다. 속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선뜻 말하지 못하는 그들의 가려운 데를 시원하게 긁어준다는 것이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그녀의 어록이 있을 정도다. 특히 9·11테러 후 이슬람을 향한 어록이 유명하다.
“9·11테러가 난 직후 아랍 사람들이 좋아하며 거리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뉴스에 나오자 ‘저 나라들에 쳐들어가서 지도자들을 죽이고 사람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켜야 한다’고 했고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 침공 계획에 할리우드 배우들이 반전 데모를 하자 ‘우리는 석유가 필요해서 이라크를 침공한다. 그래야 너희들이 자가용 비행기와 리무진을 타고 다닐 게 아니냐’고 쏘아붙였다.”(이상돈 ‘세계의 트렌드를 읽는 100권의 책’)
이뿐만 아니라 “무슬림이 다 테러리스트는 아니지만 테러리스트들은 다 무슬림 아닌가?” “시카고가 테러 공격을 받았으면 뉴욕 사람들은 ‘그것 참 안됐네. 이제 캘빈 클라인 패션쇼 보러 가자’고 했을 것이다” 같은 말들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슬픔에 잠긴 사람들조차 그녀의 독설을 피해갈 순 없다. 9·11테러로 남편을 잃은 미국 여성 4명이 국가 보상금이 적다고 항의하자 “9·11테러가 자기들에게만 일어난 것처럼 행동한다”고 비난했고, 이 여성들이 텔레비전과 신문에 자주 소개되자 “(그녀들이) 남편의 죽음을 즐기는 것 같다”고도 했다.
“코울터는 너무 잔인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당장 방송 출연을 중단시켜야 한다”는 시청자 항의가 빗발쳤지만 그때마다 오히려 더 센 말로 응수한 ‘독한’ 그녀다. 이렇다 보니 미국 진보주의자들에게 앤 코울터는 ‘공공의 적’ 1호다. 오죽했으면 할리우드 스타 숀 펜이 화가 날 때면 코울터를 본뜬 모형 인형에 분풀이를 한다고까지 했을까. 숀 펜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영화감독인 레오 펜이 코울터가 쓴 ‘반역’의 좌파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다며 그녀에 대한 증오심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숀 펜은 잡지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녀(인형)를 범했다. 몇 군데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 있다”고 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좌파는 불평쟁이”
앤 코울터는 보수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참전용사 장학금을 받아 대학을 다닌 후 FBI수사관과 변호사를 지냈다고 한다. 앤 코울터 자신도 개신교회에 다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그녀는 코넬대를 다니면서 대학을 지배하는 위선적인 진보 성향에 진절머리를 내고 보수적 신념을 굳혔다고 한다. 대학에서 ‘코넬 리뷰’라는 보수 성향의 학내 간행물을 만드는 데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미시간대 로스쿨에 다닐 때는 보수 법률가들의 모임인 ‘연방주의자협회’ 미시간지부를 창설하는 데 관여하기도 했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정치란 지저분한 스포츠’라고 단언한다. 본래부터 정치가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정치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이 따로 있으니 다름 아닌 좌파를 표방하는 진보주의자들이라는 것이다. 소련이라는 ‘외부의 적(敵)’이 사라지자 타도 대상을 내부로 돌리며 진실과 사실을 왜곡하고 대중을 선동한다고 비난한다.
그녀는 좌파가 기본적으로 ‘불평쟁이’라고 꼬집는다.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린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가안보에 대한 그들의 불평은 ‘참아낼 수 없는 지경’이라고 표현한다. “좌파들이 전쟁에 기여한 바는 주로 ‘불평하는 것’이다. 그들은 테러 용의자들을 감금한 것에 대해 불평하고 우리가 전쟁에 질 것이라고 한탄하며 테러분자들에 대한 군사재판에 대해서도 비난한다. 부시 행정부가 탄저병균 살포 사건을 즉시 해결하지 못했다고 (비난하고), 또 수용소 안에 구금된 테러리스트들의 대화를 엿듣는다고 불만이다. 전쟁이 너무 오래 지속된다고 불평이고 존 워커(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에 생포된 미국인 탈레반 전사)에 대한 재판에 대해서도 불만이다.”(‘중상모략’ 17쪽)
좌파들의 성향을 ‘불평’이라고 지적한 대목에 눈길이 간다. 이념적으로 좌우를 가르는 기준이 많지만, 필자는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그것을 내 탓으로 생각해서 문제의 진단과 해결책을 ‘나로부터’ 찾는 것을 우파적 성향이라고 본다. 반대로 ‘남 탓’으로 생각해서 사회나 집단에 책임을 추궁하는 것을 좌파적 성향이라고 본다. 문제 원인을 바깥에서 찾으면 당연히 불평불만이 많아진다. 그리고 그것은 심리적으로 ‘증오’나 ‘분노’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 증오는 서로의 에너지를 갉아먹고 부식시킨다는 점에서 건강하지 못하다.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는 “우리가 흔히 ‘사회구조’라고 하는 것은 아예 현실에 없는 추상”이라고 잘라 말한다. 앤 코울터가 미국 좌파들을 향해 현실 속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회라는 추상에 문제를 우겨넣고 증오심을 부추겨 사태를 왜곡한다고 하는 지적은 우리나라라고 다르지 않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앤 코울터에게 ‘보수의 디바’란 수식어를 붙여줬다.
“돈 벌게 하라”
한편 이런 좌파들의 몽상은 “훈련되어 있지 않은 대중은 이 복잡한 세상을 혼자서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오만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속물이라는 게 그녀의 진단이다. “진보주의자들은 속물근성에 힘입어 잘 나가고 있다. 진보주의자의 세계관에서 속물근성이 얼마나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가를 이해할 때 비로소 그 사람들이 벌이는 몰상식하고 알아볼 수 없는 논쟁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그들이 비도덕적 파괴행위를 하는 것도 속물이기 때문이며 범죄자들을 포용하고 세금감면에 반대하고 환경을 아끼는 것도 속물이기 때문이다. 파괴적인 아이디어만 나타나면 그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막강한지 보여주기 위해 즉시 받아들인다.”
앤 코울터는 진보주의자들이 입버릇처럼 내세우는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란 것도 뒤집어 보면 ‘교만’일 경우가 많다고 꼬집는다. “범죄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은 진보주의자들을 믿기 어려울 정도의 자만심으로 한껏 부풀려준다. 그것이 진보주의자가 되는 주된 목적이다. 돈 없는 사람들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는 것 말이다. 진보주의자들은 불행한 사람들을 동정하기를 즐긴다. 속내는 돈 없는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을 즐기는 것이다. 오직 나름대로의 규범과 도덕을 갖추고 진실을 추구하는 중산층만이 진보주의자들의 교만을 위협할 뿐이다.”(‘중상모략’ 67쪽)
앤 코울터는 자신이 논객으로 나선 이유가 바로 이런 사람들의 교만을 파헤치기 위해서라고 단언한다. 부자는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좌파적 상상력이나 사람들로부터 격리될 수 있지만, 평범한 서민은 ‘먹고사느라 바빠’ 좌파 진보주의자들의 생각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식인들이 나쁜 생각을 계속 파헤치고 드러내는 게 진정한 휴머니즘이며 이타주의라고 앤 코울터는 말한다.
그녀에 따르면 좌파 진보주의자들이야말로 ‘신념’을 종교화한 사람이며 그들을 개종(?)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름 아닌 ‘돈을 벌게 하는 것’이다. 직업을 갖고 세금을 내도록 하면 헛된 명분이나 이상주의에 빠지려야 빠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좌파 진보주의자의 이중성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 있으니 바로 흉악범에 대한 관용이다. 이들은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경찰의 폭력에 대해서는 독선과 분노를 쏟아내면서 살인을 한 흉악범죄와 범죄자들에게는 무한한 관용정신을 보여준다.
피해자의 고통, 가해자의 인권
이 문제에 관해 앤 코울터가 겨낭한 사람은 다름 아닌 노먼 메일러였다. 노먼 메일러는 2005년 미국 문단 및 출판계 최고 영예인 전미도서상 평생공로상을 받은 미국 문단의 거목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고발한 ‘벌거벗은 자와 죽은 자’(1947년)를 비롯해 베트남전 반대시위 경험을 토대로 쓴 ‘밤의 군대’(1968년), ‘사형집행인의 노래’(1979년)로 두 차례나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매년 노벨문학상 단골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아돌프 히틀러의 정신세계를 다룬 ‘숲 속의 성’을 발표하는 등 고령에도 창작의 펜을 놓지 않았던 그는 2007년 11월, 84세를 일기로 사망한다.
노먼 메일러는 생전에 흉악범 잭 애보트라는 사람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잭은 수감 중에 동료 죄수를 살해해 또다시 장기형을 선고받았는데, 자신의 수형 생활에 대한 책을 내고 싶다고 노먼에게 편지를 쓴 것이다. 노먼은 잭이 ‘지성인이고 급진적이며 장래 가능한 지도자’라며 책의 출간을 돕고 사면 운동까지 벌였다. 결국 여론을 움직였고 잭은 1981년 사면됐다.
그러나 잭은 출감 6주 만에 맨해튼 카페에서 젊은이를 홧김에 살해하고 도주하던 중 체포됐다. 잭이 살인을 저지른 날, ‘뉴욕타임스’는 서평란에 잭의 책을 훌륭하다고 소개했다. 잭은 장기형을 선고받았으나 2002년 2월 자살했다.
작가에게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비판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주류보다는 비주류, 인사이더보다는 아웃사이더, 햇빛보다는 그늘에 마음을 주게 마련인 예술가를 굳이 이념적 성향으로 가른다면 좌파적 성향이 짙다. 그런 작가들을 좌편향이라고 몰아붙일 수는 없다. 노먼 메일러의 행동도 어쩌면 순수한 인도주의적 정신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잘못은 남의 호의를 무참히 밟은 잭 애보트라는 범죄자에게 있지 그를 격려했던 노먼 메일러에게 있어 보이지 않는다.
앤 코울터는 다만, 사회에 중범죄를 저지른 자들의 내면심리가 이렇게 포악스럽고 그들의 범죄로 애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음에도 피해자의 인권보다 가해자의 인권이 중시되는 이중적인 행태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우리 사회도 이 같은 문제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라, 그녀의 지적을 주목해볼 만하다.
그녀가 타깃으로 삼은 또 하나의 그룹은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이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글로리아 스타이넘 역시 그녀의 표적이 됐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무명의 자유기고가로 출발, 1963년 플레이보이 클럽 잠입취재 기사를 통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여성운동가다. ‘남성도 임신을 해보라’ ‘월경의 문제’ 등을 통해 여성성 논쟁을 일으켰으며, 1972년 최초의 페미니스트 잡지 ‘미즈’를 창간, 여성의 의회진출운동 및 인종과 계층을 넘어선 연대운동을 활발히 펼침으로써 1970년대 폭발한 여성운동의 상징이 됐다.
우리나라 여성운동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글로리아 스타이넘에 대해 앤 코울터는 “여권운동가들이 자기들의 외모나 함께 사는 남자 덕분이 아니라 자신들이 이룩한 공로로 평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긴다면 스타이넘의 인생은 페미니스트의 성공담과는 정반대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직격탄을 날린다.
앤 코울터는 스타이넘의 업적으로 칭송받는 ‘미즈’ 잡지가 실은 대단한 실패작이라면서 결국 이 잡지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부유한 진보적 미디어 거물 모트 주커먼과 동침해놓고 “그를 사랑하지는 않았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뻔뻔스러움까지 보였다고 스타이넘을 맹비난한다. 주커먼이 ‘미즈’에 70만달러를 빌려주고 잡지사와 재단에 40만달러를 증여했으며 자기 회사 고위 임원을 보내 2주 동안 잡지 경영을 완전히 고쳐놓도록 한 것은 스타이넘이 자기 스스로 성공했음을 증명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를 입증한 데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글로리아는 미국 젊은 여성들에게 좋은 모범을 보여주었다. ‘나가서 사업을 하다 실패하면 부자 남자를 만나 다시 일으켜라’는 것이다”고 쏘아붙인다.
문제의 할리우드
앤 코울터는 페미니스트들의 이런 이중성뿐 아니라 남녀평등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 성적(性的) 차이를 애써 무시하려는 극단적 태도도 비난한다. “남자들에게 여자들을 성적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가르친 것은 (그들이 만든) 멋진 아이디어였다. 좌파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세상은 영화 ‘GI 제인’에서처럼 주인공인 여자 군인이 샤워하면서 벌거벗은 여자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해군 특수부대 지휘관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그런 세상이다. ‘버자이너 모놀로그’야말로 진보주의자들이 갈망하는 극치다. 여자의 성욕에서 신비감이나 에로틱한 것을 박탈해버리고 마치 그것을 암소의 실용적인 도구처럼 취급해버리는 그런 세상 말이다.” (‘중상모략’ 64쪽)
‘GI 제인’이나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나 연극으로 빅히트를 했다. 여자들에게 금기나 다름없는 주제들을 노골화해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은 좋지만 이것이 지나쳐 ‘여자도 남자 같아야 한다’거나 아무 때나 섹스를 추구하라고 권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라는 게 코울터의 견해다.
그녀가 흥분하는 또 하나의 이슈는 할리우드가 자행하는 혼외정사에 대한 신비화 혹은 판타지다. 할리우드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하는 미모의 여성들이 난잡한 성생활로 혼외 자식을 낳고 마치 심각한 고민 끝에 한 선택인 양 묘사되는데, 이는 현실과는 전혀 다른 어불성설이라고 비난한다. “혼외 관계에서 낳은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는 매력 있는 여인들은 할리우드 여배우들뿐이다. 이런 생활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이혼모들은 실업수당을 받아야 한다.”(‘중상모략’ 65쪽) 실제로 할리우드가 만들어내는, 미모의 부유한 여자들이 혼외관계에서 낳은 아이들을 데리고 행복하게 사는 스토리는 허구일 뿐이며, 현실에서는 여자나 아이들이나 모두 고통 받고 있다는 점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이념논쟁은 주로 ‘친북’이냐 ‘반북’이냐에서 갈리지만, 분단이라는 특수상황이 없는 미국 내 이념논쟁은 이처럼 지극히 개인적인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에서 갈라진다. 앤 코울터가 추구하는 보수적인 가치는 한마디로 ‘현실을 속이는 판타지’와의 싸움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앤 코울터가 주로 공략하는 것이 문화 전반에 걸친 비평이라는 점이 관심을 끈다.
좌편향 출판계도 예외가 아니다. 앤 코울터는 출판사로부터 수차례 원고를 배척당했다. 정작 출판됐을 때는 시장에서 환호를 받았으니 그녀가 기존 출판사들에 갖는 반감을 이해할 만하다.
“(내가 내는) 보수주의 저서들은 엘리트 미디어들로부터 괄시를 받고 서점에서는 감추어지고 중요 출판사들에게는 거절되기 일쑤지만 적어도 우리는 책에 관한 한 독자들이 누구의 것을 읽기 원하는지 알 수 있다. 출판업자들은 보수주의 서적들이 나올 때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르며 승승장구하는 것을 경계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진보주의 책을 출판하는 데 지나치게 급급하다.”(‘중상모략’ 213쪽)
문제는 이런 책들 중에 제대로 사실 확인도 안 하고 날조된 것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예로 든 책이 ‘나, 리고베르타 멘추’다. 리고베르타 멘추(Rigoberta Menchu Tum·1959~)는 과테말라인으로 내전 기간 과테말라 토착민의 어려움을 알리는 데 매진했다는 평가를 받아 1992년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유엔 친선대사로도 활동하며 2007년 2월에는 과테말라에서 토착민 정당인 ‘엔쿠엔트로 포르 과테말라(과테말라와 함께)’를 창당해 2007년 대선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철저한‘팩트 파인딩’
한때 미국에서는 멘추가 과테말라 군사정부에 의해 고문을 받았다는 것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져 레이건 정부가 과테말라에 원조를 제공한 것을 비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멘추 자신이 국무부 관리를 만나 과테말라에 대한 미국의 원조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그녀의 자서전이라고 할 ‘나, 리고베르타 멘추’는 12개국 언어로 번역되고 1만5000편의 학위논문을 쓰는 동기가 되고 미 전역 대학들에서 읽혔다. 멘추는 14개나 되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미들버리 대학 인류학자이며 과테말라 전문가 데이비드 스톨 교수가 관련 문서를 조사하고 멘추가 주장한 사건의 생존자를 면담해서 그것이 날조된 이야기임을 밝혀냈다. 스톨 교수는 그녀의 책이 완전한 환상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허위임을 밝혀냈다.
자신이 문맹이라고 했지만 사실은 수녀들이 운영하는 훌륭한 기숙학교에 다녔으며 어릴 때 커피와 목화 농장에서 저임금의 힘든 노동자로 고용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부유한 농민 가족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족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불타 죽는 것을 목격하도록 강요당했다고 했지만 완전히 허구였다.
멘추는 처음엔 날조를 부정하다 나중에는 인종차별이라고 비난하다가 급기야는 자기 이야기를 받아 쓴 공동 저자를 비난했다. 그러나 실제로 구술 테이프를 확인한 결과 거짓말은 멘추가 한 것이었다.
앤 코울터가 출판계와 함께 타깃으로 삼는 곳은 연예계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유행처럼 정치적 발언에 발벗고 나서는 제인 폰다, 숀 펜, 바버라 스트라이샌드, 킴 베이싱어, 제시카 랭 같은 연예인들을 향해 “하는 일에 비해 지나치게 돈을 많이 받는 나르시시스트들”이라면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도 말할 자격이 없는 인간들”이라고 쏘아붙인다.
현대 문화권력에서 연예인들은 더 힘이 막강해졌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대중에게 노출됨으로써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엄청난 힘을 가지게 되었음은 굳이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인기 연예인들이 하는 바보 같은 소리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다…. 줄 담배 피우는 ‘술꾼 반전주의자 집단’의 우두머리 숀 펜은 5만6000달러를 받고 ‘워싱턴포스트’에 실린 광고에 나와서… ‘폭격은 폭격을 낳고 살인은 살인을 낳는다’고 했다. … 우리는 얻어맞은 다음에야 ‘인과응보’니 ‘폭력의 악순환’이니 하는 말을 한다. 배우들은 자신들이 어린 계집애들 연극에 연출하는 나약한 사내아이 모습을 감추기 위해 의도적으로 싸움을 거는 것이다.”(‘반역’ 409쪽)
그러면서 조지 부시와 사담 후세인 사이의 적대적 감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고민하다가 “소설 ‘모비 딕’의 주인공 에이하브 선장과 거대한 흰 고래의 이야기 같다”고 말한 리처드 기어가 “모비 딕을 읽었느냐”는 질문에 기어이 답을 피했던 일화,“9·11테러는 모든 전쟁이 그렇듯 헤게모니 돈 권력 그리고 석유가 관계된 것”이라고 했던 더스틴 호프만이 헤게모니라는 단어의 스펠링을 적어보라는 요청을 끝내 거부한 일화 등을 소개하면서 “배우의 재능이란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것뿐이다. 높은 IQ는 좋은 배우가 되는 양념에 불과하다… 그들은 자기들이 바보 같은 소리를 하더라도 비난받지 말아야 할 헌법적 권리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꼬집는다.
앤 코울터의 독설에 대해서는 미국 내 보수층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특히 ‘극단적인 반공주의 마녀사냥’쯤의 의미로 세계인에게 친숙한 ‘매카시즘(McCarthyism)’이란 말에 대해 “진보파가 자신들의 ‘반역행위’를 희석시키기 위해 만들어낸 말”이라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발이 많다.
그러나 반대파들이 눈을 치켜뜨고 앤 코울터의 논리적 약점을 파헤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그녀의 논리적 일관성을 깨거나‘팩트 파인딩’의 허점을 찾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매카시즘에 대해서도 1950년대 매카시 상원의원에 의해 간첩으로 몰렸던 국무장관 보좌관 앨저 히스와 원자탄 기밀을 소련에 넘긴 혐의로 사형당한 로젠버그 부부는 ‘진짜로 소련의 간첩’이었음을 1995년 공개된 ‘베노나 문서’로 입증한 식이다. 그런데 정작 뉴욕타임스는 베노나 문서를 제대로 보도하지도 않았다고 앤 코울터는 말한다.
앤 코울터가 ‘독하다’는 비판 속에서도 과감하게 진보 좌파와 맞서 싸워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그녀의 독설이 아니라 이런 콘텐츠임을 알아야 한다.사실과 논리에 입각한 말들을 독설이라고 치부하면 안 된다. 비난받아야 할 것은 논리와 사실이 결여된 막말이다.
요즘 한국사회의 이념대결이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보니 이념 자체에 대한 염증을 나타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념은 불필요하거나 나쁜 게 아니라 국가 정체성의 근간을 결정짓는 나침반이다. 사실과 지식, 이성이 지배하는 사회라야 선진사회다.
‘참고도서’
‘세계의 트렌드를 읽는 100권의 책’(이상돈 지음, 기파랑)
‘중상모략’(앤 코울터 지음, 이상돈·최성일 옮김, 브레인북스)
‘반역’(앤 코울터 지음, 이상돈·최성일 옮김, 경덕출판사)
‘이념의 힘’(복거일 지음, 나남)
‘경제적 자유의 회복’(복거일 지음, 문학과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