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급갈등 부추기는 오세훈이야말로 망국적 포퓰리즘
- 저소득층 학생 밀집 학교에 인력·시설 집중 지원할 것
- 교원평가 인사에 반영 안 할 수 없다
-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는 게 올바르다
곽 교육감은 시종(始終) 조심스러웠다. 단어 하나도 골라 쓰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말하는 중간 뜸을 들일 때가 많았다. 내뱉은 말을 되짚어보는 듯했다. 부연을 통해 앞서 한 발언을 누그러뜨렸다. 그래서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했다.
서울시교육청 쪽에선 인터뷰 내용을 녹음했다. 언론에 피해의식을 가졌거나, 불신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무실로 들어섰을 때 그는 신문기사 묶음을 읽고 있었다. 그날치 교육 기사를 스크랩한 것이다.
서울시교육감은 서울에서 초·중·고교를 다니는 학생과 초·중·고생을 둔 학부모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선거 때 그를 찍었건, 그렇지 않건 2014년 상반기까진 그가 입안한 정책을 따라야 한다. 일부 정책을 두고 충돌, 진통이 적지 않다.
지금부터, 곽 교육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보자.
▼ 새 학기가 시작됐다. 지난해 7월1일 취임할 때와 느낌이 어떻게 다른가.
“지금은 자리가 잡혔다. 처음엔 물려받은 시스템으로 일했다. 내가 짠 사업·직제·진용으로 일하니 안정된 느낌이다. 지나온 길이 아득하지만 낙관적이다. 운이 좋다.”
“계급갈등 부추기는 게 포퓰리즘”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무상급식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전면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를 서울시가 추진 중이다. 무상급식은 곽 교육감의 핵심 공약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곽노현 나오라. 정말 비겁하다. 떳떳하면 나오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토론을 제안한 적이 있다. 서울시는 으르렁거리는데, 서울시교육청은 무시하는 형국이다.
▼ 대응 안 한 이유가 있나.
“서로 협력해야 할 기관이다. 수장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게 학생에게 득이 되지 않는다.”
▼ 반(反)교육적이라는 건가.
“반교육적이라고 생각했다.”
▼ 그래서 맞기만 했나.
“아무튼 자제했다.”
▼ 무상급식이 망국적 포퓰리즘이란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친환경 무상급식을 망국적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이는 거야말로 망국적 포퓰리즘이다. 망국적 포퓰리즘이란 주장에 근거가 두 개 있다. 부자급식론부터 보자. 부자한테 밥을 왜 공짜로 주느냐고 가난한 사람에게 속삭이는 건 계급갈등을 부추기는 거다. 가난한 사람의 계급이익을 일깨우고, 거기에 영합하는 척하면서 계급갈등을 부추기는 거다. 계급이익에 영합한다는 측면에서 포퓰리즘이고, 계급갈등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망국적이다. 세금폭탄론도 마찬가지다. 이건 부자에게 속삭이는 거다. 세금폭탄으로 돌아오는데 왜 찬성하느냐고 물으면서 부자들의 계급이익을 일깨우고 거기에 영합하면서 계급갈등을 부추기는 거다. 이런 게 정말로 망국적이다.”
▼ 오세훈 시장의 태도가 오히려 포퓰리즘이라는 건가.
“포퓰리즘일 뿐 아니라, 망국적 포퓰리즘이다.”
▼ 선후(先後)를 따져보자는 의견은 어떻게 생각하나.(서울시교육청은 무상급식을 위해 영어전용교실 예산을 깎았다.)
“그런 주장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선순위엔 정당한 이견을 가질 수 있지만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몰아붙이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무상급식은 지방선거에서 거둔 민주주의의 성과라고 말했다. 선거를 통해 공식 의제로 떠올랐고, 거기에 표심이 따라줬다는 거다.
학교에서의 체벌금지도 찬반 논란을 일으킨 정책이다. 대안 없이 설익은 정책을 내놓았다고 두들겨 맞았다. 교총은 “학생이 교사 지도를 무시하고 반항한다. 교실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전교조 쪽에서도 “곽노현 교육감이 교사들에게 대비할 기간도 주지 않고 체벌금지를 도입해 교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언급했다.
“비타협은 민주주의의 적”
곽 교육감이 체벌금지와 관련해 정리해온 글부터 요약해 읽어보자. 그는 “내가 직접 쓴 것”이라고 강조했다.
“체벌금지로 인한 불안감으로 날마다 마음을 졸였다. 문화를 명령으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집단 매, 체벌의 장막을 걷어내니 취약한 우리 교육의 속살이 보이고 있다. 우리가 금지한 것은 체벌과 허약한 시스템이다. 체벌 존치론자들은 기본적으로 체벌 없이 교육이 안 된다는 의견이다. 이것은 우리 교육의 총체적인 과오를 드러내는 것이다. 교사의 자의적인 폭력과 체벌이 용인돼서는 안 된다. 무엇이든 일방적이면 자의적이 되기 쉽고, 자의적이면 권위는 간데없고 조롱이 돌아온다. 교육에는 체벌이 아닌 처벌이 필요할 뿐이나, 처벌 역시 즉각적이고 물리적인 힘이 스며들면 안 된다. 학교에서의 체벌금지는 학교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를 바꿀 것이다.”
법의 본질을 추구하는 법철학도(法哲學徒)로서의 면모가 드러나는 글이다. 그는 경기고-서울대 법대를 나왔다. 그가 꿈꾸는 세상을 잠시 엿보고 넘어가자.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면서 그가 법치주의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법치라는 단어를 좋아할 것 같다고 운을 뗐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명쾌하게 답했다.
“강자를 통제하는 게 법치다. 약자를 참여시키는 게 민주주의다. 약자에 힘을 주고, 강자를 통제할 때 강약이 어울려 사는 것이다. 법치주의 없는 민주주의는 안 된다. 민주주의 없는 법치주의도 안 된다.”
▼ 그런 소신이 교육정책에 녹아 있는 건가.
“그렇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인권은 약자의 권리를 일깨워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법치주의의 사각을 없애는 것이다. 법치주의, 민주주의, 인권은 삼위일체적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약자의 참여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가 꿈꾸는 세상을 어렴풋하지만 알 것 같다. 교육정책도 이 소신을 벗어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원칙과 소신 탓에 현실과 불화를 겪는 일도 잦을 것 같다.
그는 ‘좌파 교육감’ ‘진보 교육감’으로 불린다. 진보진영이 그를 교육감으로 만들었다.
▼ 진보 교육감, 좌파 교육감이라는 표현 좋아하나.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사는 게 올바르다.”
일화 한 토막.
지난해 6·2 지방선거 직전 전교조가 교원평가제 반대를 확약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딱 잘라 거절했다. 진보 교육감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명시적으로 교육과학기술부 교원평가에 문제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직접 정리해온 글에서 전교조와의 관계와 관련해 이렇게 밝혔다.
“나는 현실에 안주하거나 순치적인 체질이 아니다. 끊임없는 성찰과 개혁만이 나쁜 구조를 바로잡고, 구조의 경직성을 완화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한 독선적이고 비타협적인 자세를 민주주의의 적으로 본다. 전교조가 지지한 교육감이지만 전교조의 지지를 받아서 교육감이 된 것은 아니다. 지지에도 불구하고 됐다고도 할 수 있다.”
인터뷰로 되돌아가자.
“안 하는 건가, 못하는 건가”
3월2일 오후 곽노현 교육감이 무상급식이 시작되는 금옥초등학교를 찾아 배식을 하고 있다.
▼ 안 하는 건가, 못하는 건가.
“추진 중이다. 공약은 4년 안에 지키면 된다.”
▼ 부담스럽나.
“경기도가 실행 중이지 않은가. 국가·사회기관은 유엔아동권리협약 실천에 앞장서야 한다.”
▼ 언제쯤 제정할 건가.
“올가을쯤 내부적으로 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 두발, 교복 자유화도 포함되나.
“개인의 자유의 중요한 부분에 사생활의 자유가 있다. 두발 수염 복장 이런 게 있는 건데, 학생의 경우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느냐 하는 부분을 짚고 넘어가야 할 거다.”
▼ 학생인권조례에 담길 내용 중 체벌 금지만 따로 떼어내 먼저 시행했다. 체벌 금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본 건가.
“그렇다. 학생이 원하는 건 체벌이 아니라 치유다. 고민을 들어줄 귀다.”
교총은 학생이 교칙을 어겨도 교사가 어쩌지 못한다고 하소연한다. 교권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고도 주장한다.
▼ 성급하게 밀어붙였다는 느낌은 없나.
“교훈은 얻었다. 학교 현장에서 어떤 부분에 변화를 일으키려면 시간을 상당히 많이 둬야겠구나, 하는 걸 교훈으로 얻었다. 100일이면 가능하겠다 싶은 게 현장에선 두 배, 세 배 걸리는 거다. 대체로 1년 정도 준비·숙성기간을 거쳐 실행하는 게 좋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 교육과학기술부는 대체벌을 대안으로 내놓았다.
“벌을 대체한다는 뜻은 아닐 거고, 간접체벌을 의미하는 건가 보다.”
▼ 대체벌을 허용할 건가.
“직접체벌은 명령과 강제에 의해서 신체와 도구로 때리는 거다. 간접체벌은 명령과 강제에 의해서 직접체벌에 준하는 신체적 고통을 느끼게 하는 거다. 명령, 강제에 의해 팔 굽혀 펴기, 쪼그려 뛰기를 시키는 게 간접체벌이다. 서울에 외국인 학교가 많다. 다 알아봤다. 간첩체벌? 안 시킨다.”
▼ 체벌이 동아시아의 전통적 훈육 방법이라는 시각도 있다.
“일본도 금지했다. 북한도 금지했다고 그런다. 다 금지돼 있을 거다.”
▼ 교사의 편의를 위해 체벌이 남아 있다는 건가.
“그렇다.”
▼ 전교조 위원장도 “교권 침해가 발생했다”고 했다.
“힘의 공백 상태에서 아이들의 남용 행위가 늘었다는 뜻일 텐데. 원래 폭력이나 완력이 사라진 곳엔 권위가 들어와야 한다. 힘에는 공백이 없다. 누군가 차지한다. 체벌이 사라진 부분을 권위가 대체하거나 전문 서비스가 대체하고 그러면…. 이 부분이 아직 미흡하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 체벌한 교사는 어떻게 되나.
“마구잡이로 가한 경우는 공식 징계까지 넘어가지 않겠나. 그렇지 않은 경우엔 교육적인 방식으로.”
▼ 교육적인 방식으로라는 게 뭔가.
“교육적인 방식으로 가야 할 텐데, 교육 연수를 받으라고 할 수도 있고,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체벌이 어떤 상처와 고통을 주는지 깨닫고, 아이들과 화해하는 그런 과정도 생각해볼 수 있고, 다양하게 열어놓고 생각해봐야 할 거다. 어떻게 해야 교사의 권위가 회복되고, 신뢰를 얻을 수 있을지 살펴봐야 하겠다.”
그는 현장의 사안을 원칙적이고, 거시적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당위(當爲)와 현실은 부딪치는 일이 많다. 그의 답변을 받아 적으면서 법철학 강의를 듣고 있단 생각이 이따금 들었다.
“정답은 명백한데, 현실은 거꾸로다”
묻지도 않았는데 취재원이 얘기하는 소재는 뿌듯하게 여기거나, 내세우고 싶거나, 머릿속에서 핵심으로 여기는 사안인 예가 많다. 그가 목소리에 힘을 주고, 길게 말한 정책은 이렇다.
“동네마다 사회·경제적 지위가 다르다. 동네별 지위를 잘 알려주는 게 중식 지원 비율(저소득층 학생의 급식비를 정부가 지원해주는 비율)이다. 서울시 평균이 11%쯤 된다. 3% 미만이면 굉장히 좋은 학교다. 저소득층 학생이 거의 없다는 거다. 20%가 넘는 학교는 저소득층이 밀집한 곳이다. 교사, 교장이 어느 학교를 선호하겠나? 중식 지원 비율이 높은 학교는 기피학교가 된다. 선호학교로 가고자 청탁, 연고, 정실이 작동한다. 실력 있는 교사, 장학관, 장학사를 어느 곳에 배치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유능하고 실력 있는 사람을 중식 지원 비율이 높은 학교로 배치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관행과 배치되는 거다. 중식 지원 비율이 높은 순으로 30개 학교를 지정해 특별 관리할 계획이다.”
▼ 실제로 인사를 그렇게 했나.
“그렇다. 교육청 장학관 8명이 교장으로 나갔는데 평균 중식 지원 비율이 16.5%다. 예전 같으면 평균 1.5%쯤 됐을 것이다. 3% 미만 학교에서 4년을 근무한 교장은 20% 넘는 학교로 기계적으로 보냈다. 20%가 넘는 기피학교에서 근무한 분은 이번엔 성과를 안 따지고 3% 미만 학교로 진입시켰다. 예전엔 정년이 2~3년 남은 분은 기피학교로 보냈다. 정년 2년도 안 남은 분이 기피학교로 가서 의욕도 없이 있는가 하면, 무사안일에 빠져서 예산 따는 것도 싫어하고.”
표현이 과하다 싶었는지 그가 부연했다.
“모든 교장 선생님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대부분 교육자는 굉장히 훌륭하다.”
학교 시설공사와 관련한 얘기도 길게 했다. 힘의 논리가 아닌 객관적 기준으로 시설공사를 지원하겠다고 그는 강조했다. 그간 시설이 낙후한 학교가 지원받는 게 아니라 끈, 백, 로비를 통해 시설공사가 이뤄졌다는 거다.
포기 없는 책임 교육
“잘사는 동네 학교 시설이 우수해야 하나? 못사는 동네 학교 시설이 우수해야 하나? 답은 명백한 거 아닌가. 그런데 현실은 거꾸로다.”
곽 교육감의 교육개혁 모토는 △포기 없는 책임 교육 △창의적 인재 양성이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교육개혁 방향과 별반 다를 게 없다
▼ 이주호식 교육개혁을 어떻게 평가하나.
“창의·인성 교육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포기 없는 책임교육이 필요하다, 대물림 끊는 희망교육이 필요하다는 큰 명제에서 의견이 다를 사람이 있겠나. 구체적인 경로와 방법에서 다른 걸 거다. 초등학교·중학교 교육에선 크게 차이나지 않는 것 같다. 과도한 경쟁주의를 완화해야 한다는 부분에서도 의견이 같은 것 같다. 상당히 비슷할 거다. 다만 경로와 전략이 다를 텐데, 초등학교·중학교까지는 근접해 있다고 본다.”
포기 없는 책임 교육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주창한 ‘No child left behind’와 일맥상통하는 구석도 있다.
“자기주도 학습능력을 갖는다는 건 시민권의 문제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는데 사람이 가진 재주를 사장하면 공동체가 손해다.”
느닷없는 질문을 던져봤다.
▼ 학력지상주의자인가.
“그건 아니다.”
▼ 학벌이 아니라 학력.
“배우는 힘은 진짜로 있어야 한다. 그것보다 중요한 게 배움의 즐거움이다. 왜 배워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와 가까운 한 인사는 그를 두고 ‘평가주의자’라고 했다.
▼ 교원 평가를 인사·보수에 반영해야 한다고 보나.
“보수와 인사에 반영한다는 말은 층위가 다양하다.”
▼ 인센티브 혹은 페널티….
“교사의 전문성 제고를 위해서 평가를 활용하겠다는 거다. 그렇게 해서 교사가 상향평준화하면 되니까. 가장 좋은 게 상향평준화하는 거 아닌가. 상위 몇%는 A를 줘서 성과급을 주는 방식이 꼭 필요한지는 모르겠다. 상향평준화돼 80%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냈는데도 20%만 성과급을 준다? 그건 옳지 않다.”
▼ 교원 평가를 능력 향상과만 연계해야 한다는 건가.
“수업의 학생 만족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상황이 여러 해 이어지면 인사에 반영 안 할 도리가 있겠나. 나는 반영 안 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진정한 프로페셔널리즘은 공개평가 정도에 비례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직업으로의 정치인은 국민에게 수시로 평가받는다. 대학교수도 평가받고 있다. 그것은 전문성, 윤리성을 요구받는 직업의 고유한 특징이다.”
그는 확실히 시중에 알려진 것과 다른 구석이 많다. 그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