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영섭<br>●1966년 서울 출생<br>●서강대 생명공학과 졸업, 고려대 심리학과 석·박사<br>●한국 영상응용연구소 소장
그런데 사진치료학회 참석차 핀란드에 갔을 때, 네덜란드에서 온 심리치료사 로라가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영!(외국 친구들은 섭 발음이 안 돼 나를 영이라고 부른다) 왜 눈이 오는데 눈 오는 장면을 찍고 있니? 눈이 오면 나가 노는 거야. 빨리 놀아. 아니 놀자.” 아. 그때 부르르 몸속의 세 치 끝 명치가 떨려 옴을 손이 먼저 느꼈다. 그래. 참. 눈이 오면 노는 거였어.
나의 버킷 리스트의 으뜸은 우리 늦둥이 딸과 한 달만 아무 일도 안하고 ‘그냥 노는’ 거다. 둘이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르고, 신촌 오리지널 떡볶이도 먹고, 집에서 파전도 부쳐 먹고, 놀이공원 관람차도 타고, 예쁜 핀도 고르고…. 주말마다 찔끔찔끔 하는 이 ‘노는 일’을 본격적으로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빈둥빈둥’ ‘놀멘놀멘’ 하는 게 백미라 는 점이다. 집에서 빈둥거리며 오이마사지 팩을 얼굴에 서로 붙여주고, 딸이 좋아하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도 ‘할미꽃이 피었습니다’와 ‘치자꽃이 피었습니다’로 변주하면서 서로 다른 모션 스톱으로 딸을 놀래주는 거다. 정말 이 일은 그냥 공상만 해도 마음속에 쌍무지개가 뜨는 행복감을 선사한다. 서로만 있다면 지구상 누구도 부럽지 않은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놀이, 빈둥거리기가 아닐까.
물론 이 버킷 리스트는 참으로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나도 시간을 내기 어렵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이 여간 바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달이라도 휴가를 내고 우리 둘이 놀겠다고 하면, 남편과 아들이라는 복병이 우리를 가만둘 리가 없다. 이들을 피하려면 아예 지리산 정도의 심산유곡으로 튀는 수밖에. 그러면 남편은 자기만 안 데려간다고 삐칠 것이다.
사실 난 지갑이 늘 얇다. 일도 많이 하는데 왜 지갑이 얇으냐. 이 땅의 국민이 그러하듯 번 돈을 다 집 사는 데 썼기 때문이다. 근 10년간 집값을 갚았다. 빈손으로 시작해 오롯한 집 한 채, 지구 위의 방 한 칸을 살 때까지 사실 사연도 많았다. 아무튼 지갑이 지금보다 더 비만을 앓는다면, 죽기 전에 하고 싶은 나만의 호사는 이과수 폭포 여행을 떠나는 거다. 물론 이 버킷 리스트는 순전히 원조 가위손, 홍콩의 감독 왕가위 혹은 왕자웨이의 영화 ‘해피 투게더’ 때문이다.
‘쿠쿠루쿠 팔로마’ 음악이 흐르면, 이과수의 거대한 황색 포말이 화면을 메운다. 영화 속의 이과수 폭포는 저인망으로 훑어가는 멈추지 않는 시간의 느린 유영을 닮았다. 진공의 풍경에 곧 기화되어버리는 드라이아이스처럼, 폭포는 하늘의 눈물로 쏟아 부어 흰 포말로 사라진다. 그곳 이과수에 가고 싶어한다, 양조위와 장국영은. 이과수는 둘에게 세상의 끝이기 때문이다. 그곳은 슬픔을 버리려고 오는 지구상 모든 이의 성소다.
삶을 살다보면 오열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그때 눈물은 도시의 하수구로 흘러들어갈 뿐이다. 그 거대한 폭포 앞에서 점처럼 작고 또 작아지는 나란 존재와 마주 대하고 많은 것을 내다버리고 싶다. 어쩌면 악마의 목구멍 앞에서 아예 생을 마감하며 물거품으로 변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인어 공주 판타지의 변형이 드라마에만 있는 게 아니다.
마지막 버킷 리스트. 도끼 주워 얻은 세 가지 소원이든 삼신할머니의 치매로 얻은 행운이든 죽기 전에 이룰 수 있는 버킷 리스트가 있다면 동네 아줌마 야구단을 창단하고 싶다. 사실 나는 대학 때 홍일점 야구 선수였다. 포지션은 포수. 야구가 좋았다. 물론 연애하던 첫사랑 ‘머스매’가 야구단에 있긴 있었다.
사람들은 야구를 힘으로 하는 줄 알지만, 축구에 비해 야구는 오히려 여자들이 하기 좋은 측면이 있다. 일단 공격을 매번 하는 것이 아니라 쉴 기회가 많다. 게다가 포지션이 있어서 축구처럼 많이 뛸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도 야구공이 배트의 한가운데 좌악 맞아 흰 빨랫줄처럼 운동장 한가운데로 죽 뻗어나갈 때, 그 놀라움은 해본 사람만 안다. 그건 생의 최절정으로 가는 하얀 포물선의 축제다. 그 손맛이 정말 그립다.
사실 1980년대 학번으로 야구반 선수를 하기 쉽지 않았다. 키 150cm가 겨우 넘는 내가 야구 방망이를 들고 연습한다고 하면, 남자애들은 실실 웃거나 공을 살살 던졌다. 어떤 애들은 만약 계속 그렇게 야구를 하다간 ‘쓰리랑 부부’의 개그우먼 김미화처럼 일자 눈썹이 생길 거라고도 위협했다. 나는 그 모든 비웃음에도 소프트볼 반으로 가진 않았다. 나는 극심한 ‘운동권’이었으니까.
영화 ‘그들만의 리그’를 보니 거기에 내 꿈과 똑같은 지문을 가진 여자가 무수함을 목도하고 놀란 적이 있다. 전쟁통에 남자들이 야구장을 떠나자 메이저 리그를 대신 했던 멋진 그녀들. 난 들의 빈 볼[野球], 야구가 하고 싶었다. 아니 하고 싶다. 다시 한번 손에 글러브를 매고, 먼지 풀풀 나는 운동장에서 ‘울울창창’ 고함지르며 금속 배트를 휘두르고 싶다. 오호. 배트맨 대신 ‘배트걸’. 그렇게 불려도 아줌마 야구단의 뜻을 꺾진 못하리.
그렇다 나의 버킷 리스트. 물론 죽기 전에 안젤리나 졸리와 수다 떨며 브래드 오빠를 어떻게 꼬드겼는지, 수학여행에서 갓 돌아온 것 같은 제니퍼 애니스톤을 어떻게 물리쳤는지 물어보며 반나절을 보내고 싶기도 하다. 와인을 좋아하니 성긴 자갈길을 걸으며 보르도 와인 투어도 가고 싶다. 그러나 안젤리나 졸리보다 딸과 한 달 더 있을 수 있다면 그 길을 택할 것이다. 보르도 와인 투어 대신 이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가장 깊은 이과수와 가장 높은 히말라야에 다다를 수 있다면. 그쪽을 택할 것이다. 깊고 높은 곳을 찾고, 직선으로 날아가는 야구공을 사랑하는 나는 본시 직선형의 사람이다. 그 깊은 직선의 소망이 내 삶을 이끌었다. 늘 자연 앞의 경이로움이 신에게 한발 더 가까이 가게 만들었다.
이 세 가지의 소원. 간단한 그러나 결코 간단하지 않은 바람이 나의 버킷 리스트다. 이 세 가지 버킷 리스트를 다 이루고 나면, 영화 ‘버킷 리스트’ 카터의 대사처럼 “또 누구는 인생이라는 건 아무 의미도 없는 거라고도 하지. 하지만 나한테 생은 나를 제대로 알아주는 사람이 있느냐는 거야”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만의 버킷 리스트가 완성되는 날, 내 인생은 날 알아준 사람이 있었던 행복한 소풍이 되리라. 이 뽀얀 봄날 훌쩍 이과수로 떠날까. 인터넷에 아줌마 야구단 아니 결국엔 할머니 야구단 모집 광고라도 내볼까. 아니면 잠든 딸아이의 볼을 비비며, 이대로도 행복하다고 마음을 쓸어볼까. 꿈이 지속되는 한, 그것은 현실이다. 빅토르 위고의 말대로 죽는 것과 살지 않는 것 중 무엇이 더 나쁘겠는가. 버킷 리스트가 있는 한 내 인생도 살만하게 흘러갈 것이다. 인생을 믿는 것. 어쩌면 그것이 나의 최종적인 버킷 리스트의 버킷 리스트이기도 할 터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