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호

노민상 전 수영 국가대표팀 감독

아름다운 이별, 새로운 시작

  • 입력2011-03-25 15: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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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민상 전 수영 국가대표팀 감독

    노민상<br>●1956년 서울 출생<br>●윈앤윈 수영클럽 운영<br>●코카콜라 체육대상 우수지도자상, 대한민국 체육상 지도상<br> ●중원대 스포츠과학부 수영경기지도교수



    어려서부터 환갑이 다 되어가는 나이까지 선수로, 지도자로 수영계에 몸담고 있었고, 그랜드슬램(아시안게임, 올림픽, 세계선수권 우승)을 이룬 국가대표팀 감독도 무사히 마쳤으니 실로 감개가 무량하다. 사랑하는 아내가 말한다. 이제 목표했던 것을 다 이루었으니 좀 쉬며, 그간 지쳤던 몸과 마음을 추스르자고….

    사실 나도 지금까지 정신없이 바빴던 국가대표팀 감독직을 은퇴하고, 조용히 사색과 정리의 시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나를 그냥 놔두질 않았다. 더욱이 내가 몸담았고 사랑했고, 현재 몸담고 사랑하고 있으며, 앞으로 눈감는 날까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수영이 또다시 나를 유혹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나는 방송에서 대국민 약속을 한 적이 있다. 내 남은 인생, 두 가지에 매진하고 싶다고. 첫째는 제2의 박태환을 발굴·육성하는 일, 둘째는 훌륭한 지도자를 양성하는 일이다.

    나 혼자 하면 제2의 박태환을 단 한 명만 발굴할 수 있지만, 10명의 지도자가 선수를 지도하면 제2의 박태환 10명을 발굴할 수 있지 않을까. 제2의 노민상 감독, 즉 훌륭한 수영 지도자가 많이 양성될수록 좋은 선수가 배출될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는가. 이것이 두 목표를 세운 내 뜻이었다.



    훌륭한 선수와 훌륭한 지도자는 능력이 같을 수 없다. 훌륭한 지도자란 올바른 지도관과 인성, 선수를 자식처럼 사랑하는 마음, 과학적인 훈련 커리큘럼을 숙지하고 실천하는 자다. 이러한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좋은 체육 시설이 갖춰져 있는 보금자리, 즉 지도자 양성소가 절실히 필요하다. 이런 시설에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수영이라는 스포츠를 위해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던 중, 최근 제2의 보금자리에서 새롭게 출발할 기회를 얻었다. 꿈을 이뤄준 곳은 충청북도에 있는 중원대학교다.

    학교를 방문하기 전에는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캠퍼스에 첫발을 내디디는 순간, ‘아! 이곳이면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다. 한국체육대학교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 50m 규격 수영장이 있는 대학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중원대는 대한민국 어느 곳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좋은 시설의 50m 규격 수영장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 개교 당시부터 마련된 시설이다.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 새로운 곳, 중원대 스포츠과학부 레저스포츠학과에서 나의 새로운 꿈을 현실화하고자 한다. 나는 자신한다. 앞으로 이곳에서 제2의 박태환과 같은 선수가 발굴·육성될 것이고 우리나라, 아니 세계 최고의 수영 지도자가 배출될 것이라고!

    박태환 선수는 수영 불모지 또는 수영의 변방국이던 대한민국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그의 그랜드슬램 금메달 석권은, 수영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높이고 저변을 확대하는 계기가 됐고, 대한민국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수영 강국의 위상을 안겨주었으며, 스포츠 과학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다주었다. 또 누가 알겠는가! 중원대 수영부가 최고 수준의 팀이 된다면, 그것이 우리나라 수영을 한 차원 더 발전시킬지. 나아가 이곳에 우리나라 최초의 수상스포츠학과가 신설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조심스레 해보는 생각이다.

    노민상 전 수영 국가대표팀 감독

    스위스 베르너 오버란트 고원.

    개인적인 바람도 있다. 지금은 새로 시작한 중원대 수영부 일로 정신이 없지만, 이곳에 체계가 확립되면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던, 전국의 유명 사찰을 걸어서 여행하고픈 꿈을 실현하고 싶다.

    오대산 월정사, 설악산 백담사,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 등은 불교 신자인 내게 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그러나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정신없이 일하느라 한동안 이곳을 찾을 틈조차 내기 어려웠다. 2010년 미국 어바인에서 열린 범태평양대회 참가를 위해 미국에 갔을 때, 한국 수영대표팀을 도와준 교포 선배 4명에게 이런 속내를 내비친 적이 있다. 그러자 그들도 크게 환영하며 나의 여행에 동참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대표팀 감독직에서 물러난 뒤 바로 여행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앞서 밝힌 제2의 인생이 발목을 잡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떠날 것이다. 든든한 선배들과 더불어 우리 산천을 걷고, 텐트 치고 함께 자고, 고요한 산사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며, 그동안 부족했던 내 모습을 반성하는 시간을 갖겠다.

    한평생 노민상을 돌보느라 고생한 집사람과도 여행을 떠나야겠다. 나는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뒤 해외 대회 출전 때문에 수시로 비행기에 올랐다. 미국, 유럽 곳곳을 방문했고, 대회가 끝난 뒤엔 선수들의 견문을 넓혀주기 위해 함께 명소를 여행하기도 했다. 그러나 내 아내는 지금껏 단 한 번도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다. 늘 바깥일에 바쁜 남편 탓에 속 편히 여행 한 번 하지 못했다. 그 생각을 하면 언제나 마음이 아프다.

    언젠가는 내가 가본 곳 중 가장 아름다운 나라인 스위스를 아내에게 보여주고 싶다. 그곳에서 함께 여행하고 싶다. 가톨릭 신자인 집사람에게 해외여행 얘기를 꺼내자 이탈리아 로마와 바티칸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로마는 내게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의 아픔이 남아 있는 곳이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뛰어난 성적을 올리면서 세계적인 스타가 된 박태환 선수가 전 종목 예선 탈락이라는 수영 선수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은 곳이 바로 로마였다. 지도자로서 나 역시 그와 함께 좌절하고 마음을 태웠다. 그때 언론의 집중 포화를 맞으며 실의에 빠진 태환이를 다독이고, 2011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반드시 명예회복하자고 의지를 불태운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런 쓰린 상처가 남아 있는 로마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다. 그러니 나는 아내에게 로마보다 스위스가 더 아름답고 가볼 만한 나라라는 점을 자꾸 얘기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나는 아내 손을 잡고 스위스로 즐거운 여행을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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