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오<br>●1947년 경남 고성 출생<br>●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 정치학과 석사<br>●동아일보 기자, 한나라당 사무총장<br>●국회의장
이들의 크고 작은 ‘희망 리스트’는 자신과의 약속과 다짐, 의지와 신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 길은 ‘행복’을 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버킷 리스트는 종착역이 ‘행복’이라고 적힌 여러 장의 티켓과도 같다.
우리는 누구나 인생에서 해피엔딩의 주인공을 꿈꾼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짓고 싶어한다. 내가 다녀간 세상에 무언가 의미 있는 흔적, 가치 있는 이름으로 남겨지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버킷 리스트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 성취하려면 도전해야 하고, 꿈을 이루려면 꿈을 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설령 도달하지 못하면 어떠리.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훗날 적어도 그 꿈에 몇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버킷 리스트의 주인공은 김구 선생이다. 고등학교 때 ‘백범 일지’에 수록된 ‘나의 소원’이란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던가. 백범의 버킷 리스트는 오직 하나였다. 첫째도 ‘대한 독립’, 둘째도 ‘우리나라의 독립’, 셋째도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었다.
나에게도 버킷 리스트가 있다. 크게는 손가락 다섯 개 안쪽으로 꼽을 수도 있겠지만, 소소한 것까지 나열한다면 웬만한 수첩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어떤 목록은 이미 이뤄 지운 것도 있고, 앞으로 새롭게 써나갈 항목도 있으리라.
나는 그 리스트를, 나의 소망인 동시에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나와의 약속도 있고 가족과의 약속, 국민과의 약속도 있다. 시대와의 약속, 역사와의 약속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남은 생을 온전히 이 소망을 이루고 이 약속을 지키는 데 바칠 생각이다. 그중 몇 가지를 여기에 적어본다.
영어 연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뒤늦게 배워보려고 애는 쓰고 있지만 걸음이 더디기만 하다. 영어가 잘 들리지도 않고, 입도 쉽게 안 열린다. 외교학과 출신에 국회 외교통상위 소속으로서 영 체면이 안 서는 노릇이다.
그래도 기회만 닿으면 나는 영어로 연설하고 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개막한 아시아정당국제회의, 그리고 미국 스탠퍼드 대학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할 때도 영어를 사용했음은 물론이다. 그뿐만 아니라 주한 외국 대사관이 주최하는 국내 행사에서 축사를 할 때도 나는 웬만하면 영어로 연설하고 있다. 어느 날 그럴싸한 자리에서 그럴싸한 내용으로 적어도 5분은 머리를 숙이지 않은 채(원고를 보지 않고) 영어 연설을 하는 꿈은 그래서 내 버킷 리스트의 한 줄을 차지하고 있다.
아내와 손잡고 여행하기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과 여행할 기회가 드물었다. 국회의장 재임 시절의 공식적인 해외 순방, 국정감사 기간을 틈탄 우리 땅 탐방에 몇 차례 아내를 동반한 것이 고작이다. 그때마다 아내는 소녀처럼 얼마나 즐거워하던지…. 탐방의 결과물인 두 권의 책(‘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을 쓰는 데도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여행이란 투자 대비 효과가 아주 큰 ‘생산적 소비 활동’이다. 심신 건강 유지에도 여행만한 것을 찾기 힘들다. 정계에서 은퇴해 시간이 자유로워지면 아내와 손을 잡고 추억과 낭만, 충전과 활력을 얻기 위해 자주 길을 떠날 생각이다. 그 여행길에 가끔은 손자 손녀들도 데려가고 싶다.
대하 장편실록 집필
나는 심혈을 기울여 대하(大河) 장편실록을 써보고 싶다. 가제는 ‘비잔틴 최후의 날’. 그 작업을 위해 나는 수많은 자료를 섭렵했고, 지도에는 없는 도시 ‘이스탄티노플’에 세 번 다녀왔다. 이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의 합성어, 내가 개념 짓고 명명한 도시다. 현재의 이스탄불과 과거의 콘스탄티노플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화해’와 ‘공존’의 상징 언어다.
세계사의 물길을 바꾼 기념비적인 사건…. 1453년 이슬람 세력(오스만투르크)이 기독교 세력(비잔틴 제국)을 포위한 채 총공격을 감행한 콘스탄티노플 전쟁은 세계 전쟁 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다. 이 전쟁으로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됐다. 그런데도 서양의 세계사에서는 대단히 소홀하게 취급되고, 동양에서는 사람들이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이 ‘역사적 대사건’ 집필에 감히 도전하고 싶다. 서양의 굴욕도, 이슬람의 오만도 아닌 진실의 편에 서서 써보고 싶은 것이다. 나의 체력·능력·상상력·정의감을 남김없이 소진할 그런 시간이 주어지기를 나는 간절히 기대한다(좀 더 자세한 내용과 취지를 알고 싶다면 내 블로그(www.hyongo.com)에 들어와 보기 바란다).
고향의 작은 집에서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기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지만, 나이 들수록 고향과 옛 친구들이 그립다. 눈을 감으면 감을수록 더욱더 또렷이 보이고 선연하게 떠오르는 것이 어머니와 고향이다.
내 고향 고성에 작은 집을 짓고 채마밭의 푸성귀가 시들지 않을 만큼 자주 들르고 머물며 노년을 보내리라. 이미 늙어버린 어린 벗들과 어울려 밭에서 갓 따온 상추를 된장에 푹 찍어 막걸리 한두 잔을 나누는 것도 내 버킷 리스트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소신을 지키면서 정치 발전 이루어내기
정치를 시작한 이래로 나는 언행일치와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아왔다. 그 바탕 위에서 내가 이루고 싶은 나라, 내가 만들고 싶은 지역구를 설계하고 실행에 옮겨왔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정치, 거짓말과 덮어씌우기를 안 하는 정치,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 국민과 함께 울고 웃는 정치, 이상만이 아닌 현실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신념을 최고 가치로 삼는 정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정치…. 나는 그런 정치인으로 내 정치 인생을 마무리 짓고 싶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의 흐름이 조성될 때마다 무력감과 좌절감이 찾아온다.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하며 안간힘을 쓴다. 그러면서 ‘다시 웃으며 시작하자’ 다짐하곤 한다.
헬렌 켈러의 에세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보라. 내일이면 후각을 잃을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보라. 내일이면 더 이상 보지 못할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
그렇다. 마지막이 언제 어떻게 다가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은 그래서 모두 소중하다. ‘탈무드’에서도 “모든 날을 생애의 첫날처럼 그리고 마지막 날처럼 살라”고 하지 않던가. 최선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후회 없는 인생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살다 보면 내 삶의 고삐가 느슨해지고, 신념의 나사못이 헐거워졌음을 느낄 때가 있다. 각성과 다짐이 필요한 순간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경구처럼 한 편의 시를 떠올리곤 한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다. 그 시의 마지막 부분을 나지막이 읊조리면 새 힘이 솟으면서 나의 버킷 리스트가 다시금 살아난다.
“숲은 사랑스럽지만 여전히 깊고 어둡다/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