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호

‘비온 후 산색이 환장하게 곱네요’

지리산에서 산야초 차 · 효소 만드는 전문희

  • 김서령 |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입력2011-07-21 15: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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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콧날이 곱고 눈매가 여린 노루 같은 여자 전문희의 지리산 산중살이. 병든 어머니 보살피려 서울 생활 정리하고 내려갔다가 그대로 눌러앉아서 차와 효소에 빠졌다.
    • 한때 통기타 가수이기도 해서 지금도 산에서 노래를 부르며 산다. 뱀도 무뢰배도 물리치며 자연처럼 강하게 산다.
    ‘비온 후 산색이 환장하게 곱네요’
    머리맡에 개울물 소리가 요란하다. 다른 소리를 다 묻어버릴 기세다. 여기는 전문희의 방이고 그의 강권으로 나는 뜨끈뜨끈한 ‘황토 매트’에 길게 누웠다.

    “장마철 아니라도 물소리가 늘 저러탕께. 여기가 시천면 아니오? 물이 화살처럼 흘러간다고 시천(矢川)이제!”

    방은 곧 사람이다. 사는 방에 들어서보면 주인의 얼개가 대강은 보인다.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는지, 관심사가 뭔지, 취향과 안목의 정도가 어떤지 등등이 얼추 짚어진다. 따로 옷장 없이 입을 옷을 윗목에 가지런히 개어뒀다. 면이나 마에 황토, 감, 숯으로 염색한 옷들은 납작납작 접어지니 서양식 옷장이 필요치 않은가 보다. 전각가 진공재가 애련설을 풀어 적은 병풍이 놓이고 차와 다기들이 즐비한데 다구를 올린 탁자의 품새도 예사롭지 않고 벽에 건 한희원의 그림 몇 점도 소슬하고 격조가 있다.

    나는 전문희라는 사람을 다시 지긋이 보며 한가롭게 누웠다. 처음 그를 본 건 전주에서 열린 웨르너 사세와 홍신자 부부의 전시회 오프닝에서였다. 만장한 사람들 사이에서 웬 노루 같은 여자가 뛰어다니고 있었다. 노루 같다는 것은 팔 다리가 길쭉하다는 뜻도 있지만 눈동자가 유독 맑고 슬쩍 겁에 질린 듯도 하고 자연 속에서 문명으로 갓 빠져나온 듯한 어색함과 청신함이 두루 묶인 말이다. 그날 전화번호를 얻어왔다.

    그런 지 한 달 후 나는 드디어 천왕봉에서 흘러온 물이 눈앞에 콸콸대고 그 너머로 대숲이 우거지고 여기저기 아름드리 바위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굴러다니는 이곳으로 왔다. 새삼 이것저것 짚어보려는 문답들은 부질없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중산리 입구 동당리에 숨어 있는 그의 집 황토방, 몸이 한없이 기분 좋게 풀리는 이 순간만으로도 나는 전문희가 왜 이곳에 둥지를 틀었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황토방은 차를 발효하는 용도로 쓰인다. 전문희가 지난 계절 지리산 700고지 이상에서만 뜯어온 어린 새순들을 덖고 말리고 발효시키는 곳이다. 10여 개의 오지항아리 안에는 마치 된장이 익듯 창호지 봉지에 담긴 차가 익어가고 있었다.



    “이게 오년 발효한 차랑께. 향기 한번 죽이제요?”

    스님에게서 제다법 배우기도

    ‘비온 후 산색이 환장하게 곱네요’

    전문희씨의 방을 장식하고 있는 다기와 소품들.

    삼베보자기로 덮은 항아리 뚜껑을 열고 흡사 제가 낳은 아기를 자랑하듯 뿌듯한 낯빛을 짓는다. 그는 이쁘고 말간 눈과 고운 콧날을 가졌지만 말만은 거칠게 한다. 내가 ‘개’라고 불렀더니 얼른 “개가 아니라 개새끼랑께”라고 정정해놓고는 깔깔 웃는다. “이놈 상팔아!”라고 상좌를 부르듯 마당에 노는 개를 부른다. 개팔자가 상팔자라고 이름을 ‘상팔이’라고 지었단다. 그는 성정이 여리고 고와서 겉으로 짐짓 거칠게 군다. 그게 금방 읽힌다. 얘기 도중 맑은 눈에 일쑤 눈물이 확 고이는 것을 내게 여러 번 들켰고 그가 쓴 ‘산야초 차’와 ‘산야초 효소’ 책에도 여리고 예민한 감수성이 여러 군데서 말갛게 드러난다.

    이 방에 들어오기 전엔 산야초 효소가 발효되고 있는 토굴을 구경했다. 뒷산 언덕을 파 들어간 토굴 안에는 술도가처럼 열말들이 독이 여럿 놓였고 거기 산야초 효소가 익고 있는데 허공 중엔 흡사 안개의 알갱이 같은 초파리들이 잔뜩 날아다녔다. 초파리가 있어야 발효가 제대로 이뤄진단다.

    ▼ 효소가 도대체 뭐예요?

    “생명이 그것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는 거지요. 잉태될 때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효소의 작용으로 산당께요. 발효효소, 호흡효소, 근육효소, 응혈효소, 이름만 들어도 하는 일을 알 만하잖아요? 내장활동, 근육활동, 신경활동, 두뇌활동에 효소는 필수지요.”

    ▼ 그건 몸 안에서 저절로 만들어지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음식물의 소화과정에서 각 장기에서 필요한 효소가 만들어지는 게 맞지요. 그런데 그놈은 적당한 체온과 폐하, 유기산과 미네랄이 없으면 줄어들거나 활성이 저하한다네요. 지금 우리 사는 땅이 공기, 토양, 물이 오염되고 화학비료, 농약, 식품첨가제 투성이니까 효소가 감소하거나 활력이 심각하게 떨어져 있당께요. 효소가 활동을 못해 체내 균형이 깨지면 병이 나는 거지요. 그러니까 건강한 사람은 먹을 필요 없어요. 아픈 사람들, 특히 암환자에게 절실히 필요한 거제요. 그런 사람들 나눠 줄라고 맨든 거랑게로!”

    ▼ 효소는 주로 뭘 넣고 만들어요?

    “봄부터 가을까지 산과 들에서 나는 초목들 가운데 뿌리, 순, 잎, 껍질, 열매, 꽃을 100가지 이상 따서 넣지요. 100가지가 들어갔다고 100초 효소라고 불러요. 개복숭아, 버찌, 오디, 으름, 산사과, 돌배 같은 산열매와 여러 가지 꽃이 들어가야 맛이 좋아져요.”

    그의 직업은 이제 차와 효소를 만드는 사람이다. 첨엔 그저 산이 좋아 헤매면서 산야초를 뜯었다. 산에 살다보니 아는 스님도 많아 전통 제다법을 배워 손으로 공들여 차를 덖었다. 친구들에게 직접 만든 차를 대접하고 선물도 했더니 거기 들인 막대한 공을 아는 이들이 찻값을 놓고 갔다. 그게 규모가 차츰 커져버렸다. (오래 숙성 발효시켜야 하는 효소는 아직 판매하지 않는다.)

    ▼ 언제부터 여기 살았어요?

    “산청에 터 잡고 산 지도 인제 8년이 됐네요. 남원골, 뱀사골, 피아골, 화개골, 구례까지 지리산 구석구석을 옮겨 다니며 살았거든요.”

    ▼ 왜 그렇게 옮겨 다녀요?

    “내가 원래 바람 같은 사람이니께. 같은 지리산이라도 골짜기마다 그 느낌과 기운이 달라요. 꽃피는 시기와 겨울이 찾아오는 시기도 다르고 골짜기에 따라 사람들 성정과 사는 방식도 쪼깨씩 다 차이가 있더만요. 골마다 계곡마다 나무도 다르고 깃들여 사는 짐승도 다 다르당게로! 무슨 나무, 어떤 바위가 어디에 사는지 인제는 훤하게 다 꿰고 있제요. 고라니, 노루, 토끼, 오소리, 뱀, 벌, 나비, 멧돼지들은 가는 곳마다 만나요. 짐승들도 자주 보니까 이제는 식구 같아요. 처음에는 겁도 먹고 놀라기도 했지만 지금은 바위나 고라니가 그저 지리산에 깃들여 사는 나랑 똑같은 생명으로 보이제요.”

    바위도 생명이다

    바위도 생명으로 보이다니 이런 도를 통한 사람을 봤나. 눈감은 내 곁에서 그가 자신의 책을 낭독한다. 책 속에 노래가사가 나오자 낮은 음성으로 노래를 한다.

    “어릴 때 업어주시던 어머님 모습/ 달처럼 곱던 그 모습/ 지금은 사라졌네, 어머니/ 어머니, 우리 어머니.”

    눈물이 솟을 것 같은 노래다. 이렇게 편안한 자세의, 그러면서 마음이 북받치는 인터뷰는 처음이다.

    ▼ 7남매 가운데 유복자로 태어났다면서요? 어머니가 행상을 하셨어요?

    “예. 갱엿을 만들어 함지에 이고 팔러 다니셨어요. 시골 장날이면 장에 가는 어머니를 몰래 따라 나섰거든요. 어머니는 짐도 많은데 데려가기가 번거로우니까 집이나 보라고 자꾸 나를 쫓았제요. 내가 쉽게 포기하나요? 팥죽이나 아이스께끼 하나라도 얻어먹을 욕심으로 엄마 뒤를 몰래 살금살금 쫓아가지요. ‘이 호랭이 물어갈 년아! 에미 애간장 그만 녹이고 얼릉 집에 가그라.’ 엄마는 나를 쫓으려고 돌멩이를 던지고 나는 돌멩이에 발목을 맞고 펄쩍펄쩍 뛰면서 울고…. 서울에서 학교 다닐 땐 틈만 나면 어머니에게 편지를 썼어요. 맞춤법이 엉망인 구어체 문장으로 답장을 꼬박꼬박 보내셨어요. 그 답장이 어떤 세련된 글보다 나를 감동시켰지요. 사람이 평생 변하지 않는 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목소리고 다른 하나는 성정이란다. 그런 말씀도 하시면서 내게 세상 사는 도리를 가르치려고 애쓰셨지요.”

    그랬던 어머니가 덜컥 임파선 세포 상피암이라는 병이 나셨다. 열세 시간 수술을 마치고 입원 6개월 만에 퇴원을 했는데 반년도 되지 않아 잇몸에 다시 종양이 생긴 게 발견되었다. 종양을 떼어내자 미음도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때 형제들에게 선언을 했어요. 어머니는 내가 맡는다!! 그리고 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어머니를 모시고 고향인 전라도 장흥 산골로 내려갔지요.”

    산에서 살게 된 이유가 바로 어머니 때문이었다. 열아홉에 아버지를 만나 서른셋에 홀몸이 되어 갱엿 함지를 이고 7남매를 손색없이 키워내신 어머니셨다. 전문희는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을 벌이고 있었다. 마론핸즈라는 인테리어 가구 업체였고 한창 날개 돋친 듯 제품이 팔려나가는 중이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열정을 쏟았던 사업을 접었다.

    “어머니를 살려보겠다는 마음뿐이었어요. 필사적으로 자연치료 공부에 매달렸네요. 책 들고 다니며 암에 좋다는 약초를 캐러 남도에 있는 큰 산은 거의 다 헤집고 다녔제요.”

    ‘비온 후 산색이 환장하게 곱네요’
    어릴 때 한약방을 하던 외삼촌 집에 약초를 뜯어다주고 용돈을 받아 쓰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건강에 관한 세미나라면 어디든 쫓아다녔다. 약초 공부에 미친 듯 눈에 불을 켜고 대들었다.

    “자연치료법이 생소하지만은 않았어요. 산에서 참빗살나무, 하늘수박, 등나무혹, 꾸지뽕나무, 삼백초, 짚신나물, 조릿대, 느릅나무, 지치, 삿갓나물, 까마중, 녹나무, 겨우살이, 부처손, 이질풀, 염주, 우슬, 민들레, 질경이, 칡, 으름덩굴, 창출, 인동초, 하수오, 솔잎 등을 뜯어왔어요. 그걸 가마솥에다 달여 어머니께 마시게 했어요. 밤에는 탁한 혈액을 순환시키려고 부항 네거티브 요법을 하고.”

    이렇게 어머니께 지극정성을 바치는 딸이 있다니! 덕분에 어머니는 3년을 더 사셨다. 그리고 막내딸의 손을 잡고 영면하셨다.

    검도로 무뢰배 물리치다

    ▼ 그렇게 산을 헤매 돌면 힘들었을 텐데?

    “어머니 약을 구한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어요. 첨엔 뱀, 벌, 지네, 송충이 등이 무서웠지라. 송충이는 살갗을 스치기만 해도 온몸이 부풀어 올랐고 뱀한테 손등을 물린 적도 있고 땅벌이 달려들어 100여m 산비탈을 구르기도 했지요. 한번은 칡꽃을 따다 발을 헛디뎌 벼랑 아래로 떨어졌어요. 굴러서 바닥에 쳐박혀 날카로운 통증이 온몸으로 퍼지는데. 거 참 뜻밖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희열이 느껴지데요.”

    요컨대 그는 힘든 것보다 좋은 게 더 많았다고 한다. 벌교 부용산에 산야초를 캐러 갔을 때다. 산 정상 가까이 올랐을 때 텐트 세 개가 눈에 들어왔다. 텐트에서 남자 셋이 나오더니 수청 한 번 들고 나서 약초를 캐든 뭣을 하든 하라고 했다. 그 무뢰배 셋을 들고 있던 막대기 하나로 물리쳤다. 진작 검도를 배워놓은 덕분이었다. 이렇게 산에서의 삶은 노하우를 갖추고 졸가리가 잡혀갔다.

    어머니 돌아가신 후에도 산을 내려갈 수 없었다. 강진, 광주를 거쳐 지리산으로 왔다. 지리산에서도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여러 곳을 옮겨 다녔다. 지리산 전역을 이제 손금 보듯 환하게 들여다볼 줄 알게 되었다. 시골서 태어났지만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로 전학했었으니 그는 도시여자다. 말씨도 굳이 사투리를 쓸 이유가 없고 태도도 얼마든지 매끈할 수 있겠으나 그는 굳이 촌사람 같은 허우룩한 외양을 뒤집어쓰려 한다. 그러나 자신이 염색한 무명옷을 아무렇게나 걸쳐도 그는 옷매무새가 매우 좋아서 여럿 가운데 주목받는다. 눈만 뜨면 산으로 달려 나간다는데도 피부에 잡티조차 보이지 않는다.

    “차를 많이 마셔서 그래요. 어? 농담 아니란게로! 차에 미백작용이 있거든요. 나는 과일도 안 먹어요. 그게 웬만하면 농약 범벅이라는 것을 아니까. 대신 비타민과 미네랄과 엽록소를 차로 섭취하지요. 우리 몸에 쌓이는 독소와 노폐물은 물로 씻어내줘야 해요. 그런데 물을 그냥은 많이 마실 수가 없으니까 차로 만들어 마시는 거지요. 차를 우려 천천히 마시면 심신의 긴장이 이완되고 명상과 자기 들여다보기의 기회도 되니까 이걸 도무지 일석 몇조라고 해야 하나? 하하.”

    그러나 차를 예찬하되 일부 사람들이 따지는 차의 격식은 거부한다. 그냥 편한 대로 손쉽게 우려 마시면 될 일이지 번잡을 떠는 것은 달갑지 않다. 찻그릇은 아름다우니까, 보고 만지는 일이 그 자체로 행복하니까 눈썰미 매웁게 골라내지만 다른 일엔 대범하다. 그렇다. 그는 삶을 대범하게 살려고 한다. 그건 자연에서 배웠다. 꽃이 피면 열매가 맺고 맺히면 떨어지는 것을 여러 열 번 봐왔기에 안달하지 않는다. 인연도 그렇다. 올 사람은 오고 갈 사람은 가는 거라고 믿는다. 그래도 감정이 여리니까 그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상처 받긴 하지만.

    산야초 알리기 사명

    어쨌든 그는 차를 딴다. 차라고 얼른 녹차 잎을 떠올려선 안 된다. 한국인의 입맛을 완전히 점령해버린 커피와 녹차, 그리고 이름도 화려한 각종 외래종 허브차에 대항해서 우리 토종 산야초의 효능과 맛과 가치를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려는 것이 그의 사명이다.

    “요즘 사람들은 커피 아니면 죽는 줄 알지요. 먼 나라에서 몫돈 들여 수입해봤자 약성도 뭣도 없당게요. 우리 땅에 지천으로 자라는 우리 꽃과 우리 풀이 있는데 다 개똥 취급하잖아요? 대량생산하는 차나무는 농약을 뒤집어쓰고 있고! 그걸 훤히 보면서 내가 열받지 않을 수 있것소? 10년만 야생차를 만들고 보급하자. 그 다음엔 절로 들어가서 조용히 경전공부를 하면서 살자, 어머니 돌아가신 후 내가 그렇게 딱 맹세를 해부럿소.”

    ‘비온 후 산색이 환장하게 곱네요’

    전문희씨가 황토방에서 산야초 효소를 관리하고 있다.

    지금 전문희가 가장 공을 들이는 차는 백초차다. 이 차는 3~5월에 채취한 100여 가지의 새순을 덖어서 모아두었다가 6월이 되면 전부 섞어서 만든다. 백초차 안엔 채 눈이 녹기도 전부터 여름까지 산과 들로 뛰어다닌 시간들이 모조리 녹아 있다. ‘야생초 편지’를 쓴 황대권은 전문희가 만든 백초차의 맛을 “지리산을 통째로 내 몸에 모신 느낌”이라고 표현했지만 나 또한 약간 구수하고 조금 달콤하고 살짝 쌉쌀하면서 놀랍게 맑고 깨끗한 뒷맛을 내는 푸른 액체를 오래 입안에 머금고 있었다. 거기 들인 공력을 생각하면 얼른 삼킬 수가 없었다. 백 가지 풀과 나무의 새순으로만 만들어진 차(茶)라~ 아닌 게 아니라 피돌기 안에 청량한 기운이 섞여 피톨이 돌연 싱싱해지는 기분이다.

    독 중의 으뜸은 심독(心毒)

    그가 역설하는 차의 효능은 이렇다.

    “우리 몸은 콩나물시루와 같아요. 콩나물시루는 위에서 아무리 물을 부어도 밑으로 다 빠져나가고 남는 게 없잖아요? 그러나 콩나물은 희한하게 물을 먹고 자라 올라오지 않습니까? 차도 이와 같은 이치라고요! 차를 마시면 당장은 오줌으로 다 빠져나가고 말지요? 남는 게 뭔가 싶지요? 그렇지만 그 오줌과 함께 우리 몸에 남아 있던 노폐물이 배출되는 거네요. 그러고 나면 피가 그만큼 깨끗해지거든요. 피가 깨끗해지면 머리가 맑아지고 몸도 가뿐해지죠. 이것을 생활화하면 우리 몸은 병균이 서식할 수 없는 건강한 상태가 유지된다고요! 그러니 콩나물시루에 물 붓는 걸 멈출 수가 있겠어요?”

    게다가 차는 비싸야 좋은 것이 아니다. 전문희의 말에 따르면 산과 들에 절로 돋아 지천으로 깔린 풀과 꽃이 전부 차가 될 수 있다. 흔할수록 약성이 높고 흔할수록 아무에게나 잘 듣는다. 흔하다는 건 그만큼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니 그게 자연의 진실이다. 희귀해야 가치 있다는 건 인간이 만들어놓은 허구일 뿐! 질경이, 쑥, 민들레, 토끼풀, 쇠비름이 다 훌륭한 차와 효소의 재료가 된다. 다만 인가 가까이에 돋아 농약과 비료와 항생제에 오염될 염려가 없기만 하다면!

    전문희는 올해 쉰이 되었다. 태중에 있을 때 어머니가 태아를 떼려고 높은 데서 뛰어내리고 독초를 삶아 마시고 별짓을 다해 그걸 피해 살아남느라고 오장이 제대로 발육하지 못했다고 한다. 허약체질이었다. 막상 태어나서는 그걸 보충하려고 어머니가 다려준 쑥즙을 숱하게 마시면서 컸다. 아이러니하게도 어머니 간병을 위해 3년여 온 산을 쏘다니면서 그는 되레 건강을 얻었다.

    몸이라고 부르는 자연

    “우리 몸은 206개의 뼈로 이뤄져 적절히 움직이지 않으면 퇴화하고 탄력을 잃어요. 서울서 사무실 안에 틀어박혀 스트레스를 받다가 산과 들로 쏘다니니까 몸이 활력을 찾은 게지요. 거기다 직접 만든 차를 마셔 독소를 빼냈으니 면역성도 높아졌겠고! 쇠에서 나온 녹이 쇠를 망가뜨리듯 우리 몸도 독소를 빼내지 못하면 균형을 잃거든요.”

    ▼ 독소란 게 뭐지요? 우리 몸에 그게 왜 있지요?

    “스트레스가 모여 독이 되지요. 병의 이름은 수만 가지지만 원인은 단순해요. 바로 독소와 노폐물이 혈관에 쌓여서 생기는 거랑게요. 독소의 반대가 산소예요. 독소가 많으면 암세포들이 좋아하고 산소가 많으면 암세포들이 맥을 못 춰요. 독 중에서 으뜸은 심독(心毒)이제요! 분노, 집착, 욕심, 미움, 불안 같은 것들이 마음에 독을 뿌려요. 나쁜 음식을 통해 들어오는 독이 두 번째고 과식이나 폭식이 세 번째 독이고….”

    자연치료법의 첫 번째 원리가 마음 안에 화와 미움을 없애는 것, 인간이 원래 가졌던 평화롭고 따뜻한 마음을 회복하는 일이라고 그는 확실히 믿는다.

    “희한하지 않아요? 화와 미움이 없어져야 몸 안에 면역력이 생긴다는 것이!”

    정말 희한한 일이다. 우리 몸은 원래 스스로 완벽한 구조를 가졌다. 스스로 영양을 조절하고 스스로 병을 고칠 줄 안다. 뇌는 효능이 빼어난 진통제, 항우울제, 수면제를 만들어내고 위는 소화제를 만들어내고 간은 조혈제와 피로회복제를, 장은 지사제를 저절로 만든다. 물론 부작용도 전혀 없다. 우리 몸은 그러고 보니 완전히 가동 중인 제약회사나 다름없다.

    “몸이 건강하다는 건 그런 회사들이 탈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랑게요. 그런데 다들 멀쩡한 제 몸을 스스로 망가뜨리거든요.”

    그걸 알아도 도시인들은 산과 들을 전문희처럼 뛰어다닐 수는 없다. 먹고사는 일이 발목을 꽉 잡는다. 욕심과 화를 내려놓기도 만만찮다. 자연에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일단 자연의 기운을 빨아들인 차를 마시라는 것이 그의 충고다. 그냥 마시는 게 아니라 속도를 완연히 낮춰서 천천히 마시면서 마음을 내려놓으란다. 속도가 문제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상당 부분 제 속도를 어기는 데 있는 것 같다. 곡식도 과일도 천천히 제 시간을 들여 키우고 천천히 제 시간을 들여 익히고 천천히 맛을 음미하며 먹어야 하련만 상업논리로 그걸 다 어겨버린다. 축산까지 그렇게 속도를 어겼기 때문에 전에 없던 무서운 질병이 찾아온 것 아니냐.

    “기다리지 않고 되는 일이 뭐가 있어요? 꽃피고 열매 맺는 것도, 아이의 성장도, 사랑도 다 기다리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기다릴 줄 몰라서 탈이 나는 거지요.”

    흙과 미생물이 식물을 키운 시간, 바람과 비, 벌레, 햇볕, 농부가 논밭을 오가며 보낸 시간이 오롯이 녹아 있어야 우주의 기운을 제대로 빨아들인 식물이 자란다는 전문희의 말은 옳고 말고다.

    “자연 속에 깃들여 살면서 기다릴 줄 아는 일만큼 중요한 게 또 하나 있지라요! 그게 바로 내 ‘몸’이에요. 몸이라고 부르는 자연!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자연의 말에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요. 자신의 몸이 보내는 경고에 귀를 기울이면 제 몸에 닥칠 위험을 미리 알 수 있지요. 암만 호소해도 못 듣다가 덜컥 병이 나면 후회해도 소용없제.”

    이런 말까지 그는 노래하듯 한다. 실제로 이야기 도중 여러 번 음률을 붙여 노래를 했다. 낮은 음조로 읊조리는 그의 음색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 한때 통기타 가수였다면서요?

    “하하 음반을 낸 적은 있어요. 노래 부르는 걸 워낙에 좋아라 했응게. 노래는 내 동반자입니다. 한평생 변치 않고 내 곁에 있을 동반자! 산에 다니고 찾아오는 사람 만나고 하다보면 분주하고 정신없는 날이 이어져요. 그럴 때 노래를 불러 생활의 리듬을 조절하지요!”

    ▼ 노래에 그런 기능이 있어요?

    “그러믄이요. 노래가 없었다면 나는 많이 울었을 겁니다. 노래가 없었다면 나는 남 앞에 더 호들갑스러웠을 것이고 노래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작고 초라했을 것입니다. 노래 덕분에 울지 않고 호들갑 떨지 않고 나를 지킬 수 있었당게.”

    애절한 노래

    지리산에서 돌아온 지금 나는 산야초 이야기보다 되레 그의 노래 이야기가 더 마음 깊이 스며든 걸 느낀다. 노래라는 게 그렇게 한 사람의 마음을 지켜줄 수 있는 거로구나. 노래란 무엇인가. 노래 역시 눈에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을 이어준다. 우리 마음속에 노래가 있다. ‘나는 가수다’에 그토록 열광하는 것도, 3~4분에 끝나는 노래 한 곡에 그토록 눈물을 줄줄 흘리는 것도 우리 안에 부르지 못한, 터져 나오려고 몸부림하는 노래들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리라. 전문희는 진짜 가수가 돼도 좋을 뻔했다. 살아온 사연도, 서정의 깊이도, 감수성의 떨판도, 내적 발효도, 깨달음도 한 사람의 소리꾼이 되기에 충분해 보인다.

    “참 남궁옥분 언니가 나한테 노래 하나를 줬소! 들어볼랴요?”

    그래놓고 구슬프디구슬픈 노래를 부른다.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던 이들의 애끊는 심사를 담은 노래다. 가수 남궁옥분과는 옛 인연이 최근에 다시 이어져 부쩍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 언니가 우리 집 다실을 보더니 똑같은 걸 하나 만들어 달라캐서 옥분 언니네 집 다실을 내가 꾸며줬지요. 그 언니가 커피 대신 우리 차를 마시게 돼서 얼마나 좋은지….”

    지리산에 들어온 지 이제 16년이 지났다. 전문희는 그동안 지리산 일대에서 ‘건강을 위한 산야초 연구회’를 이끌며 온갖 야생차를 만들었다. 그 차의 맛과 효능이 하도 좋아 ‘우리차 마시기 운동’에 신들린 듯 앞장서왔다. 덕분에 사람들은 숱한 차를 알게 됐고 즐기는 이도 점차 많아졌다.

    “16년 전에는 쑥차, 뽕잎차, 감잎차 정도만 알려져 있었어요. 근데 이제 매화차, 연잎차, 칡꽃차, 구절초차, 민들레차까지 사랑을 받고 만들어 파는 곳도 많이 생겼지라.”

    ‘비온 후 산색이 환장하게 곱네요’

    전문희씨가 거실에서 글을 쓰고 있다.

    그는 진작부터 머리를 삭발하고 먹물 옷을 입고 다녔다. 여자 혼자 산에서 사는 잡음을 피하는 데는 그게 최고였으니까! 차 만드는 일을 딱 십년만 하고 속세를 떠날 결심은 진작에 있었다. 십년이 찼을 때 그는 모아둔 찻사발과 책을 곁엣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살림을 정리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정리가 거의 끝나갈 무렵 갑자기 온몸에 마비가 왔다. “전신마비였어요, 씨…. 차도 못 마시고 수저질도 못하고 오줌도 못 누고.”

    의사들은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산야초 연구회 사람들이 출근하다시피 와서 뒷바라지를 해줬다. 기가 막혔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총동원해서 병과 싸웠지요. 침, 뜸, 부항, 추나요법, 요가, 근육강화운동, 식이요법, 단식, 효소, 독소제거요법, 자연요법 , 정말 안 해본 게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출가는 요원해졌다. 절박했던 출가를 향한 마음도 옅어졌다. 이전에도 출가를 결행한 적이 세 번이나 있었다. 그때마다 크게 아프거나 독사에 물리거나 몸을 다치거나 하는 일이 일어났다.

    “도무지 뭔 일이래요? 인제 다 접고 떠나려고 하면 덜컥 사고가 생겨요. 그걸 지켜본 친구들이 충고하대요. 너는 출가와는 인연이 없으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많은 사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전도사 역할을 하는 것도 출가 못지않게 중요한 일 아니냐고. 맞아요? 그런 거예요? 그러나 나는 갈 거예요. 언제든 다 접고 떠날 준비가 돼 있당게요. 세상사 아무 미련도 욕심도 없어요.”

    마흔이 훌쩍 넘도록 혼자 꿋꿋이 살아온 그도 몸이 아프면서 약해졌다. 전문희가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얘기를 듣고 그의 반려가 되고 싶다며 찾아온 이가 있었다. 진작 친구처럼 지내던 이였다.

    “그 남자와 결혼했어요. 민주화운동에 몸이 망가진 것을 지리산에 와서 고친 사람이었당게요. 내 오줌도 누여주고 밥도 먹여주고…. 팬티 벗은 걸 다 본 사람인데 우째 결혼을 안 할 수 있대요?”

    자연에 대한 죄책감

    그 사람 덕분에 ‘전문희가 만든 야생초 이야기’의 외형이 커지게 됐지만 지금 곁에 있지는 않다. 곳곳에 흔적이 보이지만 거리가 멀어진 것 같다. 사람의 일이란 참 뭐든 쉽지가 않구나.

    “올봄에도 작년에도 산에 오르면서 늘 울고 다녔어요. 가슴이 찢어지게 아파서.”

    전문희는 구성지다. 속이 깊어 설운 이야기를 잘도 풀어놓는다. 우린 밤중에 갑자기 발동이 걸려 청학동 인근의 그의 스승 집으로 갔다. 흰 수염이 풍성하고 껄껄대는 웃음이 바위를 녹일 듯한 적강신선 같은 어른이었다. 그의 오두막에서 전문희가 만든 5년 발효한 차를 앞에 두고 대숲에 쓸리는 바람소리를 듣는 일은 기가 막혔다. 그가 울고 다녔다는 건 사람 때문은 아니었다. 하긴 사람 때문이 아니었다고 할 순 없다. 눈물나게 만드는 건 그게 뭐든 결국은 사람 때문이니까.

    “제가 10년 전부터 생강나무 꽃차가 좋다고. 방송에 몇 번 나가고 책에도 썼잖아요. 칡꽃이 좋다고, 매화가 좋다고 썼잖아요. 이게 제가 원조예요, 솔직히! 10년 전부터 우리 야생차 확산운동을 해오면서 기뻤어요. 자연을 알게 해주고 자연의 감사함을 알게 해주고 무공해 차를 마시는 운동을 할 수 있어서 기뻤거든요. 선생님!”

    그랬는데 최근에 무서운 일이 일어났다. 전문희는 그게 자신의 죄인 듯해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야생차 보급운동의 보람이 죄책감으로 변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

    “산에 가면 생강나무가 남아 있지 않아요. 누군가 밑동부터 베어버려요. 나는 지금도 산에 가면 꽃을 따기가 아까운 마음이 들어요. 그 앞에서 ‘그저 바라만 보고 있지~’ 하면서 몇 송이 따고 말어. 아쉬움을 안고 안타깝게 ‘그저 애만 태우고 있지~’ 하면서 지나가요. 냄새만 맡고 색깔만 즐기고! 그런데 몇 송이는 반드시 딸 수 있게 해줘. 내 손이 닿으니까!! 작년 올해 다녀보니까 생강나무 밑동 굵은 게 다 잘려져버렸어요. 지금 전국적으로 약초축제가 난리도 아니잖아요? 영천, 제천, 함양, 장흥, 산청, 이런 약초축제가 성황리에 이루어지는 건 좋아요. 그런데 산에서 그런 사단이 나면 되겠어요? 생강나무 원둥치를 잘라버리니까 옆에서 잔가지 수백 개가 새로 나와 가지고 천수천왕 관세음보살 손처럼 살려달라고 내게 애걸을 하고 있더라니깐요. 선생님 이걸 어쩌면 좋대요? 꽃차의 원조가 나라고 자랑했지요? 아니에요. 꽃을 망치는 원죄가 나입니다! 그래서 눈물로 가슴앓이를 하고 다녀요.”

    나날이 새롭게!

    신선 같은 스승은 거 몹쓸 사람, 몹쓸 사람들이라고 전문희의 이야기에 아름다운 추임새를 넣었다.

    “그래서 또 뭘 배우냐면 선생님, 그 질경이 있잖아. 밟아도 밟아도 기어 나오는 질경이, 그런 것들은 암만 뜯어도 괜찮아요. 쑥, 민들레, 질경이 이런 땅바닥에서 채 10㎝도 자라지 않는 풀들은요 약성도 좋지만 봄, 여름, 가을까지 길게 길게 먹을거리를 주면서도 약성도 뛰어나고 아무에게나 상관없이 다 이롭거든요. 그런 건 뜯으면 뜯을수록 자꾸 새로 돋아요. 진짜 저것들이 부처예요. 제대로 하심을 하잖아. 근데 사람들은 저렇게 좋은 건 또 안 봐요. 그저 귀하게 한 그루 서 있는 거, 50년 60년 100년 자라온 나무들만 치고 다녀요. 저놈들이!”

    그는 사람을 부를 때 이놈, 저놈 칭하기를 좋아한다. 놈이란 말 속에 애정과 미움을 적절히 뭉개서 섞어둘 줄 안다. 그러고 보니 그는 시인이다. 언어에 예민하다. 그가 쓴 글 속에도 시적 문장이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도처에 깨달음이 있다. 이 인터뷰 글도 그의 책에 도움 받은 바가 크다. 시적 문장 정도가 아니라 그가 직접 쓴 시도 있다. 꽤 여운이 깊어 옮겨본다.

    ‘사랑하는 사람은 액체다./ 그리하여 한 시도 쉬지 않고

    내 마음속에 흐른다/ 내 몸에 흐른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그렇게

    내 속에서 물이 되고 술이 되고 차가 된다

    그들이 너무 딱딱한 고체여서 내 손이 다치지 않기를

    그들이 너무 가벼운 기체여서 곧 사라지지 않기를

    기다리는 동안 내 속의 물이 얼어 얼음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동안 내 속의 물이 수증기로 날아가지 않기를

    사랑하는 순간 그들은 내게로 와서 액체가 된다

    머리맡의 자리끼가 되고/ 흐린 날 차 한 잔이 되고/ 텃밭에서 마시는 새참 막걸리가 된다

    이제 내가 할 일은 그들과 함께 강물이 되어 흐르는 일/ 바위에 걸리면 돌아가고 송사리가 오면 품을 내주는 강물이 되는 일.’

    뱀을 만난 이야기도 절창이다. 나는 밑줄을 긋고 내가 그은 밑줄을 전문희가 낭독한다.

    ‘비온 후 산색이 환장하게 곱네요’
    金瑞鈴

    1956년 경북 안동 출생

    경북대 국문과 졸업

    대구 중앙중 국어교사, 매일경제신문·샘이 깊은 물 객원기자

    월간 ‘동서문학’ 신인상

    저서 : ‘여자전’ ‘김서령의 家’ ‘삶은 천천히 태어난다’ 등


    ‘산에서 뱀을 만나면 조용히 속으로 뱀에게 주문을 건다. 너는 너 갈 길 가고 나는 내 갈 길 가면 되는 거다. 단숨에 물어뜯을 것처럼 바로 코앞까지 사납게 다가오는 뱀을 만나면 순간적으로 자포자기하게 된다. 그래, 이제 정말 끝이로구나. 뱀은 얼마 동안 버티고 있다 슬그머니 사라져버린다. 뭘 모를 때는 놀라서 소리도 치고 도망가려고도 했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차츰 의연하게 대처할 줄 알게 됐다. 호들갑 떨어봤자 소용없다.’

    뱀뿐 아니라 삶에서 예기치 않게 만나는 그 무엇이든 마찬가지 아니랴. 지리산은 야생초의 어린 순뿐 아니라 향기로운 꽃과 열매뿐 아니라 그에게 커다란 깨우침을 주었다. 나날이 새롭게! 나날이 아름답게! 그는 오늘도 지리산에 오른다. 오르면서 샘나게도 내게 휴대전화 문자를 보낸다.

    ‘비온 후 산색이 환장하게 곱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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