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을 닷새 남기고 만난 정 재판관은 긴장과 기대감을 동시에 품고 있었다. 현재까지 유엔 재판관으로 파견된 한국 법조인은 단 3명. 정 재판관은 2008년 주(駐)오스트리아 대사관 사법협력관으로 파견된 후 국제무역법을 만드는 유엔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회의에 지속적으로 참가하며 경험을 쌓았다.
“한국처럼 무역에 목숨 거는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데 국제적인 무역법 만드는 회의에는 그동안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사법협력관으로 부임했을 때 만난 한 위원회 사무국 직원은 ‘왜 한국인들은 매번 회의에 참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느냐’고 말하더군요. 저는 단순히 회의를 경험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너서클’에 들어가 회의를 주도하고 한국의 입장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정 재판관의 노력으로 60개 회원국 중 한국의 발언권은 점차 강화됐고 2009년 한국인 최초로 오수근 이화여대 교수가 본회의 의장을 맡았다. 하지만 지난해 정 재판관 후임 사법협력관이 파견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겼다.
“우리나라 판사만큼 실력 좋고 열정 있는 법조인도 없습니다. 후배들 중 관심 있고 능력 있는 분들은 꼭 세계로 눈을 돌려 기회를 잡길 바랍니다.”
크메르루즈 정권 학살 고통은 현재진행형이다. 30년이 넘게 과거사가 청산되지 않아 지금도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마을에 산다. 지난 3년간 캄보디아 국민 중 8분의 1이 ECCC 재판소를 견학했을 정도로 재판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다. 하지만 경제개발이 시급한 캄보디아 정부는, 장기화하는 ECCC 재판을 곱게만 보지 않는다.
“현재 살아 있는 피해자만 수백만명이고 캄보디아 정부 협조도 크게 바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악조건 속에서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판사로서, 증거를 철저히 분석하고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며 재판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