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쓴다고 무시당한 법정 스님
- 이웃 고통 외면하는 나 홀로 수행은 필요 없어
-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성욕 자체는 문제 안 돼
- 봉은사 사태에 외압은 없었다
- 선방에서 죽어라 참선해도 깨달음 오지 않더라
- 삶과 죽음은 바람 부는 바다와 같은 것
도법 스님(62)은 평범한 중이 아니다. 절에 앉아 시줏돈 세거나 참선한다고 골방에 처박혀 있는 중이 아니다. 그는 사회운동을 하는 중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생명평화운동이다. 1999년부터 그가 이끄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불교계의 대표적인 사회운동조직이다. 지리산 실상사가 거점이다. 본부는 서울 목동에 있다. 농업에 기반을 둔 그의 생명평화운동은 도시와 시골을 똑같이 중요시한다. 그는 2004년부터 생명평화의 기치를 내걸고 5년 동안 탁발순례를 했다. 지지자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그는 조계종에서 ‘구원투수’로 통한다. 1998년 종단 폭력사태 때 총무원장권한대행으로 활약했다. 지난해 조계종은 봉은사 사태와 4대강 사업을 둘러싼 갈등으로 내분에 빠졌다. 그해 6월 그는 조계종 화쟁(和諍)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종단의 분쟁을 수습하는 데 앞장섰다. 1년 뒤인 지난 6월 결성된 ‘자성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 본부장도 그의 몫이었다. 이는 화쟁위원회와 민족공동체추진본부, 종교평화위원회를 합친 기구로 조계종 개혁의 총사령탑이라 할 만하다.
골치 아픈 종단 개혁 얘기를 하려고 그를 만난 건 아니다. 중에게 감투가 뭐 대수랴. 널리 알려진 귀농운동을 새삼 소개하려는 것도 아니다. 삶의 고단함과 찰거머리와 같은 욕망, 존재의 위기, 세상의 위기에 대한 그의 고견을 듣고 싶었다. 해법을 찾기보다는 위로를 받고 싶어서였는지 모른다. 삶에서 위로만큼 따뜻한 것도 없으니. 인터뷰는 목동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10월29일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서울 양천구 양천공원에서 ‘2011 가을한마당’ 축제를 벌였다. 이 행사는 ‘도시와 농촌이 만나 희망을 만들다’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추수감사제, 귀농귀촌 알림마당, 친환경농산물 알림마당, 우리문화 체험마당, 공연마당 등이 주요 프로그램이었다.
한국 불교 전통은 멍에
▼ 요즘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십니까.
“제가 하는 일이 불교적 대안과 사회적 대안을 찾는 겁니다. 불교적인 게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이고 사회적인 게 마을공동체입니다. 마을공동체 운동은 주로 실상사에서 해요. 실상사 주지는 따로 있고요. 보통 새벽 4시에 일어나 수행시간을 갖고 나머지 시간엔 사람 만나고 강의하고 회의하고 그러죠.”
▼ 목동에 자리 잡은 것도 도시공동체 운동과 관련된 건가요?
“도시와 농촌이 만나 하나가 되는 운동이죠. 이런 운동이 불교 쪽에는 인드라망밖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 조계종 화쟁위원장에 이어 자정과 쇄신 결사 추진본부장도 맡으셨는데요.
“제가 그동안 해온 일과 맥이 닿아 있어 제안을 받아들였어요. 그것 때문에 서울에 자주 와요.”
▼ 여러 일을 동시에 하려면 진짜 바쁘실 것 같아요.
“실무 보는 친구들이 따로 있어요. 저는 모자 노릇, 바람잡이 노릇하는 거죠. 누구를 만난다든지 강연을 한다든지…. 혼자 모든 걸 할 수는 없죠.”
▼ 스님이 하는 일은 수행을 중시하는 전통적 불교와 방향이 다르죠?
“나는 내가 하는 게 진짜 수행이고 진짜 불교라고 생각해요.”
▼ 왜 그렇죠?
“한국 불교가 자랑스러운 대안으로 얘기하는 게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의 정혜결사예요. 최근엔 성철 스님의 봉암사 결사를 예로 들지요. 그런데 둘 다 산중에서 고고하게 수행 잘하자는 얘기예요. 출가자 중심이에요. 그런데 부처님이 하신 불교는 그게 아니에요. 수행 잘하는 건 당연한 거고요. 부처님은 당신 자신과 불교 집단의 이익을 위해 불교를 하지 않았어요. 중생과 세상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 불교는 존재하고 자신도 그걸 위해 일생을 바치고 있다고 말씀하셨죠. 그런 것을 제대로 계승하는 게 진짜 불교라는 생각에서 이런 운동을 해온 겁니다.”
사회운동을 열심히 하는 스님에게는 이런 시비가 따라붙는다. 넌 도대체 수행은 언제 하느냐고. 이 질문을 던지자 도법 스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받아넘겼다.
“당연하죠. 기성 불교 쪽에서는 다들 그런 생각을 하죠. 제가 법정 스님을, 그 분이 20대일 때부터 알았어요. 모시고 살기도 하고 봉사도 했죠. 30, 40년 전 법정 스님은 절집에서 전혀 평가받지 못했습니다. 무슨 수행자가 글을 쓰냐고. 글 쓰는 사람이 무슨 수행자냐고. 그런데 이제 와선 최고의 수행자로 평가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불교도 변하고 불교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 변한 겁니다.”
그는 ‘한국 불교의 전통’을 ‘멍에’라고 규정지었다.
“오늘날 한국 불교가 전통으로 생각하는 것은 조선조 500년 동안에 굳어진 거예요. 벗어야 할 멍에입니다. 숨어서 살아남아야 하는 조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된 건데 그것을 마치 대단히 소중한 전통처럼 여기는 겁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은둔해야 했고 내면적이고 정적이어야 했죠.”
달마와 원효
▼ 사회참여적이고 실천적인 면을 강조하시는 거죠?
“저는 현실을 떠난 종교는 있을 수 없다고 봐요. 현실을 떠난 수행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삶과 수행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거죠. 분리되는 것은 진짜 불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득도를 했다는 고승들은 대부분 속세와 떨어져 수행했지요?
“대표적으로 대비되는 인물이 달마 선사와 원효 대사입니다. 원효는 천촌만락(千村萬落)을 누비면서 민중과 함께했던 인물이고, 달마 선사는 소림굴이라는 인적이 끊긴 심산유곡에 들어가 면벽좌선(面壁坐禪)했던 인물이지요. 어떤 게 진짜 불교냐 하고 하나를 선택할 문제는 아닙니다. 시대상황에 따라 다른 거죠. 상황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부처님이 매일 탁발했습니다. 문전걸식한 거죠. 그게 바로 현장이지 않습니까. 마을 간에 싸움이 나자 말리러 달려갔습니다. 나라 간에 전쟁이 벌어지면 전쟁 말리러 갔습니다. 살인마가 나타나 온 사회가 불안과 공포에 떨자 살인마를 직접 설득하러 찾아가기도 합니다. 늘 현장에 있었지요. 그렇지만 부처님에게 그런 모습만 있었던 건 아닙니다. 조용히 숲 속에서 좌선하고 명상하는 모습도 있죠. 수행해야 할 때도 있고 현장에 있어야 할 때도 있는 겁니다.”
인드라망생명공동체는 그가 강조하는 ‘현장 수행’의 결정체라 할 만하다. 회원 수 1000여 명의 이 단체는 전국 곳곳에서 귀농운동, 생활협동조합운동, 대안교육운동, 생명환경운동, 생태공동체운동을 펼치고 있다.
▼ 전에 한 언론 인터뷰에서 선(禪) 수행자들의 문제점을 비판했던데요. 공동체적 삶은 돌보지 않고 개인 수행만 하는 게 문제라는 거죠?
“개인 수행도 잘하면 좋다고 봐요. 그런데 세상과 분리된 개인 수행이라는 게 있을 수 있느냐는 거죠. 여기 개인 수행을 잘하는 훌륭한 분이 있습니다. 그 옆에서 누군가가 어떤 일로 몹시 고통스러워합니다. 고통스럽고 불행한 존재가 곁에 있는데 혼자 수행 잘해서 평화롭고 행복하다면 그게 진짜 바람직한 평화와 행복인가? 난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웃의 고통에 아랑곳없이 홀로 평화로움을 맛보는 게 훌륭한 수행이라면 그런 수행은 없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수행이 정말 중요할까요? 옆에서 죽거나 말거나.”
▼ 대부분의 스님에게 수행이란 자기 깨달음을 위한 것이잖아요?
“그렇죠. 그게 가장 훌륭한 일이라 생각하고 인생을 걸죠. 그런데 저는 의심이 들어요. 부처님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그러니 물고 늘어지는 거죠. 그게 진짜라고 하는데 잘못 알고 있다, 착각하고 있다는 거죠. 거기에 대한 응답만 나올 수 있다면 저는 지리산 아니라 히말라야에 들어가도 좋다고 봐요.”
스스로를 속이고 세상을 속이고
도법 스님은 세상과 분리된 개인 수행을 비판했다.
“못해. 먼 훗날 천지개벽하면 깨달음이 이뤄지고 그러면 다 해결된다는 식이거든요. 불교는 극락세계를 얘기하고 기독교는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그러면 불교 2600년 역사와 기독교 2000년 역사에서 극락세계와 하나님 나라가 실현됐는가. 여전히 다음과 미래를 얘기하고 있지 않은가. 이건 곤란하지 않은가. 지금 살면서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이 나오고 희망이 제시돼야지, 손에 잡히지도 않고 검증할 수도 없는 죽은 후의 먼 훗날을 얘기하는 건 곤란하다는 거죠.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거고 세상을 속이는 거죠.”
화끈하고 시원시원하다. 에두르지 않고 곧바로 말한다. 그럴듯한 미사여구로 포장하지 않고 날것을 드러낸다.
▼ 우리 사회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요. 사회적·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심해지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커집니다. 경제 수준은 높아지는데 왜 이렇게 사는 게 팍팍해지는 걸까요?
“본질적으로는 세계관과 가치의식의 문제라고 봅니다. 실체론적, 이원론적 세계관을 갖다보니 나만 따로, 우리끼리만 따로 사는 길이 있다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그걸 추구해요. 소유 가치를 중심으로 삼을 거냐, 존재 가치를 중심으로 삼을 거냐에 따라 삶의 길이 달라져요. 이원론적 세계관과 소유 가치가 얼마나 나쁘고 위험한지 깨달아야 해요. 동시에 관계론적 세계관과 존재 가치가 우리의 살길이라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경전에 이런 비유가 나옵니다. 뒤에서 살인강도가 막 쫓아오니 나 살려라 하고 도망갑니다. 앞에 태산 같은 불구덩이가 있어요. 타 죽게 생겼으니 얼른 피한다는 것이 물에 빠졌어요. 결국 물에 빠져 죽었지요. 불에 타 죽으나 물에 빠져 죽으나 결과는 같죠. 근본에 대한 바로잡음이 없으면 악순환이 되풀이되지요. 오늘날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예요. 근본을 바로잡기 위한 노력은 뒷전으로 밀어내고 임시처방만 계속합니다. 문제가 옮겨 다닐 뿐이죠. 해결은 안 되고.”
그는 저서 ‘그물코 인생 그물코 사랑’에서 부자와 1등을 허구라고 단정했다. 부자는 경제성장을, 1등은 경쟁력을 상징한다.
▼ 경제성장을 안 하면 나라가 자꾸 뒤처지겠죠. 개인적으로는 경쟁에서 뒤지면 사회에서 견디기 힘들죠. 이런 문제가 개인이 세계관을 바꾼다고 해결될까요?
“개인도 노력하고 사회도 노력해야죠. 우리가 지구촌이라는 말을 씁니다. 지구가 한 마을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면 적대관계가 없어야죠. 더불어 살아야 할 좋은 이웃이고 동반자죠. 그런데 우리는 지구촌이라는 말을 쓰면서 적대적으로 경쟁하고 대립하고 싸우잖아요. 이미 이뤄진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그런데 과거의 사고방식으로 현실을 보고 있어요. 예를 들어봅시다. 한국이 경쟁력을 강화해 일본을 공격해 무너뜨렸어요. 미국은 급격히 경제가 쇠퇴했어요. 그럴 때 우리나라는 괜찮을 수 있을까요?”
▼ 영향을 받겠죠.
“미국 의존도가 매우 높잖아요. 치명적인 영향을 받게 되죠. 세계시민이라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냥 우리나라 국민으로만 생각하는 게 문제예요. 내가 직면한 지구촌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나와 너
▼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진단도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에서 최근 벌어지는 시위는 자못 심각합니다. 전쟁과 테러 위협이 갈수록 커지고요.
“자연재앙이 가장 큰 위협이에요.”
▼ 이래저래 인류의 종말이 오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안 그렇겠습니까. 그래서 해답이라고 내놓은 게 지속가능 발전 사회이잖아요. 지속이 가능하려면 먼저 자연생태적 가치를 근간으로 삼아야죠. 두 번째로 서로를 동반자로 인정해 협력해야 합니다. 이웃사촌과 품앗이 개념이죠. 크게는 국가이고 작게는 마을이죠.”
▼ 개인보다 국가가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집단이기주의가 표출되니까.
“개인도 집단도 다 이기주의 일색입니다. 이것을 벗어나지 않고는 인류의 종말이든 문명의 종말이든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정치사회적으로 민주주의가 실현됐으면 당연히 평화롭고 행복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정반대로 나타나고 있지요. 그걸 우리는 생명 위기, 평화 위기라고 해요.”
▼ 불교에는 종말론적 세계관이 없지요?
“말세론이 있죠.”
▼ 기독교의 말세론과는 다르죠?
“순환질서로 설명하죠. 흥망성쇠의 원리. 기독교와는 좀 다르죠. 흥하면 망하고 망하면 다시 일어나고.”
▼ 그럼 불교적 세계관에서는 지금의 문명이 망한 다음 또 다른 세계가 열리는 건가요?
“당연하지요. 어제가 있어 오늘이 있고 오늘이 있어 내일이 있는 거죠.”
▼ 기독교에서는 완전히 끝난다고 말하잖아요?
“거기는 언제 시작해 언제 끝난다고 하죠. 문제는 그 과정이에요. 우리가 주체적으로 잘 준비하면 고통과 비극을 줄이면서 새로운 미래를 만들 수 있어요. 그런데 잘못된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고통과 비극을 끝없이 확대시키면서 비극적인 미래로 나아가게 되는 거죠.”
▼ 많은 사람이 마음의 평화를 찾습니다. 행복은 가까운 데 있다고 하지만, 막상 생활 속에서 그걸 느끼기란 쉽지 않습니다. 좋은 가르침을 받을 때는 깨달은 것 같다가도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갑니다.
“무지와 착각 때문이죠.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가장 위대한 존재, 가장 가치 있는 존재가 뭐겠습니까. 바로 지금의 나 자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모르고 있어요. 얼마나 완성된 존재인지. 나라는 존재를 불완전한 문제덩어리라고 생각하죠. 어딘가 완성된 게 있을 거라고 찾아다닙니다. 그러나 인간 존재 자체가 대단한 겁니다. 천하를 다 뒤져도 여기 현존하는 나 자신보다 귀한 것은 없죠. 존재하는 것만으로 무한한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너도 그런 거죠. 그 존재 가치에 눈뜬다면 돈이 있든 없든 서울대를 나왔든 말든 거룩한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런 대단한 존재가 내 친구로 내 이웃으로 있다는 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모르는 거죠. 무지하니까 착각하는 거고. 그래서 이에 대한 불교의 대답은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 이 딱 두 마디예요. ‘천상천하 유아독존’은 세상에 나의 존재가치보다 더 귀한 건 없다는 뜻이고요. ‘삼계개고 아당안지’는 온 세상 생명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있으니 내가 최선을 다해 그들을 고통에서 벗어나도록 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면 삶이 평화로운 거죠.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너의 안락과 행복은 관심 없죠. 오로지 나의 안락, 우리의 안락만 찾죠. 국가라는 이름으로 우리끼리, 종교라는 이름으로 우리끼리,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끼리. 그러니 싸움밖에 할 게 없는 거죠. 싸우면서 평화를 누릴 수 없는 건 당연하죠.”
생명 욕구가 이기적 욕구로
우주 질서를 표현한 것이라며 도법 스님이 내보인 그림.
그가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비법이 있다”며 누런 천을 하나 꺼내 들었다.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꼭 고대 상형문자 같다. 상단 좌우에 원 두 개가 배치돼 있고 맨 아래에 사람 모양의 형상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 머리 좌우와 상단에 수학적 기호 같은 게 그려져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왼쪽 원이 태양, 오른쪽 원이 달이다. 사람 머리 위의 화살표 모양이 나무, 즉 식물이다. 왼쪽 형상은 새와 물고기의 조합이다. 오른쪽은 네 발 달린 짐승이다.
“우주 삼라만상을 아주 단순화해서 사실적으로 묘사한 거죠. 하나밖에 없는 내 생명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보통 내 생명은 내 안에, 네 생명은 네 안에 있다고 생각하죠. 그러니 나와 너가 이기적인 관계가 되는 겁니다. 너 없어도 나 혼자 잘살 수 있어. 더 극단적으로 가면, 너 없애고 나만 살자. 지금 이런 극단적인 경쟁논리가 판치잖아요. 그런데 이 세상에 따로따로 존재하는 생명은 없습니다. 그건 우리의 관념일 뿐이죠. 실상에 대한 무지와 착각입니다. 구체적으로 보죠. 태양 없이 내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가. 낱낱의 존재는 그물코처럼 얽혀 있죠. 그물코처럼 서로 의존하고 영향과 도움을 주고받죠. 그것이 불교의 인드라망 세계관입니다. 물이 곧 내 생명이고 숲이 곧 내 생명입니다. 새와 물고기가 편 갈라서 우리끼리 살겠다고 할 수 있나요? 더불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서로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배려하고 협력하고 나누고 살아야죠. 그걸 불교에서는 자비라 하고, 기독교에서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는 거죠.”
▼ 인간의 본능적 욕망, 이를테면 식욕, 성욕, 소유욕, 명예욕, 과시욕 따위는 어느 정도까지 통제가 돼야 합니까. 무조건 금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런데 생존 욕구와 이기적 욕구는 다릅니다. 우린 이걸 혼동해요. 생존 욕구는 선악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호랑이는 토끼를 잡아먹고 살도록 돼 있어요. 그걸 두고 악한 놈이라 할 수 없지요. 일종의 생명 욕구로 이기적 욕구와는 다르죠.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 쌓아놓는 것 봤습니까. 생존 욕구는 생존 문제만 해결되면 끝나요. 토끼가 널려 있어도 손 안 댑니다. 그런데 이기적 욕구는 자꾸 쌓아놓는 거죠. 우리의 문제는 생존 욕구가 아니라 이기적 욕구죠. 이건 인간에게만 있는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생존 욕구는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지만, 이기적 욕구는 끊임없이 관리하고 다듬고 창조적으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 성욕은 뭔가요?
“생존 욕구죠. 생명 욕구이고. 그런데 인간에게선 그것이 소유욕으로 나타나죠. 인간이 이기적 욕구로 조작하고 있어요.”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 스님도 인간이니 그런 욕망이 있겠죠?
“당연하죠. 맨날 X질하고 싶죠. 그것이 피할 일입니까.”
웃음을 꾹 누르며 질문을 이어갔다.
▼ 가장 힘든 게 뭡니까.
“여자 생각이죠.”
▼ 술·담배 하는 스님도 많죠?
“얼마든지 있죠.”
▼ 그런 행위는 이해할 만한 건가요?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죠. 그렇지만 정당하거나 괜찮다고 할 순 없죠. 어떤 살인행위가 이해된다고 해서 그것이 정당화될 순 없잖아요? 한두 번 실수할 순 있지만 그것이 상습화되고 관성이 되는 건 안 되죠.”
▼ 스님들 중에는 속세를 다 겪어봐야 한다며….
“그건 자기 합리화인데 옳지 않다고 봅니다. 요석 공주와 연애한 원효가 성욕의 감옥에 갇혀 살았는가. 거기에 지배받았는가. 그렇지 않다는 거죠. 술을 먹었지만 늘 술을 못 먹어 전전긍긍했던가. 절대 아닙니다. (욕망에서) 자유로우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입니다. 자유로울 수만 있다면 성욕도 괜찮다고 봅니다.”
▼ 얽매이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죠. 물론 몰염치해서 자유로운 것과는 달라요. 정말로 자유로운 사람은 여성과 어떤 필요나 상황에 의해 성관계를 가졌다 하더라도 거기에 매이지도 않거니와 여성에게 상처도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게 잘 안 되죠.”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직원들과 함께.
“있죠. 술도 먹어봤고. 그렇지만 나는 그런 걸 안 하는 쪽을 선택했기 때문에 과오도 있고 오류도 있었던 걸 부끄러워하고 미안해하고 극복하려 하죠. 사람이 별 수 있겠어요? 다 그만그만하죠.”
나는 “스님 얘기를 들으니 속이 다 시원해진다”며 그예 참았던 웃음을 터뜨렸다.
▼ 성적인 욕망이 그만큼 참기 힘들다는 거죠?
“가장 힘들죠. 생명 욕구의 하나인데. 식욕 못지않죠.”
▼ 스님도 거기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거죠?
“그렇죠. 다만 끊임없이 그것에서 자유로워지도록 애쓰는 거죠. 그리고 그건 에너지예요. 이 에너지가 승화되도록 노력해야죠. 모성애는 자식에게만 작동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승화되면 내 자식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나타나죠. 그걸 우린 인류의 모성애라고 표현합니다.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그것이죠.”
명진 스님의 용기
1998년 조계종은 총무원장 선거를 둘러싸고 대규모 폭력사태에 휩싸였다. 송월주 총무원장의 3선 출마가 갈등의 씨앗이었다. 총무원에 반기를 든 세력은 정화개혁회의를 조직해 종권을 탈취하려고 나섰다. 그 과정에 폭력배까지 동원됐다. 당시 월주 스님이 사퇴한 후 총무원장권한대행을 맡았던 이가 바로 도법 스님이다. 종단 분규는 결국 정화개혁회의 측의 패배로 끝났다.
▼ 조계종은 그간 숱한 폭력사태를 빚어왔습니다. 폭력을 휘두르면서 부처님 뜻을 내세웠지요. 근본적으로 수행이 안 돼서 그런 건가요?
“수행까지 얘기할 것도 없어요. 온갖 이기심이죠. 소유욕, 권력욕….”
▼ 불교를 이끌어가는 지도자급 스님들조차 그 모양이니….
“그래서 저는 한국 불교가 잘못됐다고 보는 겁니다. 상식적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일이 막 벌어졌잖아요. 그래도 지금은 많이 다듬어졌죠.”
▼ 현 정부에서는 봉은사 사태가 시끄러웠죠?
“아슬아슬했죠. 그런데 저는 그것이 예전과 다른 모습이라고 봐요. 옛날 같으면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을 일이거든요. 약간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대화로 마무리 지었어요. 집행부가 빌미를 제공했죠. 좀 더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했어야 했는데, 그런 점에서 좀 거칠었죠. 명진 스님도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대응하면 좋았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봉은사가 직영사찰로 지정되는 데 외압은 없었다는 겁니다.”
▼ 명진 스님은 스님인지 정치인인지 모를 정도로 언행이 거칠더군요.
“명진 스님은 그게 수행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 과격한 언행이요?
“용기죠. 권력 앞에 비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선다는.”
▼ 불교계가 현 정부를 많이 비판했죠?
“종교 편향이 문제가 됐지요.”
▼ 4대강 사업도 비판하지 않나요?
“불교시민운동 차원에서 반대한 거죠. 수경 스님을 중심으로. 종단에선 중립적 태도를 취해왔습니다.”
▼ 수경 스님이 동지 아니었습니까.
“다 동지예요. 명진 스님도.”
▼ 지금은 가는 길이 달라진 건가요?
“아직도 동지라 할 수 있어요. 다만 본질적인 차이점은 있지요. 수경 스님은 주로 환경 문제, 명진 스님은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문제에 관심이 깊었죠. 저는 대안운동을 해왔고. 두 사람은 색깔이 분명하고 나는 회색분자죠. 하하.”
무지와 착각
1949년 제주에서 유복자(遺腹子)로 태어난 그는 17세 때 금산사에서 출가했다.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어머니가 받아온 사주팔자에 따라 결정됐을 뿐이다. 막내는 머리 깎을 팔자라는. 그는 3형제 중 막내였다.
“스무 살까지는 주체적인 생각을 못했어요. 시키는 대로 분위기 따라 행동했을 뿐입니다. 중이 된 것도 그래요.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절에 들어가선 별 갈등 없이 맞춰 살았다. 스무 살 때 인편을 통해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지금은 융통성이 있지만, 그때만 해도 중이 되면 세속과의 인연을 단절했다. 그는 어머니 소식을 갖고 온 사람을 아예 만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같이 수행하던 중이 이를 알고 나무랐다. 아무리 중이라도 죽음을 앞둔 어머니에게 그런 행동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훈계였다. 나이는 같지만 언행이 어른스럽고 똑똑한 중이었다.
“그 얘길 듣는 순간 도대체 죽음이 뭐냐는 의문이 들더군요. 그 문제의식이 충격적으로 다가왔어요. 죽음은 모든 것과의 단절이고 상실이고 끝이라는 생각. 그때부터 주체적으로 나의 인생을 고민했습니다. 나는 왜 태어난 건가. 왜 죽는 건가. 태어나기 이전의 나는 뭔가. 죽은 다음의 나는 또 뭔가. 매우 원초적인 고뇌가 시작된 거죠. 그렇게 오늘까지 흘러온 겁니다.”
그는 10년가량 참선을 했다.
▼ 어떤 깨달음을 얻었습니까.
“존재 이유에 대한 원초적인 문제의식을 갖고 몸부림쳤어요. 그 문제를 안 풀고는 삶의 의미를 가질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해인사에 가 살면서 성철 스님도 뵙고 법정 스님도 모시게 된 거죠. 그런데 경전을 봐도 법문을 들어봐도 결론은 같더라고요. 참선해서 깨달아야 한다는. 그래서 경전 때려치우고 선방으로 가서 참선을 시작했죠. 그런데 해도해도 안 돼요. 책이나 법문대로라면 잘돼야 하는데 안 되는 거예요. 대단히 실망스럽고 좌절감이 컸죠. 그런데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도 별수 없더라고요. 선배도 친구도. 어른이라고 큰소리치는 분도. 말씀 들어봐도 별로 매력적이지도 않고. 성철 스님에게도 그다지 끌리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그분이 훌륭하지 않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어쨌든 그러다보니 선방에 대한 회의가 생겼습니다. 선방 사람들이 정직하지도 성실하지도 않더라고요. 잘 안 되면 그걸 솔직히 인정하고 함께 대화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하는데, 다들 뭔가 되는 것처럼 근엄한 모습만 보이는 겁니다. 말 안 해도 보면 다 알잖아요. 그 풍토에 좌절해 선방을 나왔죠. 나가서 내 방식대로 해보자고. 그렇게 내 마음 소리에 따라 갈지자로 왔다 갔다 하면서 여기까지 온 거죠.”
▼ 이런 얘기 하면 불교 위신 떨어뜨린다고 다른 스님들이 싫어하겠죠?
“난 불교계에 지킬 위신이란 게 없다고 봅니다. 오히려 그런 것을 다 걷어내고 꺼내는 게 위신을 살리는 일이라 생각하죠. 그러니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죠.”
▼ 부처도 한때 결혼했는데 스님은 평생 사랑한 여자가 없나요?
“난 그런 감정은 없더라고요. 혈연에 대한 정도 많지 않고요. X하고 싶고 좋은 여자 보면 자고 싶긴 하지만 연정(戀情)을 갖고 여자를 대한 적은 없어요.”
▼ 연정이라는 게 엄청나게 끊기 어렵죠?
“그렇다고 하는데 난 없었어요. 그런 면에서 중 팔자가 딱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고.”
▼ 타고난 체질이신가 보네요.
“성욕 때문에 힘들고 인간적인 감정에 몸부림도 치지만 연애 감정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어요.”
마지막으로 우문(愚問)을 던졌다. 삶과 죽음이 뭐냐고.
“태어나면 기뻐하고 죽으면 울지요. 그것도 무지와 착각의 산물이죠.”
▼ 스님들도 고승 돌아가시면 울던데요.
“그게 다 무지와 착각입니다. 태어남과 죽음은 같습니다. 태어나기 이전의 아이에게 가장 안전하고 따뜻하고 편안했던 곳은 어머니 배 속이에요. 완전한 미지의 세계입니다. 거기 왜 가는지도 모르고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죠. 아이에게 태어남은 어머니 배 속의 모든 것과 단절하는 겁니다. 당연히 불안과 공포를 느끼죠. 단절되니 슬픔도 느끼고. 죽음도 마찬가지예요. 삶에서 이뤄진 모든 것과의 단절이고 상실이지 않습니까. 아픔과 슬픔이고 불안과 공포지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삶과 죽음은 없는 거예요. 생명활동의 현상일 뿐이죠. 파도 치는 바다처럼. 바람이라는 조건이 사라지면 파도도 사라집니다. 파도가 일면 좋은 거고 사라지면 나쁜 거라 할 수 있겠는가. 이건 그냥 바다라는 한 생명이 활동하는 현상일 뿐이죠. 생과 사는 그런 거라고요. 그걸 아픔과 슬픔으로, 불안과 공포로 대하는 것은 삶과 죽음의 실상에 대한 무지와 착각에 따른 관념이라는 거죠. 우리는 거기에 지배를 받고 구속을 받고 있어요. 그것에 눈뜨게 하는 게 불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