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13일 서울 강남 센트럴시티에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화음의 주인공은 성우 권희덕(55)씨와 시각장애인 성악가 ‘꿀포츠’ 김성록씨. 이들이 부른 ‘접기로 한다’는 작곡가 김희갑씨가 박영희 시인의 시에 곡을 붙였다.
권씨는 맥 라이언, 임청아 등 유명 여배우 목소리를 도맡아온 베테랑 성우다. 고 최진실씨를 스타덤에 앉힌 광고 카피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 역시 권씨의 음성이다. 권씨가 장애인 복지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디너쇼를 연 것이 올해로 여섯 해째. 그가 대표로 있는 사단법인 시세아(시로 세상을 아름답게)는 2009년부터 ‘목욕버스’를 이용해 하루 열 명 남짓 장애인에게 목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가까운 사이였던 김영진 KBS PD가 2000년 교통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됐어요. 지켜보니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목욕이었어요. 그래서 움직이는 목욕버스를 생각했죠. 1.2t 작은 차량이지만 장애인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죠.”
이번 디너쇼에는 가수 인순이, 설운도씨 등과 휠체어 댄스 팀 등이 출연했다. 특히 설씨는 출연료 절반을 시세아에 기부했다. 디너쇼의 또 다른 주인공은 시각장애인 청소년들. 권씨는 5월부터 서울맹학교 학생 9명에게 성우 교육을 하고 있다. 그중 한 학생이 아웃도어 브랜드 투스카로라 라디오 광고 CM을 선보였다. 참석자들이 환호했고 안태국 투스카로라 대표는 그 자리에서 “내년 2월 방송될 광고를 이 학생에게 맡기겠다”고 발표했다.
“시각장애 아이들이 맹학교를 마쳐도 안마사밖에 가질 직업이 없어요. 그 아이들에게 새로운 꿈을 주고 싶어서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권씨도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권씨의 목소리를 녹음해 밤새 듣고 연습하는 등 열정적이었다. 그는 “배운 지 7개월밖에 안 됐지만 아이들 실력이 상당하다”며 “학생 중 3명은 프로 성우가 될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더 많은 장애인이 방송 기술을 배울 수 있도록 ‘장애인방송문화센터’를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