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뿌리 깊은 나무’는 평생 만날까 말까 한 복권 같은 작품
- 말에 매력 있는 남자가 좋아
- 인생의 종착역은 엄마, 아이는 넷은 있어야…
- “저 같은 딸 낳기 싫어요”
여주인공 소이 역의 배우 신세경(22)은 ‘청순글래머’ 이미지를 벗고 강직한 궁녀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소이는 어릴 적 한동네에서 자란 겸사복 강채윤(장혁 분)과 러브라인을 그리며 세종 이도(한석규 분)의 한글 창제를 돕다 한글 반포를 앞두고 비장한 최후를 맞는다. 드라마가 끝난 후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아직 그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했다.
“소이의 죽음을 아쉬워하는 분도 계시지만 이상적인 결말이었다고 생각해요. 촬영 내내 참 행복했어요. 매회 반응이 뜨거웠고 특히 남자 분들이 재밌어 하셨어요. 아빠도 제가 나와서 의무적으로 본 게 아니라 진짜 팬이 되어 즐기셨죠.”
▼ 처음 대본을 보고 대박을 예감했나요.
“느낌이 좋았지만 이렇게까지 반응이 뜨거울 줄은 몰랐어요. 영화든 드라마든 흥행 성적이나 시청률을 기대하고 출연을 결정하진 않거든요. 매번 내가 연기를 잘 해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대본이 워낙 완벽하고 감독님도 출연진도 쟁쟁해서 나만 잘하면 되겠구나 싶었어요.”
▼ 작품 고르는 기준이 뭔가요.
“대본과 캐릭터를 가장 먼저 보고 상대역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운이 좋아서 늘 좋은 선배들과 함께해왔어요. 이번에도 한석규 선배님, 장혁 선배님 같은 연기 달인들을 만났고….”
맑은 눈망울을 굴리며 진지하게 답하는 그녀를 보니 괜스레 장난기가 발동한다. “좋은 선배들이 세경 씨와 함께 연기하고 싶어한 건 아니냐”고 묻자 그녀가 손사래를 치며 정색을 한다. “아니에요. 제가 운이 너무 좋았어요. 모든 케이스가 항상….” 순간 고지식하리만큼 세종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던 극중 소이의 모습이 겹친다.
모진 한파 견디려고 속옷 열 장 넘게 껴입어
▼ 소이의 어떤 면에 끌린 건가요.
“굉장히 총명하고 능동적인 모습이요. 상대편에게 잡히면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잖아요. 그만큼 사명감이 투철하고 행동도 거침이 없죠. 흔치 않은 여자 캐릭터여서 다른 작품과 차별성이 있겠다는 기대를 했어요. 한 번 본 것을 외워버리는 소이의 천재성도 작품에는 중요한 요소였지만 여장부 같은 성격이 큰 메리트라고 생각했어요.”
▼ 소이와 비슷한 성격인가요.
“비슷한 구석도 있겠지만 전 굉장히 밝은 성격이에요. 사람들을 되게 좋아해서 촬영 현장에 가면 에너지를 많이 얻어요. 작품이나 역할이 인기를 얻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현장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알아가는 것도 제 삶에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거든요.”
▼ 연기 달인들을 상대하기가 부담스럽지 않았나요.
“한 수 배울 수 있는 더없는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이번뿐 아니라 새 작품에 들어갈 땐 부담을 느끼곤 해요. 새로운 캐릭터,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이 있어요. 아직 연기 폭이 넓지도 않고 제가 얼마나 잘 해낼지 모르니까요.”
▼ 한석규 씨와 장혁 씨가 잘해주던가요.
“그럼요. 두 분 다 성품이 온화하고 신사여서 현장 분위기가 굉장히 좋았어요. 주축이 항상 평온하니까 현장도 그런 느낌으로 돌아가더라고요. 대본도 항상 미리미리 나오고.”
▼ 두 남자가 연기한 이도와 강채윤 중 어느 쪽이 더 끌리나요.
“캐릭터로 보면 당연히 채윤 오라버니죠. 정말 따뜻하고 다정하고 저 하나밖에 모르잖아요. 이도는 소이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는 사람이지만 이성으로는 보긴 힘들지 않을까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들려달라고 하자 그녀는 촬영 때마다 혹한의 추위로 고생했던 일을 떠올렸다. 촬영이 주로 벌판이나 산속에서 진행돼 배우들은 모진 한파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복장이 한복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복은 속옷을 껴입어도 표가 나지 않아서 하의를 여덟아홉 장씩, 상의를 대여섯 장씩 껴입었어요. 요즘은 얇고 보온 잘되는 기능성 내의가 많잖아요. 그 상태로 저고리를 입으면 어깨가 결리고 겨드랑이 쪽이 찡기는데 추우니까 어쩔 수 없더군요. 나중엔 어떤 콤비네이션으로 입어야 가장 따뜻한지 알 수 있는 경지까지 갔죠. 하하하.”
찬바람을 맞아 피부가 상했을 법한데 그녀의 피부는 유리구슬처럼 매끄러워 보였다. 비결이 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화장발이라며 배시시 웃었다.
“피부 관리라고 해야 깨끗하게 클렌징하고 자기 전에 꼭 세수하는 정도예요. ‘뿌나’ 찍으면서는 세수를 못하고 잠든 적도 있지만요. 촬영할 때는 몸이든 얼굴이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하지만 그게 쉽지 않아요. 잠도 부족하고 생활도 불규칙하니까요.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다이어트는 꿈도 못 꿔요. 잘 챙겨 먹어야 견딜 수 있거든요. 못 자고 바람 맞고 하니 피부트러블도 피할 수 없어요. 피부는 잘 자고 잘 먹고 운동하고 그럴 때 가장 편안한 상태가 유지돼요.”
▼ 다이어트를 안 하나요.
“필요할 땐 식사량을 조절하지만 다이어트에 집착하진 않아요. 예쁘고 날씬한 것도 중요하지만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연기가 우선이죠. 겉모습에 예민해지다 보면 연기에 몰입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거든요.”
▼ 필담을 해보니 어떻던가요(소이는 어릴 적 사고로 말을 못해 세종과 붓글씨로 필담을 나눈다).
“묘한 재미가 있어요. 말을 할 때는 실수를 해도 글은 허투루 쓰지 않으니까 말보다 임팩트가 강하다고 할까요. 극중에서 이도가 소이에게 ‘한글이라는 글자를 만들려고 한다. 네가 아이를 하나 키우라고 하지 않았느냐? 넌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요. 그때 소이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종이에 자신의 생각을 한 글자로 표현해 보여줘요, ‘옳을 시(是)’자요.”
“서태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찍었어요”
나이는 어리지만 연예활동 경력은 중견급이다. 그녀는 초등학교 2학년이던 1998년 서태지의 5집 수록곡 ‘take5’의 포스터모델로 연예계에 첫발을 들였다. 서태지 마니아들은 당시 그녀를 ‘서태지의 여인’이라 부르며 뜨거운 관심을 보였고 팬 카페까지 만들었다. 예닐곱 살에도 그녀는 대교방송의 교육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방송작가로 활동하는 외숙모의 권유로 체험학습 삼아 한 경험”이라며 활동 경력으로 치지 않았다.
▼ 서태지 씨와는 어쩌다 연이 닿은 건가요.
“그분을 직접 안 건 아니고 엄마 지인 중에 광고 대행사에서 일하는 분이 절 모델로 추천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극비리에 진행되던 프로젝트였고 그때는 너무 어려서 서태지 씨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로 사진만 찍었어요. 그분이 얼마나 대단한지 나중에 열 살 많은 사촌언니에게 듣고 알았어요. 언니 학창시절에 신드롬을 일으켰다고 하더라고요”
▼ 포스터 사진에 울고 있던데 왜 울었나요.
“울라고 해서 울었어요. 하하하.”
▼ 금방 눈물이 나던가요.
“촬영이 힘들었겠죠. 스튜디오에 되게 슬픈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하루 종일 울었던 것 같아요. 끝나고 나서 엄마가 맛있는 걸 사주셨어요.”
▼ 그 포스터를 찍은 뒤부터 연예인을 동경했나요.
“그건 아니에요. 어릴 땐 피아노, 미술, 태권도 등 이것저것 많이 배우잖아요. 그런 것처럼 특별한 목적 없이 연기수업을 받은 적이 있어요. 초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나서요. 연기가 재미있고 좋았지만 진로를 정하기엔 너무 어렸어요. 중고교 시절엔 학업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어요. 빨리 주목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경험을 충분히 만끽하고 싶었어요. 지금 돌아봐도 잘한 일 같아요.”
▼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대형기획사에서 관리를 받았다고 들었어요.
“관리를 받은 건 아니고 그때부터 지금 소속사인 ‘나무액터스’에 연기자로 소속돼 있었어요. 오디션을 준비할 때는 속성으로 연기지도를 받았는데 가수 지망생이 연습생 생활을 하듯 긴 세월에 걸쳐 꾸준히 트레이닝을 받진 못했어요. 제가 학교생활을 워낙 열심히 해서요(웃음).”
▼ 공부를 잘했겠네요.
“중학교 때까지는 꽤 잘했어요. 평균이 90점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었어요. 전교 10위권 안에 든 적도 있고요. 특히 언어 영역을 잘했어요. 국어랑 영어 성적은 늘 좋았고 한자도 지금은 많이 잊어버렸지만 그때는 많이 알았어요. 수학이 문제였죠. 수학은 억지로 해도 실력이 잘 늘지 않더라고요. 근데 놔버렸어요. 고등학교 올라가서요.”
▼ 왜요?
“수학, 화학은 정말 못하겠더라고요. 로그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포기했어요. 하하하. 적성에 안 맞으니 공부를 해도 힘만 들고 성과가 없더라고요. 대신 좋아한 과목은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요. 그때가 좋았죠.”
▼ 학창시절이 재미있었나 봐요.
“그 나이에는 다 그렇듯이 저도 밝고 명랑한 학생이었는데 되게 재미있고 즐거웠어요. 그 시절이 저한테는 더없이 소중한 추억이에요. 만일 고등학교 때 바쁘게 활동했다면 더 잘됐을지는 몰라도 지금 속상할 것 같아요.”
“지금은 길이 난 대로만 가지 않아요”
드라마‘뿌리 깊은 나무’의 한 장면.
▼ 2009년 ‘지붕 뚫고 하이킥’에 출연한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해에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스케줄이 많아져 정신이 없었어요. 매일 바쁜 일정에 치여 살았던 것 같아요. 그에 비하면 2010년과 지난해에는 개인적으로 많은 발전이 있지 않았나 싶어요. 예전에는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거나 길이 나 있는 대로만 갔는데 지금은 이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내가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여유가 생겨서 좋아요. 그게 폭발적인 관심에서 멀어진 것이든 인기가 식은 거든 상관없어요. 대중의 관심이나 사랑은 롤러코스터처럼 왔다갔다 하고 영원하지 않잖아요. 당장 사랑받는 데 연연하기보다는 어제보다 오늘 더 발전한 연기자가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인기에 연연하지 않나요.
“연연하지 않는 사람은 없겠죠. 연연할 수밖에 없지만 그것에 목숨을 걸면 안 된다는 것이죠. 자기 삶이 괴로워질 테니까요.”
▼ 인기가 거추장스러울 때도 있나요. 너무 알려져서 불편하다든지….
“그런 생각은 못해봤어요. 워낙 개의치 않고 돌아다녀서.”
▼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나 봐요.
“요즘은 그런 것 같아요. 관심을 받는다는 건 오히려 감사할 일이죠. 연기자라고 다 관심을 받는 건 아니잖아요. 전 천운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대중의 사랑을 취하려고 집착하다 보면 망가질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를 고민하는 편이 훨씬 지혜롭다고 생각해요.”
▼ ‘청순글래머’라는 애칭은 마음에 드나요.
“전 좋은데요. 칭찬이잖아요. 여자 연예인은 예쁘고 매력적이어야 하는 것이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인데 어쨌든 칭찬을 해주시는 것이니까 감사하죠.”
▼ 한 가지 이미지에 매몰될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걱정하지는 않아요. 앞으로 만나는 작품과 캐릭터를 통해 얼마든지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으니까요. 국한된 이미지를 깨느냐, 못 깨느냐는 이제 제가 해야 할 몫인 것 같아요.”
▼ 언제부터 연기자가 되고 싶었나요.
“첫 작품을 할 때부터 연기가 좋았어요. 데뷔를 일찍 했지만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건 2009년부터죠. 그때부터 분에 넘치게 큰 사랑을 받았는데 항상 굉장한 행운이 따라요. 매번 좋은 작품과 훌륭한 선배님을 만나거든요.”
▼ 부모님이 태몽을 잘 꾸셨나 보네요.
“엄마가 서른 살에 절 되게 힘들게 낳으셨는데 임신 중에 파란 용 꿈을 꾸셨대요. 용꿈은 원래 사내아이를 낳는 꿈이라면서요. 그래서 엄마 아빠는 제가 아들일 줄 아셨대요.”
“강도가 세다 싶을 땐 먹는 게 최고”
집에서 그녀는 귀한 외동딸이다.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 좀 더 편한 길을 가기를 바랐을 법한테 부모님은 늘 그녀의 뜻을 존중해줬다고 한다. 그녀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배려해준 부모님에게 감사하면서도 죄송할 때가 많다”며 “몸이 고단하고 힘들 때는 집에 돌아와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린다”고 털어놓았다.
▼ 주로 어머니에게 스트레스를 푸나요.
“엄청 풀죠. 투정 부릴 사람이 엄마밖에 없거든요. 돌아서자마자 매번 후회해요. 너무 죄송하니까요. 심지어 어떤 때는 말을 꺼내자마자 미안한 생각이 드는데도 멈춰지지가 않아요. 정말 몹쓸 짓이죠. 엄마는 제겐 가장 크고 든든한 버팀목인데….”
▼ 어머니와 대화를 자주 하나요.
“엄마는 대화를 많이 하고 싶어하세요. 딸이 밖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어떤 기분인지 궁금하시겠죠. 근데 촬영하다 지쳐서 들어가면 쓰러져 잘 때가 많아요. 그게 죄송하고 안타까워요.”
▼ 부모님에게 언제 고마움을 느끼나요.
“늘 감사하죠. 엄마 아빠는 제가 힘들 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걸 안타까워하시는데 실은 그 반대예요. 늘 묵묵히 절 믿고 다독여주시는 자체가 저한테는 큰 힘이 돼요. 어차피 이 직업은 혼자서 이겨내고 버텨내지 않으면 안 돼요. 마인드컨트롤이 중요하죠.”
▼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비법을 찾은 건가요.
“바쁘게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풀어지는데 강도가 좀 세다 싶을 땐 먹는 게 최고예요. 엄마나 친구,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 실컷 수다 떨면서 맛난 걸 먹다 보면 안 풀리는 스트레스가 거의 없어요.”
▼ 뭐를 잘 먹나요.
“가리는 음식이 없어요. 해산물도 좋아하고 곱창이나 처녑도 되게 잘 먹어요(웃음).”
지난해 ‘뿌리 깊은 나무’에 출연하기 전 그녀는 ‘푸른 소금’이라는 영화를 찍었다. 송강호와 그녀가 각각 전직 조폭과 사격선수 출신 여자킬러로 나오는 액션멜로영화였다. 신세경이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시도한 이 작품은 아쉽게도 흥행에는 실패했다. 연기 평도 나쁘지 않았다. “신세경의 재발견이다” “영화 ‘레옹’의 마틸다처럼 사랑스럽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녀는 자신의 연기를 모질게 비판했다.
“아무리 캐릭터를 철두철미하게 분석하고 그에 맞게 말투와 행동, 그리고 스타일까지 바꿔도 모든 관객에게 공감을 얻기는 힘든 것 같아요. 선배님 중에는 촬영에 들어가기 몇 달 전부터 맡은 배역의 캐릭터처럼 생활하시는 분도 계신데 왜 그렇게까지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전작에 대한 아쉬움과 새 작품에 대한 부담감을 안고 시작한 ‘뿌리 깊은 나무’의 성공은 그녀에게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뿌리 깊은 나무’는 그녀에게 SBS연기대상 우수연기상을 안겼다. 그녀는 ‘뿌리 깊은 나무’를 “일생에 한번 만날까 말까 한 복권과도 같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극중 배역인 소이를 두고 ‘임팩트가 있는 캐릭터가 아니어서 여주인공인데도 조명을 덜 받았다’고 꼬집는 이도 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나오는 신의 수가 많고 적음의 차이지 중요하지 않은 배역은 없어요. 작은 부품 하나가 잘못돼도 기계가 망가지듯이 작품도 모든 배우와 스태프가 자신의 소임을 잘 해내야만 제대로 굴러갈 수 있어요. ‘뿌나’도 모든 캐릭터가 다 반짝반짝 빛났기 때문에 시청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작품에 함께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가슴 깊이 감사하고 있어요.”
그러나 그녀가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꼽은 건 ‘푸른 소금’이다. 이 작품을 찍을 때가 그녀에겐 연기자로 한 단계 성장하는 과도기였다고 한다.
“제가 뭐하는 줄도 모르고 스케줄을 소화했던 시기와 저 스스로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된 지금의 중간 지점이라고 할까요. 힘든 점도 많았고 연기에 대한 한계를 발견하기도 해서 혼자 갈등하고 고민하면서 저 자신과 한참 싸웠어요. 슬럼프였죠. 송강호 선배님 덕분에 그나마 저의 부족한 점이 많이 가려진 것 같아요. 선배님은 정말 대단하세요. 호흡이라든지 어미, 정말 작은 부분 하나까지 허투루 표현하지 않으세요. 철저하고 섬세하게 고민해서 연기하는 거더라고요. 그것을 보고 자극을 받았고 많이 배웠어요. 그 작품이 저한테 의미가 있는 이유는 저 스스로 한계를 느껴 답답했고 배우가 된 걸 후회할 만큼 힘들었지만 촬영이 끝날 때쯤에는 제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과 의욕과 의미를 도로 다 찾아줬기 때문이에요.”
“술은 제게 긍정적인 역할을 해줘요”
슬럼프가 온 것이 꼭 연기 때문이었을까. 그녀는 지난해 여름 결별의 아픔도 맛봤다. 2010년 가을 인기 아이돌그룹 샤이니의 멤버 김종현과 공개 연애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돼 남녀에서 친구 사이로 돌아간 것이다. 사랑과 이별이 연기자에게 필요한 경험이라고들 하지만 어린 그녀에겐 상처가 되지 않았을까.
▼ 공개 연애를 한 것이 후회되나요.
“심정적으로는 다분히 그렇죠. 그 친구가 일반인이었으면 상관이 없는데 팬들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처지고 저도 그게 늘 마음이 쓰이고 미안했어요. 지금은 그 친구가 잘되기를 바랄 뿐이에요.”
▼ 다음에도 공개 연애를 할 것 같나요.
“모르겠어요. 지금은 연애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전력질주로 달리다 보면 멈추려 해도 관성 때문에 계속 가듯이 일만 생각하며 숨 가쁘게 달리고 있거든요. 가끔은 저 자신을 위해 여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지금은 가장 큰 기쁨을 주는 게 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 어떤 남성상을 좋아하나요.
“성실하고 예의바른 사람, 말에서 매력이 느껴지는 사람이 좋아요. 예전에는 목소리 좋은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했는데 목소리가 아니라 말투나 말의 내용에 끌리더라고요. 말에는 그 사람의 많은 것이 담겨 있으니까요.”
▼ 혼자 외롭게 자라서 자식 욕심이 많을 것 같아요.
“가족을 통해 좋은 에너지를 얻어서 그런지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고 싶어요. 사실 저의 종착역도 엄마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스물일곱이나 스물여덟 살에 결혼해서 네 명 정도는 낳고 싶은데 막연한 생각일 뿐이에요. 이래 놓고 엄청 늦게 결혼할지도 몰라요(웃음).”
대선주조의 소주 브랜드 ‘즐거워 예’의 전속모델인 그녀는 지난 연말 제12회 대한민국 영상대전에서 ‘올해의 포토제닉’ 탤런트 부문상을 차지했다. 이 상의 수상자는 국내 지상파 방송사에서 근무하는 카메라 감독들이 엄정한 투표를 거쳐 선정한다. 수상 소감을 묻자 그녀는 “카메라를 원래 안 좋아했는데 일하면서 친숙해졌다”며 “카메라 앞에서 거부감이 없고 담아내기에 좋다는 느낌으로 주신 상이니만큼 뜻 깊고 영광스럽다”고 밝혔다.
▼ 소주 광고모델은 술을 잘 마실 것 같은데 어떤가요.
“소주를 아주 잘 마시는 편은 아닌데 ‘즐거워 예’는 순하고 맛있더라고요(웃음). 엄마는 술을 못 마시고 아빠는 잘 드시는데 두 분 체질을 반씩 닮아서 컨디션에 따라 주량이 달라져요.”
▼ 어느 정도까지 마셔봤나요.
“소주로 1병 반 정도요.”
▼ 술버릇 같은 건 없나요.
“평소보다 훨씬 밝아지고 말도 좀 많아진다고 하더라고요. 가끔 몸이 맛이 가서 그렇지, 술은 긍정적인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요. 저한테는.”
“학업에 집중할 수 있을 때 복학할래요”
취미는 음악 듣기다. 한때는 좋아하는 곡만 골라 들었는데 요즘은 대중가요를 폭넓게 섭렵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남자들이 왜 소녀시대와 원더걸스, 아이유의 노래를 좋아하는지 알게 됐다”며 “촬영으로 지칠 때 그 노래를 들으면 절로 힘이 난다”고 했다.
▼ 배우가 안됐으면 뭘 하고 있을까요.
“대학에 다니고 있지 않을까요. 1학년 1학기 마치고 휴학했거든요. 다른 직업은 생각해본 게 없어서 그것 말고는 떠오르지가 않아요.”
▼ 학업을 마칠 건가요.
“어떻게든 마쳐야 하는데 지금은 촬영장에서 배우는 것도 학업 못지않게 중요한 공부라고 생각해요. 연기와 학업을 병행하면 둘 다 잘할 수 없을 테니 학교생활에 집중할 수 있을 때 다녀야죠.”
▼ 올해 이루고 싶은 소원은 뭔가요.
“제가 하는 작품이 다 사랑받기를 바라고 저도 (연기를) 잘했으면 좋겠어요. 열심히 하는 것만으론 모자라고 저 스스로 발전하는 그런 한 해를 만들고 싶어요.”
‘뿌리 깊은 나무’는 끝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바쁘다. 3월부터 방영하는 ‘패션왕’의 여주인공으로 낙점돼 지난 연말부터 대본연습에 들어갔다. 여기서도 그녀는 “가난하고 똑똑한 캐릭터를 맡았다”며 “상황이나 에피소드보다 등장인물 간에 미묘한 감정이 극의 흐름을 결정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 벌써 3년째 줄기차게 연기활동을 해왔는데 그렇게 벌어서 다 어디다 쓰나요.
“수입은 모두 엄마가 관리하세요. 전 용돈 대신 신용카드를 가지고 다니면서 필요한 곳에 써요. 돌아다닐 일이 많지 않아 쓸 시간이 없긴 해도 식구들끼리 다닐 땐 주로 제가 사요. 여행은 못 가도 외식은 곧잘 하거든요. 그 시간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해요.”
▼ 그런 딸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전 저 같은 딸은 낳기 싫어요.”
▼ 왜요?
“저 자신을 너무 잘 아니까요. 엄마는 저 때문에 만날 노심초사하세요. 늘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시는 부모님께 두고두고 효도해야죠(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