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호

“공천하지 않으면 가만 안 두겠다는 협박 수없이 받아”

<인터뷰> 정홍원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장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12-04-18 15:47: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친이 친박 갈등 막으려 이재오 공천했다
    • 박근혜 더 포용해야
    • 참신성 원하면서 지명도 따지는 이율배반 극복 어려워
    “공천하지 않으면 가만 안 두겠다는 협박 수없이 받아”

    정홍원 변호사 | 1944년 경남 하동 출생/ 진주사범학교·성균관대 법대/ 사시 14회/ 마산지검 거창지청장/ 서울지검 남부지청장/ 대검 감찰부장/ 부산지검 검사장/ 법무연수원장/ 중앙선관위 상임위원/ 법무법인 로고스 상임고문/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

    환절기의 요란한 바람만큼이나 날뛰었던 선거정국이 가라앉았다. 의외의 총선 결과를 두고 해석이 분분하지만 국민의 선택은 한 가지였다. 상식을 벗어난 행동, 교만에 대해선 용납할 수 없다는 것. 지난 몇 달 새누리당 공직자후보추천위원회(이하 공천위) 위원장으로 활동했던 정홍원(68) 전 대한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의 생각도 같았다.

    “국민의 심판 잣대는 바로 교만입니다. 김용민 후보의 ‘막말 파동’에 대해 민주통합당이 제대로 대처했다면 표심이 그렇게 돌아서지는 않았을 겁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제1당을 넘보고, 과반의석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큰소리치던 당이 제2당으로 내려앉은 것은 바로 국민 정서를 읽지 못한 탓이라고 봅니다. 새누리당도 152석으로 과반의석을 거머쥐었지만 160, 170석을 차지했으면 또 자만에 빠져들 수 있어요. 152라는 숫자에는 새누리당이 더욱 경계하고 국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거일을 며칠 앞두고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나라가 무너지는 느낌이 나서 일조해보려고 나갔던 것뿐, 다른 할 말이 없다”며 극구 사양하던 그는 총선 결과를 확인한 뒤 인터뷰를 수락했다. 그만큼 그도 기대 이상의 결과를 얻게 돼 흡족한 듯했다. 그는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잡음이나 불공정성 등에 대한 지적은 적절히 피해가면서도 공천과정에서 받은 협박, 공천 개선점, 새누리당에 대한 고언 등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은 살짝 풀어놓았다.

    그는 총선 날 저녁 자택에서 TV로 선거 결과를 지켜보면서 여러 감회에 젖어들었다고 했다.

    “공천위원장으로서 공천을 한 뒤 선거전을 보니 험난한 세파에 자식을 내보낸 부모의 심정, 제자들을 가르쳐 사회에 내보낸 스승의 심정이 되더군요. 공천을 제대로 했는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투표 집계상황을 지켜봤습니다. 처음 공천 작업할 때는 100석도 건지기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그러다 새누리당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변화를 약속하면서 여론이 좋아졌고 공천을 마무리할 때는 그래도 140석만 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지요. 그러나 과반의석은 정말 예기치 못한 결과였어요.”



    ▼ 이번 공천 기준 가운데 특히 도덕성에 방점을 찍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 점이 성공 요인인가요?

    “여러 가지 성공요인이 있지요. 무엇보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투혼이 빛났습니다.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선거유세를 위해 수천km를 누빈 그의 자세에 국민이 감동받은 거 아닌가 생각합니다. 공천과 관련해서는 공천위의 진정성이 어느 정도 국민에게 전해졌다고 봅니다. 저는 국민 눈높이에 맞춘 공천을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단순히 당에 의해 정해진 사람들만 갖고 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적당한 사람을 찾으려 애썼습니다.”

    ‘공천위 진정성 알아줬다’

    ▼ 손수조 후보를 ‘감동후보’라고 했는데, 비록 선전했지만 결과는 패배입니다. 어떤 감회를 갖는지요?

    “공천 심사 면접 때 손수조 후보를 처음 만났는데 인상이 아주 강렬했습니다.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느냐고 묻자 ‘국회의원이 되면 모든 특권을 포기하고 국회를 개혁하겠다’고 하더군요.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의원이 되기 위해 안달하는지를 생각해보십시오. 사실 국가를 위해 고민하고 애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러니 제대로 된 경우라면 서로 자기가 하지 않겠다고 해야겠지요. 결국 국민보다는 특권 등 꿀을 더 생각하기에 서로 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국회의원의 특권을 과감하게 내려놓는 게 정치개혁이라고 평소 생각하고 있었는데 손 후보가 그 얘기를 하는 겁니다. 정말 감동받았습니다. 앞으로 큰 인물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 종로에서의 패배가 공천 잘못으로 인한 것은 아닌지요?

    “어쨌든 졌으니 공천을 잘못한 책임이 있다고 봐야지요. 종로라는 곳이 우리나라 정치 1번지이자 서울의 중심이기 때문에 중량감 있는 후보를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야권에서도 워낙 중량감 있는 이가 나왔으니 쉽지 않은 게임이었고요. 그러나 다시 공천한다 해도 홍사덕 이상의 후보를 내기가 쉽지는 않을 듯합니다.”

    ▼ 공천 과정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이었습니까?

    “일반적으로 국민은 도덕적이고, 참신하며, 나라를 위해 일할 사람을 찾습니다. 그런데 실제 그런 사람을 찾아서 내놓으면, 그 못지않게 지명도를 따집니다. 여론조사 결과도 그렇고요. 그러니 신인의 진입장벽이 너무 높습니다. 참신성과 지명도의 조화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점이 가장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당선 가능성만 따졌다면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겠지요.”

    ▼ 당선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해달라는 당내에서의 주문이 있었나요? 아니면 박근혜 위원장으로부터 다른 주문이 있었나요?

    “박근혜 위원장과 도덕성이나 정파 타파 등 몇 가지 원론적 얘기를 나누긴 했어요. 그러나 그 외엔 별다른 주문이 없었어요. 그게 박 위원장의 특장이더군요. 공천위를 굉장히 신뢰하고 존중했습니다.”

    이재오 공천 이유 있다

    ▼ 새누리당 공천은 시스템 공천이라고 했는데, 과연 그랬는지요?

    “시스템 공천의 반대말이 뭡니까? 주문을 받으면 어느 지역 누구누구를 선정해서 대충 인물 보고 통과시키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스템 공천은 원칙을 갖고 공천위원들의 의견이 중심이 돼 결정하는 것이라고 볼 때 새누리당의 공천은 정말 체계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어느 한 지역을 두고 이틀간 고민한 경우도 있어요. 1차로 잦은 당적 이동이나 전과 등 도덕성 검증을 해서 거른 뒤 남은 사람들에 대해 여론조사를 하고, 공천위원들 간 토론에 의해 정했습니다. 사실 과거 논문이나 발언까지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한계는 있었습니다. 그래도 뒤늦게라도 밝혀진 것은 시정이 가능했는데, 그것이 다 어느 개인 중심으로 이뤄지지 않고 시스템으로 움직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계파, 혹은 사적인 청탁도 있었습니까?

    “무수하게 많았습니다. 저에게 협박전화를 해서 떨어뜨리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 사람도 있습니다. 각 공천위원에게도 압력과 협박이 쇄도했습니다. 심지어 저에게 온 휴대전화 문자까지 위원들에게 보이면서 ‘누군가 돈봉투 하나 들고 오면 고발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겠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어려운 때에 중요한 일을 맡았으니 사심 없이 하자, 우리가 하는 행동은 역사에 기록으로 남을 것이고 자손이 다 알게 된다며 초심을 강조했지요.

    당내 인사들은 저에게 함부로 요구하지 못했습니다. 공천위 초기 제가 비상대책위에 가서 회의 하다가 의견이 맞지 않아 도중에 나와 기자회견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러자 저를 함부로 다룰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당내에서 별다른 압력을 가하지 않았습니다.”

    ▼ 이재오 의원을 비대위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천한 이유는 무엇인지요?

    “1차 공천 발표 때 단수 후보가 나선 21개 지역을 발표했습니다. 경쟁이 없었으니 특별한 문제만 없으면 공천하기로 했던 겁니다. 그런데 비대위에서 일부 위원이 이재오 의원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만약 이 의원을 공천하지 않으면 ‘친이계’가 모여 집단 반발 조짐을 보일 것이고, 그것은 결국 분당(分黨)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국민이 한나라당에 대해 혐오했던 것은 항상 계파 싸움이나 하고 국민은 안중에 없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그래서 이재오 의원의 공천 문제는 제가 책임지고 밀고 가야겠다고 했습니다.”

    ▼ 비대위가 공천위의 공천 결과를 압박해 박상일 이영조 후보 등의 공천을 취소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비대위와의 갈등은 왜 불거졌고, 어느 정도였는지요?

    “서로 이견은 있을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이견이 있어야 발전이 있는 법입니다.”

    공천위는 비대위와의 교감 속에 나온 ‘25% 컷오프’(교체지수와 지지율 등을 기초로 현역 의원 25%를 탈락시키는 안)에 32명의 현역 의원을 포함시켰다. 이 제도는 해당 의원들의 강한 반발을 샀고, 조사대상에서 일부가 빠져 공정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컷오프에 부산권 중진이 다수 포함됐다.

    백의종군 김무성 대단하다

    ▼ 부산에서 야권의 바람이 거세지면서 여당 공천에서 전례 없이 고민을 했는데요.

    “처음엔 중량감 있는 김무성 의원(18대 남구을) 같은 이가 공천돼서 중심을 잡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김 의원은 공천 기준에 의해 탈락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고, 중량감 있는 다른 사람을 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탈락자를 정할 때 예외를 두자는 공천위원들의 주장도 있었지만 그 원칙을 허물면 컷오프에 걸린 사람들이 다 항의할 것이고, 한 지역을 살리려다가 전국을 다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해 제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당내 경쟁력, 지역의 여론 등을 강제로 점수화하다 보니 아쉽게도 탈락한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탈락한 김무성 의원은 백의종군 자세로 이를 받아들였고, 그것이 이번 선거에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참 훌륭한 분입니다. 중앙에서 활동하느라 지역 일에 시간을 내지 못해 지역 지지를 많이 받지 못한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 친이계 의원들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친박계에만 관대한 공천이었다는 비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공천위 테이블에 이름을 올리면서 ‘친이’ ‘친박’으로 분류한 적은 결코 없습니다. 친이계 의원이 많이 탈락한 것을 지적하지만 두 그룹으로 나뉘는 의원 숫자를 확인해보니 친박은 친이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공천 탈락자도 친박이 1이라면 친이는 2였습니다. 수치상 균형은 잡힌 거지요.”

    정 위원장의 말과 달리 3월 16일자 조선일보는 한 외부 공천위원 A씨의 말을 인용해 친박계의 행태를 보도했다. A씨는 “지금 공천은 진흙탕 같다. 이렇게 된 것은 대구·경북·서울 강남의 기득권, 그중 핵심이 현재 당 주류인 친박계라고 한다면 그들의 기득권 지키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인물들에 대한 평을 듣고 싶습니다.

    “다른 후보들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고 평을 하는 게 적절치 못할 겁니다. 박근혜 위원장에 대해선 몇 마디 할 수 있겠습니다. 박 위원장은 통찰력이 뛰어나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 같습니다. 무엇보다 겸손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차가운 이미지가 아직도 있습니다. 정치는 워낙 다양한 의견이 상존하는 세계고, 그것을 조정해나갈 때 원칙을 지키려고 하다보니 차가운 이미지가 형성된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박 위원장과 대화를 해보면 의외로 소탈하고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 박근혜 위원장에게 조언을 한다면?

    “본인이 많은 사람을 안고 가겠다고 하니 거기에 더 힘을 쏟아서 계파가 다른 사람도 큰 차원에서 끌어안고, 외부에서도 지향점이 같은 사람들을 포용하는 노력을 좀 더 하면 좋겠습니다. 또 노무현 정부나 이명박 정부에서 ‘회전문 인사’에 대한 비난이 많이 쏟아졌습니다. 천하의 인재를 구하려는 삼고초려의 노력을 통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할 인재를 찾는 노력을 많이 하길 바랍니다.”

    정치에 뜻 없다

    ▼ 참신함과 지명도를 동시에 요구하는 이율배반적인 국민 정서를 언급하셨는데요. 그것을 조화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겁니다. 국민의 지적 수준, 판단력이 높아져야 할 겁니다. 감성을 좇아가는 게 아니라 이성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피상적이고 말초적인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현혹돼 따라가는 것보다는 정말 국민을 위해 일할 사람인지 통찰력을 갖고 판단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겠지요. 집으로 배달되는 선거공보도 꼼꼼히 따져보고….”

    정 전 이사장은 새누리당 당원도 아니고, 박근혜 위원장과 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공직자후보추천위원장 제의가 왔을 때 그는 자신이 어울리지 않는 자리라며 거부했다. 그러나 계속 제의가 오자 “사심 없이 역할을 해낸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을 듯해서” 수락했다고 한다.

    ▼ 이번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국민의 생각은 몇 번씩 출렁입니다. 이번에도 그랬고, 대선 정국에서도 그럴 겁니다. 새누리당이 이번에 과반의석을 확보했지만, 조금만 교만해지면 국민은 금방 돌아섭니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변화를 더 추구해서 국민에게 만족을 드려야 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박 위원장이 개혁을 계속해나가겠다고 하지만 국민이 진정으로 믿을 수 있을 때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 새누리당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첫째, 분파적 사고방식을 불식해야 합니다. 둘째, 변화에 대한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셋째, 존중할 가치에 대해서는 치열하게 국민을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 정치권에 진출할 마음은 없는지요?

    “고향(경남 하동)에서 일찍이 국회의원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지난해 법률구조공단 이사장을 그만두고 개인 사무실을 차린 뒤 두 가지를 목표로 세웠습니다. 무료법률상담 등 봉사활동과 취미생활인 기타 배우기입니다. 아마도 몇 년 뒤에는 나를 무대 위에서가 아니면 보지 못할 겁니다. 하하.”



    인터뷰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