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화범, 사이코패스, 경계성 인격장애…광기에 관심
- 공간-인물 세팅, 취재-보완까지 2년 넘게 걸려
- 어두운 20대, 무명 시절 패배감이 내 글 자양분
- 요절한 외삼촌의 천금 같은 문학수업…“멋내지 마라”
- 남동생 친구였던 연하 남편, 무명시절 지극정성 외조
‘28’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전염병이 번진 서울 인근의 가상도시에서 28일 동안 벌어지는 사건의 기록이다. 무장병력이 봉쇄해 탈출이 불가능한 도시 ‘화양’. 사람이든 개든 눈동자가 시뻘게지면 사흘 안에 죽고 마는 전염병의 공포.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인간의 몸부림과 생명의 존엄함을 ‘링고’라는 개와 다섯 사람의 눈을 통해 보여준다.
현장 취재를 바탕으로 한 치밀한 얼개와 오감을 자극하는 리얼리티로 읽는 이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흡인력 있는 글이 작가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냈다. 여성 작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성을 절제하고 서사적으로 풀어간 점도, 흔치 않은 다중 주인공 시점을 쓴 점도 호기심을 키웠다. 더구나 그는 간호사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거주지는 전라도 광주. 7월 25일, 광주에서 KTX를 타고 올라온 그를 만났다. 소설의 배경인 화양이 불볕(火陽)이라는 의미여서일까. 이날은 불볕더위가 유난히 기승을 부렸다.
시원한 커트머리에 청바지 차림으로 미소를 지으며 다가온 그의 첫인상은 ‘28’을 보며 떠올리던 억센 중년 여걸이 아니었다.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 하자 수줍게 웃는 모습이 천진한 아이 같았다. 수많은 사람과 개를 무참하게 죽이는 과정 묘사를 어떻게 해냈을까. 하지만 입을 떼자 ‘본색’이 나온다. 어떤 질문에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술술 풀어내는 그의 이야기는 청신경을 곤두세우는 힘이 있었다.
6년차 ‘캣맘’의 인간 탐구
▼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인력이 최고라고들 하던데, 비결이 있나.
“어릴 때부터 사람을 관찰하고, 좋아하는 면을 따라 해보고 하는 걸 좋아했다. 원래 호기심이 많다. 하다못해 우리 집 강아지가 어떤 때 어떻게 짖는지 습성까지 관찰했을 정도다. 그런 습관이 몸에 뱄다. 소설에 나오는 개의 습성은 따로 공부를 해서 근거를 가지고 쓴 거다.”
▼ 인간의 악마성과 개의 생명 존엄성을 극적으로 그렸는데, 왜 하필 개를 소재로 했나.
“인간은 생태계의 최고 포식자고 개의 생명은 순전히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개는 반려동물이라고 해서 가족처럼 키우니까 개가 없어지면 상실감이 크다고 하더라. 하지만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어떨까. 개와 사람에게 모두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사람이 개를 그만치 따뜻하게 대할까? ‘28’은 이런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개인적으론 유기 고양이 두 마리를 집에 데려다 키우고 있다. 버려진 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캣맘(Cat Mom)’ 노릇을 6년간 했다. 처음에 고양이를 주운 지점과 동네 산기슭 무덤가에 밥을 놔준 게 계기가 됐다. 자기 밭을 망친다거나 쓰레기가 쌓인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농약을 놓아 고양이를 죽이더라. 배추나 무보다 이 생명이 더 가치가 없는 건가, 이렇게 죽여도 되는 건가 하는 회의가 들었다. 그런데 (고양이보다) 개가 더 대중성이 있지 않나. 반려견을 키우는 인구가 100만이 넘었다고 들었다. 한 집에서 많게는 7~8마리도 키우더라. 그래서 개를 선택했다. 가장 대중적이고 인간 친화적인 동물이니까.”
▼ ‘7년의 밤’도, ‘28’도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끄집어냈다. 심리학에 관심이 많나.
“아주 좋아하고 관심 많다. 심리학뿐 아니라 정신질환, 사이코패스, 방화광, 반사회적 성격장애, 경계성 인격장애, 이런 데도…. 사람의 성격이 인생을 결정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떤 상황에서 선택을 할 때 성격대로 가치관대로 선택해서 얻은 결과물이 우리 삶이지 않나. 그 사람의 삶이 그 사람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평소 그쪽 공부를 많이 한다. 대학(광주기독간호대) 시절부터 정신과 간호사가 돼야지 했더랬다. 그쪽 공부를 좋아했는데 그 호기심이 오래가더라.”
▼ 책을 보면 인간을 혐오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드는데.
“혐오감을 갖고 있진 않다. 희망을 갖고 있다. 사람을 무척 좋아한다. 근데 뉴스에서 인간이 못된 짓을 저지른 걸 보거나 죽은 사람에게까지 악성 댓글을 다는 걸 보면 인간의 본성은 과연 뭘까 싶다. 나는 성선설도 성악설도 지지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에는 선과 악이 다 있다고 본다. 내 마음을 들여다봐도 그렇다. 악마 같은 면도 있고, 착한 면도 있고, 혼란스러운 부분도 있고, 굉장히 잘 정리된 부분도 있다. 다른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다. 인간의 악한 모습은 어떤 때 최대치를 발현하고,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며, 인간의 선한 의지는 어떤 때 발휘돼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에 관심이 많다.”
▼ 아주 선한 사람이 악해질 수도 있나.
“그런 것 같더라. 본바탕이 악해서 악행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주변 상황 때문에 극도로 악랄해지기도 한다. 광기에 휩싸여 이성을 잃고 행동하는, 그런 데 흥미가 있다.”
▼ 그런 사람은 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환자로 봐야 하지 않나.
“현대인 중에 그렇지 않은 사람은 별로 없을 거다. 사람은 누구나 마음속에 지옥이 있는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다. 어떤 상황에서 자기만의 지옥이 열리느냐는 사람마다 다른데, 그게 열리기까지의 과정을 소설에 담는 걸 좋아한다.”
마음속의 지옥
▼ 마음속에 어떤 지옥이 있기에….
“어두운 기억이다. 2남2녀 중 장녀인데, 20대 때 가장 노릇을 하느라 내 인생을 살 수 없었다. 동생 셋이 대학을 다니고 엄마가 아파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아버지는 공무원이었는데 엄마에게 기대 사는 분이었다. 양말 한 짝도 여자가 챙겨줘야 했다. 친구들과 커피 한잔을 편히 마실 수 없었다. 엄마 아팠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돌아가신 후부터 결혼 전까지도 친구들과 영화 한 편을 못 봤다. 남들 놀러 다닐 때 아버지 밥 걱정을 해야 하는 그런 세월을 보냈다. 또 엄마가 3년간이나 병원생활을 하다 돌아가신 후 빚 갚느라 정신이 없었다. 살기 위해 몸부림치던 그 시절이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다. 한편으론 그 시절이 있었기에 인생을 대하는 태도가 강해졌고, 소설을 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어두운 시절을 어떤 생각으로 견뎠는지 아니까. 모욕적인 순간도 많았는데 잘 참아냈다.”
▼ 엇나갔을 법도 한데.
“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덕에 엇나가진 않았다. 보통 엄마들이 아들을 예뻐하는데 우리 엄마는 4남매 중에서 내게 60을 주고 나머지 40을 나머지 세 아이에게 나눠줬다. 그런 엄마를 잃은 충격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엄마의 죽음이 내 일생 최대의 상처다. 누르면 바로 터지는 부분이다. 지금도 엄마 산소에 가면 목이 터져라 쉴 때까지 울고 그런다. 그런 부분들이 문학을 하는 힘이 된다.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 책에선 모녀의 감정을 표현한 적이 없는 것 같다.
“없다. 엄마 이야기를 하면 신파가 될 것 같아서, 완전히 무너질 수 있어서 책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주로 다룬다. 글 쓸 때 견지하는 것도 냉정한 태도, 덤덤한 시각이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28’도 일부러 3인칭 다중 시점으로 썼다. 각각이 주인공인 시점이다. 관찰자 시점은 잘 안 쓴다. 전지적 작가 시점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주인공 시점을 좋아한다. ‘내 심장을 쏴라’(2009년 세계문학상 수상작) 같은 경우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이야기라서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어울린다. 근데 ‘7년의 밤’이나 ‘28’은 여러 명의 이야기라 1인칭 시점을 쓸 수 없다. 전지적 작가 시점을 쓰면 독자와 인물이 교감하는 통로를 작가가 막는다. 근데 3인칭 다중 시점은 각자가 다 주인공인 시점이라서 저마다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초고 90% 버려야”
▼ 왜 그렇게 주인공을 여럿 뒀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7년의 밤’까지는 소설을 단일 플롯으로 갔다. 하나의 커다란 줄기에 여러 사람을 투입해 한 덩어리의 큰 이야기를 만들었는데, ‘28’에는 보조 플롯 6개를 만들었다. 이 보조 플롯들을 천을 짜듯이 엮어서 하나의 큰 이야기를 만들었다. 구조를 하나하나 보여주고 싶어 그런 방식을 택했다. 동물이 화를 당하면 인간도 화를 당하고 결국 우리는 공멸한다. ‘공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작가 시점에서 전체를 쓰면 일방적으로 끌고 가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입을 열어줬다. 그 사람의 플롯에 각자의 인생을 부여해 엮는 방식으로 간 거다. 흔치 않은 시점이고 작업하기가 까다롭지만 독자는 좋아할 거라 생각했다. 각자의 처지에서 감정을 이입해보면 이해하기도 쉽고 한결 입체적인 상상이 가능하다.”
▼ 캐릭터를 미리 정하고 글을 쓰나.
“가장 먼저 세팅하는 건 인물이 아닌 공간이다. 맨 처음 짜놓은 대략의 얼개가 커갈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7년의 밤’도 세령호라는 공간을 만들어놓고 거기에 뭐가 있는지 숙지한 후에 인물을 배치해 놀렸다. 이번엔 화양을 만들었다. 스케치북에 지도를 그려서 완전히 머리에 익힌 다음 시놉시스의 이야기를 끌어갈 인물을 세팅한다. 어떤 직업을 가진 어떤 연령대의 사람이 필요하겠다는 정도로. 그때까지도 캐릭터 설정은 안 돼 있다. 인물의 카탈로그만 있다. 한기준 하면 키가 큰 30대 후반 남자 하는 식으로. 인물 세팅 후엔 책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을 습득해 초고를 쓴다. 처음엔 내가 좀 굴려주지만 한두 장 지나면 자기들끼리 각자 성격대로 선택을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래서 초고 땐 전력질주를 하는 편이다. 초고를 보통 2000매씩 쓰는데 ‘28’의 경우 초고 2500매를 한 달 반 만에 썼다. 그게 맘에 안 들어서 지리산에 들어가 다시 쓴 초고가 1900매쯤 된다. 초고를 쓴 다음에 이야기가 감이 잡히면 전문가를 취재해서 수정에 들어간다. 수정하는 데만 1년 넘게 걸린다.”
▼ 그렇게 오래 수정하는 까닭은.
“난 초고의 10% 이상이 남아 있으면 실패라고 본다. 10% 이하만 남기고 다 날린다. 초고는 천재가 아닌 이상 대개 드라마나 영화나 소설 속 잔상인 경우가 많다. 그런 기억들을 걷어내야만 내 글이 되는 거다. 소설 하나를 쓰는 데 2년 이상 걸리는 이유다.”
‘28’ 역시 완성하기까지 꼬박 2년 3개월이 걸렸다. 오랜 시간을 공들여 군더더기를 빼고 디테일을 살린 덕에 독자는 ‘술술 읽히는’ 기쁨을 맛본다.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을 정도의 흡인력과 생동감 넘치는 탄탄한 구성을 칭찬하는 서평이 줄을 잇는다. 하지만 문단 일각에서는 “대중성이 강한 반면 문학성은 약하다”고 흠을 잡는다. 정 작가도 이런 비판이 달갑지만은 않을 터. 그는 “욕먹어도 초연한 사람은 못 된다”며 속내를 털어놨다.
“보기와 달리 상처를 잘 받는 성격이다. 신경 안 쓰려고 해도 듣다보면 받아들여야 하는 비판이 있다. 예를 들어 ‘내 심장을 쏴라’를 쓴 뒤 한 평론가가 이런 충고를 했다. ‘여성 캐릭터의 깊이가 얕다. 보다 많은 벽을 세워 입체적으로 만들어봐라.’ 그 말이 가슴 깊이 와 닿았다. 여성 캐릭터에 익숙하지 못해서 스스로 찔리던 부분이었다. ‘7년의 밤’을 쓸 땐 목표가 제대로 된 여성 캐릭터를 만드는 거였다. 강은주라는 여성 캐릭터를 만들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어찌 보면 굉장히 지질한 동네 여편네인데 이 여자를 살려고 몸부림치는 생명력 강한 존재로 만들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계속하면서 쓴 기억이 난다.”
소설가가 되기 전 그는 보훈병원 간호사로 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 직원으로 9년을 일했다. 심평원 재직 시절 인터넷 동호회 심빠홈피 등을 밭 삼아 습작하던 중 회원들의 호응에 용기를 얻어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그 무렵 심평원도 그만뒀다.
11전12기
2000년 첫 소설 ‘열한 살 정은이’를 낸 후 2년마다 책을 내던 그는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는다. 2009년엔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에 도전해 당선된다. 이후 ‘7년의 밤’과 ‘28’을 내며 베스트셀러 작가로 자리매김한 그는 최근 ‘2013년 한국의 대표작가’를 뽑는 네티즌 투표에서 김애란, 전경린 등을 제치고 ‘한국의 젊은 작가’로 선정됐다. 언뜻 탄탄대로를 달려온 듯 보이지만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기까지 11번의 공모전 낙방이라는 아픔을 겪었다.
▼ 문학 비전공자라는 선입관 때문에 불이익을 봤나.
“무시당하는 부분은 있었다. 세계청소년문학상을 받고 나서 세계문학상에 또 도전한 데는 그런 이유도 작용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 문학계에서 내 존재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한 번 더 해봐야겠다는 오기랄까. 근데 두 번의 수상 후에도 별로 바뀌지 않더라. 그래도 지금은 ‘정유정 작가론’도 나오고 하는 상황이니 조금 달라졌다고 본다. 예전엔 어렸던 것 같다. 사람들이 왜 간호대 나온 걸 갖고 색안경을 쓰고 보나 했는데 지금은 ‘그냥 내 길을 가면 되지’ 그런다.”
▼ 글 쓰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푸는지 궁금하다.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 아니다. 혼자 놀기의 달인이다. 그래도 외롭거나 고달프거나 세상에 정말 나 혼자인 것 같은 때가 있는데, 타인이나 취미생활로 위안을 얻는 타입은 아니다. 나 혼자 풀어야 하는데 나쁜 습관인 것 같다. 예전에는 혼자 술 마시며 풀었다. 술 마시고 자거나 그냥 하염없이 울거나. 눈물이 많아서 혼자 운다. 지금도 크게 바뀌진 않았다. 친구도 만나지 않고, 문단에서 사람을 안 사귀고 활발하게 활동하지 않는 것도 그런 성격에서 비롯됐다.”
▼ 문단에서 안 어울려도 뒤탈은 없나.
“그런 건 없다. 어울리고 싶은데 안 끼워주면 소외감을 느끼겠지만 난 그다지 어울릴 생각이 없어서 그런지 저들끼리 잘 노는구나, 할 뿐이다. 상처 받거나 하진 않는다. 누구와 뭔가 함께하는 걸 잘 안 한다. 지금까지 여행하러 대한민국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 비행기표 끊는 법도 잘 모른다. 혼자 가고 싶은데 국제 미아가 될까봐 겁나고, 또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도 내키지 않는다. 그냥 혼자 내 방에서 소설 쓰고, 이렇게 2년에 한 번씩 책 내서 인터뷰하고, 또 들어가서 내 소설 쓰고, 이렇게 살면 되지 싶다. 근데 요즘은 내 방에 박혀 지내는 데 한계를 느낀다. 세상 밖을 좀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 여권은 있나.
“이번에 생애 처음으로 만들었다. 아들이 일본에서 유학하고 있는데 한 번도 안 갔다. 나 대신 남편이 다 한다. 여권을 만든 것도 아들에게 가기 위해서가 아니다. ‘28’을 끝냈으니 충전이 필요해서 네팔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를 한 달간 다녀올 예정이다. 예뻐하는 후배 소설가와 함께 가기로 했다. 오늘의 작가상을 받은 김혜나인데 알고 보니 걔도 혼자서는 엄두가 안 나 못 갔다고 하더라. 9월 1일부터 30일까지 트레킹을 할 거다. 생애 첫 해외여행이 될 것 같다. 완전히 한 바퀴 돌고 오려고 요즘 광주에만 가면 험한 산을 찾아다니며 훈련한다(웃음).”
외삼촌의 문학수업
▼ 공모전에서 계속 떨어진 이유가 뭘까.
“문제는 패배주의였다. 11번 떨어지면서 패배주의가 몸에 배더라. 난 안 되는 건가 하는. 그때는 나 자신에 대한 패배감으로 내가 과연 재능이 있는가, 재능도 없는데 쓸 수 있다고 덤비는 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도 글 쓰다가 막히면 그런 생각이 문득문득 든다. 그게 내겐 더 낫다. 자신감이 넘치면 자신의 오류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더라. 내가 세계청소년문학상으로 5000만 원, 세계문학상으로 1억 원의 상금을 받고 ‘7년의 밤’이 베스트셀러가 돼서 굉장히 화려하게 데뷔한 운 좋은 작가라는 인식이 있던데, 패배감과 싸운 6년간의 무명 시절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다. 무명 시절에 낸 책들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면 과연 등단했을까 싶다.”
▼ 반응이 어땠기에….
“첫 책은 유니텔, 하이텔 시절에 쓴 소설이다. 다른 사람보다 조회수가 10배 이상 많고, 댓글도 무수히 달리고 팬도 생기고 그러기에 무작정 투고했는데 출판사에서 일주일 만에 책을 내자고 연락이 왔다. 의기양양해서 책을 내면 바로 작가로 불러줄 줄 알았는데 아무도 내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초판 5000부도 거의 안 팔렸다. 출판사 편집장이 공모전에 내보라고 하더라. 우리나라에서 작가가 되려면 등단을 해야 한다, 우리나라 문단에서 좋아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이야기꾼 기질이 있으니 공모전에 도전해라, 거기서 등단하면 지금처럼 힘들진 않을 거라고 했다. 무명 시절 출간한 세 권의 책은 모두 공모전에서 여러 번 떨어진 작품이다.”
▼ 예전엔 사랑 이야기도 썼던데 등단 후엔 서사적인 소설을 주로 쓰는 것 같다.
“원래 서사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데 방법을 몰랐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고, 어떻게 하면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일러주는 책도 못 봤다. 그냥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두 권 쓰고 나서 조금씩 허구의 세계를 만들어간 거다. 아, 이렇게 하면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 조금씩 변화를 줬더니 나와 전혀 상관없는 허구의 세계가 열렸다. ‘마법의 시간’은 처음이라 서툴고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도 뭔가 부족했는데 ‘내 심장을 쏴라’ 때 내 스타일이 완성돼 자신감이 붙었다. 덕분에 ‘7년의 밤’이나 ‘28’ 같은 스릴러에 도전할 수 있었다. 범죄 호러, 스릴러를 굉장히 좋아한다.”
▼ 글을 보면 미사여구가 거의 없어서 작가가 여잔지 남잔지 분간이 안 가더라.
“첫 책 때부터 그런 문체를 써왔다. 외삼촌의 영향이 크다. 외삼촌이 희곡을 쓰면서 등단을 준비하다 요절했는데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요양차 우리집에서 지냈다. 그때 외삼촌이 권하는 책을 많이 읽었다. 한번은 ‘황태자의 첫사랑’이라는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서 책상 서랍에 넣어뒀는데 그걸 외삼촌이 보고 문장마다 빨간 줄을 쫙쫙 그어놨더라. 중학교 2학년 때니 그 허세가 오죽했겠나.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멋지게 썼는데 그걸 다 그어버리고 주어와 동사만 남겨뒀더라. 끝에 ‘멋내지 마라’고 쓰여 있기에 외삼촌한테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다. 멋내지 마라는 건 정확하게 쓰라는 거고, 정확하게 쓰라는 건 수식어가 필요 없는 튼튼한 문장, 주어와 동사만으로도 의미가 충분히 전달되는 문장을 쓰라는 얘기랬다. 그렇게 쓰려면 아주 강렬하고 적확한 동사를 쓰면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문장에다 형용사나 부사 많이 쓰는 걸 부끄럽게 생각하게 됐다. 외삼촌은 접속사도 굉장히 싫어했다. 문장이 난삽해진다고. 그때 외삼촌이 그런 지적을 해준 게 내 인생의 유일한 문학수업이라 할 수 있다.”
광주항쟁의 눈물
▼ 글쟁이 기질이 어릴 때부터 있었나.
“그랬다. 초등학교 때는 학교 대표로 나가서 상을 타오곤 했다. 전남 함평에서 나고 자란 시골아이가 광주에 가서 호남예술제라든지 대학에서 주최하는 대회에 나가면 반드시 상을 타왔다. 중학교 때도 그랬고. 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는데 외삼촌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어 충격이 컸다. 지금까지 내가 뭘 쓴 건지 싶고. 근데 그게 일생을 좌우하는 가르침이 될 줄 몰랐다. ‘멋내지 마라’는 말이 문장에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고 모든 면에 적용되더라. 필요 없는 부분은 잘라버리고 필요한 부분만 취해서 보여주는 거니까.”
▼ 꿈도 작가였나.
“어릴 때부터 한결같이 작가를 꿈꿨는데 왜 작가가 되려 하느냐고 물어보면 답을 하지 못했다. 유명해지고 싶어서도,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런 건 다른 일을 하는 게 더 빠르지 않나. 고1 때 답을 얻었다. 초등학교를 여섯 살에 들어가 그때 열다섯 살이었다. 그전까지 시골에 살다가 광주로 유학을 갔는데 5·18광주항쟁이 터졌다. 시민군이 도청을 사수하고 진압군은 광주 외곽을 봉쇄해 광주시민이 밖으로 못 나가게 했다. 그날 소문이 돌았다. ‘오늘 저녁에 진압군이 시민군을 진압하러 들어온다. 가서 우리가 막아줘야 한다. 다 죽는다’….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와 아저씨, 대학생 오빠들은 다 트럭을 타고 도청으로 갔다. 마당에서 번개탄에다 삼겹살 구워 소주 한 잔씩 마시고 나서. 하숙집에는 나와 중1이던 남동생만 남았다. 밤 10시쯤 되니까 조용하던 동네 외곽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평상시에도 총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이 밤중에 울리는 총소리가 어디를 향하는지 알고 있었다. 어른들이 말해주고 갔기 때문에. 너무 무서워 옆방 오빠네 책을 한 권 꺼내왔다. 책을 보다 잠들면 좋겠다 싶어 굉장히 어려워 보이는 책을 들고 왔는데 그게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였다. 주인아저씨가 밖으로 불빛이 새나가지 않도록 창에 솜이불을 둘러주고 가서 그 밑에 앉아 책을 읽었다.
‘6장쯤 넘기면 잠이 오겠지. 자고 일어나면 어른들이 올 거고 다시 일상이 이어질 거야’ 하는 어린아이 같은 기대감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마지막 장을 넘기는데 가슴속에 뜨거운 파도가 쳤다. 그걸 어떻게 식힐까 하다 창문을 여니 동이 트고 있었다. 근데 총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총소리가 멈췄다는 건 시민군이 진압됐다는 거다. 그 순간에 닥친 충격과 우리 하숙집 식구들이 다 죽었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책에서 방금 느낀 감정이 뒤섞이면서 나도 모르게 미친 듯 통곡했다.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중에 작가가 되면 책을 읽는 사람에게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새벽에 펑펑 울 수 있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다, 난 그래서 작가가 되고 싶은 거라는 생각을 그때 했다. 그게 지금까지도 날 움직이는 욕망이고 에너지다. 독자를 내 세계에 가둬두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유에 대한 답이 바로 그 눈물이다.”
암흑기에 싹튼 사랑
▼ 근데 왜 진즉에 작가의 길을 가지 않았나.
“엄마가 반대했다. 외삼촌 때문에 글쟁이 하면 술주정뱅이에 굶어죽는 것만 생각했다. 사랑하는 딸을 그렇게 만들기 싫어서 엄청나게 반대했다. 나 역시 부모 뜻을 거역해 실망시킬 수 없었다.”
▼ 하필 간호대를 간 이유는.
“엄마는 의대에 보내고 싶어 했다. 문과를 갔으면 오히려 성적이 잘 나왔을 텐데 이과가 적성에 맞지 않아 의대에 갈 성적이 안 나오더라. 엄마는 전문직을 가지고 결혼해서까지 자기 인생을 꾸릴 수 있길 바랐는데 의대에 못 가니까 간호대에 원서를 냈다. 그때 난 전기대에 떨어져 대학에 안 간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었는데 엄마가 원서를 내버려서 어쩔 수 없이 간호대를 갔다.”
타의로 시작한 대학생활은 처음부터 삐걱거렸다. 1학년 땐 결석을 너무 많이 해서 유급 위기에 처했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해서 야간대학 국문과를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하필 그가 병원에 취직하던 해에 모친이 쓰러졌다. 처음 진단 결과는 만성 간염이었지만 만성 간경화로, 다시 간암으로 급속히 악화됐다. 어머니 병 수발과 동생들 뒷바라지에 빚까지 갚느라 그의 20대는 “커피 한잔의 여유를 맛볼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런 암흑기에도 사랑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왔다. 상대는 그의 남편이 된, 세 살 연하의 남동생 친구였다.
“밥 달라고 찾아오는 남동생 친구들이 있었는데 남편은 그중 한 명이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애들처럼 누나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날 부를 땐 꼭 ‘저기요’ 그랬다. 스물아홉 살에 남편과 결혼했는데 연애다운 연애는 못 해봤다. 우리 집에서 밥 먹고 노는 게 다였다. 데이트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했다.”
▼ 어떻게 가까워졌나.
“응급실에서 근무할 때 남편이 손을 꿰매달라고 찾아왔다. 친구들과 술 마시고 트럭 백미러를 주먹으로 쳐서 찢어진 거라고 했다. 손을 다치니 내가 생각나더라고 했다. 남동생을 통하지 않고 내게 온 건 그게 처음이었다. 의사에게 부탁해 잘 꿰매서 보냈는데, 그러면서 가까워져 햇수로 3년을 사귀었다.”
▼ 연하랑 살면 젊어진다는 말이 맞나.
“그런 것도 같다. 남편이 나이도 어리고 동안(童顔)이라 같이 있으면 누나 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데 기분이 별로다. 자꾸 신경이 쓰이니까 어떻게든 한 살이라도 더 어려 보이려고 청바지 같은 캐주얼한 옷을 즐긴다. 주부 스타일은 안 입는다(웃음).”
▼ 글을 쓸 때 남편이 도움을 주나.
“물론이다. 남편이 지금은 소방학교에 있지만 전에는 119 구조대원이었다. ‘28’에도 119 구조대원이 등장하는데 자기가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따로 취재할 수 있게 전문가를 소개해줬다. 직업정신이 투철하고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는 삶에 자부심을 느끼는 남편의 성향이 캐릭터를 살리는 데 한몫했다. 무명 시절 6년 동안에도 남편이 외조를 해줬다. 책을 사보라고 다달이 용돈 주고, 소설 쓰는 데만 집중할 수 있게 우체국 택배까지 다 처리해줬다. 고마운 마음을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서 상금을 모두 남편에게 줬다. 인세 관리도 남편이 다 해준다. 내가 그런 쪽에 소질이 없어서….”
“천명관 작가처럼 쓰고파”
‘7년의 밤’으로 그는 인세수입 외에 영화판권비 1억 원도 챙겼다. ‘올드보이’의 투자배급에 관여한 쇼이스트 김장욱 이사가 독립해 차린 펀치볼 영화사에서 판권을 사갔다. 영화 시나리오가 나와 캐스팅 작업 중이라고 하니 ‘7년의 밤’을 극장에서 볼 날이 머지않은 듯하다. ‘28’도 영화 관계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하지만 개와 사람의 이야기라 제작이 쉽지 않을 거라고 그는 말했다.
▼ 새로 구상 중인 작품이 있나.
“내 소망이 2년이든 3년이든 간에 일정한 간격으로 일정 수준의 이야기를 내놓는 것인데 지금 당장은 머리를 비울 필요가 있다. 이번에 안나푸르나에 가면 머리와 마음을 다 비우고 올 생각이다.”
▼ 거기서도 지적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취재를 하는 건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포토그래퍼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웃음).”
그의 롤 모델은 천명관 작가다. “천명관 작가처럼 이야기를 넓게 굴리면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듯 풀어가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 꿈이다. 그런 그도 누군가에겐 닮고 싶은 ‘워너비’일 터. 제2의 정유정을 꿈꾸는 작가지망생을 위해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정말 온 삶을 바쳐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자기를 벼랑에 세울 필요가 있다. 돌아갈 곳이 있으면 좌절하거나 절망하거나 실패했을 때 본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 그럼 시도만 해볼 뿐이지 남는 건 없다. 돌아갈 곳을 원천적으로 차단해버리면 그 자리에서 끝장을 보게 된다. 죽든지 살든지. 그게 내가 인생을 사는 스타일이다. 하나만 보고 가도록 배수의 진을 치고 그 자리에서 끝장을 본다는 심정으로 달려든다. 물론 운도 따라줘야 하지만 행운도 준비되지 않으면 잡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