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엔 지각해 맞고, 수업시간엔 ‘헤드뱅잉’ 하다 혼나
- 남자친구가 키스신 싫어할까봐 데뷔 망설였다
- 30대에 만난 사랑 비, 첫눈에 반하진 않았다
- 몇 년을 헤매게 한 슬럼프, 잠으로 극복
- 결혼은 아직…엄마 품이 좋아요
- 이자벨 위페르처럼 나이 의식 않는 배우 됐으면
7월 29일 오후, 서울 광장동 W호텔 스위트룸. 넓은 응접실 대신 침실을 인터뷰 장소로 택한 김태희(33)가 킹사이즈 침대를 차지했다. 화보 촬영을 할 때부터 점찍어둔 눈치다. 맞은편 의자에 앉아 올려다본 그의 모습은 더없이 평온해 보였다. 푹신한 쿠션에 몸을 기대니 긴장의 끈이 풀린 모양이다. 하기야, 최근 몇 달 동안은 촬영의 연속이었으니 카메라가 없는 공간이 반가울 수밖에 없겠다.
매니저의 전언에 따르면 그는 6월 말 SBS 사극 ‘장옥정 사랑에 살다’를 끝낸 뒤에도 정신없이 바빴다. 드라마 때문에 미뤄둔 CF를 찍는 데만 꼬박 3주가 걸렸다. 이쯤 되면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올 법한데, 그의 낯빛은 칙칙하기는커녕 뽀얀 피부에 윤기마저 감돌았다.
“CF 촬영을 마치고 나선 잘 쉬었어요. 제주도로 가족여행도 다녀왔고요. 부모님과 동생(배우 이완), 언니네 식구들까지 다 갔어요. ‘요양’ 콘셉트로(웃음). 골프장 리조트에서 푹 쉬었어요. 가족이 다 골프를 좋아해서 제주도 여행을 자주 가요.”
▼ 가족 간에 우애가 좋은가봐요.
“사실 좀 남다른 편이에요. 가장 위해주고 가장 걱정해주는 게 가족인 것 같아요. 형제가 많아서 더 친한 것 같고요. 제 또래 중에 3남매가 흔치 않아요. 어머니가 결혼을 빨리 해서 일찌감치 셋을 나으셨어요. 다 4살 터울이고.”
잠 안 재우기 고문
그는 웃으며 넘겼지만 ‘요양’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장옥정…’은 그가 처음 도전한 정통사극 아닌가. 사극은 대사 톤이나 화법이 현대극과 다르다. 걸쳐야 할 의상과 장신구도 많다. 게다가 촬영이 한창 추울 때 시작돼 한여름에 끝났으니 여주인공의 고생이 오죽했을까.
“어떤 작품도 쉽게 한 건 없어요. ‘아이리스’ 땐 오랜만에 하는 드라마라서 심적 부담이 컸고, 영화 ‘그랑프리’ 찍을 땐 말 타는 장면 때문에 힘들었어요. 위험하니까.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마프’(마이 프린세스)에선 말이 많은 캐릭터를 맡아 대사도 많았고 육체적으로도 정말 힘들었어요. 사람이 잠을 안 자고 얼마나 집중할 수 있는지 생체실험을 하는 것 같았죠. 잠 안 재우기 고문 같은. 근데 이번엔 힘든 게 그 이상이었어요. 신기록을 달성했죠(웃음).”
▼ 어느 정도였기에….
“‘마프’ 때는 세트장이 다 서울 근교에 있어서 일주일에 하루 반 정도는 대본 기다리면서 쉴 수 있었어요. 나머지 5박6일은 이동할 때만 자고, 근처 아무 데나 들어가 후딱 씻고 나와서 메이크업 다시 하고 촬영했고요. 그때도 정말 이보다 더 힘들 순 없겠다 싶었는데 이번엔 매주 100시간이 넘도록 계속 촬영하는 거예요. 상대역 유아인 씨도 저도 ‘컷’ 소리가 나면 그대로 눈 감고 쓰러졌어요. ‘액션!’ 하면 다시 눈 뜨고.”
▼ 어떻게 견뎌냈나요.
“밥 꼬박꼬박 챙겨 먹으면서 ‘밥심’으로 버텼어요. 밥을 안 먹으면 당(糖) 떨어진 느낌이 들었어요. 배고프면 기력도 없고 집중도 잘 안 되잖아요. 평소엔 거들떠보지도 않던 홍삼이며 비타민, 좋다는 알약은 죄다 챙겨 먹었어요. 살아야겠더라고요(웃음).”
▼ 그렇게 못 자고도 대사가 외워지던가요.
“잠을 못 자면 정신이 몽롱해지면서 간단한 것도 발음이 꼬이고 NG가 계속 나고 스트레스가 더 쌓이죠. 촬영 막판에 ‘쪽대본’이 많이 나오는데, ‘마프’ 때는 그래도 외우기가 한결 수월했어요.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고 생각이 잘 안 나면 그때그때 애드리브로 넘어가고 그랬어요. 근데 사극은 대사 자체가 일상적으로 쓰는 말투가 아니라서 토씨 하나만 바뀌어도 어감이 달라져요. 말도 어렵고.”
사극 묘미에 빠지다
한창 추울 때 찍은 빗속 키스신은 NG가 8번이나 났다. 그는 “물줄기가 온몸을 세차게 때려 눈도 못 뜨겠고 이는 덜덜 떨리고 머리가 하얘지면서 대사도 생각이 안 나더라”며 웃었다.
▼ 다시는 사극을 하고 싶지 않겠네요.
“힘들게 찍었지만 이번에 사극의 묘미에 빠졌어요. 사극을 처음 접하니까 욕심이 생겨서 요런 톤으로 요런 캐릭터를 보여줘야지 하며 고민을 많이 했어요. 18세의 옥정이부터 연기했는데 처음엔 전형적인 사극 조로 연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못된 장희빈이 아닌, 순수하고 야성적인 장옥정의 매력을 보여주자는 게 작품 기획의도이기도 했고요. 옥정이가 궁에 들어가 달라지면서부터는 사극 조로 갔는데 제 생각대로 연기 톤이 나와서 사극의 맛을 조금 알게 됐죠.”
SBS 사극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한 장면.
“처음엔 걱정됐어요. ‘아이리스’의 (이)병헌 오빠, ‘마프’의 (송)승헌 오빠, 영화 ‘중천’의 (정)우성 오빠, ‘싸움’의 (설)경구 오빠처럼 대개 열 살 연상인 베테랑 선배님들과 호흡을 맞춰왔으니까요. 그분들이 많은 부분을 리드해 그냥 가서 기대면 되니까 든든했죠. 그러다 저를 ‘누나’라고 부르는 유아인 씨와 호흡을 맞추려니까 고민스러웠는데 의외로 잘 맞았어요. 유아인 씨가 어려운 사극 대사를 자기 입에 맞게 잘 고쳐서 후딱 외우더라고요. 연기할 때도 에너지와 감정의 디테일을 다 살려내고. 재능을 타고난 것 같아요.”
김태희의 연기를 놓고는 초반엔 혹평도 나왔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첫 사극치고 훌륭하다”는 반응이 이어지며 연기력 논란을 잠재웠다. “대본을 받으면 휴대전화 동영상카메라를 세팅해놓고 한 신당 수십 번씩 연습했다”는 숨은 노력이 빛을 발한 셈이다. 연습 분량이 엄청나 지우고 지웠는데도 그의 휴대전화엔 아직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작품이 끝나도 캐릭터에서 헤어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배우가 많던데.
“저는 안 그래요. 촬영할 때도 ‘컷’ 하면 바로 빠져나오는 느낌이에요. 육체적으로 힘들어선지 끝나면 홀가분하고요. 물론 출연하는 동안에는 캐릭터를 껴안고 있어요. 그래서 순서를 바꿔 찍더라도 감정에 빨리 몰입하고 빨리 빠져나와요. 대신 촬영 초반에는 캐릭터가 몸에 배기까지 시간이 걸려요. 3~4부까지는 찍어야 그게 되더라고요.”
배우가 캐릭터를 받아들이고 떠나보낼 때의 습성이 이성을 대할 때의 그것과 흡사한 경우가 많다. 그 역시 캐릭터를 대할 때처럼 이성에게도 마음을 쉽게 열지 않는 스타일이냐고 묻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좀 시간이 걸리죠. 떠난 사람은 절대 기억하지 않고요. 여자들이 다 그렇지 않나요. 마음을 쉽게 안 주고, 지나간 사랑에 대해서는 금방 잊어버리고…(웃음).”
‘엄친딸’의 일탈
사랑 이야기는 잠깐 접어두고 이른바 ‘엄친딸’로 지내던 그의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보자. 1980년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유치원생일 때 부모를 따라 울산으로 이사했다. 울산여고를 나와 서울대 의류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1학년 때인 2000년 ‘화이트’ CF로 데뷔한다. 이후 3년 만에 일약 톱스타로 발돋움한 데는 서울대 출신이라는 ‘스펙’이 크게 작용했다. 광고주들이 앞다퉈 그의 ‘일류’ 이미지로 신상품 광고효과를 극대화하면서 단숨에 CF 여왕 자리에 올랐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학창시절 비화(秘話)까지 화제를 모았다. 연예 프로그램에선 그가 다닌 중학교에 찾아가 “3년 내내 전 과목 100점을 받았다”며 성적표를 공개했다.
▼ 원래 부잣집 딸이라면서요.
“하하…, 아니에요. 아버지가 울산에서 중장비 운수업을 하시는데 빈손으로 사업을 시작하셨죠. 지금은 탄탄하게 꾸려가고 계시지만 어릴 때부터 유복하진 않았어요. 엄마가 정말 알뜰하고 검소하셔서 물질적으로 풍족하게 누리면서 자라진 않았어요. 그런데도 엄마한테 이거 사달라, 저거 사달라고 떼를 쓴 적이 거의 없어요. 결핍에 대한 갈증이 없었어요. 물욕이 없는 편이에요. 어릴 때도 언니는 옷 욕심이 많았는데 저는 좀 수더분했어요.”
▼ 정말 ‘엄친딸’이었나요?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모범적인….
“모범생이었던 건 맞아요. 학교에서 사고 안 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딴것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어요. 울산은 워낙 학구열이 높은 동네고, 학교에 ‘날라리’도 별로 없고…. 대학 다닐 때 서울에서 자란 친구들과 얘기해보면 정말 차이가 크더라고요. 지방에서 올라온 친구들은 확실히 순박한 구석이 있어요. 논밭을 보며 자라서 그런가?”
▼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던데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 화이트데이 같은 날 선물 한두 개 받아본 정도예요. 조용히 지냈어요. 같은 학번 서울 토박이 친구들은 같은 세대인데도 고등학교 때부터 남자친구 사귀고 그랬대요. 고등학교 때 클럽이나 동아리 활동도 하고. 제가 다닌 여고는 교육환경이 엄해서 공부만 하는 분위기였어요. 체벌도 하고….”
▼ 매도 맞아봤나요.
“그럼요. 지각을 해서 많이 맞았어요. 엎드려 뻗쳐 한 채로 엉덩이도 맞고 손바닥도 맞고. 저희 때는 머리도 때리고 그랬어요. 비평준화 지역 학교라 다들 열심히 공부했죠. 남자친구 사귀면 대학 포기하고 인생 포기한 아이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어요.”
▼ 일탈을 해봤나요.
“일탈을 할 수 없는 환경이었어요. 일탈하는 학생이 있긴 했어요. 전교에서 한두 명? 그 친구들은 정말 유명했죠.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담을 넘어서 떡볶이 사 먹고 오는 정도의 일탈은 저도 해봤죠, 하하.”
골목대장의 소원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그는 동네 골목대장이었다. 외모도 선머슴 같았다.
“대학 가기 전까진 단발머리 이상 길러본 적이 없어요. 옷차림도 늘 쫄바지에 운동화여서, 머리 예쁘게 땋고 공주 원피스 입은 친구들을 선망했죠.”
▼ 부모님이 일부러 아들처럼 키우신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그냥 형편 되는 대로 키운 것 같아요(웃음). 아이니까 활동하기 편한 옷 입힌 거고, 긴 머리는 손이 많이 가지만 커트 쳐서 파마하면 손질하기 편하잖아요.”
▼ 머리를 길러보고 싶었겠네요.
“긴 웨이브 머리를 한 친구들을 보면 예쁘다, 부럽다 생각하면서도 엄마한테 표현을 안 했어요. 어릴 때부터 소원이어서 대학 가서는 머리부터 길렀죠.”
▼ 따라다니는 남자아이들 없었어요?
“남자애들이 절 보면 도망 다녔어요. 남자애들을 하도 두들겨 패서. 제가 키도 크고 조숙했거든요. 지금 키가 그때 키예요. 동생도 어릴 때부터 힘으로 제압했고, 까불고 장난 잘 치는 남자애들은 힘으로 응징했죠. 워낙 ‘액티브’한 아이라 걸어다니는 법이 없었어요. 늘 뛰어다니다 넘어져서 무르팍에 피가 나는 날이 많았어요. 그래선지 달리기를 잘했어요. 초등학교 때는 늘 학교 대표선수였죠. 100m를 15초에 주파하고 오래달리기도 1등이었죠. 중학교 가서 교복 입고 책상에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하면서 얌전해진 것 같아요.”
운명의 의류학과
▼ 중학교 3년 내내 전 과목 100점 기록을 세웠다면서요.
“저도 TV에서 봤어요. 그런 성적표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어떻게 전 과목 100점을 3년 내내 받을 수가…. 제가 다닌 중학교에 가서 제 성적표를 뒤져 찍은 건 맞는 것 같아요. 근데 시험과목 하나하나의 성적표가 아니라 1~3학년 전체를 종합해서 통계 낸 걸 본 것 같아요. 저는 본 적이 없는 성적표죠. 전교 1등을 한 적도 있고 못 한 적도 있어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닐 땐 반장을 도맡아 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일부러 반장선거에 나가지 않았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자’는 생각뿐이었다.
▼ 리더십이 있었나봐요.
“없었어요. 그냥 키 크고 공부도 좀 잘하고 그러면 반장 되기 쉬웠던 것 같아요. 체육도 좋아하니까 인기도 있고 그래서 반장감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때나 지금이나 남을 리드하고 주도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말수도 별로 없고 남의 얘기를 주로 듣는 편이에요.”
▼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의류학을 전공했나요.
“어릴 때부터 자기 적성을 찾아 개발할 만한 환경이 아니었어요. 주입식 교육이라 학교 시험공부만 열심히 하면 됐죠. 성적에 맞춰서 대학 가고 그럴 때라 수능을 치르고 나서야 진로 고민을 했죠. 고2 때부터 막연하게나마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쪽 일이 멋져 보이고, 미술시간과 체육시간을 좋아해서. 그러다보니 의류학과, 의상디자인학과가 눈에 띄더라고요. 되게 재미있을 것 같고 디자이너란 직업도 멋있어 보여서 지원했죠. 100% 제 의지로.”
▼ 그림도 잘 그렸나요.
“어릴 땐요. 근데 점점 퇴화했죠(웃음). 대학 가서 바로 이쪽 일을 시작해 취미활동을 할 여유가 없었어요. 당장 내 앞에 주어진 일을 하기에도 버거웠고, 취미라는 걸 만들 만큼 심심하거나 지루한 적이 없었어요. 나중에 취미로 그림을 그려볼까 해요. 지금도 연기활동을 안 할 땐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수채화 물감이나 아크릴 물감은 학교 다닐 때 많이 써서 이왕이면 유화를 배우고 싶은데 번거롭다고 하더라고요. 언니는 한국화를 전공했는데 전 색감을 무척 좋아해서 옷이든, 그림이든 색깔 예쁜 게 좋아요.”
졸음왕의 공부 비법
그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10대 자녀를 둔 학부모라면 누구나 궁금할 것. ‘서울대에 단박에 붙은 공부 비법’이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웃음이 빵 터진다.
“학부형이셨어요? 하하. 얼마 전 한화그룹에서 지방 중·고등학생을 위한 서울 소재 대학 캠퍼스 견학 프로그램을 마련했는데 거기서 강의를 했어요. 저는 요령을 부려야 할 데선 요령을 부리고, 정말 정직하고 완벽하게 암기해야 할 부분은 사력을 다해 외웠어요. 수학은 문제 많이 풀어보는 게 답이에요. 영어도 그렇고. 공부 요령이 과목마다 다른 것 같아요. 일단은 무식하다 싶을 정도로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게 중요해요. 영어도 문장을 통째로 외우라고 하잖아요. 저희 때는 오지선다형 문제의 답을 잘 골라내는 노하우가 필요했어요. 많이 풀어보면서 노하우를 스스로 터득하고 리듬을 찾아야죠. 저는 밤 10시~새벽 2시가 집중이 가장 잘 되는 시간이에요. 야행성 체질이죠.”
▼ 그러니까 키가 덜 컸나봐요. 성장호르몬이 집중적으로 나오는 시간인데.
“맞다, 맞아. 그러네요, 하하. 저는 지금도 밤에 집중을 잘해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편이에요. 그러면 사실 피부 재생도 안 된다는데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 새벽 2시까지는 무조건 공부?
“그랬죠. ‘필(feel)’ 받으면 새벽 3시까지도 하고. 2시 이전에는 자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대신 학교에서 많이 졸았어요. 몇 시간 못 자고 학교엘 가니 오전 시간에 졸고, 점심시간에는 식곤증 때문에 또 졸고. 친구들이 신기해하면서 많이 놀렸어요. 졸면서 ‘헤드뱅잉’을 심하게 했거든요. 졸업할 때 친구들이 ‘태희 자는 걸 못 봐서 심심할 것 같다’고 할 정도였어요.”
▼ 선생님들이 내버려두던가요.
“나름대로 졸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어쩔 수 없이 졸았던 거예요(웃음). 선생님들은 혼내고 깨우셨지만, 억지로 잠을 참으며 앉아 있는 것보다는 졸릴 땐 졸고 집중이 잘될 땐 공부하는 게 훨씬 효율적인 것 같아요. 집중이 안 될 땐 두세 시간 공부해야 이해되던 게 집중이 잘되면 한 시간 만에 가능하니까요. 집중이 정말 중요하고, 어떤 과목이든 포기해선 안 돼요. 저도 포기하고 싶은 과목이 있었어요. 사회탐구와 과학탐구 중에서 선택과목이 있으면 한두 문제 나오잖아요. 한문도 한두 문제밖에 안 나오는데 그걸 위해서 다 외워야 하니 정말 포기하고 싶죠. 포기하지 않아도 그 한두 문제를 틀릴 수 있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그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돼요. 저도 나중에 일본어 공부할 때 한문 공부한 덕을 톡톡히 봤죠.”
의외로 ‘어리버리’
▼ 공부하다 좌절한 적은 없나요.
“너무 많죠. 그때는 ‘최선을 다하는 게 내 몫이고, 내 할 일을 다 하는 거고, 후회도 미련도 없고, 잘못한 것도 없다’ 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다잡았던 것 같아요.”
▼ 그런 시간들을 견뎌냈기에 100시간 넘게 잠을 안 자고도 촬영할 수 있었나봅니다.
“그런 것도 같아요, 100시간 넘게 못 자고 버티려면 정말 강한 인내력과 체력이 필요해요.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존 덕분에 촬영 짬짬이 쪽잠을 깊이 자는 노하우가 생긴 것 같고요. 정말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잘 자고, 잠깐 자도 깊이 자서 개운한 경지에 올랐거든요.”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려고 기를 쓰고 공부해놓고 막상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배우가 된 이유가 뭘까. 1학년 때 길거리를 지나다 연예기획사 캐스팅 디렉터로부터 명함을 건네받은 게 계기였다. 당시는 길거리 캐스팅이 유행처럼 번져 젊은이가 많이 모이는 서울 강남사거리와 압구정동에서 이런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대학 새내기의 눈에는 명함을 건네는 젊은 남자의 의도가 순수하게 보이지 않았다.
“나가기만 하면 명함을 받았는데 혹시 사기 치려는 게 아닌가 싶고, 확인할 길은 없고, 정말 무섭고 두려워서 처음엔 연예계 데뷔를 망설였어요. 또 지금 생각해보면 되게 귀엽고 웃긴 이유도 있었죠.”
▼ 어떤 이유?
“그때는 ‘키스신을 어떻게 찍지? 남자친구가 싫어할 텐데…그럼 연기를 편하고 떳떳하게 할 수 없는데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 앞섰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정말 비장한 각오로 시작했어요. ‘내 비록 이 세계에 발을 들여놓지만 혹시라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스폰서 제의나 압력이 들어올 때는 모든 걸 미련 없이 버리고 이 바닥을 떠나겠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에요?”
▼ 부모님은 허락하셨나요.
“제 의견을 많이 존중해주시는 편이에요. 대학 학과를 고를 때도 그랬고, 제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부모님은 믿고 묵묵히 지켜봐주세요.”
▼ 그만큼 믿음을 줬기 때문이겠죠.
“그건 아닐 거예요. 부모님은 저를 보면 늘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다고 하세요. 제가 좀 어리버리한 구석이 많아요. 확고한 신념도 있지만 ‘길치’에다 자잘한 것을 꼼꼼하게 챙기지 못하거든요.”
▼ 인간적인 면모가 있네요.
“좋게 얘기하면 그렇겠지만, 저랑 같이 살면 정말 짜증날 거예요. 계속 뒤치다꺼리를 해줘야 하잖아요.”
▼ ‘비장한 각오’를 해야 할 만한 상황이 닥쳤나요.
“걱정했던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어요(웃음). 키스신에 대한 생각도 연기를 하면서 많이 바뀌었고요. 지방에서 막 올라와 연애도 처음 해보고 그래서 너무 순진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노출이 심한 장면은 매니저나 감독님에게 얘기해 충분히 조율할 수 있거든요. 예를 들어 입술에 키스하는 장면인데 굳이 입을 맞출 필요가 없다고 생각될 때는 이마에다 하는 걸로 바꾸는 식으로.”
노출과 스킨십
배우 양동근(왼쪽)과 함께 주연한 영화 ‘그랑프리’에서 과감한 키스신을 연출한 김태희.
“작품에 필요한 경우는 굉장히 융통성 있게 하는 편인데, 지금도 제가 용인하는 노출 수위는 있죠. 이 정도까지만 노출할 수 있다, 하는 마지노선이요.”
▼ 마지노선이 어디까지인가요.
“지금까지 제가 노출한 그 정도 수위까지죠(웃음). 키스신, 베드신도 할 수 있어요. 드라마에서 이미 다 한 걸요.”
▼ 중요 부위를 노출하지 않는 정도?
“하하, 노출 연기는 제 마음이 편해야 가능한 것 같아요. 입술에 키스하는 것도 처음엔 너무 부담돼 자연스럽게 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처음 연기할 때 이 길이 천직이니 죽을 때까지 배우를 해야지, 이런 마음으로 시작한 건 아니라서 키스신 같은 장면을 찍느냐 마느냐를 놓고 내면의 갈등이 심했어요. 내가 편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까지가 그 ‘수위’인 것 같아요. 베드신을 찍으면서 너무 불편하면 자연스럽고 리얼한 연기를 보여줄 수 없지만, 요까지는 내가 충분히 노출할 수 있는 연기야, 할 때 정말 몰입할 수 있죠.”
▼ 김혜수, 전도연 씨는 작품에 필요하면 전라 신도 불사하는데, 그럴 수 있나요.
“아직은 자신 없죠. 정말 내가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연기할 수 있을 만한 내공이 쌓여야죠. 언제 그런 경지에 이를진 모르겠지만(웃음).”
지금도 그의 연기력은 종종 도마에 오른다. 재색을 겸비하고 부와 명성을 다 거머쥔 그에 대한 시기, ‘기본기 약한 비(非)전공자’라는 선입관으로 그의 연기를 실제보다 더 혹독하게 평가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에게도 연기를 전공하지 않아서 기본기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을까.
“있죠. 기본기가 중요하잖아요. 데뷔 초에 연기학원을 다녔는데, 그때는 멋모르고 ‘연기를 위해 진정 테크닉이 필요한가?’ ‘이건 너무 가짜 티 나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어요. 하지만 그런 기본기를 다 터득해야 내게 필요한 걸 취사선택해 발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연기 전공자는 기본기를 터득하는 데만 몇 년을 할애하지만 제겐 그런 훈련기간이 없었다는 게 아쉽죠. 그래서 주어진 여건에서 늘 노력해요. 칭찬이든 비판이든 그게 다 저에 대한 관심이라는 걸 지금에야 깨달았어요. 예전에는 칭찬만 받고 싶었죠.”
▼ ‘스펙’이나 미모가 연기에 독이 된다는 생각은 안 드나요.
“그런 면도 있겠죠. 제가 가진 장점을 좀 더 살려가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려면 저를 객관적으로 봐야 하는데, 그동안 제 연기를 모니터링하는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녹음한 제 목소리를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잘 못 보겠더라고요. 그게 힘들어서 안 하다가 ‘장옥정…’ 할 때는 열심히 했는데 볼 때마다 다른 것들이 확실하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정말 중요한 것을 그동안 소홀히 했다고 반성했고, 그간 제가 장점은 폄하하면서 단점을 크게 보고 자책하는 데 급급했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이젠 스스로에게 좀 관대해지려고요. 남이 모르는 빈틈도 보여주고 싶어요. 좀 빠릿빠릿하지 못하거든요. 두뇌 회전도 되게 느리고. 더 망가지고, 독하고, 코믹한 연기도 해봐야죠. 걸쭉한 욕이나 경상도 사투리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풍문의 진실
▼ 슬럼프가 있었나요.
“지나고 보니 그게 슬럼프였구나 하는 건 있어요. 2003년 연기 데뷔작인 ‘스크린’이라는 드라마에서 처음 주연을 맡았고 이후 ‘흥부네 박터졌네’와 ‘천국의 계단’에 이어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까지 2년 반 동안 연달아 드라마를 했어요. 인지도가 굉장히 높아지고 큰 사랑을 받게 됐죠. 그러면서 아무 생각 없이 작품을 더 몰아쳐서 했어야 하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까봐 두려웠어요. 뭔가를 짠 하고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 슬럼프에 빠지게 한 것 같아요. 몇 년간 어떤 작품을 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많이 헤맸고 힘들었어요.”
▼ 어떻게 극복했나요. 그럴 때 주변 사람한테 스트레스를 풀기도 하던데.
“남한테 풀면 더 신경 쓰여요. 나중에 그 사람과도 또 풀어야 하잖아요. 그냥 마음으로 삭이는 편이에요. 자고 나면 다 잊어버리고 그랬던 것 같아요.”
많이 웃어서일까, 아니면 말을 많이 쏟아내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밤이 돼야 쌩쌩해지는 야행성 체질 탓일까. 그가 입을 가리고 하품을 삼킨다. 그 바람에 두 눈망울엔 촉촉한 물기가 서린다. 그의 졸음을 쫓으려면 보다 강도 높은 질문이 필요할 터. 그를 둘러싼 풍문의 진위를 가려보자.
▼ 이병헌, 송승헌 등 같이 연기한 상대역과의 열애설이 사실인가요.
“아니에요. 근데 함께 연기하는 배우와 스캔들이 나면 기분이 좋아요. 정말 잘 어울리는 커플로 비칠 만큼 제 연기가 진짜처럼 보였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해요.”
▼ CF로 엄청 벌었다는 얘기도 끊이지 않아요.
“뭐라고 얘기해도 욕먹을 것 같은데, 제 또래 직장인보다는 많이 벌었겠죠. 직접 돈 관리를 하고 출연료를 일일이 따지면 그간의 수입을 가늠할 수 있겠지만 다 엄마가 관리하세요. 특별한 재테크를 하는 건 아니고 그냥 저축하세요. 저는 용돈을 받는데 지갑에 늘 10만~20만 원은 갖고 다니고. 카드를 주로 써요.”
▼ CF 출연료로 10억 원을 받는다면서요.
“CF마다, 전속기간에 따라 차이가 있어요. 데뷔 초에는 훨씬 적었고. 많이 받은 시기도 있었는데 사실 요즘 CF 출연료 거품이 많이 빠졌어요. 워낙 불규칙해서 출연료가 정확히 얼마인지 몰라요. CF 출연을 꾸준히 해왔지만 요 몇 년간은 그러지 못했어요. 재벌과의 결혼설이 불거졌을 때 CF가 다 떨어져나가서 계속 해오던 몇 년짜리 전속 화장품 광고와 LG전자, 두 개만 남은 때도 있었고.”
▼ ‘CF 스타’ 이미지가 강한 것도 배우에겐 걸림돌 아닌가요. 그래서 유럽이나 할리우드 배우들 중엔 일부러 CF를 안 찍는 사람도 있다죠.
“알죠. 하지만 할리우드는 개런티 수준이 우리와 다르잖아요. 사실 개인적으로 CF 촬영이 재미있기도 했어요. 신인 때는 연기에 자신도 없고 준비도 덜 돼 있어서 드라마 촬영장에 가면 큰 숙제를 짊어진 듯 마음이 무거웠어요. 근데 CF 촬영장에서는 제멋대로 해도 상관이 없었어요. 어떻게든 좋은 부분만 편집해서 15~20초만 쓰니까요. 마음을 편하게 먹으니까 연기가 더 자연스럽게 나오고 매력적인 모습이 나오고 더 리얼한 부분이 나오고 그러면서 즐기게 되는 거예요. 신인 때는 우스갯소리로 ‘드라마 촬영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CF 촬영장에 가서 푼다’고 했죠. 지금은 CF보다 드라마나 영화 촬영장이 훨씬 더 재미있어요.”
나이의 미학
▼ 연기를 즐기게 된 건가요.
“즐기는 면도 생기고, 좀 힘들더라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픈 욕구가 강해졌어요. 광고 촬영은 예쁘게만 보여야 하는 한계가 있잖아요. 제가 최대한 자연스럽게 한다고 해도 표정이 예쁘게 나와야 한다는 강박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드라마나 영화에선 표정을 만들면 절대 안 되고, 예쁘게 보이지 않아도 되니까 그게 오히려 더 제게 자유를 주는 것 같아요.”
▼ 성형수술을 한 데가 있나요.
“없어요. 치아는 교정했어요. 치아도 임플란트, 라미네이트 같은 걸 한 줄 아시는데 자연 치아예요. 원래 치아가 좀 크고 돌출된 형태였어요. 그래서 좀 안으로 넣고 옆을 살짝 다듬어서 작게 만들었는데, 안으로 넣는 데도 한계가 있잖아요. 그래서 실은 제가 입이 잘 안 다물어져요. 힘 빼고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으면 입이 벌어져요. CF 찍을 땐 완벽한 표정과 앵글을 찾으니까 표정을 만들죠. 흠이 없어 보이게.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를 할 때는 입 모양에 신경 쓰면 감정 몰입에 방해가 돼요. 감정에 온전히 집중할 때는 입이 자연스럽게 벌어진 표정인데 사람들은 그것 때문에 감정이 깨진다고 하고. 그게 콤플렉스예요. 내 감정이 흐트러지더라도 보는 이가 집중할 수 있게 표정을 만들어야 하나, 아니면 보는 이를 의식하지 않고 내 감정에만 충실하면 되나 고민스럽죠.”
▼ 과민한 것 같아요. 입이 좀 벌어진 게 매력이라는 사람들도 있던데.
“아휴, 고맙습니다. 그 지적을 하도 받아서 데뷔 초부터 고민했어요. ‘마프’ 때는 야무지거나 똑 부러져 보일 필요가 없는 캐릭터라 입을 헤벌리고 있어도 괜찮았는데 ‘아이리스’랑 ‘장옥정…’ 때는 말투도 표정도 절제해야 해서 그런 콤플렉스 때문에 마음고생 좀 했죠.”
그의 롤 모델은 프랑스 여배우 이자벨 위페르다. 영화 ‘코파카바나’에서 60세인 위페르가 ‘철모르는 천진난만한 엄마’로 나오는 걸 보면서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어떤 캐릭터든 살아 넘치게 표현하는 배우가 돼야겠다”는 목표가 생겼다. 어느덧 30대 중반으로 접어든 그에게 나이 듦은 어떤 의미일까.
“과거로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물론 어릴 때는 풋풋하고 피부도 한결 탄력이 있죠. 지금은 그런 것들이 차츰 없어지는 대신 경험으로 깨달은 것들이 있어요. 연기하는 데 경험만큼 중요한 건 없는 것 같아요. 좋은 배우가 되려고 많은 시간을 들여 노력해왔기 때문에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그 고생을 하고 싶진 않아요.
저를 미인의 아이콘으로 봐주시고 계속 팽팽하고 예쁘기를 기대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사람이 나이 들고 늙는 건 자연의 이치고 그걸 억지로 거스르는 순간 불행해진다고 생각해요. 주름지는 얼굴을 어떻게 펼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성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고, 앞으로 배우생활을 하는 데도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깊어진 눈빛과 주름 하나가 더 유리할 수 있으니까요.”
▼ 사랑 경험도 연기에 도움이 되던가요.
“사랑뿐 아니라 모든 경험이 도움이 돼요. 영화를 보면서 간접경험을 하는 것도 좋다는데, 전 직접 경험하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경험해본 감정만큼은 정말 확실하게 느끼면서 자신 있게 표현할 수 있거든요.”
▼ 어떨 때 사랑에 빠지나요.
“어릴 때는 첫눈에 반하는 사랑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첫눈에 반하는 일도 쉽게 오고. 근데 서른 살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잘 안 오더라고요.”
▼ 상대가 어떻기에 첫눈에 반하나요.
“글쎄요. 내 눈에 멋있는 사람. 그건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들의 공통점이 없거든요. 그건 그냥 ‘필’인 것 같아요. 만난 지 4~5초 안에 이성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사람이요.”
사랑과 결혼
2011년 11월 소셜커머스 ‘쿠팡’ 광고에 출연한 비와 김태희(오른쪽).
▼ 비 씨도 첫눈에 반했나요.
“하하, 서른 살 이후에 만났잖아요. 그분에 대한 이야기는 조심스러워요. 한마디만 해도 그게 헤드라인이 되고, 사랑이나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얘기하면 그분과 연관 지어서 헤드라인이 나가니까 너무 부담스러워요.”
그는 비에 관한 언급이 “기사에 나가지 않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내친김에 더 물었다.
▼ 아들 녀석이 “태희 누나랑 비 형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다”고 합디다(웃음). 우리 아이가 이 정도라면 온 국민이 궁금해할 것 같은데요.
“그냥 사귀고 있죠. 남들 연애하듯이 만나고 있어요(웃음).”
▼ 어떤 점이 좋아서 만나게 됐나요.
“사실 그런 질문에는 제가 다 ‘노코멘트’를 해서…. 나중에 정말 나이가 들어서 민감한 시기가 지나면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쪽으로 포커스가 맞춰지면 너무 반향이 클 것 같아요. 사람들이 그렇게 좋게 볼 것 같지 않아요.”
▼ 그분이 이상형에 가까운 거죠?
“(웃음)글쎄요. 예전부터 이상형을 물으면 그때마다 답이 달랐어요. 제가 존경할 만한 구석은 분명 있어야 해요. 저보다 게으르고 개념 없어 보이는 사람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요. 또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같이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이상형이었던 것 같아요. 어디 나가서는 똑똑해야 하고, 자상해야 하고, 유머러스해야 한다고도 얘기했죠.
제가 천주교 신자인데, 예전에는 ‘하느님, 지금 제가 사랑에 빠진 이 사람을 너무 좋아하는데 이 사람과 결혼하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를 했어요. 근데 2년쯤 전 제 또래 자매(신자)들과 성경공부 모임을 하면서 다들 짝도 없고 결혼 적령기라 ‘우리 다 같이 배우자 기도를 하자’고 했는데, 그때부터는 기도가 달라졌죠. 행복한 결혼생활이 제 소중한 꿈이거든요. 그래서 ‘하느님이 생각했을 때 가장 좋은 배우자를 제게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있어요.”
▼ 결혼은 언제쯤?
“생각 안 해봤어요. 원래 늦되가지고….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희생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니 만일 결혼하면 저도 그런 뒷바라지를 다 해줘야 하잖아요. 감히 자신이 없는 거예요. 지금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버겁고, 엄마의 도움을 받는 게 너무 편안하고 행복한데…. 결혼은 현실이니 좀 더 성숙한 어른이 돼야 할 것 같고, 사람도 최소한 2년은 만나야 평생 함께할 사람인지 판단이 설 것 같아요. 만난 지 몇 개월이 안 돼서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기해요.”
▼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해 아이도 많이 낳고 싶나요.
“아이 많은 게 좋아요. 저도 3남매고, 언니가 결혼해서 조카들도 있는데 이런 대가족이 정말 행복해요. 남매, 자매가 있으면 늘 든든하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끈끈한, 그게 가족이잖아요. 형제끼리는 너무 좋은데 엄마는 셋 키우느라 힘들었다고, 언니나 제게는 하나만 낳으라고 하세요.”
▼ 그럼 하나만 낳을 건가요.
“그렇게 멀리까지는 생각을 안 해봤어요. 근데 하나만 낳을 거면 아들이 욕심나요. 아들은 그냥 내놓고 키워도 되지만 딸 키우기가 무서운 세상이잖아요.”
어느새 약속한 세 시간이 지났다. 그가 “수다 떠는 기분으로 인터뷰했다”고 했지만 기자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그와의 밀담을 즐겼다. 마무리를 위해 ‘30대에 이루고 싶은 소망’을 묻자 그가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마음에 드는 답을 찾은 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연다.
“드라마는 대표작이 몇 편 있는데 영화 중에는 대표작으로 내세울 만한 게 아직 없어요. 30대가 다 가기 전에 제게 꼭 맞는 옷을 입혀주실 감독님과 대표작이 될 작품을 만나고 싶어요, 제발!(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