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3월호

송화선의 이 사람

서강대 떠난 철학자 최진석

“짜릿하다. 앞으로 펼쳐질 삶이 기대된다”

  •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8-02-2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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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랑이가 우리 안에서 죽을 수는 없지

    • 욕망대로 살지 않는 건 천형을 받는 것과 같은 일

    • 인류 역사는 위험한 곳으로 건너간 이들의 흔적

    • 변방에서 중앙을 전복하리라

    [조영철 기자]

    [조영철 기자]

    노장철학 전문가 최진석(59)이 서강대를 떠났다. 지난해 1월 사표를 냈고, 12월 대학본부가 이를 수리했다. 국내 대학교수 정년은 65세. 7년 이상 보장된 ‘안정된’ 일자리를 박차고 황야로 나선 이유가 궁금했다.

    사표를 쓰게 된 계기가 있나.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일이다. 대학이 요구하는 학문 체계가 있다. 엄밀하라. 빈틈없이 너의 논리를 세워라. 그러나 난 인문학 분야의 경우 빈틈없음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기를 확장하는 일은 빈틈 하나 없는 논문이 아니라 구멍이 듬성듬성 나 있는 이야기로 가능하다고 믿는다. 학생들에게도 늘 ‘자기 생각을 논증하기보다는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자’ ‘모호함을 명료함으로 바꾸기보다는 모호함 자체를 품어버리는 자’가 되라고 했다. 

    2015년 ‘건명원’ 설립 때부터 원장을 맡아 이런 신념을 현실에서 펼치고자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면서 나 자신은 기존 대학 체계 안에 계속 머무르는 게 온당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학생들에게 ‘편안한 데 머물지 말고 경계에 서서 불안을 감당하는 자가 돼라’고 했는데, 학교를 떠남으로써 비로소 언행일치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논문의 세계에서 이야기의 세계로

    건명원은 어떤 곳인가. 



    “창의적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기관이다. 오정택 두양문화재단 이사장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했다. 건명원이라는 이름엔 ‘밝은 빛을 세우는 터전(建明苑·건명원)’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명(明)’이라는 한자를 보면 대립된 해(日)와 달(月)이 공존한다. 해를 해로 보고 달을 달로 보는 것은 지(知)의 영역이다. 명(明)은 그런 구획되고 구분된 차원을 넘어 두 개의 대립 면을 하나로 장악할 수 있는 능력을 상징한다. 우리나라의 미래를 개척하려면 이런 능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는 게 오 이사장의 뜻이다. 거기 공감하는 교수들이 모여 소수의 학생에게 인문 예술 과학 등을 가르친다. 교육비는 전액 무료다.” 

    건명원과 대학 둘 다에서 강의할 수는 없나. 

    “그래도 된다. 나 자신이 그럴 수 없었을 뿐이다. 달리 말하면 그러기 싫었다. 내가 지향하는 것이 ‘이야기의 세계’라면 ‘논문의 세계’는 떠나야 한다고 봤다. 그것이 나에게 진실한 행동 아니겠나.” 

    20년간 지켜온 교단을 떠나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교수를 그만둔다고 내 삶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다. 다만 서강대를 떠나는 데 대해 이런저런 생각이 들기는 했다. 내가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고, 1998년 교수가 된 뒤부터는 월급을 받아 가정을 꾸릴 수 있게 해 준 곳이다. 2월 3일 아침 마지막으로 연구실에 들렀는데 그 안에서 지내온 여러 순간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가더라. 짐을 다 빼 텅 빈 공간에 대고 ‘고맙다’고 작별 인사를 했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어떻게 먹고살려고 저러나 하는 시선이 가장 많은 것 같다(웃음). 그런데 사실 내가 안정적인 공간을 박차고 나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 서강대 철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중국에 간 일이 있다. 한중수교 전의 일이다. 그때는 중국에서 뭘 공부하겠다거나 나중에 뭐가 되겠다는 생각조차 없었다. 당시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완전히 새롭게 시작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뿐이다. 중국에 간 뒤 2년 정도를 대책 없이 떠돌았다. 가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처절히 고민했다. 그렇게 지내다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지면서 다시 철학을 공부할 기회가 생겼다. 이후 헤이룽장대, 베이징대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교수가 된 것이다. 이번에 내가 사표 썼다는 소식을 듣고 후배 중 한 명이 ‘중국으로 표표히 떠나던 때의 뒷모습이 오버랩됩니다’라는 문자를 보냈더라. 나도 요즘 종종 그때 생각을 한다.” 

    1990년 당시 스스로에게 그토록 불만을 느낀 이유가 뭔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 거울을 보는데, 그 속에 학문적 진보가 없고 인격적으로도 엉망진창인, 아무것도 아닌 한 인간이 서 있더라. 그게 나라는 걸 견딜 수 없었다. 이런 삶을 일단 멈춰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행동한 것이다.” 

    이미 결혼하고 아이도 있던 때 아닌가. 

    “그래서 더 절박했을 거다. 그 모습 그대로 산다면 자식 앞에서 얼마나 별 볼일 없는 아비가 되겠나. 아내에게는 또 어떻겠는가. 물론 내가 중국으로 떠나면 우리 가족이 배를 곯게 될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당장 굶어 죽을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버티기보다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해 내가 제대로 된 모습으로 성장할 방법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지 않겠나. 그게 우리 가족을 진정 책임지는 자세라고 생각했다. 당시 세상 모든 사람이 내게 ‘그러면 안 된다’고 했지만 오직 한 사람, 우리 아내만 ‘그렇게 하세요’라고 말했다. 그 말에 힘을 얻었다.”

    스스로에게 진실하게

    이번에도 마찬가진가. 

    “이번에는…(웃음). 우리가 31년을 같이 살았다. 그사이 집사람이 내 결정에 대해 ‘잘했어요’라고 하지 않은 게 이번이 처음이다(웃음). 학교에 사표를 냈다고 하니 처음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하더라. 대학에서도 다시 생각해보라고 무급휴직을 줬다. 하지만 1년 가까이 시간이 흘러도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진실했던 때가 30대 초반 중국으로 무작정 떠났을 때다. 거기서 학문과 인생에 대한 눈을 떴다. 내가 전보다 조금은 넓고 깊은 사람이 된 것도 그 시간 덕분이다. 그 뒤로 나는 사람이 자기 자신한테 정말 진실하게 행동하면 우주 대자연이 주는 선물이 있다고 믿는다. 인생 방향은 다수결로 정하는 게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 내 욕망에 진실한 것이 중요하다. 허투루 흘려보내기엔 삶이 너무 짧지 않나.” 

    뭔가 절박하게 들린다. 

    “장자 지북유 편에 이런 말이 있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사람이 사는 시간은, 천리마가 벽의 갈라진 틈새를 내달려 지나치는 순간과 같다. 홀연할 따름이다.’ 나는 살아가며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이 구절을 떠올린다. 돌아보면 정말 그렇다. 정신 안 차리면 10년, 20년이 훅훅 지나간다. 이처럼 인생이 홀연하다는 걸 아는 사람은 늘 긴장하며 살 수밖에 없다. 어영부영 지내다가는 한순간도 별처럼 살지 못한 채, 남이 별처럼 사는 것을 평가하고 박수만 치다 가버리게 된다.” 

    별처럼 살고 싶은가. 

    “물론이다. 나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이 별처럼 살기를 바란다. 인간은 매우 특별한 존재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꿈꾸고, 위험한 곳으로 기꺼이 간다. 생각해보면 참 신비한 일이다. 인류 역사는 그런 사람들의 흔적으로 이뤄져 있다. 그들을 움직인 힘이 내 안에도, 당신 안에도 있다. ‘우리’가 아니라 각자 자기 안에 자기를 빛나게 할 힘을 갖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소중한 ‘자기’를 제 마음에 들지 않은 상태로 내버려두는 건 큰 잘못이다. 결국은 천형을 받는 것 같은 고통을 겪게 된다.” 

    사표를 쓴 이유를 묻는 한 지인에게 “호랑이가 우리 안에 갇혀 죽을 수는 없지”라고 했다던데. 

    “그랬다(웃음). 말이 멋있지 않나. 내가 친구들 앞에서 좀 폼을 잡는 게 있다. 결국은 같은 얘기다. 한 번뿐인 인생, 오직 나를 생각하며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살고 싶다.”

    聖人爲腹不爲目

    1998년부터 재직해온 서강대 강단을 떠나 새로운 출발선에 선 철학자 최진석. [조영철 기자]

    1998년부터 재직해온 서강대 강단을 떠나 새로운 출발선에 선 철학자 최진석. [조영철 기자]

    모든 사람이 그렇게 ‘자기’만을 생각하면 사회가 제대로 굴러갈까.
     
    “도로 위 차선을 한번 생각해보라. 얼마나 허약한가. 가느다란 줄 하나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것이 차선이 되는 순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사람들은 나와 상대 모두 그 선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걸 믿고 시속 100km 이상 속도로 도로를 질주한다. 그게 사람이다. 정해놓은 것을 그렇게 잘 따르면서, 동시에 정해지지 않은 것을 추구한다. 경계 안에 머물면서 그 밖을 꿈꾼다. 그런 각자가 모여 있는 곳이 이 사회다. 구성원 모두가 ‘자기’를 생각하는 게 결코 사회의 이익과 배치되지 않는다. 오히려 각자 자신 앞에 진실해지고, 자신의 욕망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사회가 발전한다고 믿는다.” 

    노자의 ‘도덕경’ 중에서 ‘자신의 몸을 천하만큼 아낀다면 (그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다’는 대목이 떠오른다. 

    “그렇다. 공자는 ‘살신성인’이나 ‘극기복례’를 중시했다. 나의 이익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멸사봉공’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봤다. 노자는 다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도덕경에는 ‘성인은 배를 위하지 눈을 위하지 않는다(聖人爲腹不爲目)’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배(腹)는 구체적이고 개별적이며, 바로 여기 있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배가 부르거나 고플 때 어떤 이념 체계를 근거로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느낄 뿐이다. 반면 눈(目)은 밖을 향한다. 무엇인가를 보려면 필연적으로 그것과 다른 것을 구분해야 한다. 그 준거로 기존 관념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우리가 책상을 식별하려면 책상이라는 이미 형성된 관념에 바탕을 두고 책상을 책상이 아닌 다른 것들과 격리해야 한다. 노자는 이런 행위를 느낌보다 오히려 낮게 봤다. 노자 사상을 대표하는 말 중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라’가 있는데, 이 또한 마찬가지 뜻이다. 노자가 버리라고 한 ‘저것’은 공고히 구조화된 이념적 가치 체계 혹은 이성이고, 취하라고 한 ‘이것’은 개별적 신체성, 달리 말하면 개인의 욕망이다.” 

    ‘자기에게 진실해라’ ‘별처럼 살아라’ ‘배를 위하라’가 모두 하나로 통한다. 

    “그렇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우리는 저 멀리 걸려 있는 낡고 보편적인 이념을 ‘소비’하는 데서 벗어나 지금 이 시대, 바로 나 자신에게 맞는 이념을 ‘생산’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는 개별적으로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진실하게 대면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자기가 사는 시대 전체를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자기 욕망은 시대의 문제와 당연히 맞닿게 된다. 

    나는 우리 시대의 가장 큰 문제가 세상이 변했는데도 새로운 언어가 생기지 않는 것, 다시 말하면 과거의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에게는 비전이 없다. 지금처럼 과거의 언어로 현재를 계속 다뤄서는 결코 미래를 열 수 없다. 돌아보라. 이 세계에 존재하는 위대한 것, 창의적인 것 가운데 고유하지 않은 것이 하나라도 있나. ‘따라 하기’를 통해서는 결코 위대해질 수 없다. 나는 한국이 계속 이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치욕을 다시 당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알았을 때 철학자가 할 일이 무엇일까. 사회에 경고음을 울리고 행동하는 것 아니겠나.” 

    그러니까 나 자신을 가장 위하는 길이, 궁극적으로는 이 시대의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라는 말인가. 

    “노자가 ‘자신의 몸을 천하만큼 아낀다면 (그에게) 천하를 맡길 수 있다’고 한 게 바로 그런 의미다. 나는 지금 내가 이 시대에 수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여긴다. 눈보다 배를 위하는 사람, 철 지난 언어와 신념에서 벗어나 자기 언어와 자기 비전을 가진 사람, 그것을 바탕으로 이 시대를 성찰하고 시대의 병을 고치고자 나서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다.”

    최진석은 현재 한국이 모든 면에서 한계에 도달했다고 본다. 이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면 머잖아 ‘치욕’을 당하게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왜 그가 학자로서 이 사회에 경고음을 울려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물었다. 

    그에 따르면 지난 시절 우리는 ‘따라 하기’ 방식으로 나라를 발전시켜왔다. 다른 이들이 만든 문명, 제도, 물건 등을 가져다가 그대로 흉내 냈다. 이 영역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 덕에, 결과적으로 우리는 종속적인 문명이 닿을 수 있는 최고 높이에 도달했다. 

    그러나 이것에 만족해서는 다음 차원으로 넘어갈 수 없다는 게 최진석의 생각이다. 종속적인 문명에 익숙해진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대신 남이 해 놓은 생각을 자기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다. 분명한 기준이 있으니 그에 맞으면 참, 그렇지 않으면 거짓이라고 본다. 섣부른 ‘진위 논쟁’에 빠지고, ‘선악’에 대한 가치판단에 집착한다. 우리 사회가 이승만/김구, 친미/반미, 반북/친북, 보수꼴통/친북좌빨 등으로 양분돼 소모적 갈등을 지속하는 건, 우리 생각의 차원이 이 단계에 묶여 있기 때문이라는 게 최진석의 생각이다. 

    그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려면 이 단계를 넘어서야 한다고 본다. 지금 세계는 굳건히 자리 잡은 기준을 바탕으로 하는 ‘판단’보다 개방적으로 진행되는 ‘사유’를 통해 진보한다. 우리도 스스로 생각하는 창의적인 사회, 정답을 말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회, 전술적인 차원을 넘어 전략을 고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최진석이 ‘반역자’를 키우는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다.

    내가 나를 장례 지낸다

    반역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종교적 회심 수준의 결단이 필요하다. 현재의 자기를 부정하고 반성하며 때로는 그동안 누려온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장자의 표현을 빌리면 ‘오상아(吾喪我)’, 즉 ‘내가 나를 장례 지내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이 말을 ‘자기 살해’라고 풀이한다. 자신을 살해한다고 할 만큼 철저히 기존의 자기와 결별하지 않고는 새로운 나를 만날 수 없다는 의미다. ‘오상아’의 ‘오(吾)’는 새로워진 우주 질서에 동참하거나 인격적으로 성숙해진 자아, ‘아(我)’는 기존 가치와 이념에 고착돼 있는 자아다. ‘오’가 ‘아’를 죽여야 비로소 장자가 ‘소요(逍遙)’라고 표현한 특별히 자유로운 정신적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내가 나를 죽여야 한다? 어찌 들으면 섬뜩한 말이다. 

    “앞서 말했듯 인생은 짧다. 그 소중한 순간을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사상 이념 비전 언어에 갇혀 흘려보내는 건 너무 아깝다. 참자기를 찾는 게 결코 쉽지 않지만 그러기 위해 끝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게 인간답게 사는 길이다. 자신을 편한 자리에서 내쫓아 벼랑 끝에 세우면 동물적인 감각, 야생적인 투지가 되살아난다. 지금 여기 내가 고도로 살아 있음이 느껴진다. 요즘 내가 그렇다. 광활한 우주 안에 생명을 갖고 존재함을 각성한다. 이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존재에 대한 고민, 살아 있음에 대한 각성 같은 건 사춘기에 하고 그만두는 건 줄 알았다. 

    “나는 나이 들수록 오히려 그런 데 더 예민해지는 것 같다(웃음). 늘 그런 건 아니다. 인터뷰를 하다 보니 나를 좀 포장하게 되는데 사실 나도 허투루 보낸 시간이 적잖다. 근기가 약하고 경솔한 사람이라 여기저기 다른 길로 빠진 적도 많다. 그나마 ‘인생은 짧다’ ‘매 순간을 나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기에 지금 이만큼이나마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면 ‘나는 금방 죽는다’고 서너 번 되뇐다. 그러면 적어도 얼마만큼은 덜 쩨쩨해진다. 좌고우면 하지 않고 나 살고 싶은 대로 살자 하는 마음이 된다. 허튼 데 시간 쓰는 일도 줄어든다.” 

    자, 그렇게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기쁜가. 

    “기쁘기보다는 짜릿하다. 앞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된다.”

    죽을 때까지 ‘동사’로 살겠다

    최진석은 건명원, 섬진강인문학교 등에서 시대를 거스르는 창조적 반역자를 길러낼 계획이다. [조영철 기자]

    최진석은 건명원, 섬진강인문학교 등에서 시대를 거스르는 창조적 반역자를 길러낼 계획이다. [조영철 기자]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건명원에서 강의한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저술과 강연 등도 할 것이다. 모든 활동의 목표는 소수로서 다수를 전복하는 것, 주변에서 중심을 전복하는 것이다. 머리로 생각하면 다수와 중심이 깨었을 때 역사적 진보가 일어날 것 같다. 하지만 인류 역사를 보라. 실상은 그렇지 않다. 소수와 주변이 깨어났을 때 그 힘으로 거대한 변화가 이루어져 왔다. 현재 우리나라는 소수와 주변 구실을 하는 지역 혹은 지방이 전부 서울의 아류가 되려고 안달이다. 교육기관들은 하나같이 명문대를 따라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 틀을 벗어나야 한다. 지난해 서강대를 휴직하면서부터 전남 순천의 한 폐교 건물에 문을 연 ‘섬진강인문학교’ 교장을 맡고 있다. 오충근 지휘자가 이끄는 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지역을 돌며 ‘노자와 베토벤’이라는 철학과 음악이 함께하는 콘서트도 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소수, 주변의 힘을 깨우려 한다.” 

    그런 노력으로 구체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할 때 결과부터 생각하는 건 옳지 않다. 시대의 문제를 인식했다면 그것을 해결하고자 뛰어드는 게 먼저다. 지금 내게 있어 가장 의미 있는 건 가만히 있지 않고 무엇인가 ‘한다’는 것이다. 건명원을 하고, 섬진강인문학교를 하고, ‘노자와 베토벤’을 한다. 가만히 앉아 기존의 개념이나 이념을 갖고 남들 행동을 비판하고 분석만 하는 데서 벗어나, 내가 직접 무엇이든 해보려고 덤빈다. 사람은 이렇게 무엇인가를 함으로써만 우주의 운행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무엇인가를 할 때 나는 역사의 평가자가 아니라 참여자, 달리 말하면 역사의 주체가 되는 것이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 지성들은 언젠가부터 분석과 비판에 매몰되거나 다른 학자들이 이미 해놓은 분석과 비판을 자기 삶에 수용하는 데만 경도돼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무엇을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은 그것을 바탕으로 행동하기 위해서가 아닌가”라고 했다. 긴 시간을 돌아, 그가 왜 학교를 떠났는지에 대한 해답을 받아 든 느낌이었다. 이제 최진석은 그동안 공부해온 철학을 온몸으로 살아가려는 것이다. 

    최진석에 따르면 개념이나 이념, 원칙은 항상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명사다. 반면 세계는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는 사건들 즉, 동사다. 그는 명사를 벗어나 동사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안에서 ‘짜릿하게’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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