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

‘늦둥이 아빠’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의 생생 육아 일기

아이를 낳았다. 행복해졌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9-03-1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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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는 1963년생이다. 1992년 큰딸, 2015년 작은 아들을 각각 얻었다. 첫째와 스무 살 넘게 터울이 지는 둘째를 키우며 비로소 ‘아빠 됨’의 기쁨을 알았다는 그를 만났다.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1월 17일 새해 벽두부터 ‘이러다 나라 망하겠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사상 최초로 0명대를 기록했다는 발표가 나오면서다. 1970년만 해도 가구당 아이 수가 다섯 명 안팎인 게 보통이었다(합계출산율 4.53). 이제는 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자녀 수가 한 명 미만으로 줄었다. 이런 세태에 비춰 보면 정 교수는 다소 특이한 사람이다. 아이가 하나 있는 상황에서, 쉰이 넘은 나이에 둘째를 또 가졌으니 말이다. 1992년 태어난 정 교수 큰딸이 20대에 접어든 2015년, 그의 작은 아들이 첫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막 뜀박질하며 세상을 배워가는 둘째는 정 교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삶의 중심은 육아”

    정재훈 교수(오른쪽)가 배우자와 함께 아들 뺨에 입을 맞추고 있다.

    정재훈 교수(오른쪽)가 배우자와 함께 아들 뺨에 입을 맞추고 있다.

    - 동년배 분들과 생활 패턴이 많이 다르겠네요.

    “물론이죠(웃음). 아이가 태어난 후 저녁 6시 이후 집에 들어간 날이 손에 꼽혀요. 2017년까지는 1년에 대여섯 번이었습니다.”

    - 작년부터 좀 달라졌나요?

    “저녁 약속을 1년에 열 번쯤 잡을 수 있게 됐죠(웃음). 장인어른·장모님과 함께 살아서 낮에는 두 분이 아이를 돌봐주세요. 출근 전, 퇴근 후에는 우리 부부가 육아를 책임지는 게 원칙이고요. 직장인들이 들으면 위화감을 느낄지 모르겠는데, 일찍 퇴근한다고 일을 안 하는 건 아닙니다(웃음).”

    - 퇴근 후 시간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배우자와 함께 아이 먹이고, 씻기고, 같이 놀기도 해요. 오후 9시쯤 모두 잠자리에 들고요. 일어나는 시간은 다음 날 오전 3시 무렵입니다. 매일은 아니지만, 거의 늘 그 시간에 하루를 시작해요. 우리 부부 둘 다 그렇습니다.

    둘째 출산 당시 배우자가 대학원 박사과정 학생이었어요. 육아와 공부를 병행하느라 새벽부터 책 읽고 논문을 썼죠. 아침에 저와 같이 출근해 각자 연구실로 갔고요. 박사 학위를 받은 지금도 그때와 다름없이 생활합니다. 아침에 같이 나오고, 같은 시간에 귀가하고, 새벽부터 일하고…. 육아도 당연히 둘이 같이 해요.”



    - 매일 저녁 6시 전 집에 들어가는 직장인은 우리나라에 거의 없을 겁니다. 그렇게 ‘칼퇴근’ 해도 괜찮은가요?

    “다행히 아직 잘리거나 월급이 깎이지는 않았어요(웃음). 교수로서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있어서인지 제 앞에서 드러내놓고 뭐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속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모르지만요(웃음).”

    정 교수는 “아들을 낳기 전까지는 꽤 많은 사회적 네트워크에 속해 있었다. 지금은 그런 데서 모두 떨어져 나온 듯한 느낌을 받긴 한다”며 웃었다.

    “둘째가 태어난 지 이제 곧 만 4년이 됩니다. 그동안 거의 매일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는 건, 달리 말하면 제가 정말 많은 제안을 꾸준히 거절해왔다는 뜻이 되거든요. 그래서인지 요새는 사회적으로 만나는 어느 누구도 저를 자기편으로 생각지 않는 것 같아요. 그걸 아니까 예전보다 좀 더 긴장하며 살게 되고요. 내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 내가 쓰는 글이 ‘그저 그렇다’는 평가를 받으면 세상 어디에도 발붙일 수 없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해요.”

    - 그런데도 매일 오후 6시까지 집에 들어가는 이유가 있나요?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요(웃음). 어린 자녀에게는 양육자가 필요해요. 그게 아버지로서 제 할 일이니, 거절할 수 있는 다른 일은 최대한 거절하는 게 당연한 거죠.”

    “큰딸아, 미안하다”

    정 교수가 처음부터 이 상황을 ‘당연하게’ 여긴 건 아니다. 1992년 큰딸이 태어났을 때 그는 독일 유학생이었다. 박사과정 재학 중이던 ‘아빠’와 석사과정을 밟던 ‘엄마’는 둘 다 갓난아이가 부모에게 요구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미처 모르는 상태였다고 한다. 나이가 찼으니 ‘남들 하는 대로’ 아이를 낳았을 뿐이다.

    정 교수는 “딸이 태어나고 한동안은 아이 엄마와 배턴 터치하듯 교대로 학교 집을 오갔다. 공부, 육아 어느 쪽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시간이 서너 달쯤 이어지자 ‘이러다가는 학위를 못 받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커졌다”고 했다.

    - 그래서 어떻게 하셨나요?

    “서울에 계시는 부모님께 연락 드렸습니다. 아이를 데려가 키워달라고요.”

    정 교수는 1999년 박사 학위를 받고 이듬해 귀국했다. 그때까지 큰딸의 주 양육자는 정 교수 부모였다고 한다. 아이는 독일 대학 방학 기간에 맞춰 1년에 3개월쯤 독일에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가곤 했다.

    - 우리나라 저출산 현상 원인으로 ‘일·가정 양립이 어려운 점’을 꼽는 사람이 많은데, 당시 교수님 상황이 꼭 그랬군요.

    “돌아보면 아이 키우며 공부하는 것도 가능했을 텐데…. 그때는 마음이 조급해 그런 생각을 못 했어요.”

    정 교수는 그 선택이 부부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첫 결혼의 배우자와 헤어졌다. 2000년 귀국 후 딸 양육은 사실상 정 교수가 도맡았다고 한다.

    - 아빠 혼자 딸을 키우는 게 쉽지 않으셨겠습니다.


    “한동안은 제가 제법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딸한테 ‘내가 너 키우느라 정말 고생했다’고 큰소리치며 살 수 있을 줄 알았죠(웃음). 둘째를 낳고서야 그게 아닌 걸 알았습니다. 재혼한 뒤 장모님 댁에서 같이 살게 돼 지금은 딸과 따로 지내요. 아이를 볼 때마다 ‘옛날에 미안했어’라고 말합니다.”

    - 뭐가 그렇게 미안하신데요.

    “시간적·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것, 조급했던 것, 바깥일과 집안일을 분리해 생각한 것…. 너무 많죠. 큰애가 어릴 때 같이 독일 장난감 가게에 간 일이 있어요. 얘가 애들 타는 자동차 앞에서 한동안 꼼짝을 않고 서 있더라고요. 갖고 싶어서 그러는 걸 알겠는데, 당시엔 형편이 안 됐죠. 얼마 뒤 동료 유학생 집에 갔더니 거짓말처럼 그 자동차가 있었어요. 우리 애는 한번 타보고 싶어 하고, 그 집 애는 못 타게 하던 장면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아이가 장난감 가게에서 눈짓만 한 번 해도 냉큼 사줄 수 있게 됐거든요(웃음).

    돈뿐 아니라 마음의 여유도 달라진 것 같아요. 지금은 아이의 말 한 마디, 행동 하나를 충분히 지켜볼 수 있게 됐어요. 사회적 네트워크가 다 끊어져도 ‘아이 키우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고 흔들리지 않죠. 그런 제 모습을 보면서 ‘첫째 때는 뭐가 그렇게 급했을까’ 반성합니다. 왜 그렇게 학위 받는 걸 중요하게 생각했을까. 아이를 기다려주지 못하고 내가 앞서 이끌려고만 했을까….”

    ‘아빠 됨’의 행복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정 교수는 “그때는 일하고 아이 키우는 게 모두 나를 완성하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걸 몰랐다. 일과 육아를 분리한 채 둘 다 잘하려고 했을 뿐, 그것과 내 삶을 연결짓지는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둘째가 태어난 뒤 느낀 건, 자녀 양육이 한 사람을 오롯이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점이에요. 내 뜻대로 이끌려 하지 않고 아이를 충분히 살피며 소통하다 보면 아이가 자라듯 저도 성장하게 된다는 걸 알았어요. 사람을 이해하는 건 사회생활할 때도 꼭 필요한 일이잖아요. 둘째를 키우며 다른 사람을 대하는 자세도 조금은 달라진 것 같아요.”

    - 좀 더 좋은 사람이 된 건가요?

    “최소한 말이 줄어든 건 확실합니다(웃음). 현저하게 말수가 줄었고, 사람들 앞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일도 줄었죠. 여전히 저를 내세울 때가 있긴 하겠지만,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느껴요.”

    정 교수는 이후 삶이 훨씬 편안해졌다며 영화 ‘과속스캔들’ 얘기를 꺼냈다. 남자가 아빠가 됐을 때 나타나는 변화를 잘 보여준다는 이유에서다. 이 영화 주인공은 30대 중반 잘나가는 연예인 남현수(차태현 분)다. 어느 날 갑자기 그 앞에 ‘내가 당신 딸’이라고 주장하는 황정남(박보영 분)이 나타나면서 소동이 벌어진다. 스무 살 갓 넘은 황정남에게는 여섯 살배기 아들까지 딸려 있다.

    “영화 초반 카메라가 남현수 집을 보여주는데 그렇게 깔끔하고 정갈할 수가 없어요. 아이가 들어온 뒤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말지만요. 아이는 그런 존재죠. 보통 남자들은 그걸 모르고요. 독일에서 큰딸을 낳았을 때 저도 그랬어요. 황정남처럼 어느 날 불쑥 찾아온 것도 아니고 10개월 기다려 얻은 딸인데도, 그 아이가 태어나면 더는 전처럼 살 수 없게 될 거라는 걸 아예 몰랐습니다.”

    - 그래서 딸을 한국에 보내셨고요.

    “나름대로 상황을 수습했던 건데…(웃음). 남현수도 처음엔 황정남을 자기 삶에 받아들이지 못하죠. 그러다 점점 아이와의 관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