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

이색분석

역사에서 찾은 문재인 정권 뿌리론

“‘도덕 투쟁’하는 현대판 친중위정척사파?”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9-03-06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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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정척사가 좌파의 이념적 기저”

    • ‘나만 옳다’는 ‘양복 입은 선비’들?

    • 사문난적 살육극 연상케 하는 적폐청산

    • 민족-외세(美日) 틀로 대외정책 펼쳐

    • 실물·시장 무시한 ‘국가주의 경제

    2월 16일 정오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독립문 앞은 쌀쌀한 날씨 탓인지 을씨년스러웠다. 화물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간다. 개화파 박영효가 만든 태극기가 독립문에 돋을새김 돼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는 1인 시위를 하는 남자가 피켓을 들고 서 있다.

    1896년 독립협회를 조직한 서재필은 사재를 넣고 기금을 모아 1897년 영은문(迎恩門)과 모화관(慕華館)을 헐고 독립문을 세웠다. 모화관(慕華館)은 ‘중국을 사모하는 집’, 영은문(迎恩門)은 ‘(황제의) 은혜를 영접하는 문’이다. 독립문의 ‘독립’은 누구로부터의 독립인가.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으나 독립문은 ‘중국으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한 것이다.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 원장이 저술한 ‘한국사람 만들기’는 다섯 종류의 한국 사람을 제시한다. ‘친중위정척사파’ ‘친일개화파’ ‘친미기독교파’ ‘친소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가 그것이다. 함재봉의 분류에 따르면 독립문을 세운 서재필은 1884년 갑신정변 때는 일본식 부국강병을 추구한 친일개화파였다가 나중에는 친미기독교파가 된다(*친일개화파의 ‘친일’은 국권 피탈 및 일제강점기 ‘친일’과는 다른 개념이다).

    친중위정척사파는 소중화(小中華) 의식으로 무장했다. 서구 열강과 일본뿐 아니라 문명과 체제에 변화를 가져올 모든 것을 배척했다. 조선이 독립국이 아닌 중국의 속방(屬邦)이라고 천명했다. 친중위정척사파의 대척점에 선 게 갑신정변의 주축인 친일개화파다. 일본식 문명개화의 목표는 조선의 부국강병이었다. 한국 우파의 기저에는 친일개화파와 친미기독교파가 섞여 있으며 친미기독교파가 대한민국 주류를 형성했다는 게 함재봉의 설명이다.


    만절필동(萬折必東)

    구한말 개화파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사진 왼쪽부터) [동아DB]

    구한말 개화파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김옥균 (사진 왼쪽부터) [동아DB]

    문재인 정권의 주축을 이룬 세력은 적폐의 뿌리를 친일파로 시작해 독재 체제로 이어진 과정에서 찾는다. 한국 사회 난맥의 절대적 이유를 친일과 독재로 돌린다. 일본과의 외교 파탄을 국내 정치에 활용하는 듯한 모습마저 보인다.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를 저술한 주대환 사회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모든 문제를 친일파 탓으로 돌리는 것은 편리하겠으나 검증되지 않은 허상일 뿐”이라고 했다. 주대환은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지냈다. 



    만절필동(萬折必東).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주중대사 시절이던 2017년 12월 5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후 방명록에 쓴 이 글귀가 논란이 됐다. 본뜻은 ‘황허가 수없이 꺾여 흘러가도 결국은 동쪽으로 흘러간다’는 것인데 중국에 지나치게 예(禮)를 표현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철학자 최진석에 따르면 만절필동은 ‘천자를 향한 제후의 충성’을 뜻한다. 

    위정척사운동은 병자호란 이후 형성된 친명반청(親明反淸)의 소중화 의식에서 비롯했다. 1704년 송시열 권상하 등 조선 사대부(士大夫)는 임진왜란 때 재조지은(再造之恩·거의 멸망하게 된 것을 구원해 도와준 은혜)을 이유로 만력제를 숭앙하는 만동묘(충북 괴산군)를 세웠다. 만동묘 명칭은 ‘충신의 절개는 꺾을 수 없음’을 가리키는 ‘만절필동’에서 따온 것이다. 사대부들은 “황제 은총에 조선이 살아 있으니!”라면서 제사를 올렸다. 

    송시열 권상하 등의 소중화 사상은 이항로 최익현의 위정척사파로 이어졌다. 김옥균 유길준 등의 개화파는 위정척사파와 충돌했다. 서재필 윤치호 등의 기독교파, 이동휘 등의 공산주의파, 신채호 등의 인종적 민족주의파가 한국 사람을 형성했다.(함재봉, ‘한국사람 만들기’) 

    함재봉에 따르면 친중위정척사파는 반미·반자본주의를 표방하는 한국 좌파의 이념적 기저다. 북한에서는 친중위정척사와 인종적 민족주의가 ‘독한’ 형태로 착종했다. ‘한국사람 만들기’의 ‘친미’ ‘친중’ ‘친소’ ‘친일’은 현재의 개념과는 다르다. 

    ‘한국사람 만들기’가 한국 좌파의 뿌리를 구한말 친중위정척사파에서 찾았다면 ‘두 얼굴의 조선사’(조윤민 저)는 이른바 ‘운동권 세력’을 ‘도덕 근본주의’로 국가를 통치하려 한 조광조의 사림파에 빗댄다. 조윤민에 따르면 조선의 선비는 ‘권력기술자’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이념과 규제가 백성의 삶을 제한한다. ‘신념 윤리’에 투철하던 사대부들은 ‘계급 정치’를 유지하고자 ‘도덕정치 이념’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동양철학자 임건순은 문재인 정부의 중추(中樞)인 86세대 운동권을 ‘진보좌파라는 이름으로 부활한 조선의 사대부’라고 규정한다.

    “86세대 운동권은 자신들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므로 국가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위선과 허위의식이다. 우리는 정(正)이고, 상대는 사(邪)다. 정적(政敵)은 사문난적(斯文亂賊·유교 근본을 어지럽힌 도적)으로 타도해야 할 대상이다.” 

    과거를 겨냥한 ‘적폐청산’ 작업이 지금껏 이어진다. 구속되거나 재판받는 이전 정권 인사가 100명이 넘는다. 임건순은 ‘적폐(積弊) 청산’ 정국에서 조선왕조 ’사화(士禍)의 살육극’을 본다. 

    “자신들은 절대 선(善), 상대는 절대 악(惡)으로 규정하고 ‘도덕 투쟁’을 벌인다. 자신들과 다르게 부도덕한 ‘적폐 세력’은 정치적으로 매장돼야 할 존재다. 반대파의 씨를 말리는 행위는 조선의 사화를 닮았다. 운동권은 기득권이면서도 기득권이 아닌 척한다. 서민의 삶에 관심이 없으면서 기득권 수호에만 관심 있는 ‘양복 입은 사대부’다.”



    “정(正)·사(邪)로 세상을 나눠 ‘도덕 투쟁’”

    집권 여당 대표 이해찬은 “탄핵당한 세력이 감히 ‘촛불 대통령’에 불복한다”고 했다. 김경수 경남지사의 법정구속을 두고는 “적폐 판사의 보복”이라는 공격이 여권에서 쏟아져 나왔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문재인 정권은 좌파라기보다는 조선의 역사·문화 전통의 부활이다. 위정척사파 선비들과 유사하다”고 단언했다.

    “실물·시장·경제·기업에 무지하다. 사물을 분절적·일면적으로 본다. ‘도덕’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학자들과 운동권 화석(化石)들이 권력 엘리트의 중핵을 형성했다. 현실의 복잡·미묘함을 모른다. 단순무식한 ‘도덕주의 행태’를 보인다. 세상을 선악(善惡), 정사(正邪), 정의-불의, 개혁-적폐, 우리 민족-미일(美日) 외세의 틀로 재단한다.”

    정(正)-사(邪) 프레임은 흑백논리로 변주되게 마련이다. 흑백논리는 정치뿐 아니라 경제에도 적용된다. 흑묘백묘(黑猫白猫)의 실용이 아닌 ‘옳고, 그름’의 잣대로 세상을 본다.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 정책은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착하고 옳다’.

    김대호의 분석을 더 들어보자.

    “문재인 정권은 대부분의 사회문제가 자본·대기업·원전 마피아 등 소수 음험한 세력의 탐욕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본다. 세상의 모든 부조리가 탐욕스러운 놈들 때문이니 분노해야 한다고 지지층에게 말한다. 자유·평화·민주·공화 같은 ‘문명적 가치’보다는 ‘혈연적·민족적 가치’를 더욱 중요시한다. 미국의 위협에 대한 북한의 공포에는 공감하면서 북한의 핵·미사일·전체주의·조국통일론에는 둔감하다.”

    노자는 “나라 경영에서 경박한 자신감에 싸인 사람들이 함부로 날뛰지 못하게 하는 일(使夫智者不敢爲也)”이 중요하다고 봤다. 신념이 투철할수록 자신감이 가득해 현실을 오독(誤讀)한다. 명분론적 사고는 경제정책 난맥을 기득권 세력의 ‘실패 프레임’이 만든 허상으로 여기게 한다. 사대부들처럼 이념과 이상에 매몰돼 ‘공(工)’과 ‘상(商)’을 얕잡아보고 부족한 대안에도 탈원전에 나서며 경제 현실을 외면한다. 국가주의적 경제정책이 쏟아져 나오며, 감상적 민족주의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눈감는다.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주대환은 이렇게 말한다.

    “북한 인권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는 미국 민주당의 관념과 비슷한 인식을 가진 이들을 극우라고 몰아세운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집권세력이 좋아하는 민족주의가 미국에서는 극우다.”


    품성론·도덕주의로 무장한 NL

    NL(민족해방) 계열 운동권을 가로지르는 정서는 서구식 민주주의와 충돌한다. NL은 품성론과 도덕주의로 무장했다. 민족의 비극적 피해자성을 강조하면서 개인보다 전체를 앞에 둔다. 최근 논란이 된 해외 성인 사이트 차단에서 드러나듯 정부의 개입과 국가주의적 정책을 선호한다. 언론인 남시욱은 필생의 역작인 ‘한국진보세력연구’를 통해 문재인 정권의 핵심 세력을 서구의 민주사회주의·사회민주주의가 아닌 ‘위장된 진보’라고 분석했다.

    “가짜 진보세력이란 뭐냐? 민주주의, 인권, 인간의 존엄성 등 진보의 가치를 실제로 구현하려고 하지 않는 세력이다.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는다. 인권에 입 닫는 이들은 탈을 쓴 위장 진보다. 위장된 진보의 그릇된 이념·사상과 결별해야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은 실질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 중국은 2002~2007년 역사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사로 편입했다. 중국은 명나라 전성기 같은 조공 질서의 부활을 꿈꾸며 전근대적 패권 의식을 엿보인다. 86세대 운동권의 반미친중(反美親中) 정서를 우려하는 견해가 나오는 까닭이다. 주대환은 이렇게 분석한다.

    “이데올로기적 지배는 무섭다. 조선의 양반은 10%에 그쳤으나 90%를 지배했다. 1980년대 운동권에서 활동한 절대 다수가 주사파, 친북반미 민족주의, NL 성향으로 갔다. 후진국 시절 민족주의를 재구성한 ‘해방전후사의 인식’ 프레임이다. 리영희의 ‘8억인과의 대화’, 박현채의 ‘민족경제론’의 세례를 받았다. NL 계열은 문화대혁명의 실상을 모르고 마오쩌둥(毛澤東)을 굉장히 존경하는 분위기다. 2017년 11월 20일이 독립문 건립 120주년이었다. ‘제3의 길’ 멤버들과 독립문 앞에서 기념행사를 했다. 독립문은 중화 질서에서 벗어나 세계의 일원이 된 것을 기념해 세운 것이다. 독립문의 정신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중국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부정하고 인권을 유린한다. 우리가 걸어갈 길은 중국의 그것과 다르다.”


    고려 DNA

    김대호는 “86세대 운동권이 현대판 위정척사파가 된 까닭은 조선의 잔혹사, 실패사, 망국사를 무시하고 무장독립 운동사와 친일청산 실패사에만 주목한 후과(後果)”라고 했다. 동양철학자 임건순은 “한국이 조선으로 퇴보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면서 “선비의 나라가 아니라 무사와 상인의 나라가 돼야 한다”고 했다.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가 저술한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는 한국을 ‘도덕 지향성 국가’로 규정한다. 한국인의 삶이 도덕적이라는 게 아니다. 타인의 언동을 도덕으로 환언해 평가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도 도덕 쟁탈전을 벌이는 하나의 극장”이다. 

    주자학에서 이(理)는 도덕과 이념, 기(氣)는 욕망과 현실이다. 성리학이 ‘이’에 집착한다면 양명학은 ‘기’ 또한 중시했다. 조선은 ‘이’가 독주하는 나라였다. ‘이’에 집착하면서 사화가 반복해 일어났으며 위정척사가 탄생했다. 

    임건순은 “성리학과 달리 양명학은 상인과 무인에게 어울린다. 인간의 욕망을 긍정한다. 기업을 창업하는 것과도 잘 맞는다”면서 “대한민국은 ‘고려 DNA’를 되살려야 한다”고 했다. 생전의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도 “우리는 대원제국과도 싸운 나라”라면서 “동아시아의 고슴도치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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