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

인터뷰

여권 비주류 이종걸 의원의 ‘선거제 개편’ 쓴소리

“민주당 내 자기파 보존, 비주류 배제 위한 것”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19-02-20 10: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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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3개 지역구 없애는 여당 선거제 개편안 비현실적

    • 19대 같은 안으로 새누리당과 죽도록 토론해봤지만 허사

    • 남북미 평화 프로세스 진행되면 의원내각제로 가야

    • 손혜원 의원 행위 방식 옳지 않았다

    • 한일 과거사·초계기 갈등 구분해 대응해야

    • 독립운동가 이회영 손자, 민주당 ‘3·1운동•임정 100년특위’ 위원장

    [박해윤 기자]

    [박해윤 기자]

    선거제 개혁이 지지부진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선거구획정위원회가 국회에 총선 선거구 획정을 요구한 기한은 2월 15일이었다. 하지만 국회 공전으로 진척이 없다. 공직선거법상 선거구 획정 시한인 4월 15일(총선 1년 전)까지 결론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야3당은 국회의원 정수를 330명으로 확대하는 개혁안을 1월 23일 발표했다. 정당 득표율대로 의석수를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여야 거대 정당들은 셈법이 다르다. 자유한국당은 아직 구체 당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1월 21일 ‘선거제 개혁안’ 당론을 확정했지만 야당안과는 큰 괴리가 있다. 의원정수 300명 유지, 지역구 의석수 253석에서 200석으로 축소, 비례대표 의석수 47석에서 100석으로 확대,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을 담았다.

    4선 의원인 더불어민주당 이종걸 의원을 만나 선거제 개혁 등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그는 민주당안이 ‘비현실적’이라고 보고 있다. 이 의원은 최근 여러 가지로 주목받았다. 같은 당 손혜원 의원의 목포 투기 의혹에 대해 따끔한 일침을 가한 것이 화제가 됐고,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손자로서 민주당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여러 가지 활동도 펴고 있다.


    연동형으로 비례성 강화

    -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선거제 개편안의 의미는 무엇인가.



    “선거제 개혁은 정치개혁특위에서 수년 전부터 쟁점이 된 어젠다다. 이번에 정해진 민주당 당론은 19대 국회 당시 중앙선관위가 제출한 안과 같다. 국민 정서상 국회의원 수를 늘리기는 어렵고, 연동형으로 비례성을 강화해 1인 1표 원칙을 유지하기 위한 안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다른 야당과도 서로 논의해야 한다. 국회법에 따라 만장일치에 가까울 때까지 죽도록 토론해야 한다.

    하지만 과거에 그렇게 해봤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시 당 대표이고 제가 원내대표이던 시절, 새누리당은 여당이면서도 중앙선관위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유승민·원유철 원내대표 등과 이 문제를 가지고 양당 4인 회의를 17회도 넘게 했다. 당시 새누리당이 과반 다수당이었고, 민주당은 소수당이어서 이를 관철하지 못했다. 새누리당 후신인 자유한국당은 지금도 이 안을 반대하고 있다. 민주당은 당론을 정하긴 했지만,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이다. 결코 합의가 쉽지 않다.”

    - 야권은 민주당안에 지역구 의석수를 줄이는 구체적 방안이 없다고 비판했다.

    “지역구 의석을 53석이나 줄이는 방안이 과연 현실성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유권자들은 자신의 지역적 이익을 대변할 대표를 국회에 파견하기를 원한다. 그러다 보니 지역구 축소에 대해선 해당 지역민이 소외감을 갖는 현실도 존중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 안을 현실화하는 데 난관이 많다고 본다.”

    - 민주당안에 따라 지역구 의석을 줄일 때 민주당 내 현역 비주류가 배제될 수 있다고 보나.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공천으로 후보를 선정할 때 그것을 결정하는 쪽에서는 자기파를 보존하고 나머지를 적게 하려는 흐름이 늘 있었다. 그것 외에도 전문성 있는 분들을 앞세운다든지, 오래된 중진 물갈이 등의 원칙이 있었다.”


    국회의원 수 늘릴 수 있을까

    - 연동형으로 비례성을 강화하는 것은 사표(死票)를 줄일 수 있으니 바람직하지만, 야권은 민주당안에 대해 ‘무늬만 연동형’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총선에서는 사표가 50% 정도 된다. 여러 후보자 가운데 1등만 하면 되는 승자독식 선거제도 때문이다. 내 뜻으로 선출하는 국회의원이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는 연동형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연동형으로 비례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사실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는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반대가 만만찮다.

    그래서 민주당이나 자유한국당 모두 의원 수 늘리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다. 제가 원내대표일 때 국회의원 수를 60명 늘리겠다고 했다가 역풍을 맞았다. 세비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국민적 반발 때문이었다. 그런데 의원 수를 늘리면 세비나 보좌관 수 등을 대폭 줄여서 정치 비용이 늘지 않도록 하면 된다. 연동형 선거제를 실시하는 나라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독일이다. 전후 나치 등 패악적 정치 질서를 극복하고 독일이 성공한 것은 국민의 뜻을 충실히 반영해 국회의원을 선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면 민주당은 왜 이런 당론을 정한 것인가.


    “우선 접점을 만들기 위한 제안성 방안으로 볼 수 있다. 야당과 협의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 있는 지점으로 논의를 가져오기 위한 것 같다. 자유한국당은 수를 늘릴 수 없다고 하고, 다른 야당은 수를 늘리자고 하니 향후 비용을 늘리지 않는 제도를 만들어서 절충하자고 설득하려는 게 아닌가 한다.”

    - 국회의원 선거제 개편은 정부 형태의 개헌과 맞물려 있다는 의견도 있다.

    “대통령제에서는 다수당 체제로 정국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다. 집권 여당은 미국식 양당구조, 우리의 양당구조를 벗어나면 큰 재앙이 온다고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변형된 대통령제도 있다.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를 혼합한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한 프랑스는 다당제를 잘 운용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제이지만 다당제를 연습하고, 다당제를 우리나라의 제도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두 개 정당만으로 수용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주요 정당으로 보수당과 진보당이 있다면, 그 중간에 환경이나 종교, 노동, 청년 등 특정 영역을 중심으로 한 정당이 들어서야 다원화된 사회의 국민 정서를 반영할 수 있다. 정치적 자유를 신장시키며 연착륙한 나라들을 보면 기본적인 양대 정당구조 속에서 정치적 소수당도 이합집산하면서 언제든 여당이 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복잡한 현대사회 다당제 어울려’

    우리나라는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 아래 비상 대응력이 좋은 대통령제가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남·북·미 간 평화 프로세스를 통해 전쟁이 사라지고 정부가 평시체제로 운영될 수 있다고 한다면 장기적으로 의원내각제를 검토해야 한다. 임시정부 때도 임시의정원에서 의회 구성하면서 임시정부가 시작됐고, 대통령 선출은 뒤에 했기 때문에 의원내각제는 우리에게 낯선 제도가 아니다.”

    - 2월 27, 28일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이것이 국내 정치 지형의 변화로 이어질까.

    “이번에는 진정한 평화의 봄이 올 것으로 본다. 1994년 제네바합의 이후 7년간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됐는데, 조지 W 부시 대통령 때 멈췄다. 그런데 이번엔 여러 가지 조건상 평화가 정착되는 방향으로 가지 않겠나. 그러면 우리 정치체제도 국민 의견을 더욱 촘촘히 수용할 수 있도록 다당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의원내각제로 갈 수 있다.

    대통령 5년 단임제가 긍정적인 측면도 많지만, 전직 대통령 다수가 감옥에 가는 비극을 낳았다. 바로 권력이 집중되는 제왕적 대통령제였기 때문이다. 그만큼 국민의 힘이 커졌고, 정치 질서가 복잡해졌다. 이번엔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구속시켰다. 앞으로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되면 그에 맞는 정치 체제도 준비해야 한다.”

    - 비리를 저지른 대통령들의 감옥행을 대통령제 탓으로 돌리는 건 너무 단선적이지 않나.

    “대통령은 자신에게 집중되는 권력을 헌법의 요구에 따라 올바르게 행사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보면 권력 행사는 대통령만 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도 그 내용을 제대로 모르는 상황에서 온갖 곳에서 권력이 행사된다. 그러다 잘못되면 대통령이 책임을 져야 한다.

    둘째, 개혁을 완전하게 하려는 의지가 높은 대통령일수록 개혁에 성공할 확률은 높다. 하지만 그럴 경우 개혁 과정은 투쟁이 된다. 투쟁을 잘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늘 야당과 싸우다 보면 그 싸움은 무조건 깨지기 쉬운 경착륙으로 귀결된다.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신속하게 결정한 것도 불법 소지가 있는 경착륙이 될 수 있다. 국회에서도 늘 여소야대 상황이 온다. 하지만 의원내각제에서는 늘 연정을 통해 다수당을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연착륙 시스템이 된다.”


    손혜원 선의는 믿지만…

    1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3·1운동, 임시정부100주년 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이종걸 위원장(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태극기와 한반도기를 흔들며 만세삼창을 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1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3·1운동, 임시정부100주년 특별위원회’ 출범식에서 이종걸 위원장(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오른쪽에서 세 번째) 등 참석자들이 태극기와 한반도기를 흔들며 만세삼창을 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이종걸 의원은 손혜원 의원의 ‘목포 구도심 투기 의혹’과 관련해 YTN 라디오에 나가 “공직자로서의 엄격한 자기 관리, 자기 감시는 국민이 아무리 강하게 요청해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의원의 문제임에도 원칙적 비판을 한 것이 눈에 띄었다. 손 의원은 결국 이 사건으로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있다.

    “나도 처음엔 망설였다. 손 의원의 개인적 지향성이나, 사회적 태도를 볼 때는 말하지 못하는 어떤 사연이 있지 않겠나 하고 생각했다. 의혹 제기 수준의 사실만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다 어느 정도 사안이 밝혀진 뒤에는 다른 여러 공직자와도 얘기를 나눠봤다. 그들 모두가 손 의원의 경우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 말했다.”

    - 야당이 손 의원 사건에 대해 국정조사를 하자고 한다.

    “국정조사는 사실관계를 규명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관계는 다 드러났다. 이제 판단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만 남았다. 목포시 구도심은 사회·문화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는데도 버려져 있었던 것이 현실이다. 크게 보면 손 의원의 선의와 진정성이 있다고 믿는다.

    다만 국민 눈높이에서 볼 때 공공성을 우선적으로 유지해야 할 공직자로서 행위의 방식은 옳지 않았던 것 같다. 본인이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처럼 보인 것은 잘못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공공재단을 설립하거나 제3자를 설득해서 건물을 사게 했어야 했다. 자신의 사적 이익과 관련성을 구별해두고 접근했어야 했다. 이것이 이해충돌이 우려되는 영역에서 회피하는 방법이다.”

    - 공직자가 직무 수행 중 발생할 수 있는 이해충돌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가 아직은 없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이 이해충돌방지법을 대표 발의할 예정인데.

    “이해충돌방지법이 없다 해도 국회의원 직무윤리에 관한 규정이나 국회의원 활동을 규제하는 제반 법규나 규정 등을 따른다면 사회적 비난을 피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손 의원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국회의원의 공공성, 이해충돌 방지 회피 의무 등을 살펴서 본인이 하고자 하는 활동이나 의욕을 조절했어야 했다. 손 의원은 옆에서 보면 매우 열정적이라 뭔가 해야겠다고 하면 밤잠을 설치면서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워낙 순수한 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엔 속도 조절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김영란법에서 이해충돌 조항 빠진 이유

    - 현재 시점에서 손 의원이 이해충돌을 인정하고 사과한다면 여론이 돌아설까. 손 의원은 “투자 이익이 생기면 사과하겠다”고 말했는데.

    “언론에서 이 사안을 부각하는 면에는 분명히 정당성이 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 소속 의원으로서 문화재 지정에 힘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돈을 빌려서, 그것도 조카 이름으로까지 해당 지역에 건물들을 사야 했는지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절차상 부적절했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국민에게 다른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별로 성공적이지 않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갖고 있었던 위신, 저명성도 훼손될뿐더러 민주당에도 부담이 되지 않겠나. 공공성을 우선으로 여겨야 하는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조항은 원래 김영란법에 들어가 있었는데, 의원들이 논의 과정에서 삭제했다. 그 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는가.

    “이해충돌 방지 대책을 마련할 때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공직자가 공공 업무에 위배해서 나라에 손해를 입히거나 자기가 이익을 받고 제3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경우도 배임이다. 하지만 배임죄는 주로 사기업에 적용하고 국회의원에 대해선 적용하지 않는다. 이해충돌이라는 사안 자체가 광범위하고, 형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비춰 이해충돌 부분을 범주화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당시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에선 우선 김영란법은 공직자의 부정 청탁 및 금품 수수를 제한하는 게 골자이므로 애매하거나 불명확한 부분은 다음 입법 과제로 넘기기로 했다.

    우리나라 법 조항 가운데는 명확성 원칙을 지키지 못한 탓에 검사의 직업적 판단이 크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법 조항이 애매모호할 경우 수사기법에 따라 유무죄가 판단될 수 있는 것이다. 당시 소관 상임위에선 법치주의의 원칙을 벗어나서 불명확한 모든 행위에 대해 법을 적용하고 처벌하는 주체가 힘을 얻는 사회적 구조가 돼선 안 된다는 인식이 있었다. 공직 학교 언론 등 공공적 직위의 모든 애매모호한 이익충돌 행위가 처벌 대상이 되면 검찰의 힘이 너무 커져 검찰공화국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김영란법을 몇 년 적용해왔으니, 사적 이익을 앞세워 명백하게 직무를 훼손할 경우 개정안을 통해서라도 제재를 가해야 할 때가 왔다.”


    전문성과 이해충돌

    - 이해충돌 상황을 규정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손혜원 의원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동기의 순수성, 목적의 공익성, 본인의 이익 미실현을 주장했다. 이익이 전혀 실현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다면 이해충돌 행위라 규정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이해충돌에 대한 명백한 표현이 중요할 것 같다. 

    특히 비례대표 국회의원의 경우 주로 각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등원하는 이가 많다. 그들의 전문 영역 행위를 이해충돌 행위라고 제한하면 자칫 그들의 전문성을 제한하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전문 영역의 능력을 살리려면 자신과 가족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은 분명하게 제한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좀 더 구체적인 제한이 필요할 듯하다. 사회가 부당하다고 보는, 명백한 이해충돌 사례와 분야 등을 점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 미국 등 선진국에선 업무의 과정이나 결과에서 이해충돌 상황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엄격하게 대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이른바 이해당사자들을 대표하는 단체나 개인의 입법, 예산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적극 참여하는 ‘로비의 제도화’가 이뤄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로비스트들과 합법적으로 결탁돼 공적인 의사결정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엄격하고 세부적인 룰을 만든 것이라고 본다.” 

    - 자유한국당의 장제원, 송언석 의원도 이해충돌 사안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하지만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는 손혜원 의원의 경우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국민의 눈높이에서 본다면, 나경원 원내대표는 큰 실수를 한 것이라고 본다. 자유한국당의 두 의원은 손혜원 의원보다 사안이 더 심각할 수 있다. 두 사안이 낱낱이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것만으로도 이해충돌 방지 의무를 위반해 국민적 기준을 일탈한 것으로 보인다.” 

    - 위에서 언급한 ‘엄격한 자기 관리, 자기 감시’ 차원에서 묻는다. 최근 비난을 받은 이 의원의 ‘멕시코 관광성 출장’에 대한 진실은 무엇인가. 


    “결론적으로는 부적절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일부 의원들이 회비와 국회 예산 일부를 합쳐 운영되는 국회스카우트의원연맹에서 세계잼버리대회 국내 유치 등의 업무와 관련한 출장 중에 생긴 일이다. 당시 금요일 오전에 멕시코 문화관광위원장과 환담한 뒤 오후엔 저녁 현지 대사와의 만찬 외엔 다른 일정이 없었다. 그래서 멕시코시티 박물관과 테오티와칸 피라미드 유적지에 들렀다. 일정표에는 없었지만 멕시코 문화관광위원장의 요청을 받았다. 어쨌든 평일에 공무로 출장을 갔다가 관광지를 거닐고 있었던 ‘출장 중 관광’이었지만 국민 시각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 앞으로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 같다. 

    “의원들의 해외 출장 일정을 짤 때 이번 일을 반면교사 삼을 필요가 있겠다. 업무시간에는 방문 목적에 맞는 공식 일정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 그런 것을 면밀하게 가르쳐주는 국민의 뜻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족 농단의 원죄

    - 한일 관계가 냉랭하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 해결에 대한 견해가 서로 다르고, 한국 구축함과 일본 초계기의 해상 갈등 문제도 떠올랐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두 갈등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두 갈등은 상호작용하면서 증폭되고 있지만, 갈등의 배경과 해법, 해소 전망도 다 다르다.

    초계기 갈등은 한일 군사협력상의 갈등이다. 일본 보수정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지지 기반 유지·확대에 활용해왔는데, 북한의 군사적 위험성이 달라지고 있고, 북한을 대화의 상대로도 수정해야 할 상황에 와 있다. 일본은 보수정치를 지탱하는 중요한 위협 요인이 변화되자 한국과의 군사적 갈등을 증폭시켜서 이를 정치에 활용하는 측면이 있다. 이는 적절한 시점에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는 훨씬 심각하고 역사적인 배경이 있다. 이것은 박정희 ·근혜 전 대통령 부녀의 ‘민족 농단’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신의 재선을 위해서 무리하게 대일 청구권 협정을 졸속 체결하면서 그 당시부터 협정의 정당성 논란이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협정 졸속 체결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강제징용 배상 재판 개입, 일본과의 위안부 졸속 합의 등을 저지르면서 일본에 책잡힐 일을 자행했다.”

    - 한일 갈등의 원인 제공을 일본 쪽에 두는 이들은 아베 총리의 정치적 노림수 탓이라고 보기도 한다. 아베 총리가 올해 두 차례 일본 국내 선거에서 승리하려 지지 세력을 모으고, ‘평화헌법’을 개정하기 위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아베에게는 지금의 한일 갈등은 정치적 ‘꽃놀이패’이다. 아베는 군사적 갈등을 빨리 해소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결국 초계기 갈등은 자세한 군사정보를 가지고 있을 미국이 제3자의 위치에서 중재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 북핵 문제와 동북아 안보 안정을 위해 정치와 군사 문제를 분리해서 풀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일 갈등을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외교관계에서 특정 이슈의 갈등을 가지고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군사 문제, 경제 문제, 정치 문제를 구분해서 대처하고 갈등을 관리해야 한다. 군사 문제는 미국을 중재자로 내세워서라도 시급히 해결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갈등은 아베가 선거 성적표를 받고 나서야 본격적으로 조정될 것이라고 본다.”

    - 한일 갈등 속에도 한국을 찾는 일본 관광객이 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하나.

    “한국을 찾는 일본 관광객만이 아니라 정반대로 일본을 찾는 한국 관광객도 늘었다. 일본 국민들은 원래부터 정치적 무관심이 크기 때문에 별 영향을 안 받는 것이다. 아베와 대조적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도발에 대한 분노를 증폭시켜서 국민의 지지를 모으는 전략을 택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반일 감정을 정략적으로 조장하지 않는 것이 일본 관광객 증가의 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무오독립선언을 기억하라

    - 민주당 ‘3·1운동, 임정수립 100주년기념특위’ 위원장이 됐다. 

    “3·1운동과 임정 100주년을 기념한다는 것은 대한민국 역사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오늘의 번영이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민주적인 국민 주권국가의 건설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1세기 동안 추진해온 결과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우리는 100주년을 되새기면서 식민지로의 전락과 민족 분단, 6·25전쟁의 참화라는 유례없는 시련 속에서도 성공한 우리 민족의 역량과 가능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또 앞으로 새로운 100년을 이어나갈 방향을 정립한다는 것이 가장 큰 의미일 것이다.” 

    - 특위는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계획인가. 

    “독립운동이나 국가유공자와 관련된 법령, 정책, 제도 등을 종합적으로 재정리해서 실천 과제를 도출하는 일, 민주당의 강령과 당규 등에 독립운동의 정신을 담고 그를 대표하는 집단의 의사를 반영하는 조직적 틀을 만드는 일, 독립운동 관련 남북한 정당 간 공동사업을 추진하는 일, 딱딱하고 먼 역사적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독립운동의 역사와 인물들에 대한 대국민 홍보를 강화하는 일 등으로 나눠서 추진할 계획이다.” 

    - 이 의원의 조부이신 우당 이회영 선생 가족은 전 재산을 기부해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신민회를 발족했으며, 헤이그 특사 파견을 주도했다. 선생은 왜 그런 큰 뜻을 품었나. 

    “조선 왕조를 지탱했던 양반 가문의 후손으로서 망국의 사태에 대한 분노와 책임감이 가장 큰 동기였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2·8독립선언 100주년 기념 학술 심포지엄을 1월 17일 개최했다. 어떤 새로운 관점이 나왔나. 

    “이번 토론회에서 특별히 새롭게 발굴된 사실은 없다. 다만 2·8 독립선언, 그리고 그 직전의 무오독립선언을 재조명할 기회가 됐다. 이것을 이해해야 그 이후의 3·1운동이 왜 그렇게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됐는지, 또 입헌군주제가 아니라 민주공화제가 왜 전 국민적 이념으로 선택됐는지 이해할 수 있다. 무오독립선언은 1919년 2월 1일에 있었다. 무오년인 1918년부터 준비해왔다고 해서 무오독립선언이라고 불린다. 당시 중국 선양(瀋陽) 근처 대종교 본관에서 해외 망명 중이던 독립운동가 39인이 서명했다. 대표 집필은 조소앙 선생이 했다. 3·1운동 때 낭독된 조선독립선언서와 달리 무오독립선언서는 대한독립선언이라고 표현했다. 그때 이미 10년 이상 해외에서 항일운동을 해온 지도자들은 우리 민족이 민주공화제로 가는 길목에 있음을 알았던 것이다. 그 글의 역사적 무게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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