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호

특집 | 3·1만세운동 100주년의 함의

장제스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까닭

전체 수훈자 30명 중 5명이 중국인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9-03-01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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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군의 든든한 후원자 장제스

    • 임시정부 최초로 승인한 쑨원

    • 백범에게 독립운동 자금 보낸 쑹메이링

    • 항일 결사 ‘신아동제사’ 가입한 천치메이

    • 임시정부 인사 보호한 천궈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략) 중화민국 총통 장제스 원수의 특별 허락으로 중화민국 영토 내에서 광복군을 조직하고 (중략) 한국광복군 총사령부를 창설함을 자(玆)에 선언한다.’

    1940년 9월 발표된 ‘한국광복군 창군선언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겸 한국광복군 창설위원장 김구’ 명의의 이 글에는 ‘장제스 원수가 한국 민족에 대하여 원대한 정책을 채택함을 기뻐하여 감사의 찬사를 보낸다’는 내용도 있다. 중국 국민정부 주석을 지낸 장제스(蔣介石·1887~1975)가 광복군 창설에 크게 기여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953년 우리 정부는 장제스를 독립유공자로 포상했다.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줬다. 상훈법에 따르면 건국훈장은 ‘대한민국의 건국에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에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한다. 대한민국장은 건국훈장의 다섯 등급 중 최고 영예다. 그 뒤에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 순서로 이어진다. 우리나라에서 독립유공자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이는 단 30명뿐. 전체 독립유공자 1만5180명 중 0.19%에 불과하다. 그중 외국인은 장제스를 비롯해 5명이다.


    카이로에서 ‘대한 독립’ 선언 이끌어낸 장제스

    1953년 독립유공자로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장제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1953년 독립유공자로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장제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국가보훈처는 장제스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정)를 적극 지원해 공동으로 항일전을 수행했고 △한국광복군 창설을 절대적으로 지원했으며 △중국군관학교에 한인반을 설치해 군사를 양성토록 하고 △여러 차례 거액의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하고 △1943년 10월 카이로회담에서 ‘한국독립안’을 통과시키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한다. 

    이 가운데 중국군관학교에 한인반을 설치할 수 있게 도와준 내용은 ‘백범일지’에도 기록돼 있다. 장제스는 1932년 4월, 윤봉길 의사가 일본군 수뇌부를 향해 폭탄을 던진 이른바 ‘상하이 의거’ 소식을 접한 뒤 ‘중국 100만 군인도 하지 못한 일을 조선 청년 한 명이 했다니 정말 대단하다’고 극찬했다. 이후 임정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이듬해 김구-장제스 간 만남이 성사된다. 두 사람이 중국육군군관학교 뤄양(洛陽)분교에 한국인 특별반을 편성하기로 합의하면서 ‘독립전쟁’을 위한 한국인 무관 양성의 물꼬가 트였다. 



    신용하 서울대 명예교수는 1943년 카이로선언에 한국 독립 관련 내용이 담긴 것도 김구-장제스 간 소통의 결과라고 밝혔다. 신 교수가 2007년 동아일보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카이로 회담을 앞두고 장제스가 백범 등 한국 요인 6명을 비밀리에 공관으로 초빙했다. 이날 백범이 한국의 완전 독립에 대한 중국 측의 지지와 지원을 요청하자 장제스는 ‘힘써 싸우겠다(역쟁·力爭)’고 약속했고, 카이로회담에서 끝내 뜻을 관철해냈다. 

    쑹청유(宋成有) 중국 베이징대 교수는 2011년 8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국 독립운동과 외국인’ 심포지엄에서 “장제스는 1933년 이후 임정이 일제의 핍박을 받으며 상해·남경·진강·항주·장사·광동·유주·기강 등 여러 지역을 떠돌다 중경으로 최종 거처를 옮겼을 때, 각 지방 군정장관에게 지령을 내려 임정 이동에 필요한 협조와 지원을 지시했다. 1938년 김구가 테러를 당하자 그의 목숨을 살리라고 백방으로 지시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장제스가 백범과의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임정 및 광복군의 든든한 후원자 구실을 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독립운동 후원한 親韓 중국인

    장제스(왼쪽)와 쑨원 (왼쪽), 장제스, 쑹메이링 부부와 조지프 스틸웰 미군 대장. [위키피디아]

    장제스(왼쪽)와 쑨원 (왼쪽), 장제스, 쑹메이링 부부와 조지프 스틸웰 미군 대장. [위키피디아]

    장제스의 아내로 카이로회담에 통역 자격으로 참석했던 쑹메이링(宋美齡·1897~2003) 또한 우리나라 독립유공자다. 쑹메이링은 1966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백범일지에는 광복군 창설 당시 쑹메이링 여사가 중국 돈 10만 원(元)을 특별성금으로 보내왔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쑹메이링은 이외에도 1932년 윤봉길 의사 의거 직후 한인애국단에 10만 원(元), 1942년 광복군 출정 군인 가족에게 10만 원(元)을 보내는 등 여러 차례 한국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천궈푸, 천치메이, 김구(왼쪽)와 장제스 (왼쪽부터) [위키피디아, 동아DB]

    천궈푸, 천치메이, 김구(왼쪽)와 장제스 (왼쪽부터) [위키피디아, 동아DB]

    1933년 장제스와 백범의 비밀 만남을 주선했던 당시 중국 국민당 조직부장 천궈푸(陳果夫·1892~1951)도 독립유공자로서 1966년 쑹메이링과 함께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천궈푸는 독립운동가 신규식이 1912년 중국 상하이에서 결성한 항일결사 신아동제사(新亞同濟社)에 참여한 친한파 인사로, 임정 요인 신변 보호 및 자금 지원 등에 앞장섰다. 천궈푸는 1942년 중국에서 열린 중한문화협회 창립대회에서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대통령 등과 함께 명예이사로 추대되기도 했다. 

    중국인에게 ‘국부(國父)’로 불리는 쑨원(孫文·1866~1925) 또한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다. 쑨원은 1968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1921년 쑨원이 중국 광둥정부 대총통을 맡고 있을 때, 중국 정계 지도자로는 처음으로 임정을 승인한 점 등이 높게 평가됐다. 

    쑹청유 중국 베이징대 교수가 2011년 8월 ‘한국 독립운동과 외국인’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당시 임정은 세계 무대에서 정부로 인정받기 위해 중국의 지지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국무총리 겸 외무·법부총장 신규식을 특사로 파견했다. 쑨원은 그를 만난 자리에서 임정과 광둥정부 간 상호인정 요구에 즉각 동의했다고 한다. 쑨원은 또 한국 학생을 중국군관학교 학생으로 받아들여 우리나라가 항일투쟁을 위한 군사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줬다. 

    중국 국적을 가진 독립유공자 가운데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마지막 한 명은 천치메이(陳其美, 1876~1916)다. 중국혁명동맹회의에서 활동한 혁명가로 신규식과 교유한 천치메이는 신아동제사에 참여하는 등 한국 독립 및 한중 협력에 기여한 공로로 1968년 서훈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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