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집에 살면서 가끔 만나면 사랑의 유효기간이 조금 더 길어질 수 있지만 한 집에서 지지고 볶으며 서로의 장단점을 모두 다 알게 되면, 그때부터는 사랑이 ‘생활’로 전락해버린다. 너무 뜨거워 델 것 같은 사랑도 밤새 화롯불 식 듯 천천히 온기를 잃는다. 데이트 후 헤어지기 싫어 결혼을 결심했다지만 막상 한 집에서 살면 ‘언제 우리가 사랑했을까?’하는 생각까지 든다.
어떤 부부는 백년해로를 하지만, 또 어떤 부부는 함께 산 지 1~2년도 안 돼 ‘섹스리스’가 되고 급기야 이혼까지 선택하게 된다. 과연 부부 사이의 ‘궁합’이 맞지 않아서일까? 그렇다면 잘 맞지 않는 궁합을 다시 잘 맞게 하는 방법이 있기는 한 것일까?
남자에게는 ‘사랑이 섹스이고, 섹스가 곧 사랑’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아내가 내 남편의 성욕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지 못한다. 집안일과 육아에 지쳐 남편의 애정 표현, 즉 부부관계를 외면하거나 뿌리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렇다고 아내의 수고를 가볍게 보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루 종일 종종대며 아이 뒤꽁무니를 쫓아다니고, 해도해도 끝이 안 보이는 집안일로 매일 밤 파김치가 돼 침대에 눕는다. 따라서 남편이 뭘 원하는지 관심 둘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다. 하지만 이러한 일상이 반복될 경우 남자는 외로운 늑대로 변해버린다. 아내가 자신을 더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주 사소한 ‘유혹’에도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우리는 이런 패턴의 스토리를 날마다 TV나 인터넷을 통해 보고 듣는다. 특히 ‘쇼윈도부부’의 경우에는 이런 갈등이 더욱 깊어진다.
물론 섹스리스의 원인이 전적으로 아내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남편이 적극적으로 가사를 분담하고, 아내에 대한 애정 표현에 후한 경우라면 부부 사이에 ‘섹스리스’라는 갈등이 끼어들기 힘들 것이다. 아내 역시 부부간 육체 관계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신뢰’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성적 욕구 해소’임을 명심해야 한다. 남자든 여자든 서로의 파트너를 외롭게 방치해서는 안 될 일이다.
성욕이라는 근원적 차이
성욕은 서로의 취미생활이나 취향만큼 다양하다. 누구는 등산보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또 누구는 공부보다 운동을 좋아한다. 이처럼 섹스에서도 자신만의 취향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향이 맞지 않을 경우에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얼마나 자주 할 것인지에 대한 생각도 각자 다르다. 어떤 이는 아주 가끔씩 해야 희열이 더 크다고 느끼고, 또 어떤 이는 ‘좋은 건 자주 할수록 만족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특히 섹스를 좋아하는 남자와 섹스를 싫어하는 여자, 성욕이 강한 여자와 성욕이 약한 남자가 결혼하거나 교제하면 두 사람은 정말로 많은 시간 갈등을 겪게 된다.
‘저 사람의 사랑이 식은 건 아닐까?’ ‘저 사람에게 새로운 섹스 파트너가 생긴 건 아닐까?’ ‘내가 더 이상 성적으로 매력이 없나?’ 하는 불안감이 나중에는 ‘우리는 섹스가 없이도 동지애로도 충분해, 내 남자는 나를 신뢰하니까 다른 여자에게는 눈길 한 번 안 줄 거야. 우리가 그동안 살아온 시간이 있고, 내가 애도 낳아줬잖아?’ 하며 자기합리화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아내의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릴 때가 있다. 아내 몰래 바람피운 남편의 이야기를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해 듣는다. 만약 잠든 남편의 휴대전화를 뒤지다 수상한 흔적을 발견하기라도 한다면? 그때의 심정이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결코 모를 일일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인류가 생긴 이래로 계속돼왔다. 남자의 성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설마 내 남자는 아닐 거야’라는 막연한 믿음은 곧 ‘배신’이라는 예상치 못한 폭탄이 돼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왜 남자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놔두고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울까. 그런 남자와는 아예 상종조차 하지 말아야 할까?
최고의 궁합
섹스에서 남자와 여자는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 정확히 말하면 남녀의 뇌 구조와 호르몬은 각기 완전히 다르게 진화해왔다. 남자는 평생을 ‘남자의 뇌’로 살아가는 반면, 여자는 결혼 후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경험하면서 ‘여자의 뇌’에서 ‘엄마의 뇌’로 바뀌게 된다. 남편의 욕구는 무시한 채 아이들의 욕구를 더 돌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신이 만들어놓은 결혼생활에서 여자의 역할이다. 남자는 종족 보존을 위해서 씨를 뿌리고, 여자는 그 씨가 잘 자라도록 돌보는 것에 집중한다.하지만 인간은 동물과 달리 본성으로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태생이 종족 번식의 욕구를 지녔다 하더라도 이를 억제하고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게 남자의 의무이듯, 여자 또한 모성애 못지않게 이성 간의 사랑으로 관심을 돌릴 필요가 있다. 내 남자의 관심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이런 게 부부간의 의리가 아니면 무엇일까.
산부인과 전문의로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남녀 사이의 ‘최고의 궁합’은 바로 ‘노력’이다. 설령 섹스에 대한 코드가 맞지 않다 하더라도, 조금씩 상대방의 취향으로 맞춰가려고 애쓰는 과정 자체가 사랑인 것이다. 이러한 노력과 실행이 가능하다면 남녀에게 섹스리스나 이혼은 아주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성욕이 낮은 경우라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성욕을 높이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물론 성욕이 지나친 경우에도 치료법이 있다. 부디 모든 부부가 연애할 때 그때의 마음으로 돌아가 노력하는 부부로 살아가기 바란다. 궁합, 즉 성욕의 차이를 좁혀가는 것은 서로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박혜성
● 전남대 의대 졸업, 동 대학원 석·박사
● 경기도 동두천 해성산부인과 원장
● 대한성학회 이사
● (사)행복한 성 이사장
● 저서 : ‘우리가 잘 몰랐던 사랑의 기술’ ‘굿바이 섹스리스’
● 팟캐스트 ‘고수들의 성 아카데미’ ‘박혜성의 행복한 성’ ‘이색기저섹끼’ 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