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북한은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에 돌입했다”

조선로동당 창건 55돌 참관한 한완상 전통일부총리

“북한은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에 돌입했다”

1/3
노 태우 전대통령과 김영삼 전대통령은 기구한 인연이다. 80년대 초반 신군부가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을 때 두 사람은 ‘적’이었다. 김전대통령은 신군부에 저항해 단식농성을 벌인 일도 있다. 90년 1월22일 여야로 갈라져 있던 두 사람은 3당 합당을 통해 ‘동지’가 됐다. 하지만 문민정부가 출범한 뒤 두 사람은 다시 ‘앙숙’이 됐다. 김전대통령이 ‘역사 바로 세우기’ 과정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법정에 세웠던 것이다.

최근 남북관계가 급변하면서 두 사람은 ‘대척점’에 서 있다. 김전대통령은 남북정상이 주도하는 화해무드에 비판적이다. ‘김정일 위원장은 적화야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김대중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북한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그래서 내년 봄으로 예정된 김위원장의 답방을 저지하기 위한 범국민 서명운동에 착수했다. 반면 노태우 전대통령은 자신이 북방정책을 처음 추진했으며, 그것이 남북관계 진전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노전대통령은 현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인터뷰

‘신동아’가 노태우 전대통령측에 인터뷰를 요청한 것은 수개월 전이다. 남북관계가 전환기를 맞는 시점에 6공화국의 북방정책을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노전대통령측은 완곡하게 거절했다. ‘전직 대통령이 현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이 때문에 노전대통령 인터뷰는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통상적인 예우도 갖추지 않은 채 기습적으로 진행됐다. 일단 노전대통령측에 ‘올림픽과 체육계 문제에 대해서 묻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인터뷰를 약속했다. 인터뷰 하루 전. ‘신동아’는 연희동 비서진에 성격이 조금 바뀐 인터뷰 요청서를 전달했다. ‘인터뷰에 남북관계에 관한 질문을 곁들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노전대통령측의 답변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1차 인터뷰가 이루어졌다. 노전대통령은 기자가 갑작스럽게 화제를 바꿀 때마다 당황해하면서도 자신의 견해를 담담하게 밝혔다. 하지만 곤란한 질문이 나오면 의식적으로 답변을 피했다. 그때마다 기자는 체육계 얘기로 분위기를 반전시켜야 했다.

2차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됐다. 수차례의 요청에도, 노전대통령측은 “현 정부의 정책과 관련된 부분은 답변할 수 없다”는 의견을 보내왔다. 결국 노전대통령은 남북기본합의서 조인 과정을 포함, 6개의 질문에만 답했다. 한편 노전대통령측의 한 관계자는 “서면 인터뷰 답변 내용은 현재 집필중인 회고록의 일부”라고 밝혀왔다.

노전대통령은 스포츠광이다. 육사 시절 럭비 선수로 활약했고 군대에서는 테니스와 골프를 즐겼다. 노전대통령은 스포츠 상식도 해박하다. 국내외 스포츠계의 흐름도 꿰뚫고 있다. 그래서 스포츠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 흔쾌하게 받는다.

“골프보다는 테니스가 좋아”

98년 6월이었다. 기자는 서울 양재동 테니스클럽에서 노전대통령을 인터뷰한 일이 있다. 화제는 98프랑스 월드컵과 국내 체육계의 동향이었다.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기자는 슬그머니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그는 ”테니스장에서 뭐 그런 것을 묻냐”면서도 소견을 밝혔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의 만델라‘가 돼야 합니다. 지역통합을 이룩해야 합니다.”

2년이 지났다. 노전대통령은 변함없이 1주일에 두 번씩 부인 김옥숙씨와 함께 양재 테니스클럽을 찾고 있었다. 운동시간은 평균 3시간. 건강한 젊은이도 지칠만한 운동량이지만 두 사람은 거뜬히 소화해낸다. 두두 사람이 60대 후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체력이 아닐 수 없다.

8월 28일 오후 1시 30분. 기자는 양재동 테니스클럽으로 갔다. 2년 전 경호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 2월 경호 책임이 청와대에서 경찰로 이관됐기 때문이다. 1시40분쯤 경호원들이 무전기를 들고 바삐 움직이는가 싶더니 검은색 세단 승용차가 눈에 들어왔다. 연분홍과 연보라색 줄무늬 남방에 선글라스까지 쓴 노전대통령이 차에서 내렸다. 기자가 인사하자 웃으면서 반겼다. “뭐 하러 또 왔어?” 노전대통령은 나름대로 인터뷰를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

테니스 클럽까지 걸어가면서 건강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노전대통령은 스스로 ‘건강박사’라고 말한다. 건강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정리해둔 철학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기자를 만나면 “무슨 운동 할 줄 알아?” 하고 묻는 버릇이 있다. 노전대통령은 “이젠 테니스를 좀 배웠나?”라고 물었다. 2년 전에도 그렇게 물으면서 테니스를 치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인터뷰가 급한 마당에 한가롭게 테니스를 칠 수는 없는 일. 그냥 눙치며 넘어갔다. “요즘 수영을 배우고 있습니다.”

―골프와 테니스 중 어느 쪽을 더 즐기십니까.

“테니스가 좋지. 골프는 테니스 못 하는 사람들과 가끔씩 할 뿐이야.”

―골프 실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핸디가 18 정도 됩니다.”

―‘보기플레이어’시네요.

“그렇지. 조금 하는 거지 뭐.”

“건강만큼 중요한 게 없어”

노전대통령 부부가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이 순간 수행비서가 기자에게 다가와 “무엇을 질문할 거냐”고 물었다. 기자가 “어제 팩스로 보낸 것처럼 체육계 얘기를 하다가 남북관계에 관한 부분을 덧붙이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자 수행비서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었고 기자는 “길수록 좋다. 쉬는 틈을 이용해 인터뷰를 하겠다”고 말했다. 수행비서는 이와 같은 내용을 경호원들에게 전달했고 기자는 그들과 눈맞춤으로 동의를 구했다.

노전대통령 내외가 코트로 들어섰다. 노전대통령은 흰색 반바지에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김옥숙씨가 먼저 게임을 시작했고 노전대통령은 벤치에 앉았다. 얼굴색은 2년 전보다 좋아 보였다.

―연세가 예순아홉인데 무척 건강해 보입니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건강만큼 중요한 게 없잖아.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했어. 사관학교 때는 럭비선수로 뛰었어. 그때는 육사가 정말 잘했어. 테니스는 군생활을 하면서 배웠어. 1960년대 육군대학에서 시작해 거의 그치지 않고 쳤으니까 벌써 35년쯤 됐어. 그런데 팔꿈치에 엘보가 오고 야구를 하다가 손가락이 부러지는 바람에 오른손을 제대로 못써. 할 수 없이 두 손으로 라켓을 잡고 쳤지.”

―두 손으로 스트로크를 하려면 무척 힘드실 텐데요.

“그렇지. 행동반경이 좁아지잖아. 이쪽으로 쳤다가 공이 저쪽으로 오면 움직이는 것도 힘들고…. 하지만 장점도 있어. 공을 정확하게 받아서 넘길 수 있거든. 또 두 손으로 공을 치면 골프를 쉽게 배울 수 있어. 치는 폼이 골프 스윙과 같거든. 내가 골프를 비교적 빨리 배운 것도 테니스를 오래 친 덕분이지.”

―요즘엔 테니스보다 골프가 더 인기 있는 것 같습니다.

“나하고 테니스 같이 치던 친구들도 다 골프로 떨어져나갔어. 이젠 우리 같은 사람이나 테니스를 즐기고 있지.”

―모 골프잡지에 보니까 노전대통령이 청와대 경호실에 근무하던 시절 차지철 경호실장이 골프를 싫어해서 노전대통령도 골프를 멀리했다는 얘기가 있던데요.

“그때는 잠시도 쉴 여유가 없었어. 골프든 테니스든 칠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빴어. 좋아하는 테니스도 제대로 못 쳤는데, 골프를 어떻게 해. 그리고 차지철 실장이 골프를 싫어했다는 것도 사실과 틀려. 차실장도 골프를 쳤는데 뭐.”

―최근 체육계에서는 박세직 월드컵조직위원장이 중도 퇴진한 것을 아쉬워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월드컵 준비에 차질이 생겼다는 얘기도 있구요.

“나도 아쉽게 생각해. 서울올림픽조직위원장을 지낸 노하우를 잘 살려서 월드컵에 이바지하길 기대했는데…. 나름대로 사정이야 있겠지만, 아까워. 그 사람 영어도 잘하고 유능해. 그래서 내가 많이 인계했다구. 체육부 장관도 물려줬고 올림픽조직위원장 자리도 넘겨줬잖아. 그 사람이 맡아서 일도 잘 처리했어.”

1/3
육성철·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목록 닫기

“북한은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에 돌입했다”

댓글 창 닫기

2023/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