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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화해시대의 지하조직 한민전

남북화해시대의 지하조직 한민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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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남한 내의 베트콩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한민전이 여전히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남조선 혁명을 목표로 한 한민전은 왜 남북 화해 무드가 날로 고조되는 이때에도 남한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일까. 북한 권력 핵심부의 속셈을 분석해 본다.
6·15 남북 공동선언이 있은 후 서울공항에 돌아온 김대중 대통령은 “남의 흡수통일과 북의 적화통일을 배제한다”고 선언했다. 과연 그러한 선언에 걸맞게 남과 북은 매우 빠르게 남북 화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이산가족이 만나고 끊어진 경의선을 복구하는 등, 백년지기처럼 서로를 믿고 하루가 다르게 하나가 되려고 달음질치고 있다.

“북한에 속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일각에서는 ‘북한이 우리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북한은 과연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인가. 급변하는 남북화해시대에 북한의 속내는 무엇일까. 북한은 과연 적화통일을 포기했는가?

1969년 북한 노동당은 남한에 통일혁명당(통혁당)을 만들어 남조선 적화를 기도했다. 1985년 7월 통혁당은 한국민족민주전선(한민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북한은 이날 이후 한민전이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남조선 혁명을 목표로 한 지하당이 서울에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해온 것이다.

이들은 그 증거로 ‘구국의 소리’ 방송(라디오 방송)을 든다. ‘구국의 소리’ 방송 아나운서들은 방송중에 서울에서 이 방송을 내보낸다는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서울에서 방송하는 것으로 꾸미기 위해 이 방송 아나운서들은 전원 서울 표준어를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1979년 2월 국제주파수등록위(IFRB)와 한국이 이 방송 전파의 발신지를 추적해 본 결과, ‘구국의 소리’ 방송 발신지는 황해도 해주 남산(동경 125도 4분 17초, 북위 38도 1분 17초)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한민전이 남한에는 없는 가짜 조직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는 북한에 있는데 서울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꾸며, 서울에 남조선 혁명을 추구하는 세력이 있는 것으로 위장한 것이라는 뜻이다.

한민전은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아 움직이는 위장 단체다. 그렇다면 남북정상회담과 6·15 선언 후에는 활동을 중단했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 관영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6·15 선언 후 과거보다 훨씬 더 많은 한민전 관련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다음은 지난 7월8일 북한의 대표적 관영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한민전 관련 보도다(중앙통신 보도내용은 원문 그대로 옮긴다).



김정일은 통일 대통령(?)

한민전 평양대표부는 서울에 있는 한민전이 평양에 설치한 대표부다. 비유해서 말하면 한민전은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 정부에 반대하는 지하 정부고, 한민전 평양대표부는 이 지하 정부가 평양에 설치한 대사관이라 할 수 있다. 조선중앙통신 보도대로라면 지금도 남조선에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장군을 따라 (남조선 혁명을 위해 노력하는) 한민전의 전위 투사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 된다.

7월9일 조선중앙통신은 서울에 있는 한민전 중앙위원회가 김정일 총비서에게 편지를 보냈다며 다음과 같은 보도를 내놓았다.



서울에서 버젓이 활동하는 한민전

이 보도문대로라면 한민전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총비서가 정상회담에서 남북이 화해 협력과 평화통일을 위해 흡수통일도 적화통일도 하지 말자는 뜻을 담은 6·15공동선언을 발표한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도 한민전은 남조선을 적화한 후 김정일을 기어이 통일대통령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편지 곳곳에서 드러내 보이고 있다. 김정일을 통일 대통령으로 삼겠다는 북한의 의지는 그들이 남북정상회담에 응한 진정한 의도일 수도 있다.

7월17일에 있었던 조선중앙통신 보도는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서울이 평양이 된 듯한 느낌을 준다.

(조선중앙통신 7월17일자)

7월19일자 보도는 아예 서울에 한민전 혁명정부가 수립돼 있고, 이 혁명정부가 정부로서 당당히 작동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조선중앙통신 7월19일자)

남북정상회담이 있기 전 북한은 평양학생소년예술단과 평양교예단의 서울 공연을 성사시킨 바 있다. 두 예술단체의 서울 공연은 우리 언론으로부터 상당한 관심을 받았고 국민들 또한 따뜻한 박수를 보내주었다. 조선중앙통신은 구국의 소리 방송을 인용해 이러한 환대를 이렇게 왜곡 보도하고 있다.



아무리 남북한 격차가 커졌다고 해도 남한 체제에 대해 불만을 품은 사람이나 공산주의에 심취한 ‘자콤’(자생적 코뮤니스트)이 생겨날 수 있다. 그런 인물이 가명을 쓰며 한민전 같은 지하당에 접근할 수도 있으므로, 무턱대고 남조선 미래음악회원 김유정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고 잡아뗄 수는 없다. 그러나 남북 정상회담 후 적어도 남한 언론은 북한 주민 아무개가 김대중 대통령을 흠모하고, 남한 사회를 동경한다고 보도하지 않았다. 북한측의 이러한 보도는 너무나 큰 반칙이요 속임수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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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영무 남북전략연구소 소장(전 동아일보 논설위원 겸 통일연구소장) KAYAM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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