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愛憎)의 관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 사이를 가리켜 흔히 그렇게들 부른다. 물론 지금은 YS(김영삼전대통령)와 DJ(김대중대통령) 사이에 ‘애정’보다는 냉기만 가득하다.
박종웅의원(朴鍾雄·한나라당)과 설훈의원(薛勳·새천년민주당). 동갑내기(47)인 두 의원은 79년과 80년 각각 YS, DJ와 인연을 맺은 이래 상도동과 동교동 비서로 정치생활을 시작했다. 연금과 투옥 등으로 YS와 DJ의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고 양가(兩家)가 군사정권의 감시 아래 통제되던 시절 두 의원은 양가 비서실의 막내격으로 허물없는 우애를 나누던 사이다.
‘신동아’는 두 의원을 동시에 초청, 두 전·현직 대통령간에 벌어지는 작금의 불화문제에 대해 양측의 기탄없는 속얘기를 들어보았다.
기자: 두 분이 동갑이죠?
박종웅의원: 동갑은 동갑이죠. 근데 정치판에서 나이 따지나.
설훈의원: 내가 뱀띠고 자기는 (한살 아래인) 말띠 아닌가?
박종웅의원: 정치판에서는 선수(選數)가 중요하지 나이가 중요한가.
(박의원은 3선, 설의원은 2선으로 박의원이 정치선배인 셈이다)
설의원: 뭘, 이회창(李會昌)의원도 재선인데 당총재도 하고 다 하잖아.
기자: 또 싸운다. 두 분 보스들께서도 참을 수 없는 경쟁의식을 갖고 있다고들 하는데 두 의원께서 그런 것까지 닮은 건 아니겠죠?
설의원: 내가 지금까지 모시면서 지켜본 바로는, 우리 (김대중)대통령께서는 아무와도 앙숙이 되거나 적대적 관계를 갖고 세상을 사시는 분이 아니에요. 서로 전쟁을 치르고 극악한 관계에 있던 남북관계도 화해하고 협력하는 판인데 그 동안 동지였고 말 그대로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분들인데 왜 협력이 안 되겠습니까? 왜 화해가 안 되겠습니까? 우리 대통령을 비롯해서 동교동 식구들은 다 마음을 풀고 있어요. 화해하자 그런 생각이에요.
기자: 그런데 이렇게 화해를 못 하고 앙숙이 된 데에는 뭔가 원인이 있지 않겠어요?
이게 훈수냐? 재 뿌리는 거지
박의원: 그게 제일 중요하죠.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도 처음에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는, 어떤 의미에서 ‘더 잘 됐다’ ‘그 동안에 내가 해왔던 민주화나 개혁을 한 단계 더 진전시켜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하시고 “도와줘야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이 양반(김대통령)이 하시는 걸 보니까 이래 가지고는 도저히 나라가 안 되겠다,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김대중은) 독재자”라는 말씀도 하신 것 아닙니까? 걱정스러워서 한 말씀입니다. 인간적으로 과거에 오랜 동지였다 하더라도 잘못하는 것은 지적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설의원: 그런데, 일방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우리 대통령이나 우리 당 쪽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 일절 일언반구도 안 하시거든요. 우리는 우리대로 할 말이 분명 있지만 그냥 못 들은 체하고 넘어간다는 말이야. 왜 그러냐 하면 그 밑바탕에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이 없다는 거예요.
대통령 생각은 ‘저게 왜 저럴까, 답답하네, 내가 자기한테 뭘 잘못했다고, 왜 나한테 일방적으로 독재자라고 하고 온갖 소리를 다하면서 공격하나, 참 답답하다’ 이런 심정이세요. 그렇다고 똑같이 흥분해 가지고 YS에게 욕을 하거나 하는 것은 전혀 없고 ‘왜 저럴까, 참 답답하다’ 이런 거라고.
박의원: YS도 대통령을 5년 동안 해보신 분이고 또 김대중 대통령 하는 것을 보면 잘한다, 못한다 판단이 있지 않겠나. 정치를 하는 걸 보니까 이런 것은 잘못하고 있다, 그런 부분을 지적한 거지.
설의원: 답답하면 훈수도 해주고, ‘이것은 이런 것 아니오’ ‘아무리 봐도 이것은 후광(後廣·김대중대통령의 아호)이 잘못된 것 같소’ ‘이렇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소’, 이렇게 훈수를 하면 오죽 좋으냐 말야. 그것은 제쳐놓고 막 떠벌리고 이러니 훈수가 아니라 이것은 완전히 재 뿌리는 거지.
박의원: 그런 일을 하려면 신뢰가 중요하거든. 김대통령이 당선된 뒤에 ‘우리 힘을 합쳐서 잘해보자’ ‘미국대사가 이야기하던데 두 사람이 서로 협력하는 게 앞으로 한국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고 하더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앞으로 잘 좀 도와주세요’ 하기에 YS도 ‘좋다. 나라가 잘 되어야 할 것 아닌가. 나도 힘 닿는 데까지 열심히 도와주겠다’, 그렇게 이야기했단 말이야. 그런데 하는 것을 가만히 보니까 그게 아니더라. 신뢰를 저해하는 쪽으로 간다 말이야.
국민이 호응해주니까 말하는 거야
기자: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신뢰를 저해했다는 얘기죠?
박의원: YS주변에 있던 사람들 다 조사하고, YS 재임 시절 비자금이라든지 그것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더란 말이죠. (YS와) 가까운 사람을 구속하고. 그때 구속됐던 사람 가운데 경남고등학교 출신으로 해병대사령관을 했던 전도봉 장군이 있는데, 진급과 관련해서 돈을 받았다고 구속됐어요. 그런데 이번에 무죄(판결) 났다고.
또 IMF와 관련해서 검찰에 감사원에 청문회에 나오라고 하는 거야. YS 생각에 ‘이렇게 하는 것은 대통령의 재가 없이는 안 된다’는 기라. 또 야당의원 빼내가기라든가 보궐선거 때 부정선거 하는 것을 보니까, ‘이거 독재가 아니냐. 저런 식으로 하다가는 진짜 큰일나겠다’ 싶으니까 잘못한다고 지적한 거지. 아무리 YS가 ‘독재자’라고 말했더라도 국민이 호응을 안 해주면 말한 사람만 우습게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일부 국민이 호응하고 있잖아요.
(‘국민 호응’ 대목에 이르러 설의원이 어이없다는 듯 빙긋 웃어 보이는 사이 박의원은 드디어 ‘항복’을 받아냈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속도를 높였다)
박의원: 남북문제도 마찬가지지. 일방적으로 북한에 끌려가고 YS가 볼 때는 이러다가는 나라 망치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런 지적을 한 것이고. YS가 현 정권에 대해서 비판하는 게 무슨 반사이익을 얻겠다든지 그런 게 아니잖아요. 앞으로 다시 대통령 나올 것도 아니고 총재 할 것도 아니고, 정말 DJ와 과거에 동지였기 때문에 그러는 거지. 그렇게 비판하는 것도 애정이 있으니까 그러는 것 아니겠나.
설의원: 아이고! 박의원, 옛날엔 안 그랬는데 이제 보니 순 헛똑똑이야.
이거 보라고. 전도봉(全道奉)장군을 이야기하는데 전도봉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YS를 도와준 사람이 그 사람 하나겠습니까? 수많은 사람이 YS를 도와주었다고.
그중에 전도봉이 됐든 김두봉이 됐든 누가 됐든 간에 YS를 도와준 것과 상관없이 비리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 사람이 비리혐의가 있으니까 구속이 됐겠지, 그 사람이 YS를 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예요. 우리 대통령이 YS와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이제 물러나신 분인데, 그 YS를 도와주었다고 해서 뒷조사하라고 시키겠느냐 말이에요. 우리가 그렇게 할 이유가 없어. 그렇게 해서 득 될 일이 뭐가 있느냐 말이에요. YS를 자극해서 우리가 얻을 게 뭐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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