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초에 일어난 황장엽 망명 사건은 북한에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준 중대 사건이었다. 당시 북한은 황장엽 비서의 망명을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한국행을 막아야 한다는 김정일의 지시로 중국측과 치열한 막후협상을 벌였다. 만약 이것이 여의치 않다면 황장엽을 중국에서 살도록 하고, 이것조차 안 되면 사살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당시 외신은 평양에서 특수대원 200여 명이 황장엽을 사살하기 위해 베이징에 도착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중국 정부는 황씨 일행의 의견을 존중해 한국총영사관 경비를 강화하면서 북한에 이들의 망명이 자유의사이며 한국행을 원한다고 통보했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행만은 절대로 안 된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난처해진 중국은 결국 그를 제3국으로 인도한다는 방향으로 결론을 냈고 황씨는 결국 한국망명에 성공했다.
황씨의 망명으로 중대한 손실을 입은 북한은 복수 작전을 꾸몄다. ‘모란봉 작전’으로 이름지은 이 작전은 김영삼대통령의 친인척이나 측근 또는 황장엽과 맞바꿀 수 있을 정도의 거물급 남측 인사를 평양으로 초청한다는 것이었다. 말이 초청이지 일단 평양에 들어오면 돌아가지 못할 것은 뻔한 일이었다.
우리측 안기부도 북한의 이런 의도를 짐작하고 있었다. 권영해 부장이 지휘하던 안기부는 북한측의 집요한 대통령 친인척 초청 공작 3건을 모두 사전에 알아차리고 차단했다. 이 과정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손충무씨다. 그는 97년 대선 당시 ‘김대중 X파일’을 집필해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를 음해했다는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2년간 복역한 인물이다. 문민 정부 당시 권영해 안기부장과 손충무씨는 ‘특수관계’였다.
손충무와 권영해의 특수관계
이 특수관계는 손충무씨의 이력을 살피면 알 수 있다. 손충무씨는 1963년 경향신문 6기 수습기자로 언론계에 첫발을 내디딘 인물이다. 영어에 능통한 그는 60년대부터 미국·남미·남태평양 순회특파원, 월남·일본 순회특파원, 아프리카 등 세계일주 특파원을 지내며 해외취재로 잔뼈가 굵었다. 그는 경향신문 취재부 부장, 논설위원을 끝으로 1977년 유신에 반대하며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에 체류하는동안 그는 미국의 정보기관과 접촉하며 해외정보망을 구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도 저널리스트 계속 활동하던 그는 1986년 귀국하여 집필과 취재 활동을 계속했다.
손씨는 저서와 기사 때문에 구속 수감을 되풀이한 인물이다. 1964년에는 한일회담 반대기사로 투옥되었고, 1988년에는 ‘이병철과 삼성왕국’이란 저서를 내고 명예훼손혐의로 구속됐다 4개월 만에 출감한 경력이 있다. 1992년에는 김영삼대통령 사생활 기사로 구속되었다 풀려났고, 1998년 ‘김대중 X파일’이란 저서로 2년 간 복역하고 지난 6월 석방되었다.
한국 언론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국제통인 손씨는 40년간에 이르는 언론인 경력, 그것도 해외 경험 때문에 국제 정보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와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1993년 처음 만났다.
93년 당시 손충무씨는 자신이 발행하던 월간지‘인사이더 월드’에 한·미국방장관회의를 취재하여 회의록을 실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 권영해씨였다.
손충무씨가 입수해 게재한 한·미국방장관회의록은 미국 정부도, 한국 정부도 발표하지 않은 극비 사항이었다. 권영해 국방장관은 공개되지 않은 회담록 전문이 누출된 경위를 알아보기 위해 손씨를 만났다. 손씨를 처음 만난 권장관은 그가 만만치 않은 해외정보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이날 처음 만나 국내외 정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이후 정기적으로 만나서 정보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권영해씨는 안기부장으로 취임하면서 해외 정보 수집과 외교는 공조직도 중요하지만 기업가나 언론인이 갖고 있는 사적인 채널도 도움이 된다면서 손씨에게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이 있으면 협조해 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과 손충무씨의 특별관계는 이른바 ‘김대중 X파일’ 재판에서도 드러났다. 그는 1992년 5월에도 당시 민자당 대표였던 김영삼 전대통령에게 숨겨놓은 딸이 있다는 기사를 자신이 발행하던 ‘인사이더 월드’에 게재해 명예훼손혐의로 구속되었다가 고소 취하로 한 달 만에 풀려난 적이 있다. ‘김대중 X파일’ 재판 당시 검찰은 “김영삼 전대통령이 1994년 권영해씨가 안기부장에 취임한 직후 손씨를 특별관리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검찰 수사에 따르면 권 전안기부장은 이 지시에 따라 손씨를 특별관리하며 여러 차례에 걸쳐 수백만원씩 지원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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