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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 장향숙 “天國의 위로보다 현실의 시련이 낫다”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 장향숙 “天國의 위로보다 현실의 시련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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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물 같이 여린 손, 망가진 하반신. 장향숙 의원의 등장은 정상적인 손과 비틀어진 손, 부자와 빈자, 도시와 시골, 남자와 여자라는 그 멀었던 거리를 축지법 쓰듯 줄여버렸다. 소아마비로 두 돌에 주저앉아 스물둘에 처음 세상 구경을 하고 마흔여섯에 국회의원이 된 불꽃 같은 그 여자.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 장향숙 “天國의 위로보다 현실의 시련이 낫다”
삶에 등급을 매길 수 있을까. 성공을 숫자로 계량하는 것이 가능할까. 혹 거기 긍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생의 오묘한 켯속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가치 단일적이고 경직된 사고의 소유자일 것이다.

고3 학생들이 받는 수능 성적표도 아닐진대 4000만 중 3%, 혹은 55% 하는 식의 인간 서열화가 도무지 가당키나 한가. 그러나 그렇게 발끈하는 한편으로 우리는 슬며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사람은 무리를 이루어 사는 종족이고 무리란 서로 경쟁하게 마련이며 경쟁사회에선 개인의 성취를 재빨리 백분율로 환산하는 장치가 은밀히 작동되고 있음을 알고 있으니까. 제도교육의 긴 과정을 거쳐 오면서 우리 각자의 뇌에는 그런 자동 채점기가 절로 하나씩 들어박힌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불교의 법화경은 다시 이렇게 말한다. “모든 사람은 능동적, 주체적인 자기 선택으로 이 세상에 온다. 누구나 이 세상에 태어날 때는 분명한 자기 메시지를 가지고 탄생한다. 그 우주의 메시지를 인간이 가늠해서 순번을 정한다는 것은 얼음으로 뜨거운 물을 젓는 것과 같은 용렬한 짓일 뿐이다….”

이 반복되는 논의의 끝에 장향숙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이 서 있다.

최근 나는 아주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목격했다. 벚꽃이 난분분한 여의도의 창 너른 찻집 안에서 휠체어를 탄 장향숙 후보가 우연히 은발의 같은 당 소속 김한길 의원과 마주쳤다. 장 후보가 장애인 특유의 나물같이 여린 손을 김 의원에게 당당하게 내밀었다. 그 손을 잡기 위해 김 의원은 깊이 허리를 숙여야 했고 두 사람은 마주 웃으며 악수했다. 알다시피 악수는 서로의 손을 잡고 가볍게 흔드는 동작이다.



나는 이만치 떨어져서 그 두 사람의 손가락이 포개졌다 떨어지는 과정을 지켜보고 서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의 양 극에 서 있었을 두 사람의 정상적인 손과 비틀어진 손. 부자와 빈자, 도시와 시골, 남자와 여자, 처음 얘기한 대로라면 수능 1등급과 9등급, 그 멀었던 거리가 축지법을 쓰듯, 아코디언을 접듯, 악수를 매개로 나란히 모아지는 모양을 나는 벅찬 심정으로 바라보았다. 흐드러진 벚꽃이 둘의 어깨 위에 환한 후광을 둘러주어 그 장면은 더욱 빛났고 잊혀지지 않았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1번

부산 여성장애인연대 회장 장향숙이 열린우리당의 중앙위원이 된 건 불과 몇 달 전의 일이다. 소외계층과 여성을 대변할 사람으로 장향숙만한 인물이 없다는 평가는 늘 있어왔다. 그러나 여당의 비례대표 1번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번호 배정은 당내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정해진 것이라고 했다.

장향숙 의원의 등장은 위에 늘어놓은 삶의 등급 운운하는 어정쩡한 질문들을, 우리 안에 숨은 그 해묵은 이중성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말의 유희들을 통쾌하게 깨버렸다. 장향숙과 악수하면서 김 의원의 눈에 떠오르던 모종의 외경, 그 표정이 내게 그날의 풍경을 유독 강렬하게 각인시켰고 또 이런 잡다한 수사를 늘어놓게 하는 이유가 된 것 같다

비례대표 1번 후보가 된 후 그는 정신없이 바빠졌다. 지역구 후보의 유세에 당의장과 나란히 선(아니 휠체어를 타고 앉은) 그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자주 비춰졌다. 이제 그는 카메라 앞에 서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단련이 됐고 숱한 악수에도 익숙해졌다. 손을 들어 여러 사람에게 인사를 하는 포즈도 썩 자연스럽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전국을 뛰어다니는 그를 만나러 숙소로 찾아갔다. 침대만 커다랗고 나머지 공간은 좁은 방이었다. 거기 엎드려 그가 9시 뉴스를 보고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모습만 봐서 그의 장애 정도를 제대로 알 수 없었다. 소아마비를 앓은 것이 한 살 반때였으니 양다리가 제대로 발육하지 못해 몸 안에 어른과 아이가 혼재한 듯한 느낌, 그래서 씩씩하고 당차지만 동시에 소녀 같은 청순감이 풍겼다. 카메라가 잡아내지 못하는 그 청순함으로 인해 그와 이야기하는 동안 내 마음은 시종 향그러웠다.

밤 깊도록 그는 이리저리 자세를 바꿔가며 온갖 이야기를 했다. 장향숙은 달변이었다. 능란한 말솜씨의 달변이 아니라 정확한 단어를 풍부한 비유에 섞어 부드럽게 전달한다는 의미에서의 달변이었다.

명상, 철학, 역사, 영화 이야기들이 대화 중에 자꾸 튀어나와 시간이 도둑맞은 듯 빨리 흘러갔고 낮에 고단했던 최경숙 실장(오랫동안 그의 곁에서 장애인 인권운동을 함께해 온 건축공학 전공의 지체장애 여성. 논리적이고 명석하고 얼굴이 눈에 띄게 고운 사람이다)은 딸기를 씻어 종이컵에 담아주더니 어느새 풋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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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서령 자유기고가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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