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22일 모스크바대 연설이나 12월7일 소르본대 연설도 외교안보 실무진의 사전준비 없이 노 대통령이 직접 연설문을 구술한 것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EU(유럽연합)와 같은 평화와 공존의 질서를 동북아에서 만들어가는 데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겠다”고 밝힌 소르본대 연설 내용은 LA 발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숙명적 관계’와 ‘전략적 관계’
12월 회의에서 노 대통령의 강도 높은 질책은 이러한 상황과 맥이 닿아 있다. 한마디로 노 대통령은 참모들의 인식이 미치지 못한다고 보았다는 것. 대통령이 부쩍 ‘역사공부’를 강조하는 한편, 100여 년 전 구한말의 상황, 특히 러일전쟁에 관한 역사서적을 추천하며 외교안보 분야 보좌진에게 일독을 권한 것이 이 무렵부터다. 이후 3개월가량 대통령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던 듯하다고 한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담배가 부쩍 늘고 밤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이 시기에 ‘전략적 관계’와 ‘숙명적 관계’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살펴볼 때 한국 중국 일본은 서로 나라를 침략하고 침략당하며 항상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아온 ‘숙명적 관계’라는 것. 반면 미국과 러시아는 때로는 동북아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지만 때로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 전략에 따라 들고날 수 있는 ‘전략적 관계’라는 설명이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이러한 인식틀은 최근 이뤄진 주요 외교안보정책 결정의 배경을 설명해주는 키워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한일 문제 등 일련의 발언에 대통령이 직접 나선 것에는 전술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고 노 대통령이 남긴 답이다. 대통령은 왜 현 상황을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그 상황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대통령이 동북아 균형자 발언을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부 당국자들은 대부분 “전략적 유연성 문제일 것”이라고 답한다. 알려진 바와 같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란, 주한미군의 목적이 북한의 남침 억제를 벗어나 한반도 이외지역의 상황에 투입될 수 있도록 좀더 유연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러한 주한미군의 역할 변경이 필연적으로 중국의 경계심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는 것. 대만해협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 주한미군이 이에 투입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비상한 상황
잠시 2월 무렵,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청와대 회의를 들여다보자. 이 회의에도 역시 정부 외교안보 관련 부처 고위 관계자가 모두 참석했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 미국과 중국 모두를 상대로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관련 논의를 지켜보던 대통령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 문제만큼은 제가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 뜻을 따라주십시오. 다른 의견은 이제까지 들은 것으로 충분합니다.”
서늘하리만큼 단호한 대통령의 말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LA발언 당시만 해도 대통령의 거침없는 ‘독자행보’를 만류하던 일부 참모들은 매우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몇몇 관계자는 “이후 공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한 ‘전략적 유연성’ 발언이나 육군3사관학교 졸업식의 ‘동북아 균형자’ 발언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기하는 참모들이 없었던 것은 이날 대통령 의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전략적 유연성 문제와 관련해 대통령이 이처럼 강한 어조로 이야기한 것은 그간 진행된 관련 논의의 내용이 불만족스러웠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한미 간에 이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2003년 4월부터 열린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FOTA) 회의였다. 문제는 주한미군과 관련해 최대 현안일 수밖에 없는 ‘전략적 유연성’ 문제를 국민이나 주변국의 시선을 의식해 2003년 내내 ‘비공개’로 처리하고 되도록 논의를 미루는 것이 한국 대표단의 입장이었다는 점.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FOTA 회의록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협상팀은 전략적 유연성을 인정해주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을 여러 차례 한 것으로 되어 있다. 더욱이 2003년 말에는 담당부서인 외교부 북미국이 청와대의 승인 없이 이를 문서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이 2003년 말 이전에 이 사안의 중대성에 대해 상세히 보고받은 적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자세한 내용은 ‘신동아’ 2005년 1월호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논쟁의 실체’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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