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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 균형자론’, 어떻게 볼 것인가

‘최악의 상황’ 염려한 절박한 선택 vs ‘최악의 상황’ 부를 수 있는 미숙한 개념

‘동북아 균형자론’, 어떻게 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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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정부가 내놓은 동북아 균형자론은 어떤 고민과 의미를 담고 있는가. 그 바탕에 깔린 국제정세 인식은 과연 적절한가. 균형자론이 지향하는 미래구상에 대해 미국, 중국, 일본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으며, 이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과 극복방안은 무엇인가. 동아시아 국제정치 및 각국 입장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동북아 균형자론이 미칠 파급효과를 분석했다.
일 시 : 4월9일 오후 1시장 소 : 동아미디어센터 14층 회의실참석자 : 김우상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재호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

‘동북아 균형자론’, 어떻게 볼 것인가
사회 : 바쁘신데도 자리를 같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발언 삼아 ‘동북아 균형자론’를 총론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지 한 말씀씩 부탁 드립니다.

김우상 :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놓은 의도는 좋다고 봅니다. 다만 문제는 한국이 동북아에서 균형자 노릇을 할 수 있느냐는 겁니다. 따라서 이를 세련된 모델로 바꾸는 작업이 뒷받침돼야 하겠죠. 동북아 안보환경이 변하고 있으므로 한미동맹이든 한중관계든 한일관계든 조정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합니다. 그러나 그 답을 ‘균형자’라는 말로 못박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봐요. 이 표현이 국제적으로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의도를 갖고 있든 주변국이 ‘한국은 균형자(balancer) 노릇을 하려는구나’라고 인식할 때 오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국제정치에서 균형자라는 표현은 군사력에 바탕을 둔 국력을 기반으로 삼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군사력이 아니라 소프트파워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해도 남들이 그렇게 인식할 가능성이 크지 않아요. 그러기에 다른 말로 주변국들을 이해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정재호 : 건국 이후 문민정부까지 한국의 외교는 ‘무엇을 할 것이냐’에 중심을 둬왔습니다. 국민의 정부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무엇이 될 것이냐’라는 명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죠. 참여정부 외교정책의 ‘비전’에 대한 고민이 ‘동북아 균형자’라는 말로 표현됐다고 봅니다. 뭔가 모색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지난 2년 동안 간헐적으로 논의됐지만, ‘균형자’라는 한 마디가 우리가 가는 방향을 명시적으로 규정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있습니다.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가 무엇인지 밝힌 것은 3월3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서 내놓은 한 쪽짜리 설명서뿐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인지 아직 명확치 않다고 봐요.



한걸음 더 나아가면 ‘균형자’라는 말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NSC가 밝힌 설명을 보면 이렇게 법석을 떨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한번도 전쟁을 수행한 적이 없는 유일한 전통적 평화세력으로서 도덕적 우월성을 가지고 이 지역에서 주체적인 평화촉진을 위해 노력한다’는 말에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균형자라는 말이 국제정치학적인 면에서 안 맞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부든 외교안보정책의 상당수는 국제정치학 개념에 들어맞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미국도 마찬가지죠.

한국의 국력이 균형자 노릇을 하기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현안별로 균형자 역할을 할 여지는 충분하다고 봅니다. 예컨대 북핵 문제의 해결과 관련해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의 입장을 배려합니다. 분명히 균형자의 측면이 있는 거죠. 중국이나 일본도 한국이 빠진 상태에서 동북아 FTA가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예가 될 수 있을 겁니다.

현 정부가 하는 일은 무조건 잘못됐다는 식의 정파주의적 시각을 떠나서 이론적·학문적인 차원을 벗어나 균형자론이 나온 배경을 살펴보면 반박의 여지는 그리 많지 않다고 봅니다. 그 책임의 일부는 언론에도 있을 겁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남방 3각에서 탈피한다’는 표현을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언론이 과도하게 해석한 게 아닐까요?

동북아의 미래는 패권경쟁인가

진창수 : 정부도 지금 당장 균형자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향후 기조에 대한 의사를 밝힌 것이죠. 동북아 균형자론이 지향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충분히 동의합니다. 다만 이제부터 로드맵을 그려나가야 할 텐데, 말이 너무 앞선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한 국가가 지역에서 자율적인 입지를 갖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일본처럼 강대국과의 긴밀한 동맹을 통해 위상을 강화하거나, 현재의 구조를 흔들어 자국의 자율적인 공간을 만드는 식입니다. 노무현 정부가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방향은 후자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방식은 보통 힘있는 국가가 택하는 방법입니다. 한국의 국력이 그에 적합한지는 생각해볼 문제죠. 동북아 균형자론에 대해 쏟아진 비판은 우리가 실제로 갖고 있는 힘보다 의도가 너무 앞서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한미관계의 신뢰는 떨어지고 북핵문제에서 일본에게 ‘왕따’당할 가능성이 있는데다, 그렇다고 중국이 우리 뜻대로 움직일 것인지도 불명확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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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정리: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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