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분위기가 안 좋았다”
지난해 12월 국정원은 A씨에게 해임을 통보하면서 기자와의 접촉·대화 외에도 ▲허가절차 없이 한 단체 기관지에 칼럼 게재 ▲석 달간 서울소재 모 대학에 주1회 무단 출강 등을 징계이유로 들었다. 이러한 행동이 국정원법 등 관련규정의 비밀 엄수 의무, 영리업무 금지를 위반했기 때문에 ‘직원으로서의 품위나 위신을 손상하였기에’ 국정원직원법 24조에 의거해 징계를 내린다는 것이었다.
A씨는 언론 접촉 외의 다른 징계사유들은 본인이 “신동아 기사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사표를 쓰라”는 국정원 측의 요구를 거절한 이후에 덧붙여진 것이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기자 접촉만으로는 해임이라는 중징계에 설득력이 부족할 것을 염려해 소소한 규정위반을 뒤져 갖다붙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외부기고의 경우 그간 국정원 내부에서 권장하던 일이었으며, 대학 출강은 이미 국정원의 정식허가를 얻어 다른 대학에 강의를 나가던 중에 일과시간이 끝난 저녁 7시 강의를 잠시 맡았을 뿐이라는 것. 대학으로부터 받은 돈은 매달 10여만원에 불과한 교통비였기 때문에 영리업무가 아닌데다, 관행적으로 묵인돼오던 일이라 허가절차를 깜빡한 것이라고 A씨는 설명했다.
이러한 이유로 A씨는 자신이 신동아 기사를 비롯해 당시 쏟아져 나오던 국정원 관련보도에 대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쓴 희생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우나 온수나 엘리베이터 격층 운행이 업무상 기밀이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정보라는 데 동의할 수 없고, 다른 이유들 역시 해임이라는 중징계를 내릴 만한 사유가 아니지 않으냐는 반문이다. A씨는 “이어지는 언론보도에 책임질 누군가를 만들어 수뇌부에 ‘보여줘야 했던’ 담당부서가 조급한 마음에 도를 넘은 것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한 국정원 관계자는 “당시 여러 보도로 내부 분위기가 안 좋았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의 보도
해임 결정에 불복해 법적인 절차를 밟기로 한 이후 A씨는 행정안전부 소청심사위원회에 소청을 청구했다. 현행법상 해임된 공직자가 법원에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하려면 그전에 반드시 소청심사를 거치도록 돼 있다. 통상의 경우 제기된 소청심사는 행안부 소청심사위원회가 직접 담당하지만, 국가정보원의 경우는 원장 본인이 결정하도록 규정돼 있다. 국정원장이 내린 처분을 국정원장이 다시 심사하는 묘한 구조인 셈.
국정원장으로부터 해임처분을 다시 한번 확인받은 A씨는 지난 3월 서울행정법원에 해임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해임이라는 중징계가 자신의 행위에 비해 지나치고, 자신이 17년간 국정원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국가에 누를 끼친 사실이 전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해임처분은 국정원장의 재량권을 남용한 것이라는 취지였다.
재판과정에서 국정원 측은 징계사유에 명기되지 않은 A씨의 개인문제를 거론하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를 보였다. 또한 국정원 측은 A씨가 식사자리에서 국장급 간부의 실명을 기자에게 유출했다고 주장했지만, 기자는 2001년 남북정상회담 관련 훈·포장 수여자 명단 형식으로 언론에 보도된 이 간부의 실명을 당시부터 알고 있었고, ‘신동아’ 2007년 2월호에 실린 2차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사에서 이니셜과 직함으로 거명한 바도 있다.
7월24일 서울행정법원 합의6부는 A씨의 청구를 기각한다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우선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허가절차를 밟지 않고 게재한 칼럼이나 출강한 강의의 내용 자체는 국가정보원의 기능을 특별히 해한다고 보기 어렵고, 징계절차가 신동아 기사 게재 이후에 개시된 점 등 원고에게 참작할 만한 사정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A씨의 행동이 “(국정원법 등이) 규정하고 있는 비밀엄수나 영리업무 금지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더라도…내부 상황을 언론인에게 누설함으로써 국정원 직원으로 더 이상 복무관계를 지속시킬 수 없을 만큼 신뢰관계가 깨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해임처분이 부당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
이에 관해 ‘연합뉴스’는 7월28일 ‘국정원 ‘속사정’ 유출 직원 “해임 정당” 판결’ 이라는 제목으로 1심 결과를 보도했다. 기사를 작성한 ‘연합뉴스’ 기자는 ‘신동아’와의 통화에서 “A씨가 유출했다는 이야기가 매우 사소한 부분이어서, 해임은 지나치다는 생각으로 기사화 필요를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기자는 “기사가 나간 이후 A씨의 설명을 들었는데 국정원의 특수성을 인정한다 해도 일종의 ‘트집 잡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A씨는 현재 1심 결과에 불복해 항소절차를 진행 중이다.
가장 효과적인 수단
8월4일, ‘신동아’는 이번 사안과 관련해 해결되지 않는 의문을 정리해 국정원 측에 질의서를 보내고 답변과 반론을 요청했다. 8월7일 국정원 관계자는 전화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므로 우리 쪽에서는 할 말이 없다”며 답변을 거절했다. 이 관계자는 “반론을 포기하는 것으로 봐도 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뿐”이라고 답했다.
A씨의 1심 재판 과정에서 기자는 기억하고 있는 사건의 사실관계와 의견을 진술서로 정리해 재판부에 제출했다. 다음은 그 한 대목이다.
“국가정보원의 조직문화, 대한민국 핵심기관의 일처리 방식은 제 상식과는 완전히 어긋났고, A씨가 제게 엄청난 보안사항을 누설한 것처럼 몰아갔습니다. 바로 이 부분, 제가 국정원의 상식과 원칙 수준을 지나치게 높게 평가했다는 것이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실수입니다.…차라리 국정원이 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면 훨씬 의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을 듯합니다. 이렇게 보면 국정원으로서는 취재기자를 압박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을 찾아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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