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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행 탈북 난민들의 무너진 ‘아메리칸 드림’

“빌어먹더라도 잘사는 나라에서 빌어먹는 게 낫잖겠습니까”

미국행 탈북 난민들의 무너진 ‘아메리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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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은 영어는 물론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자본주의 노동환경에도 적응하는 데 고충을 겪습니다. 한 직장에 지속적으로 근무하는 것을 어려워하다보니 자주 직장을 옮기는 경향이 있고, 일부는 3~4년이 지나도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해 미국 정부가 저소득계층에 지원하는 푸드스탬프(무료급식 교환권)로 생활합니다. 물론 이는 탈북자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에 거주하는 난민들이나 저소득계층인 흑인, 멕시코계, 일부 백인들도 힘들게 일해 최저임금이나 다름없는 돈을 벌기보다는 정부의 복지정책에 기대려는 경향을 보입니다. 자율적 통제나 숙련된 기술에 약한 탈북자들의 자립을 도우려면, 강제적으로라도 기술교육을 시키거나 아예 처음부터 기본적인 지원도 하지 않는 게 낫습니다. 어중간하게 도와주면 의존심만 커지기 때문입니다.”

덧붙여 박 전 회장은 “한국에서 살다가 밀입국한 탈북자가 미국 사회에 더 잘 적응한다”고 말했다. 이미 자본주의 사회를 경험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알기 때문.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시러큐스시 난민센터에 왔던 탈북자 대부분은 다른 도시로 이주했고, 2명의 여성만이 남아 한인가게에서 일하고 있다. 탈북자들이 미국 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를 잡는 데는 상당한 도전이 요구되는 것이다.

보상받지 못한 꿈

필자가 만난 장씨 가족의 경우 미얀마에서 8개월간 미대사관에서 주선한 안전가옥에 머물렀다. 그 과정에 한국대사관 관계자로부터 한국행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장씨 스스로 미국행을 결정했다고 했다. 이유를 물으니 옆에서 듣던 장씨의 큰 아들이 “빌어먹더라도 잘사는 나라에서 빌어먹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장씨는 입국과정에서 긴 시간을 기다림으로 보냈기 때문에 미국에 입국한 후 바로 일하기를 원했다. 다행히도 필자가 연결해준 교회 교인이 운영하는 한인가게에서 장씨에게 일자리를 제공했다. 금전적인 지원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하루빨리 용돈이라도 벌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었던 셈이다. 그렇지만 장씨는 채 열흘도 되기 전에 일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가게의 사장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또한 법정근로시간인 8시간을 넘겨 일하는 것도 자신에게는 참기 어려운 노동 강도라고 했다. 장씨는 “불법 체류자 신분이던 중국에서는 주어진 조건에 절대적으로 순응하고 때론 부당한 대우와 임금체불도 감수했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지 않으냐”고 되물었다. 중국에서 머문 10년간 건설현장에서 철근을 나르는 등 육체적으로 부담이 큰 일을 했지만, 그런 환경에서도 아프지 않던 허리가 지금은 자주 아프다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힘든 상황을 참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필자가 보기에 장씨는 불가항력적인 사회적 신분 때문에 억눌려 지내야 했던 중국에서의 삶이 미국 입국으로 상당부분 보상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것 같았다. 그러나 미국이라고 특별한 사회일 리는 없다. 미국에서도 누구나 적은 비용으로 많은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사업을 벌이고, 고용주는 고용인에게 지급하는 임금에 비례해 보다 생산적인 노동력을 제공받기를 원한다. 고용주가 중국인에서 미국인으로 바뀌고 임금 수준은 향상되었을지 몰라도 근로환경이나 장씨의 사회적 신분이 절대적으로 바뀐 건 아니라는 뜻이다. 필자는 장씨에게도 이 점을 강조하면서, 영어 실력이 일정수준에 도달하고 모든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을 때까지는 정보의 주요 취득경로인 한인 공동체에 좋지 않은 인상을 줄 필요는 없다고 얘기해주었다.

장씨는 자녀를 대학에 진학시키고 싶어하지만, 필자는 그러자면 한국으로 가는 게 옳았을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그의 아들들은 알파벳을 겨우 이해한 초보적인 수준의 영어실력을 갖고 있다.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 농촌지역에 거주했던 그들은 생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소학교(초등학교) 과정마저 제대로 이수할 수 없었고, 한글조차 낯설어했다. 그런 그들에게 미국의 대학교육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높은 욕망, 낮은 역량

한국에서는 대안학교나 검정고시를 통해서라도 고등교과과정을 마칠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탈북자에게는 대학입학에서 특별입학 기회를 제공함은 물론, 나 홀로 탈북자일 경우에는 일부 생활비까지 제공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영어 문제를 극복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학비를 제공하는 학교도 드물고, 입학 과정에서 한국처럼 특별혜택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직업전문학교과정에 입학하도록 돕는다거나 이를 위해 영어능력 향상을 도울 자원봉사자를 알선하는 것이 전부다.

장씨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모든 일을 점진적으로 해결하길 권유했지만, 가족들은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일단 일정시간 일을 해 수입을 확보하면서 언어를 습득하고 차차 공부를 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권유하자, 점차 필자의 말을 이해하는 듯 보였다. 어떤 태도와 마음가짐으로 현실을 수용할 것인지가 가족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사실을 비로소 체득해나가는 듯했다.

미국에 온 탈북자들을 보면서, 생존원리가 본능적으로 체득돼 있는 남한 사람이나 미국인에 비해 탈북자들의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인식과 대응역량이 현저히 낮음을 실감하곤 한다. 폐쇄적인 사회에서 살다가 온 사람들이 자유주의 사회에 진입하면서 나타내는 첫 번째 공통적인 특징은 ‘자신의 역량에 비례해 욕구를 조절하는 능력의 결여’다. 다시 말해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나 욕구에 비해 지니고 있는 역량이 낮거나 미처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경우 이를 수용하고 관리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살아온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일 것이다.

이는 비단 탈북자뿐 아니라 사회주의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이주해온 사람들, 혹은 저발전국가에서 미국 같은 고도자본주의 사회에 진출하는 모든 이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욕구조절에 실패한 이들은 곧 현실부적응에 빠지고, 이는 사회를 향한 분노나 폭력성 표출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문제가 개인에 한정될 때는 그 영향력이 미미하겠지만, 집단의 힘으로 표출되면 커다란 사회문제로 연결된다.

만약 북한이 급격히 붕괴해 흡수통일이 이뤄질 경우, 그간 억눌려왔던 북한 주민들의 다양한 욕구는 질풍노도처럼 팽창할 것이다. 한국은 과연 그러한 상황에 대비할 만큼 경제 혹은 사회적 역량이 준비되어 있을까. 이는 북한의 변화가 점진적인 방식으로 이뤄지도록 유도하고 관리해야 할 절대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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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덕│한반도평화번영연구소장 www.cyworld.com/hdk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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