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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동반자, 협력… 단어와 수사보다 내실에 주목해야

쏟아지는 ‘외교관계 이름’의 허와 실

전략, 동반자, 협력… 단어와 수사보다 내실에 주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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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은 베트남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다. 인도네시아와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다. 러시아와는‘상호 신뢰하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다. 그럼 러시아보다는 베트남과 더 중요한 관계라는 뜻일까, 혹은 그 반대일까. 국외자에게는 암호나 다름없는 ‘외교관계 이름 붙이기’의 속살을 따져보았다.
전략, 동반자, 협력… 단어와 수사보다 내실에 주목해야

10월21일 베트남을 국빈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왼쪽)과 응우옌민찌엣 베트남 국가주석이 하노이 주석궁에서 정상회담을 갖기 전에 열린 공식 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strategic cooperative partnership)’. 10월21일 베트남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이 응우옌민찌엣 베트남 국가주석과 가진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를 격상하기로 하면서 사용한 용어다. 2001년 설정된 양국의 ‘포괄적 동반자 관계(comprehensive partnership)’를 한 단계 격상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는 미국과 맺은 ‘포괄적 전략적 동맹 관계’ 다음으로 중요한 외교관계를 의미한다”고 밝혔고,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은 “정치, 안보, 경제, 문화, 인적 교류를 포함해 모든 분야에 걸친 진정한 동반자로서 새로운 장을 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은 중국과는 지난해 5월말 기존의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comprehensive cooperative partnership)’를 한 단계 격상해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멕시코, 알제리,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루마니아와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strategic partnership)’를 설정해 두었고, 러시아와는 2004년 ‘상호 신뢰하는 포괄적 동반자 관계(mutually trustful and comprehensive partnership)’를 거쳐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

벌써 헷갈리기 시작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인도와는 ‘평화와 번영을 위한 장기적 협력 동반자 관계(long-term cooperative partnership for peace and prosperity)’, 프랑스나 폴란드와는 ‘미래 지향적(future-oriented)’이라는 표현을 쓰는 동반자 관계다. 특히 프랑스와는 ‘포괄적(comprehensive)’이라는 용어도 함께 쓰고 있어 ‘미래 지향적 포괄적 동반자 관계’다. 쿠웨이트와는 2007년부터 ‘미래 지향적이며 호혜적인 동반자 관계(future-oriented and mutually beneficial partnership)’를 설정해두었고, 이밖에도 호주, 캐나다, 아르헨티나 등과도 각기 다른 용어로 양자관계가 설정돼 있다. 그야말로 현란한 수사의 전시장 같다.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규정하는 용어가 매우 복잡해지는 것은 최근 세계 각국의 외교관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특징이다. 세계화라는 흐름 속에서 국제협력이나 외교활동의 범위가 확대되다보니 국가 간 관계는 더욱 특별한 용어나 형태로 설정되는 것이다. 그 가운데 특히 ‘전략(strategic)’과 ‘동반자(partnership)’라는 말은 가장 출현빈도가 높은 수사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전략’은 무엇이고 ‘동반자’는 무슨 뜻이며, 이러한 관계 설정이 담고 있는 함의는 무엇인가. 전략이나 동반자라는 말을 쓰지 않은 나라와의 관계는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일까. 쏟아지는 용어에는 1위부터 꼴찌까지 중요도의 순위가 매겨져 있는 것일까. 이웃나라 일본은 밀접함이나 중요성에서 어느 국가에 뒤지지 않음에도 특별한 양자관계 규정이 따로 없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혹은 이렇게 가다보면 세계의 모든 나라와 전략적 관계나 동반자 관계가 설정될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야말로 외교적 수사나 말장난에 불과해지는 것은 아닐까.

한국의 국력이 상승하고 국제무대에서의 역할이 증대됨에 따라, 각국과의 관계도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각 국가와 관계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당연히 외교당국의 면밀한 검토가 선행되고 있으리라고 믿지만, 향후 한국의 외교력을 더욱 증대하려면 더욱 정비되고 준비된 ‘관계의 설정’이 필요하다. 먼저 이들 관계에서 사용하는 갖가지 개념에 대한 명확한 정립과 인식이 필요하다.

구분은 있지만 차등은 없다?

‘전략’이라는 말은 본래 군사적인 범주에 속하는 말이다. 전쟁 전반에 관련된 계획과 지도라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전략적’이라는 용어의 사용에는 적(敵)과 아(我)의 존재가 전제된다. 아군 세력의 동조자가 있다면 적을 향한 협력 관계가 이루어질 것이고, 이것이 바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군사적 측면에서 본다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협력을 구축하는 관계’가 전략적 동반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한국과 베트남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협력하는 관계’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즉 현대의 외교관계나 국제관계에서 나타나는 전략의 개념은 과거의 전략 개념과는 다른 면이 있고, 전통적 의미의 전략관계와는 다른 형태로 구동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전략적’이라는 말은 전통적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현실적 인식에 따라’ 혹은 ‘국가 정책목표의 운용상’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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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jykang@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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