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9일 부산 남포동 자갈치시장에서 상인들을 만난 박근혜 후보.
11월 12일 오후 부산역에서 탄 택시가 중앙대로를 타고 남포동으로 향할 때 50대 택시 기사는 ‘복잡하다’는 말로 부산의 민심을 표현했다. 기자가 18대 대선 부산 민심에 대해 물을 때였다. 영도대교가 보일 때쯤 기사는 ‘이 양반 정치에 관심이 많네’하는 눈빛으로 기자를 흘긋 쳐다봤다.
그의 말대로 ‘복잡한 민심’ 탓에 부산·울산·경남(PK)은 18대 대선의 최대 격전지로 부상했다. 1990년 1월 이른바 ‘3당 합당’이후 새누리당 텃밭이던 PK 지역이지만 이곳이 고향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대선 후보로 출마하면서 민심은 출렁이고 있다. 대선 후보들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11월 9일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부산을 찾아 “부산을 동북아 선박금융 중심지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12일 안 후보가 부산대를 찾아 박 후보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진정성을 공격한 것도, 14일 문 후보가 자갈치시장에서 수산업 부흥 정책과 해양수산부 부활 공약을 내놓은 것도 출렁이는 PK 민심을 다잡기 위해서다.
그동안 PK지역은 말 그대로 새누리당 텃밭이었다. 5년 전 17대 대선에서는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56.21%(총 214만2268표, 부산 101만8715표, 울산 27만9891표, 경남 34만3662표)를 얻어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13.04%(49만6907표, 부산 23만6708표, 울산 7만736표, 경남 18만9463표)를 크게 앞섰다. 15대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 53.8%, 김대중 후보 13.67%였고, 16대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 65.33%, 노무현 후보 29.44%였다(표 참조).

14일 부산 발전 공약을 발표하는 문재인 후보와 12일 부산대 강연에 나선 안철수 후보(왼쪽부터).
그런 PK지역이 최근 들어 박 후보 57.3% vs 문 후보 35.3%, 박 후보 53.8% vs 안 후보 40.2%(문화일보 10월30, 31일 조사)로 격차를 좁혔다. 다자대결에서도 마찬가지. 한국갤럽의 8월 넷째 주 지지도 조사에서 박 후보의 PK 지역 지지율은 55%였다. 그러나 11월 첫째 주에 44%로 떨어졌다. 반면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의 합친 지지율은 이 기간 24%에서 41%로 올라섰다.
문제는 과거의 대선에서 이 지역 새누리당 후보가 얻지 못한 표 중 상당 부분을 보수 성향의 제3후보가 흡수했다는사실이다. 15대 대선에선 PK지역에서 국민신당 이인제 후보가 29.99%를, 17대 대선에선 무소속 이회창 후보가 20.12%를 얻어 보수표를 흡수했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선 상당부분이 야권 후보에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새누리당으로서는 뼈아프다. PK지역이 18대 대선의 중심에 선 이유이기도 하다.
기자는 11월 12, 13일 이틀간 18대 대선 PK 지역 민심을 취재했다. PK는 자식을 한 번 더 믿을지, 새 아내를 맞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여전히 새누리당 지지자가 많았지만 예전만큼 견고하지는 않았다.
12일 부산 연제구 연산4동 고분로길 먹자골목. 이곳은 부산시청과 법조타운과 가깝고 금융기관이 밀집해 부산의 중심지로 부상한 곳이다. 다양한 민심이 표출되는 곳이기도 하다.
횟집에서 만난 조철호 씨(56)는 “박 후보는 어려운 시절에 퍼스트레이디를 지냈고, 원칙과 약속을 지키는 정치인”이라며 “내년부터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경기가 더 나빠질 것인데, 이런 때에는 국정경험이 많은 사람이 지도자가 돼야 나라가 안정된다”며 박 후보 지지 이유를 설명했다. 횟집 직원인 50대 여성은 “이젠 여자대통령이 나올 때가 됐다. 그 자체가 정치쇄신”이라며 거들었다.
그러나 문 후보의 ‘법무법인부산’이 입주한 건물에서 일한다는 박모 씨(40)는 “투표권 생기고 나서 지금까지 새누리당 후보를 밀었지만 부정부패와 패거리 문화 외에는 돌아온 게 없었다. 이제는 깨끗하고 국민과 소통하는 사람을 밀어줄 때가 됐다”며 문 후보를 지지했다. 문어 요리 전문점에서 일하는 20대 여성은 안 후보의 소통 능력을 높이 평가했다.
“안 후보의 대학 강의를 봤는데 ‘힘드시죠?’라며 위로해주는 어투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 같은 20대 학생들은 딱딱한 웅변조로 말하는 정치인보다 들어주고 제안하는 정치인이 더 좋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