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3월 26일 북한 연어급 잠수정에서 쏜 어뢰를 맞고 격침된 천안함. 오른쪽은 이란에 수출된 북한의 연어급 잠수정.
암초 충돌설은 해도를 작성하는 국립해양조사원과 주민이 현장에는 배가 부딪힐 암초가 전혀 없다는 것을 확인해줌으로써, 미국 잠수함 충돌설은 미국 잠수함은 전부 핵추진으로 덩치가 커 수심이 얕은 현장에는 접근할 수도 없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써, 피로 파괴설은 폭발이 없어야 하는데 사고 시각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지진파를 포착하고 백령도 초병이 폭발음을 듣고 물기둥을 목격했다고 진술함으로써, 내부 폭발은 천안함에 탑재한 어뢰와 미사일·탄약·연료통·엔진 등이 폭발하지 않고 인양됨으로써, 자작극과 MK-6 폭뢰 폭발설은 북한제 CHT-02D 어뢰의 잔해가 수거됨으로써 모두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천안함 사건을 둘러싼 진짜 미스터리는 이것이 아니다. 이 사건에서 의문을 품었어야 할 부분은 ‘왜 기습을 허용했느냐’는 점이다. 천안함 사건에는 ‘정보의 실패’ 가 숨어 있다. 정보의 실패가 ‘경계의 실패’와 ‘작전의 실패’를 낳았다. 그러나 이 사건을 조사한 국제민군합동조사단과 감사원은 이를 지적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경계와 작전의 실패는 현상으로 드러나지만 정보의 실패는 현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생략된 ‘정보의 실패’조사
북한 관련 사건이 발생하면 기무사령부, 정보사령부, 국가정보원, 경찰(보안)은 합동심문조를 구성해 철저히 조사한다. 이들은 정보기관인지라 정보의 실패가 없었는지부터 조사한다. 그리고 합동참모본부의 전비태세검열실이 정보와 작전을 연결한 전비태세에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본다. 천안함 사건 후 정보기관들은 이러한 점을 조사하지 않았다. ‘왜 기습을 허용했는가’에 대한 조사가 생략된 것이다.
정보의 세계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고,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라(Think the unthinkable, Imagine the unimaginable)’는 말이 회자된다. 천안함 사건은 우리 군 정보기관이 이 격언의 교훈을 무시한 결과가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한국군 정보기관이 당면한 또 하나의 문제점은 ‘정치 시녀화’ 현상이다. 객관적으로 정보를 생산 판단해주는 게 아니라 상부가 원하는 정보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상부가 ‘이러한 쪽으로 정보 판단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정보기관에 압박으로 작용한다. 이른바 ‘wishful thinking(희망적 사고)’이다. 정보기관이 이에 동조해 그러한 쪽으로 정보 판단을 해주면, 정보세계에서는 금기(禁忌)인‘gro-up think(집단사고)’ 현상이 일어난다. 천안함 사건에는 wishful thinking과 group think 현상이 숨어 있다.
신동아는 천안함 사건 속에 숨어 있는 ‘불편한 진실’을 지적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는 천안함 46용사가 국가를 위해 헌신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해왔다. 그리고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음은 그의 설명을 토대로 재구성한 천안함 사건의 전말이다.
천안함 사건 발생 4개월 보름 전인 2009년 11월 10일 대청해전이 벌어졌다. 일부 언론은 대청해전을 등산곶의 북한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와 선제 사격하자 우리 함정이 다수로 대응해 대파시킨 사건으로 보도했다. 교전한 함정 수로만 따지면 1대 4의 함정 싸움이 벌어진 것이 맞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4대 4의 싸움이 될 수도 있었다. 우리가 전광석화처럼 해치웠기에 인근에 있던 북한 함정 3척은 뛰어들지 못했다.
서해에서 긴장이 높아지는 것은 북한 경비정이 교대할 때다. 북한 해군은 매주 한 번씩 해주기지에서 5척의 경비정을 출동시킨다. 그리고 기린도 월래도 등산곶 등 다섯 군데를 지나며 한 척씩 떨어뜨리고, 작전을 해온 경비정은 합세시켜 이동한다. 교대가 끝나면 임무를 마친 5척이 함께 해주기지로 귀환하다. 경비교대를 할 때 북한 함정 세력은 일시적으로 커지는 것이다. 잘만 기동하면 특정 수역에서 10척이 모여 기습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