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영 셋넷학교 교장은 “탈북민은 우리와 함께 세계로 나아가야 할 동포”라고 강조했다.
“아르바이트할 때 새터민이라고 하면 안 받아준대요. 담당형사가 따라다니니까 회사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하고요. 새터민은 안 받지만 조선족은 받아들인대요.”
“일하면서 북한에서 왔다고 한 번도 말 안 했어요. 중국 교포라고 그러죠. 스트레스 받기 싫어서. 사람들이 이북 새끼, 북한이 포를 쏘고 어쩐단다, 이런 말을 하면 속으로 뜨끔해요.”
“지원금을 타려면 회사에 서류를 신청해야 해요. 그 순간 회사에서 납작해지는 거죠. 북한 사람 아니라고 속였는데, 딱 정체가 밝혀지면 회사를 더는 못 다니는 거죠.”
그들에게 한국의 자본주의 경쟁체제는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가시밭길이다. 신용불량이 무엇인지, 그것이 어떤 일인지 모르는 이들에게 수백만 원의 정착금과 신용카드는 마법의 램프처럼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하지만 돌아오는 대가는 너무나도 혹독하다. 박상영 셋넷학교 교장은 이렇게 말했다.
“신용카드를 함부로 긁으면 왜 안 되는지, 다른 사람 보증을 대신 서주거나 사채를 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들은 알지 못합니다. 하도 답답해서 남한에서 ‘신용불량자’란 북한에서 ‘사상범’과 같은 것이라고 설명해줬죠. 그렇게 얘기하니 어렴풋이 이해하는 듯하더군요.”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빈곤층으로 전락하거나 범죄자가 되는 탈북자가 많은 것은 정착지원금이 부족한 탓은 결코 아니라는 게 박 교장의 생각이다. 설령 지금보다 더 많은 지원금이 지급된다 해도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할지, 미래를 위해 어떻게 투자할지 감조차 잡기 어려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 비추는 거울”
박 교장은 탈북자들이 겪는 문제는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순도 높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탈북자가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여과 없이 비춰주는 거울과 같다는 것이다.
박 교장은 또 중국에서의 경험 또한 탈북자들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부연했다. 중국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넘어오는 과도기에 있는 터라 돈만 벌면 된다는 식의 사고가 팽배해 있는데, 탈북자들은 그것이 자본주의인 양 착각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탈북자들은 잘못된 자본주의를 복사기처럼 받아들입니다. 음식물에 장난을 친다거나 하는 비상식적 일이 중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굶주림과 가난에 지쳐 중국으로 넘어간 탈북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고 착각합니다. ‘아, 돈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벌어야 하는 거구나’ 하는 거죠. 사정이 이런데 자본주의의 우월성을 역설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직업교육으로 시간을 채우는 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박 교장은 탈북자 수준에 맞지 않는 대학특례입학제도 또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탈북 청소년 대부분이 대학 진학을 바랍니다. 한국에서 살아가려면 대학은 꼭 나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나원에서부터 가지게 됐다더군요.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이 죄다 고학력자다보니 직업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이해하고 고민하기보다 자신이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따라 하려는 경향이 생기는 겁니다. 대학만 나오면 자신이 꿈꾸던 화려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 착각하는 거죠. 탈북자들은 특례입학제도 덕분에 서울 유수의 대학을 거의 무료로 다닐 수 있으니 너도나도 대학부터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대학이라는 곳은 남한 아이들이 십수 년 동안 휴일은 고사하고 명절까지 반납해가며 피 터지게 공부해도 들어갈 수 있을까 말까 한 이른바 명문대학입니다. 별다른 준비 없이 덜컥 특례로 입학한 탈북 청소년이 따라갈 학업 수준이 아닌 겁니다.”
서울만 고집하는 탈북자들
지난 10년간 120명이 넘는 탈북청소년이 셋넷학교를 졸업했고, 그중 6명을 제외한 아이들이 모두 대학에 입학했다고 한다. 셋넷학교가 정한 교육 과정을 모두 이수하지 않고 잠시 스쳐 지나간 아이들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훨씬 많아진다. 아이들에게 대학 진학 대신 현실적 대안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이 막무가내이거나 부모와 함께 탈북한 가정의 경우는 아이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부모가 대학 입학을 강하게 원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