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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노선’의 기수 鄭나라, 후계자 분규로 무너지다

춘추전국의 인간관계와 전략전술

‘자주노선’의 기수 鄭나라, 후계자 분규로 무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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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인 정(鄭)나라의 수장 장공(莊公)은 왕가의 측근임에도 동주(東周) 왕실에 맞서 자주외교를 펼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뛰어난 정치가적 자질을 보이던 장공 역시 자신과잉증에 사로잡혀 후계문제를 매듭짓지 못한 결과 그의 사후 정나라의 운명은 신임했던 측근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만다. 권력의 비정한 속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자주노선’의 기수 鄭나라, 후계자 분규로 무너지다
천도(B.C. 770) 후 동주(東周) 왕실의 권위를 거듭 추락시킨 것은 제후들의 ‘자주노선’이다. 그 선구자는 제후국인 정(鄭)나라의 장공(莊公)이었다. 귀족 서열을 따지는 위계로 보면, 세 번째인 백작(伯爵)에 해당했으니 왕실과 퍽 가까운 혈통이었다.

당시 귀족의 작위는 공·후·백·자·남(公侯伯子男)의 등급으로 구분했는데, 후세에 일제가 이를 모방하기도 했다. 얼른 보아 왕가에서 분가한 제후국이 감히 왕가, 즉 종가에 맞서 자주노선을 추구했다니 퍽 고약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나, 비정한 권력의 세계는 원래 그런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군주 혹은 독재자, 개혁자는 신변 안전을 위해 우선 측근부터 경계해야 한다.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는 야당세력에 대한 사찰은 그 다음의 일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부왕인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는 자신의 측근 파우사니아스에게 시해당했다.

현대에 와서도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기가 직접 중용한 동향이자 동문·동지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게 저격당해 파란 많은 이승을 하직했다. 부언한다면, 경호 책임자를 고를 때는 절대로 권세를 즐기거나 오만하거나 질투심이 매섭거나 주의력이 산만한 자를 기용하지 말아야 한다.



정나라 장공의 부친은 무공(武公)이고, 모친은 무강(武姜)으로 장공은 그 장남이다. 동생은 공숙단(共叔丹)이라 불렸다. 그런데 장공은 거꾸로 태어난 아이였다. 발이 머리보다 먼저 나왔으니 모친의 산고가 대단했던 모양이다. 반면 아우는 순산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 무강은 장공을 몹시 싫어했으며, 공숙단을 편애했다. 자고로 형제 중 한쪽을 편애하면 어김없이 그들 사이에 불화와 투쟁이 초래되게 마련이다.

편애가 빚은 형제싸움의 비극

나아가 무강은 공숙단을 태자로 세우려 무공에게 자주 진언했으나, 무공이 들어주지 않았다. 무공이 사망하자 종법대로 장공이 즉위했다. 그러자 무강이 장공에 대해, 아우 단에게 제(制)라는 요지를 영토로 떼어주라고 강권했다. 장공은 거절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제 지방은 군사적 요충지입니다. 그 점이 화를 불러 이전에 제를 수비하던 혁숙이 적군의 집중공격을 받고 전사했지요. 다른 고을이라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수비 시설이 견고하다는 경성(京城)을 내주시오.”

이 대화에서 젊은 장공의 두뇌활동이 보통 이상이며 이에 맞서 거절의 이유를 역이용하는 무강도 비상한 여성임을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장공은 모친의 요구를 계속 거절할 수 없어서 아우 단을 경성의 영주로 삼았다. 그러자 대부(大夫)인 제중(祭仲)이 장공에게 간하였다.

“수도가 아닌 고을임에도 성벽의 길이가 300장(丈)을 넘으면 국가에 해롭습니다. 종래의 제도를 볼 적에 성벽이 아무리 길다 해도 수도의 3분의 1을 초과해서는 안 됩니다. 보통 고을이라면 5분의 1, 작은 고을이면 9분의 1로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경성의 성벽은 유별나게 길어서 고래의 제도에 위반합니다. 그대로 방치하다간 후회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모친의 각별한 소망이시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모후님의 바람엔 한계가 없습니다. 이쯤에서 막아야합니다. 모두 들어주시면 안 됩니다. 자칫하면 나중엔 손을 쓸 수 없게 됩니다. 잡초는 발호하고 나면 제거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주공의 귀한 동생에게 과오의 기회를 제공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다지 걱정할 것 없겠지. 좋지 못한 행위를 꾸미는 놈은 반드시 자멸하게 마련일세. 좀더 두고 봅시다.”

그러는 동안 공숙단은 정나라 서부와 북부의 인민들로 하여금 장공에게 등을 돌리고 자기에게 귀순하게 만들었다. 대부이며 공자인 려(呂)가 장공을 꾸짖듯이 간하였다.

“두 사람의 주공을 섬겨야 한다면 인민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대체 어쩔 셈입니까. 만약 아우님에게 양보하실 생각이라면 저도 그쪽으로 귀순하겠습니다. 양보가 아니라면 아무쪼록 화근을 뿌리뽑아야 할 것입니다. 인민이 두 마음을 품지 않도록 조치하셔야 합니다.”

“최후 수단에 호소할 필요는 없겠지. 좀더 두고 보면 그쪽에서 스스로 화난을 뒤집어쓸거야.”

드디어 단은 형과의 공유지마저 완전히 자신의 영지로 전변시키는 등 영토확장에 동분서주했다. 자봉(子封·공자 려의 자(字))이 거듭 말하였다.

“이제 손써야 할 시기가 도래한 것 같습니다. 그의 영지가 넓어지면 세력도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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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운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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