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호

‘동교동 분열’ 이후 민주당 권력지도

  • 천영식·문화일보 정치부 기자

    입력2006-08-08 11:4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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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엇보다 큰 변화는 ‘한화갑 대 이인제’ ‘한화갑 대 권노갑’의 대립구도가 굳어졌다는 점이다. 차기를 꿈꾸는 여타 후보들도 이 구도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조망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민 주당 전당대회가 열린 지난 8월30일. 새로 임명된 최고위원들이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서 권노갑(權魯甲) 최고위원은 “앞으로 당과 정권 재창출의 중심에 서겠다”고 깜짝발언을 했다.

    ‘중심에 선다는 게 무슨 의미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권최고위원은 “서영훈(徐英勳)대표를 제외하면 내가 가장 연장자로서 당에서 논의할 때 주된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라고 당연한 표정으로 강조했다.

    장내는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이날 권위원의 발언은 앞으로 닥칠 민주당의 험로를 예고하는 듯했다. 경선 1위는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이 차지했지만 당의 실질적인 내부조정역은 자신이 맡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물론 이날 발언은 자신감의 반영이라기보다 초조감의 반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스스로 당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강박감이 작용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어찌됐든 현장에 있던 당직자들은 “앞으로 만만치 않겠다”는 반응을 이구동성으로 쏟아냈다.

    드러난 兩甲갈등

    민주당은 실제 전당대회 이후 적잖은 물밑변화를 겪고 있다. 무엇보다 권노갑위원과 한화갑위원 사이의 ‘양갑갈등’이 기정사실화했고 대권을 꿈꾸는 주요 세력들간에 권력재편 움직임이 요동을 치고 있다.



    물론 외향적으론 한화갑위원의 압도적 1위, 이인제(李仁濟)위원의 당내 착근 성공, 김중권(金重權)·정동영(鄭東泳)위원의 선전, 권노갑위원의 공개정치무대 복귀 등이 이번 전당대회의 주요 특징으로 꼽힌다. 그렇지만 전당대회 이후 역학관계의 가장 큰 변화는 ‘한화갑 대 이인제’, ‘한화갑 대 권노갑’의 대립구도가 굳어졌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향후 전개될 여권 세력재편의 핵심 포인트다.

    차기를 꿈꾸는 여타 후보들도 이 구도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조망해야 하는 형국이다. 단적으로 이인제위원을 반대하는 여타 세력이 한위원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노무현(盧武鉉)해양수산부장관이 경선과정에 은밀히 한위원을 지원했고 김근태(金槿泰) 김중권 정동영위원 등은 한위원의 직간접적인 지원을 받았다. 한위원은 ‘호남주자배제는 역차별’이라는 논리를 들고 나와 자신은 물론 고건(高建)서울시장에게도 대권행의 숨통을 틔워주었다.

    한위원이 이번 경선을 통해 이인제위원과는 결별의 수순을 밟았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위원 스스로 경선과정에 문제를 제기한 ‘이인제 불가론’은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총재보다는 당내 한위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됐다. 이위원과 한위원은 경선 때 각각 ‘이인제 불가론’과 ‘한화갑 비토론’을 들고 감정싸움을 벌였다. ‘이인제 불가론’은 신한국당경선에 불복해 뛰쳐나온데다 영남지역이 기피하는 이인제위원으로는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다는 논리다. ‘한화갑 비토론’은 호남출신인 한위원이 최고득표를 하게 되면 민주당이 동교동당으로 전락, 정권재창출에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논리다.

    각각 상대방이 부각돼서는 안 될 이유를 밝히며 서로를 공격하는 논리인데 이위원과 한위원은 각각 상대방에서 이런 논리를 확대재생산하며 자신을 견제하고 있다는 불만을 터뜨린 것이다.

    한위원은 “대권 당권 얘기를 하지 말라”며 이위원을 궁지로 몰았다. 이 발언에는 단순히 대권 당권을 거론할 시기가 아니라는 측면보다 실제 이위원이 대권주자가 되기 힘들 것이라는 깊은 회의론이 숨어 있다는 분석이다.

    한화갑·이인제의 갈등

    물론 한위원이 이위원의 대권후보 자격을 두고 직접 시비를 건 적은 없다. 다만 대권 얘기 자체를 하지 말라는 점과 이위원도 여러 명의 대권후보 가운데 한 명일 뿐이라는 점이 공개된 생각의 전부다. 그렇지만 ‘이인제 대세론’을 밀어붙이려는 이위원측으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동교동 ‘장형’인 권노갑위원까지 자신에게 가세했는데 한위원이 거의 노골적으로 반대를 표명하는 상황을 이위원은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위원측은 누차 “대권가도의 가장 큰 걸림돌이 한위원”이라며 한위원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실제 한위원이 경선과정에 제기한 ‘영남공조’와 ‘개혁공조’라는 두 틀은 이위원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위원의 힘이 커지면 커질수록 한위원의 누르는 힘도 상대적으로 커지는 작용-반작용 현상을 낳고 있다. 경선을 거치면서 한위원과 이위원의 대립은 공공연한 사실로 등장했다.

    한위원의 향후 욕망이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일단 한위원 주변 인사들은 “한위원이 대권에도 도전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뜻을 피력하고 있다. ‘호남주자 배제는 역차별’이라는 논리가 하나의 증거로 제시된다. 항간에는 96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당선을 예언한 현불사 설송스님이 한위원의 차기가능성을 암시했다는 소문까지 나돌고 있다. 한위원은 경선과정에도 설송스님뿐 아니라 많은 승려들의 후원을 받았다.

    그렇지만 한위원이 스스로 대권도전의사를 피력한 적은 없다. 한위원의 궁극적 목적이 대권인지 당권인지 정확히 구분할 순 없지만 현재로선 당권이라고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또 정-부통령제 개헌을 통해 부통령직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측근들은 대권이든 당권이든 부통령이든 어떠한 열매를 따기 위해서라도 대권도전설이 필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와 같은 한위원의 행보는 이인제위원뿐 아니라 권노갑위원과도 필연적인 충돌을 예고하고 있다. 당권장악과 킹메이커 역에 뜻을 두고 있는 권위원이니만큼 한위원을 최대 적수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경선에서 한위원의 압도적 1위는 그에게 힘이 쏠리는 현상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경선 후 한위원의 행보는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최고위원회의에서도 항상 서영훈대표 옆자리에 앉아 힘을 과시하고 있어 자신이 확보한 당내위상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최소한 당내에서 한위원을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나마 있다면 권위원이 유일하다는 지적이다.

    권위원과 한위원은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항상 “동교동계 갈등은 없다”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경선이 끝난 뒤 따로 만나 화합을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사석으로 돌아가면 서로에게 못마땅한 감정을 털어놓는다. 한위원이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을 쓰며 권위원의 경선개입을 비난하자 권위원은 “가만두지 않겠다”며 발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양쪽 진영에서는 제각기 양갑의 흥분을 뜯어말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위원 진영에서는 주로 문희상(文喜相)의원이, 권위원 진영에서는 이훈평(李訓平)의원이 그 일을 맡았다. 선거를 치르다 보니 과열된 측면도 있겠지만 한위원은 “동교동 식구로 도와주지는 못할지언정 득표를 방해하고 있다”고 못마땅해했으며 권위원은 “어떻게 나에게 저럴 수 있나”며 서운해했다는 얘기다.

    두 사람의 충돌은 역할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킹메이커를 지향하고 당권장악에 1차적 목적을 둔 두 사람은 서로 경쟁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권위원은 “다음 정권 재창출 때까지 킹메이커는 내가 맡는다. 한위원은 앞으로 계속 정치를 할 사람 아닌가”며 한위원의 양보를 요구하지만 한위원도 갈 길이 멀고 바쁜 만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양갑과 한-이위원 대립 등 민주당의 세력재편에 대한 김대중대통령의 생각은 어떨까. 김대통령이 경선과정에 결과적으로 한위원의 1위 득표를 간접 지원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정황 증거로 드러나 있다. “경선이 대권 당권과 관계없다”고 경선 가이드라인을 정했던 김대통령은 선거일 3일을 앞두고 민주당 당직자들을 모아놓고 다시 한 번 그 말을 강조했다. 이위원이 ‘충청도대통령론’을 내세우며 추격전을 전개, 1위를 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가 팽배할 때였다.

    당시 김대통령의 발언은 “4인 연기명 투표 중 대권후보에게 1표는 찍어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권노갑-이인제 연대 라인에 표를 찍는 쪽으로 흔들리던 다수의 당내 대의원들에게 ‘냉정’을 되찾게 하는 일종의 지침으로 작용했다. 물론 그렇다면 김대통령이 권-이위원 유착관계 자체는 왜 막지 않았느냐는 의문이 남게 된다. 이는 권위원의 위상과 연계돼 있는 문제다.

    민주당 관계자는 “권위원은 이미 일정 정도 김대통령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대통령의 의중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겠지만 100% 김대통령의 지시대로만 움직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 김대통령이 권위원의 행동을 방조한 것은 노골적으로 이위원을 배제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 않으려는 배려였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중요한 것은 김대통령이 한위원에게 전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것을 꺼린다는 점이다. 김대통령은 한위원이 향후 동교동 결속에서 중요한 몫을 하기를 기대하지만 전적으로 무게가 실려 ‘오버’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우려한다는 설명이다. 이는 하부권력을 1인에게 집중시키지 않는 김대통령 특유의 인사스타일과 관련이 있다. 김대통령은 권위원을 지명직 최고위원에 임명함으로써 권위원을 자신의 통제 아래 두는 동시에 한위원을 견제하는, 일거양득의 카드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권위원의 활동공간이 조금은 넓어진다. 권위원은 경선 후 부쩍 서두르는 눈치다.

    굳어진 ‘이인제 비토세력’

    경선 후 양갑 대립을 우려하던 당내에서는 ‘한화갑연대’ 대(對) ‘권노갑연대’가 절묘한 황금분할을 이루고 있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사람이 많다. 권노갑-이인제-박상천-정대철위원이 한축이고 한화갑-김중권-정동영-김근태위원이 또 다른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박상천위원은 권위원 계보가 아니라며 불쾌해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힘의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는 듯해도 중장기적으로 한위원에게 힘이 쏠리는 대세를 막지는 못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당내에서는 권위원의 반대에도 한위원이 1위 당선에 성공했다는 점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양갑대결에서 한위원이 승리한 것을 의미한다. 양갑이 공개적으로 정면충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위원은 이미 정·관·재계에서 ‘당권을 장악한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 권위원은 힘의 한계를 절감할수록 이인제위원과 결속을 강화할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한화갑 대 권노갑’의 대립은 ‘한화갑 대 이인제’의 대립으로 동전의 양면같이 연결된다.

    양갑의 갈등이 권력변화의 시발점이라면 이인제위원의 행보는 태풍의 핵과 같은 잠재력을 갖고 있다. 경선 후 당내에서는 이인제위원의 2위 당선이 실패냐 성공이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거의 빈털터리로 민주당에 입당, 경선에서 2위까지 한 것은 대성공이라는 분석이 있는 반면 ‘나가지 않는 편이 좋았다’는 혹평도 있다. 이위원이 경선에서 실패했다는 논리는 경선을 통해 이인제 비토세력이 확실히 자리잡게 됐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위원은 이번 경선에서 사실상 꺼낼 수 있는 카드를 대부분 내보였다. 이회창총재와 맞붙을 수 있는 민주당의 유일 후보는 이인제뿐이라는 ‘이인제 대세론’이 그것이다. 청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위원은 대권론을 내세워 바람몰이를 시도했다.

    물론 이위원측 일각에서는 일단 경선결과가 성공적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득표력을 조금 더 끌어올려 한위원과 격차를 줄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나쁜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경선 후 닥친 이위원의 모친상에 6000여 명의 조문객이 다녀간 것도 경선을 통해 당내에 자리잡은 ‘유력 대권주자 이인제’의 위상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하지만 44%의 득표율은 뒤집어 해석하면 나머지 56%의 대의원이 이위원의 대권주자 가능성에 회의적 시각을 표출한 것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이인제를 찍으면 안 된다’는 논의가 공개적으로 벌어지고 이들이 나름의 세를 형성한 것은 이위원에게 커다란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당내에서는 97년 대선 당시의 투표인수를 분석하는 사람이 많다. 충청에서 투표한 유권자는 충남북을 포함해 250만명에 불과한데 TK(대구-경북)지역에서는 290만명이 투표했다. 호남지역은 330만명인 데 비해 PK(부산-경남)지역에서는 430만명이 투표에 참여했다. 영남지역의 협조 없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상식적인’ 분석이 또다시 제기되는 이유는 영남에서 제기되는 ‘비(非)이인제’정서 때문이다. 이번 경선은 사실상 ‘이인제 비토세력’의 존재를 확인한 셈이라는 지적이다.

    이위원을 반대하는 세력은 끊임없이 ‘제3후보’를 포함한 대안을 모색할 것이며 이위원의 입지를 어렵게 만들 것이란 분석이다. 이위원이 경선에 출마하지 않았다면 ‘이인제 불가론’이 공개점화되지도 않았으며 국민의 정부 개혁정책의 성공 여부에 따라 대선지형이 바뀔 여지가 남아 있었으나 경선참여로 이위원이 첨예한 논란의 대상이 돼버렸다는 평가다.

    이위원의 경선출마가 성공인지 실패인지의 논란은 상대적으로 영남권 출신인 노무현해양수산부장관의 입지와 비교된다. 노장관은 이번 경선에 출마하지 않았지만 반사적 이익을 얻었다고 분석되고 있다. 이위원이 진흙탕 싸움을 통해 겨우 40%대의 지지를 끌어모으고 50% 이상의 대의원 표심을 잡지 못한 채 어려워하고 있는 반면 노장관은 입각으로 새로운 날개를 달았다. 노장관의 한 측근은 “입각하지 않았더라도 최고위원 경선은 나가지 않겠다는 방침을 확고히 세우고 있었다”며 “2002년까지 시간이 많은데 괜히 대권싸움에 끼어드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고 결과적으로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위원이 대권후보 가운데 노장관과 김근태위원을 선호하고 있다는 얘기는 잘 알려져 있다.

    노장관은 동서화합과 당선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무기를 갖고 막판에 대선후보로 대시하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다. 노장관에 대한 비토세력도 존재하겠지만 첨예한 전투장에서 비켜 서 있는 관계로 아직 공개 점화는 되지 않고 있다. 노장관의 가능성은 미지수로 남아 있으며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는 게 노장관측 분석이다.

    노장관측은 특히 ‘경선이 대권 당권과 관계없다’는 김대통령의 발언이 있기 전 가장 먼저 그것을 주장하며 경선불출마를 선언했던 사람이 노장관이었음을 들어 “지금은 차곡차곡 점수를 따는 게 중요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반면 노장관과 함께 개혁적 후보로 지목돼오던 김근태위원은 이번 경선을 통해 다소 의기소침해진 상태다. 정동영위원에 뒤져 6위로 당선됨으로써 언론에도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김위원은 경선에서 나타난 최대단점이 대중성과 호소력의 부족이라고 판단,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김위원측은 “경선을 통해 오히려 현재의 처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며 “집권후반기 개혁의 중요성이 부각될수록 김위원의 진가가 드러나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여권의 잠재적 후보군으로 지목되는 이한동(李漢東)국무총리, 고건 서울시장, 무소속 정몽준(鄭夢準)의원 등은 상대적으로 갈 길이 바빠졌다. 이번 경선이 대권과 관계없다는 원칙이 강조되면서 이들의 입지는 여전히 살아 있다. 이총리와 고시장은 국정수행능력과 행정경험을 과시, 대권후보군으로 착근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여권의 관계자는 “이총리와 고시장이 여전히 대권후보군의 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면서도 “이들은 수동적인 정치를 해왔다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무소속 정의원은 한때 민주당 조기입당설이 있었으나 현재는 잠복해 있는 상황이다. 정의원은 월드컵 열기가 재점화될 때 다시 한 번 주목을 받으며 입당여부가 부각될 것으로 보인다.

    김중권·정동영 향배도 주목

    이번 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킨 김중권·정동영위원의 움직임도 향후 세력재편과정에 주목을 받을 것이다. 김위원은 이인제위원과 불과 1%포인트 차로 3위에 당선된 결과에 무척 고무돼 있다. 경선시절 합동유세에서 “민주당이 정권재창출을 하려면 나를 밟고 나아가라”고 외친 연설은 감동적이었던 것으로 평가받았다. 민주당에 영남주자가 필요하다는 논리가 힘을 얻게 되면 김위원은 본격적으로 대선경쟁에 뛰어들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이를 위해 서울지역에서 보궐선거가 있으면 뛰어든다는 방침이다.

    정동영위원은 아직까지 차차기를 노릴 것이란 분석이 많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정위원이 차기경쟁에도 무조건 뛰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경선에서 명연설과 40대기수론으로 바람을 일으켰듯 차기경쟁이 벌어질 때 또 한 번의 바람몰이가 가능할 것이라는 낙관을 하고 있다. 또 실패하더라도 차기경쟁에 뛰어드는 것이 무조건 이로운 상황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역시 민주당의 세력재편에는 김대통령의 의중이 제일 중요하다. 김대통령은 2002년 초에 차기후보를 경선으로 뽑겠다는 방침을 여러 번 천명한 바 있다. 이는 거꾸로 대권을 희망하는 주자들이 2001년 한 해 동안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정국인식을 낳고 있다.

    김대통령은 국민의 정부 성공여부가 차기 재집권의 유일한 길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대권후보들의 독자행동을 제어해 나갈 것이다. 하지만 뿜어올라오는 대선열기와 권력욕을 모두 제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권 당권을 향한 열기는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오르며 민주당을 달구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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