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호

“나는 한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중국의 로버트 김”

對北 공작원 첩보활동 돕다 간첩죄 복역중인 조선족 최모씨

  • 글: 성기영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3-11-25 19: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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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업가로 위장한 채 중국에서 첩보 활동을 벌이던 특수 공작원 한 명이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됐다.
    • 이 사건은 정부간 물밑 협상 끝에 이 공작원이 석방됨으로써 ‘없었던 일’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공작원을 도와 활동했던 조선족 사업가 한 명은 간첩죄로 체포돼 현재까지도 복역중이다. ‘중국판 로버트 김’이 돼버린 이 조선족 사업가에 대해 군도 정보기관도 모두 입을 닫고 있다.
    “나는 한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중국의 로버트 김”

    중국을 무대로 활동하던 특수임무 공작원의 체포는 우리 정보당국에 큰 충격을 던졌다.

    지난해 8월 중순, 중국 베이징(北京) 북쪽 야윈춘(亞運村)에 있는 한 고급 식당. 몰려든 손님들로 종업원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식당 한쪽 구석방에서 40대 후반의 남자 두명이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열심히 상의하고 있었다. 비밀스런 눈빛을 주고받는 이들이 앉은 테이블 위에는 몇 가지 서류뭉치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러나 워낙 많은 손님이 몰려든 탓에 식당 안에서 이들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시아 선수촌’을 뜻하는 야윈춘(亞運村)은 이름 그대로 지난 1990년 아시안게임을 치렀던 곳이고 오는 2008년 올림픽을 치를 스타디움이 들어설 예정지다. 베이징 시내에서도 고급 주택단지에 속하는 곳으로 한국의 주재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다. 그런 만큼 한국인들에게도 익숙한 지역이다.

    사건은 두 남자가 식사를 끝낼 무렵 터졌다. 사복을 입은 중국 공안요원들이 들이닥쳐 두 사람을 체포하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서류뭉치를 한 장도 남기지 않고 압수해 가버린 것. 두 사람은 반항해볼 여유도 없이 중국 공안요원들에게 압송됐다.

    위 상황은 이 두 사람이 체포될 당시의 상황을 가상으로 꾸며본 것이다. 당시의 정황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 지 며칠후 두 사람의 신원이 확인됐다. 중국 공안당국에 체포된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한국인 현역 영관장교, 또 한 사람은 이 영관장교를 은밀히 도우며 활동해온 조선족 기업인 최모씨였다.

    두 사람에게는 그동안 중국 정부와 정보당국이 확보한 북한 관련 정보뿐 아니라 중국의 군사정보를 빼냈다는 간첩 혐의가 적용됐다. 한국의 현역 영관장교가 사업가로 신분을 위장한 채 조선족 최모씨를 통해 중국 국가안전부(우리의 국가정보원에 해당) 등 정보기관의 핵심 관계자들과 접촉한 뒤 최근 북한군 이동 경로 등 북한의 핵심 군사정보를 여러 차례 빼내왔다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으로 중국 베이징을 무대로 은밀하게 활동하던 우리 특수 공작원의 실체가 드러난 것은 물론, 그를 돕기 위해 신분을 감추고 활동해온 조선족 정보원까지 한꺼번에 노출되고 말았다.

    신분 드러난 특수공작원

    중국 공안에 검거된 한국인 현역 장교는 국방부 정보본부 산하 K중령. K중령은 지난 1995년경부터 베이징과 상하이(上海) 등을 무대로 대북 정보수집 및 공작 활동을 벌여온, 특수공작원이었다. 이 분야에서는 베테랑으로 꼽히는 인물로, 중국 내 활동을 마치고 귀국한 뒤에도 현지 활동 능력을 인정받아 다시 몇 차례 중국 근무에 나선 바 있다. 그 정도의 능력을 인정받고 있던 인물이었기에 K중령이 상대국 정부에 전격체포된 데 따른 우리 정보당국의 충격은 더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우리 정보당국의 해외 첩보활동에 치명적 오점을 남긴 이 사건은 정보기관 내부에만 소리소문없이 알려졌을 뿐 사건 발생 1년이 지나도록 외부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체포되자마자 수감된 K중령은 그 후 우리 정보당국과 중국측의 물밑 접촉 끝에 지난해말 석방돼 한국으로 무사 귀환했기 때문이다. K중령의 체포 및 구금 사실을 확인해 준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K중령이 3~4개월 복역한 뒤 석방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K중령은 국내 귀환 후 최근 대령 진급이 확정돼 내년 진급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렇다면 K중령과 함께 체포된 또 한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까. K중령을 도와 북한군 관련 정보를 빼내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최모씨는 한중 양국간 물밑 협상에서 배제된 채 중국 법정으로 넘겨졌다. 그에게도 역시 간첩 혐의가 적용됐다. 중국내 복수의 정보 소식통은 “최씨가 중국 법정에서 5년형을 받고 현재 베이징 시내 한 감옥에서 수감생활중”이라고 전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그를 통해 북한 관련 핵심정보만 빼내고 그의 신병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현재 최씨의 소재나 근황은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최씨는 미국의 군사기밀을 한국대사관 무관에게 제공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7년째 복역중인 로버트 김과 똑같은 신세가 돼버린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사건을 접한 관계자들이 이를 두고 ‘중국판 로버트 김 사건’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로버트 김과 최모씨가 다른 점이 있다면 로버트 김은 면회와 접견이 자유로운 미국 펜실베이니아의 앨런우드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는 반면 최씨는 면회와 접견이 일절 통제된, 현재로서는 소재를 알 수 없는 베이징의 한 감옥에 수감돼 있다는 것이다.

    K중령 사건을 확인해준 정보당국 역시 최씨의 수감 사실에 대해 알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반적으로 정보활동에 협조해 온 상대국 관계자의 신병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충분한 경제적 보상을 하거나 해당국 정보기관이 나서 가족들만이라도 보호한다. 그러나 최씨의 경우 현재로서는 이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블랙’과 ‘화이트’

    제3국에서 대북 첩보 활동을 벌이는 특수요원들은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우선 외교관 여권을 갖고 현지 공관을 무대로 활동하는 국정원 소속 해외공작요원들이 있다. 이들은 외교관의 지위를 부여받고 있기는 하지만 상대국과의 ‘선린우호(善隣友好)’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외교적’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국에서 접할 수 있는 군사정보나 첨단기술 관련 동향 등을 수집하는 ‘정보원’의 역할을 한다. 외교관 신분으로 위장한 정보요원인 셈이다. 이를 ‘공식 위장(official cover)’이라 표현하기도 하고 정보기관들 사이에서는 이들을 ‘화이트’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에 반대되는 개념이 이른바 ‘블랙’이다. ‘블랙’들은 외교관 신분을 갖지 않고 현지 공관에도 몸담고 있지 않은 비공식 정보요원들이다. 국방부 정보본부 산하 모부대 현역 장교들이 이런 정보활동을 담당하기도 하고 퇴역 영관장교들이 ‘신분 세탁’을 거친 뒤 정보원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암호명 ‘흑금성’으로 널리 알려진 박채서씨도 1993년 예비역 소령으로 전역한 뒤 안기부에 들어가 대북 공작원으로 활동한 경우이다. 한편 HID나 UDU 같은 육·해군 첩보부대 소속 공작원들이 해외공작 임무에 나서는 경우도 있다.

    이들 ‘블랙’은 활동이 노출되면 최악의 경우 ‘본국 추방’조치 정도를 받게 되는 ‘화이트’들과는 달리 외교관으로서 최소한의 예우조차 적용받을 수 없기 때문에 상대국의 법정에 넘겨질 가능성도 있다.

    K중령 경우가 전형적인 ‘블랙’에 해당하는 셈이다. ‘블랙’들은 자신의 첩보활동을 흔히 ‘사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들은 현지 사업가 등 별도의 신분으로 위장하고 있기 때문에 정작 자신들의 본연의 임무인 ‘사업’은 어쩌다가 이뤄질뿐 평상시에는 ‘진짜 사업’에 전념한다고 전해진다. ‘블랙’으로 활동한 바 있는 한 정보기관 현직 관계자의 경험담.

    “정보활동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공식적 신분을 사업가로 위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평소에는 다른 사업가들과 똑같이 사업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 기회가 왔다 싶으면 그때 ‘사업’에 뛰어들어 고급 정보를 캐내는 것이다. 그야말로 순간순간에 첩보 활동이 이뤄진다.”

    그만큼 이들의 첩보 활동이 상대국 정부의 안테나에 걸려들 확률은 높지 않다. 이 말을 뒤집으면 첩보 활동이 적발된 데는 무언가 미숙한 구석을 노출했거나 사생활과 관련해 소문이 날 만한 일을 저질렀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내의 한 정보소식통은 “해외에서 활동하다 보면 보통 돈 문제나 여자 문제 등이 불거져 해당 국가에 신분이 노출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K중령의 경우가 여기에 해당하는지는 여전히 분명치 않다. K중령 사건을 확인해준 국내 정보기관의 한 관계자도 “돈 문제나 여자 문제가 연관된 것 같지는 않다”고 개연성을 부인했다.

    ‘조국은 나를 구하러 올 것이다’

    K중령은 체포 직후 간첩 혐의를 적용받고 구금됐다. 해외의 주요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대북 정보 활동을 벌이는 특수공작원들의 존재 자체는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양국 정보기관들이 이들의 활동을 어느 정도 알면서도 일정한 수준, 즉 ‘레드라인(red line)’을 넘지 않는 범위내에서 암묵적으로 용인해온 것이 그동안의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특수 공작원의 신분이 노출되었을 뿐만 아니라 활동 대상국 정부가 공작원의 활동을 노골적으로 문제삼아 전격 체포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베이징 주재 한국공관을 중심으로 중국내 정보라인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럴 경우 가장 큰 위험은 그동안 공들여 구축해놓은 정보 공급 라인이 연쇄적으로 무너지면서 현지 정보원들은 물론 본국에서 파견된 특수 공작원들의 신분도 낱낱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정보당국 한 관계자의 이야기.

    “특수 공작원들은 ‘사업’ 도중 활동이 발각돼 상대국에 체포되더라도 스스로 취할 수 있는 별다른 조치가 없다. 외교관 신분도 아닌 데다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 국가와 달리 간첩 혐의에 관한 한 가장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 때문이다. 결국 ‘언젠가 조국이 나를 구하러 올 것’이라는 신념만으로 감옥 생활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국판 로버트 김’조선족 최모씨에게만큼은 이러한 기대마저도 ‘남의 일’이었다. 현재 우리 정보당국 어디에서도 최씨와 관련해 속시원한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 다만 베이징의 한 정보 소식통은 “최씨가 중국 군사법정에서 비공개 재판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하며 “현재 최씨와의 면회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40대 후반의 조선족 사업가 최모씨는 조선민족학원 조선어과를 졸업한 엘리트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학원은 중국 정부가 소수민족 중 엘리트 간부를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고등교육기관. 현재 중국 전역에 12개밖에 없을 정도로 소수정예 지도자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민족학원 출신들은 각 성(省)과 자치구에서 간부 역할을 맡고 있는가 하면 경제 문화 과학 교육 등 각 분야 전문직에서 활동하고 있다.

    “나는 한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중국의 로버트 김”

    정보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일정한 선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의 첩보활동은 용인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모씨 역시 베이징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진 편에 속한다고 한다. 최씨는 과거 농산물 무역에 종사했으며 최근 들어서는 베이징에서 대형 유흥업소를 경영하기도 하는 등 행동반경이 대단히 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문학에도 조예가 깊어 소설을몇 편 썼으며 시인으로 등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최씨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 다소 엇갈린다.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최씨가 30대 시절 중국 내 조선족의 리더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며 그에 대해 높이 평가했다. 최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 특수공작원의 첩보 활동에 협력한 것 역시 이런 ‘대의(大義)’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간첩죄로 남겨진 조선족 최씨

    현지 정보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제3국 첩보요원들에게 협력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조국에 대한 사명의식과 책임감 때문에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정보원 역할을 떠맡는가 하면 상대국(특히 북한)에 대한 적개심으로 정보원 역할을 맡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물론 그 중에는 철저하게 비즈니스 차원에서 정보를 거래하는 사람들도 있다. 앞서의 증언대로라면 최씨는 경제적 이득을 취할 목적으로 정보 거래에 나선 것이 아니라 적어도 자신의 ‘먼 조국’인 한국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는’ 자발적으로 협조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를 접해 본 중국 내 또다른 관계자의 증언은 다소 다르다. 이 관계자는 최씨에 대해 ‘치밀한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엉뚱한 구석도 갖고 있는 전형적 브로커형’이라고 평가했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베이징 현지에서는 최씨의 행적에 문제가 적지 않았다는 소문도 돌고 있다. 중국의 한 정보 소식통은 “최씨가 한국 기업인들을 많이 만나면서 사업을 벌여왔지만 사업이 망한 뒤에도 뒷수습을 하기는커녕 계속 새로운 분야의 사업을 벌이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최씨의 행적에 이미 위험요소가 도사리고 있었다고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다. 베이징의 한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해 상반기 이미 한국쪽 인사들과의 잦은 접촉으로 인해 중국 정보당국으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지목됐다는 것. 이 무렵부터 베이징의 정보 관계자들은 최씨에게 ‘위험한 인물’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는 것이 이 소식통의 전언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던 간에 이 사건은 우리 국익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협조해온 인물을 아무런 대책없이 방치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또 간첩 혐의를 받고 있는 최모씨가 중국 공안당국에 어떤 진술을 하느냐에 따라 K중령의 행적을 둘러싸고 한중 양국간 외교문제가 불거질 가능성도 크다. 더구나 아직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최씨에게 중국 국가안전부가 관리하고 있는 핵심정보를 건네준 또다른 조선족 한 명은 선양(瀋陽)에서 체포돼 사형당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이 조선족은 중국 국가안전부 내에서도 고급 정보에 대한 접근이 용이한 핵심 부서에 근무해온 인물로 알려졌다.

    ‘미끼’도 놓고 ‘덫’에도 걸리고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것은 그만큼 일반인들이 모르는 은밀한 정보 활동이 광범위하게 벌어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이른바 ‘블랙’들이 해외에서 은밀하게 전개하는 첩보 활동은 상대국 정부에 의해 암묵적으로 용인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귀띔한다.

    특히 중국이나 러시아 같은 사회주의권 국가의 경우 첩보활동이 노출되더라도 이를 곧바로 문제삼기보다는 해당 공작원을 24시간 밀착 감시하면서 계속 관찰만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 향후 양국간 정보전(情報戰)의 와중에서 모종의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에 대비한 ‘카드’로 활용하려는 전략인 셈이다. 최악의 경우 자국 첩보활동이 노출되어 상대국으로부터 공작원 체포나 추방 등의 조치가 잇따르는 상황이 오더라도 여기에 대응하는 ‘맞추방’카드로 써먹기 위해 인질을 잡아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야기이다.

    독일 통일 이후 서독 정보당국이 동독의 정보문서를 모조리 입수해서 검토하다 보니 서독 공작원들의 정보 활동을 동독 정보기관이 손금 들여다 보듯 파악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동독 정부가 이를 문제삼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도 바로 ‘맞추방’ 같은 사태를 염두에 두고 유사시에 ‘히든 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는 것.

    신분을 위장한 특수공작원들은 이밖에도 여러 가지 ‘덫’에 걸릴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다. 정보당국 관계자들은 이들 공작원의 활동을 눈치챈 상대국 정보기관에서 일부러 ‘미끼’를 놓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전한다. 24시간 고급정보에 안테나를 세우고 있는 공작원들의 심리를 이용해 상대국 정보원을 통해 이 공작원에게 건네지는 ‘비밀파일’에 일부러 특수 정보 몇 가지를 끼워넣은 뒤 이를 문제삼아 이 공작원을 체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것.

    사실 외교가에서는 첩보 업무의 성격상 일정한 범위를 넘어서지 않는 통상적 정보활동은 어느 정도 양해하는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 만큼 상대방의 공작을 문제삼기 위해서는 통상적 정보활동 이외의 ‘플러스 알파’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바로 ‘플러스 알파’를 의도적으로 슬쩍 끼워넣은 방식으로 ‘미끼’를 놓는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미끼’를 설치하는 데는 이중 스파이가 동원될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웬만큼 경험 많은 베테랑이 아니면 이중 스파이가 놓은 덫에 걸려든다는 것이 정보기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결국 기자의 생리와도 비슷한 것 아니냐”는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졌다.

    “분명히 조금만 더 들어가면 예기치 못한 고급 정보를 손에 쥘 수 있는데 마냥 좌고우면(左顧右眄)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물론 나중에 문제가 됐을 경우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이 지는 것이다. 책임에는 자신의 생명까지도 포함된다.”

    北·中 신경전에 희생됐을 수도

    정보 관계자들은 K중령의 경우도 이러한 사례에 해당할지 모른다는 조심스런 관측을 내놓고 있다. 특히 K중령이 현지에서 입수한 정보에는 북한 관련 정보뿐만 아니라 중국 관련 특수 정보가 포함돼 있어 중국측을 자극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혈맹(血盟)관계라고 일컬어지던 북한과 중국의 미묘한 갈등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중국은 북한관련 정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용인하는 입장을 취해온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과 북한이 정보활동을 둘러싸고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에 K중령이 희생된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중국과 북한은 지난해말 자국내에서 활동하는 간첩을 대량 체포하는 등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당시 홍콩에서 발행되는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 북한측이 북한 내부에서 활동해온 중국 정보원들을 일제 검거하자 중국측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중국내 북한 정보원들을 일망타진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베이징의 한 정보소식통은 “중국측이 북핵(北核) 관련 정보에 대해서는 한국측의 활동을 어느 정도 용인해 왔지만 이번 경우는 사정이 좀 다른 것 같다”고 전했다. 북한 관련 정보가 아닌 중국 관련 정보가 화근이 됐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K중령이 북한과 중국이 정보를 둘러싸고 벌이는 신경전에 희생됐건, 아니면 특수 공작원의 본분을 망각한 무리한 ‘사업’으로 인해 화를 자초했건 현재로서는 큰 문제가 아니다. 이미 그는 양국간 물밑 협상을 거쳐 석방됐고 진급까지 확정된 채 정상 근무에 복귀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엉뚱하게도 간첩 혐의를 뒤집어쓰고 ‘버려진’ 조선족 최모씨다. 현재 간첩 혐의로 복역중인 조선족 최모씨를 접촉하기는 불가능하다. 기자 역시 최씨를 만나기 위해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취재를 시도했다. 그러나 백방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은 것이었다.

    “확정형을 받고 복역중인 재소자에게 외국인 면회를 시켜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간첩 혐의라면 그 가능성은 제로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포기하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자신의 정보망을 은근히 자랑하던 취재원들도 내용을 듣고 나서는 슬그머니 발을 빼기 시작했다. 더구나 중국에서 취재활동을 벌이는 외국 언론의 현실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과거에도 중국내 반정부 인사를 접촉하려던 외국 특파원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추방당한 사건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특히 베이징 주재 외국 특파원들은 몇 년전 베이징에 주재하던 독일 기자가 중국 민주화의 상징적 존재이자 정치범 1호인 웨이징성(魏京生)의 가족들에 대한 접촉을 시도하다 중국 당국으로부터 강제추방당한 사례를 거론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웨이징성은 1970년대말부터 중국 민주화운동을 벌이다 체포돼 18년간이나 복역한 인물로 여러 차례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오른 바 있다. 현재는 미국에 망명중이지만 당시만 해도 정치범으로 복역중이던 웨이징성은 중국에서 취재하는 서방 기자들에게는 가장 큰 뉴스메이커 중의 한사람이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그와 관련한 외국 언론들의 취재행위 일체에 대해 극심한 통제의 칼날을 들이댔다. ‘슈피겔’ 등 독일 언론의 기자들이 중국 정부로부터 연금 또는 추방조치를 당한 것도 웨이징성의 주변 인물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중국 현지의 정보 소식통들은 이런 사례를 들어 한국 기자가 최씨를 접촉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최씨 가족이나 주변 인물들을 접촉하는 것 역시 불가능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설령 주변 인물들과 접촉한다 하더라도 간첩죄라는 최씨의 범죄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외국인에게 입도 벙긋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도 덧붙였다. 중국에 다년간 주재한 한 언론사 특파원은 “1970년대 유신(維新)시절에 우리 정치 상황이 어떠했는지를 생각하면 될 것”이라는 충고도 곁들였다. 이 같은 상황은 ‘중국판 로버트김’이 될 처지에 놓인 최씨의 장래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추측케 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로버트 김의 사연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졌고 그를 위한 후원회도 활동하고 있다. 여기에 비하면 최씨의 운명은 한치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건 민간이건 지금으로서는 최씨의 신병에 대해 관심을 쏟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인다. 그가 영어(囹圄)의 상태를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모사드 교훈 되새겨야

    자신의 운명을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한 채 특수 공작 임무에 투입된 공작원들은 임무 수행 과정에서 최씨와 유사한 일이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전쟁 당시부터 1970년대초까지 북파공작을 벌였던 HID, UDU 등 북파공작 요원들의 활동이 반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하나둘씩 드러나는 것만 보더라도 특수 공작이 얼마나 은밀하게 이뤄지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한 관계자는 “최씨 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하면 가족들을 한국에 초청해 취업시키거나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 역시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Mossad)의 예를 들어 국가이익에 협조한 관계자들에 대한 보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뮌헨올림픽 당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의 습격으로 이스라엘 선수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 뒤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는 유럽에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의 테러를 근절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테러범들의 배후를 추적하기 위해서는 내부 협조자의 은밀한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모사드는 내부 협조자의 행위가 나중에 탄로나더라도 이스라엘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를 끝까지 보상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조국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협조한 사람을 결코 방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모사드가 추구하는 정신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로버트 김 사건을 계기로 우리 정부와 시민사회는 비로소 해외 첩보활동의 이면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되었다. 또 보상을 요구하는 북파 공작원 출신들의 극한투쟁을 통해 그것이 남긴 상처의 일부를 볼 수 있었다.

    정보의 유통이 자유로운 미국이 아닌, 그렇다고 교류와 접근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북한도 아닌, 제3국인 중국에서 벌어진 최씨 사건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우리 정부의 정보활동 능력은 또 한번 시험대에 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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