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호

육군장성 진급비리사건 1심 판결

“진급심사위에 허위자료 제공, 공정한 심사 방해”

  • 조성식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mairso2@donga.com

    입력2005-10-13 11: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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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소 사실 대부분 유죄 인정
    • 무죄 부분은 사실관계 다툼 아닌 법 적용의 문제
    • 위조 자료 행사로 진급추천에서 배제
    육군본부와 군검찰의 자존심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육군장성진급비리사건 1심(국방부 보통군사법원) 판결이 나왔다. 결과는 군검찰의 압도적인 판정승. 피고인 4명 모두에게 유죄가 선고되고 범죄혐의 대부분이 사실로 인정됐기 때문이다. 특히 핵심 공소사실인 공문서 위조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고스란히 인정됨에 따라 군검찰 수사에 대한 육본측 반박논리는 힘을 잃게 됐다.

    선고 직후 피고인측이 항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터라 이 사건에 대한 진실 공방은 고등군사법원에서 재연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긴 해도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은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는 게 군 주변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예컨대 진급심사위원회에 허위 자료를 넘겨 심사위원들의 공정한 심사를 방해한 혐의의 경우 공문서를 위조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기 때문이다. 심사과정 녹화 여부로 논란이 된 CCTV 하드디스크 은닉(공용전자기록 등 무효)혐의도 마찬가지다. 하드디스크를 교체한 사실이 없다고 줄곧 부인해온 육본측 주장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서, 설치업체 직원의 법정증언, 육본 행정장교의 진술 등 명백한 물증 앞에 무너졌다. 비록 사건의 본질은 아니지만, CCTV 하드디스크 은닉 혐의를 두고 양측이 첨예하게 맞선 것은 ‘심사과정 녹화’가 ‘심사위원 감시’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 피고인은 4명. 육본 인사참모부 인사관리처장 이병택 준장과 진급계장(자료관리계장) 차동명 중령, 인사검증위원회 검증위원과 간사인 장동성 대령, 주정 중령이 그들이다(모두 사건 당시 소속과 계급). 네 사람에게 적용된 혐의는 여덟 가지. ①허위 공문서 작성 ②허위 공문서 행사 ③위계 공무집행방해 ④공문서 위조 ⑤위조 공문서 행사 ⑥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⑦공용전자기록 등 무효 ⑧범인 도피가 그것이다.

    군검찰이 기소한 피고인들의 범죄혐의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최고위직인 이 준장에 대해서는 ③ ④ ⑤ ⑥ ⑦, 진급업무 실무자인 차 중령의 경우 이 준장의 혐의에 ⑧이 덧붙여져 피고인 중 가장 많은 여섯 가지 혐의가 적용됐다. 반면 장 대령은 ① ② ③, 주 중령에 대해서는 장 대령의 혐의에 ④가 추가됐다.



    재판부는 이 준장과 차 중령에 대해선 각각 징역 2년6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또 장 대령과 주 중령에 대해선 유죄는 인정하지만 ‘전과 없는 초범으로 그동안 성실히 군복무를 해온 점을 참작해’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참모총장의 직권남용을 염두에 두고…’

    재판 결과에 대해 언론은 ‘일부 유죄’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오보에 가깝다. 피고인들의 혐의 중 일부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긴 했지만 핵심혐의도 아닌데다 사실관계 다툼이라기보다는 사실관계에 대한 법률적 해석 또는 적용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판결문을 읽어보면 재판부가 대부분의 군검찰 수사내용을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준장과 차 중령의 경우 무죄판결을 받은 것은 ⑥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하나뿐이다. 이는 재판부가 ‘직권’의 의미를 군검찰과 달리 해석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재판부는 두 사람이 심사위원들에게 특정 대상자를 진급시키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두 사람의 직무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또 설사 직권남용에 해당된다 하더라도 ‘심사위원장과 부위원장의 심사권을 방해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흥미로운 것은 재판부가 무죄 이유를 설명하면서 ‘(군검찰이) 참모총장의 직권남용을 두고 참모총장이 아닌 피고인들을 직권남용으로 기소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있다’는 견해를 제시한 점이다.

    반면 장 대령은 ①허위 공문서 작성 ③위계 공무집행방해에 대해, 주 중령은 ①허위 공문서 작성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 또한 군검찰의 수사내용이 잘못됐다기보다는 법률 적용이 잘못됐다는 뜻이다. 허위 공문서 작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도 장 대령에 대해 ②허위 공문서 행사, 주 중령에 대해 ②허위 공문서 행사 ③위계 공무집행방해 ④공문서 위조를 인정했기 때문이다. 재판부는 ‘허위공문서작성죄는 공무원이 직무에 관해 작성 권한이 있는 공문서에 허위 내용을 기재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라며 ‘작성 권한이 없는 공무원의 허위 내용 기재는 허위공문서작성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즉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사건 당시 두 사람에게 공문서를 작성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해당 법률을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동아’는 이 사건에 대해 올해 1월호부터 4월호까지 4회에 걸쳐 심층 보도한 바 있다. 특히 3월호에는 단독 입수한 군검찰 수사기록과 진급심사위에 제출된 기관(기무·헌병) 자료 17건의 전문을 공개해 군 안팎에 파장을 일으켰다. ‘신동아’는 당시 17건을 모두 기무자료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추후 확인한 결과 17건에는 기무자료 외 원(原) 내용에 첨삭이 이뤄진 ‘변형 기무자료’와 헌병자료 일부도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진급심사점수는 자력(自力·근무평정, 경력) 점수와 잠재역량(자질, 품성 등) 점수로 구분된다. 비위 사실이 적혀 있는 기관(기무·헌병)자료는 진급 당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잠재역량 평가에 중요한 잣대로 활용된다. 아무리 자력 점수가 좋더라도 기관자료가 진급심사위에 제출되면 사실상 진급이 불가능하다. 실제로 지난해 육군장성진급심사 때만 해도 기관자료가 제출된 대령 17명은 자력 점수와 상관없이 모두 탈락했다.

    공소사실의 핵심은 바로 이 17건의 기관자료와 관련된 것이다. 진급과 장교들이 남재준 육참총장한테 넘겨받은 기관자료 315건(기무자료 210건, 헌병자료 105건) 중 17건을 임의로 선별해 마치 인사검증위 검증을 거친 것처럼 인사검증위 양식(심의참고자료)으로 재작성, 즉 공문서를 위조해 진급심사위에 제출함으로써 공정한 심사를 방해한 혐의다.

    군검찰 조사과정에서 인사검증위 소속 장교들은 이 같은 사실을 시인했다. 인사관리처장 이병택 준장도 남 총장한테 받은 자료 중 기무자료는 인사검증위 검증절차를 거치치 않고 활용했다고 털어놓았다. 만약 이들이 315건의 기관자료를 인사검증위에 제출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게 했거나 한 건도 빼지 않고 모두 진급심사위원회에 제출했더라면 군검찰 수사는 별 소득이 없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육본 진급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315건 중에서 17건, 즉 진급대상자 17명에 대한 비위자료만 제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심사위원들을 속이고 그들의 공무집행을 방해한 셈이 됐다.

    315건 중 왜 17건만 선별했나

    왜 그랬을까. 군검찰 수사내용에 비춰보면 17명은 진급과에서 사전에 ‘우수자(유력 후보자)’로 내정한 52명의 강력한 경쟁자였다. 수사기록에 따르면 인사검증위 실무자인 모 대령은 “315건 중 극소수 인원인 17명에 대한 자료만 뽑아 사용한 이유가 뭐냐”는 군검찰 심문에 이렇게 답했다. “나머지 인원은 유력한 경쟁자가 아니지 않았나 싶습니다.”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 역시 이 부분을 이 사건의 핵심으로 판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이 자력을 분석하기 전에 인사검증위원회 자료를 위원들에게 낭독해준 사실, 도덕성·품성·자질이 부족한 사람을 선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참모총장이 위원들에게 훈시하고 또한 심사위원 전체회의에서 다시 한번 강조한 사실, 심사위원들이 실제로 위 17명에 대한 위조된 인사검증위원회 심의참고자료를 인사검증위원히 검증을 거친 것으로 오인한 사실… 자력을 분석하기 전에 이미 ‘제한’으로 표시해 심사에서 배제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바, 17명의 경우 17부의 위조자료 행사로 인해 진급추천에서 배제된 사실을 넉넉히 인정할 수 있으므로…’

    ‘실제 진급 선발된 일부 인원에게도 17명에 대한 부정적 사항에 비견되는 사항들이 기재돼 있음에도 17명에 대한 자료만이 활용된 점 등에 비추어 위 17명의 자료를 선별하는 기준이 유력 경쟁자로 사전 선정된 자와 경쟁관계에 있는 자의 자료라는 점 외에 일정한 기준을 발견할 수 없다.’

    군검찰 관계자는 “재판부가 오랜 시간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며 “판결내용에 대체로 만족한다”고 밝혔다. 군검찰은 항소하면서 공소사실 일부를 바꿀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의 법률해석을 감안해 장동성 대령과 주정 중령에 대해 적용한 허위 공문서 작성 혐의를 공문서 위조 혐의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한편 육본 공보 관계자는 “항소심 재판이 남아 있기 때문에 공식 의견 표명은 이르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핵심 혐의 대부분에 대해 무죄가 선고됐다”고 사실과 동떨어진 얘기를 했다.

    한때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한 대형사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재판결과에 대한 언론의 소극적인 보도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다. 육본 논리를 대변해온 기자들과 군 지휘부는 알고 있을까. 군 사법개혁이나 국방 문민화, 병력 축소·편제 개편 등 각종 국방개혁보다 진급비리가 더 장병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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