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방은 군의 전문영역’임을 주장하는 예비역 인사들과 ‘군사 분야의 경영적 합리화’를 추구하는 학자 출신 참모그룹 사이의 대립.”
- 대선 직후 한 캠프 관계자가 남겼던 우려가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되살아나고 있다. 안보 분야가 국정의 핵심과제로 떠오르면서 재정비를 위한 시스템 설정과 인사 문제 곳곳에서 대립각이 불거지고 있는 것. 청와대와 안보부처 관계자들이 숨죽여 지켜보고 있는 파열음의 끝은 과연 어디인가.
5월4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군 장성들이 이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참석한 장성들의 계급장에 달린 별 개수만 207개다.
“변화에 둔감하고 혁신에 게으른 조직은 살아남을 수 없다. 천안함을 인양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민과 군의 협동작전에서 우리는 배울 것이 있다. 배워야 한다. 배타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서 민간의 우수한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민과 협력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사뭇 다른 뉘앙스의 두 발언. 그러나 모두 한날한시 같은 연설문에 있는 문장이다. 5월4일 국방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하고 김태영 국방장관과 이상의 합참의장을 비롯해 군 지휘관 15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회의에 대해 청와대는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것은 건군 이래 최초”라며 한껏 무게를 실었다.
흥미로운 것은 3000자가 조금 넘는 이 날의 연설문에 대해 예비역 출신 정부 관계자들이나 군 당국 주변의 해석과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등 민간 출신안보 분야 참모들의 해석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다. 전자가 ‘군의 사기를 강조한 것’이라며 앞의 문장에 무게중심을 싣는 반면, 후자는 ‘전면쇄신을 촉구한 것’이라며 뒤의 문장에 초점을 맞추는 식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놓치기 쉬운 이 미묘한 차이 뒤에 적잖은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은, 천안함 침몰 이후 안보 시스템 논의과정에서 불거진 논쟁의 뿌리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또한 앞으로 ‘힘의 재편’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가늠할 방향타이기도 하다. ‘누가 대통령의 귀를 사로잡는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련의 상황을 두고 한 정부 당국자는 “군이 개혁의 주체냐 대상이냐를 두고 벌어지는 싸움”이라고 정리했다.
천안함 사태 대응방안 마련에 분주하던 청와대 기획파트에 ‘JO·WI 등을 민간인 국방장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가 제출된 것은 4월 초순의 일이었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나 류우익 주중대사 등 카리스마 있는 대통령 핵심측근을 국방부 장관에 임명해 강도 높은 군 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지휘관들과 달리 젊은 영관급 장교들 사이에서는 중량감 있는 정치인 출신 장관이 임명돼 군의 위상이 강화되는 데 부정적이지 않다는 보고도 덧붙여졌다. ‘5·16 이후 최초의 문민장관’이라는 타이틀이 갖는 무게도 정치적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었다.
문민장관 이재오? 김태영 유임?
그러나 4월 중순 이후 청와대의 입장이 ‘북한 소행 추정’ 쪽으로 기울면서 이 방안은 사실상 폐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의 공격이라면 문민장관 임명 같은 초강수가 설득력을 잃는데다, 먼저 안보시스템 재편과 군 관리에 관한 방향설정을 완료한 후에 그에 맞춰 후임인선을 고민하는 게 옳다는 판단이 있었다는 것. 일부 당국자들은 이러한 결정이 최종적으로 대통령 본인이 내린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대선 당시 국방분야 공약 조언이나 군 출신 인사들의 지지를 모으는 역할을 담당했던 대통령 주변 예비역 인사들의 행보가 이 무렵 눈에 띄게 빨라졌다는 정부 핵심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들은 4월23일 청와대에서 열린 오찬간담회 등을 통해 ‘북한으로부터 불의의 습격을 받은 군을 다독여 단호히 대응할 수 있도록 사기를 앙양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라는 취지로 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전한다. 급부상했던 정치인 출신 문민장관론이 사그라지게 만든 배경을 가늠케 하는 대목.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지지모임을 독자적으로 이끌었던 김인종 경호처장과 이명박 캠프의 국방정책자문특별위원장으로 활약한 이종구 전 국방장관이 대통령 주변에서 국방 분야를 조언하는 주요 인사로 꼽힌다.
반면 안보라인 핵심 관계자들을 필두로 하는 학자 등 전문가 그룹 출신 참모들의 시각은 단호하다. 천안함 침몰 원인이 북한의 공격이라 해도,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는 군이 그 도발징후를 전혀 가늠하지 못하고 당한 것은 시대착오적인 비효율 때문이라는 것. 민간 분야의 감각과 효율성을 적용해 21세기 환경 변화에 맞는 탄력적이고 기능적인 군대로 재편해야 한다는 게 그 골자다. 이번 사태를 더욱 강도 높은 국방개혁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각 차이는 문민장관 임명 검토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후 최근 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김태영 장관의 유임론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예비역 인사들 사이에서 천안함 사태 이후 김 장관의 후속대응을 높게 평가하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는 것. 이 같은 분위기는 최근 국방부 핵심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확인된다. 한 군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유임 가능성이 높다고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안보 분야 참모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경질을 당연시하는 분위기다. 특히 대응과정에서 빚은 혼선으로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가중시킨 부분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논리다. 천안함 사태 이전부터 청와대 주변에서 회자되던 ‘김 장관의 느릿한 행보’가 함께 거론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청와대와 군 사이의 가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국방개혁과 관련한 청와대의 지침을 ‘뭉개왔다’는 이야기다.
누가 점검회의를 주도하는가
청와대 내부의 안보담당 체제 개편을 논의하는 과정에서도 또 다른 쟁점이 튀어나왔다. 외교안보수석실 등에 군사 분야의 전문성을 가진 인사가 부족해 안보상의 위기대응에 취약했다는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 청와대 기획파트는 천안함 사태 직후부터 이를 보완할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구체적인 형태를 둘러싸고 군 출신 인사들의 견해와 안보참모들의 견해가 다시 엇갈린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예비역 인사들은 국방 분야를 담당하는 새로운 수석 자리를 신설해 군 출신 인사에게 맡김으로써 기존의 외교안보수석실 업무를 분할하는 ‘투톱 체제’를 주장했고, 기존의 안보부서 참모들은 그럴 경우 옥상옥 구조가 오히려 개혁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반박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외교안보수석실이 역할축소를 경계하는 것 아니냐, 진작 제 역할을 했으면 이런 논의가 필요했겠느냐”는 군 출신 인사들의 격앙된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 이 무렵의 일이었다.
안보태세 재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5월 초 열린 청와대 회의는 이러한 두 견해가 정면으로 마주친 자리였다. 박형준 정무수석과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이 주재한 이 회의에는 두 수석실 외에도 업무 관계가 있는 비서관들이 모두 참석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태스크포스(TF)라고 보도했지만, 실제로는 향후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1회성 회의였다는 게 당국자들의 설명.
안보특별보좌관 신설과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구성 등 이른바 ‘안보태세 재정비’의 주요 추진방안이 확정된 자리였지만, 그 맥락에 대해서도 양측의 해석이 엇갈린다. “안보특보직은 위기관리센터를 책임지는 역할이 최대치이며 군사정책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참모들의 설명과 “장관급의 상근특보로서 국방 분야 핵심 어젠다를 총괄하게 될 것”이라는 군 주변의 예측이 명확히 갈리는 식이다. 총괄점검회의에 참여하는 유일한 ‘청와대 관계자’인 안보특보가 사실상 이 회의체 논의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는 예비역 인사들의 관측에 대해 외교안보수석실 관계자들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다.
분명한 것은 5월 초의 회의를 계기로 정무·홍보라인도 ‘변화를 주어야 한다’는 견해에 동의함으로써 사실상 군 출신 인사들의 견해에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 외교안보수석실 강화 정도로는 보수적 여론의 지지를 얻기 어렵고, 국내외에 단호한 대응이라는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일부 안보 참모들과 정무·홍보 라인의 핵심인사들 사이에 감정적인 앙금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이렇듯 상황이 엉키기 시작하자 이해관계가 없는 기획관리비서관실이 이후 논의의 실무주도를 담당하게 됐다고 일부 당국자들은 전했다. 기획관리비서관실은 지난 정부 국정상황실의 핵심기능을 거의 그대로 수행하고 있는 전천후 핵심부서로, 정인철 기획관리비서관은 경영조직이론에 오랫동안 천착해온 전문가 출신이다. 5월 중순 현재 안보특보와 외교안보수석실 사이의 업무분장 문제는 완결되지 않은 상태로 이 조정 작업 역시 기획관리비서관실이 맡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초 생각했던 것보다 대립각이 날카로워지면서 검토기간이 길어지는 듯하다”고 한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인사 둘러싼 잡음
그러는 동안 안보특보 휘하에 별도의 인원을 구성할 것인지 여부는 청와대 관계부서는 물론 국방부와 합참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후 국방 분야를 담당할 ‘실세’가 누구인지 가늠하는 데 바로미터가 된다는 것이다. 특보가 별도의 인원을 배속 받게 된다면 외교안보수석실의 권한이 사실상 분리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까닭. 특히 이 인원들이 안보총괄점검회의의 운영 등 실무를 맡는다면 특보의 역할은 비약적으로 커질 수도 있다.
방향이 이렇게 설정되면 안보특보는 사실상 안보태세 점검과정의 수장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천안함 국면이 마무리되는 대로 예정돼 있는 국방장관 등 군 주요보직 인사에도 비중 있게 관여할 수 있다. 김성환 수석을 비롯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이 차관급인 데 비해 안보특보는 장관급임을 감안하면 국방 분야의 실세 컨트롤타워가 될 수도 있다는 게 군 당국 주변의 관측이다.
이 때문에 5월 초 진행된 안보특보 인선과정에서는 예비역 인사들을 중심으로 상상 이상의 ‘인사운동’이 벌어졌다고 당국자들은 전한다. 특보 자리를 국방장관으로 가는 징검다리로 인식한 몇몇 인사가 대통령 주위의 실세들에게 줄대기를 하거나, 자신과 가까운 인사가 임명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하는 일이 이어졌다는 것. 대통령 본인이 이러한 분위기에 진노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일련의 논쟁에서 ‘승부가 났다’는 평가가 회자된 것은 5월9일 이희원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안보특보에 임명되면서부터. 이 신임 특보는 대선 과정에서 김인종 경호처장이 위원장을 맡았던 서초국방포럼의 수석부위원장을 지낸 인물로, 이번 인선과정에서도 예비역 인사들이나 그와 가까운 권력 핵심부의 강한 추천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청와대 일각에서는 그동안 대통령 주변의 군 출신 인사들이 인사에 개입하는 바람에 적잖은 혼선이 빚어졌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특정인이 특정 후보를 대놓고 미는 바람에 막판에 역효과가 나 최종낙점에서 배제되는 일도 있었다는 것. 심지어 청와대 관계부서가 ‘컨트롤’에 나서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이 같은 문제가 그간 상당한 잡음을 일으켜왔다는 것은 군 고위관계자들 역시 인정하는 ‘기정사실’에 속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천안함 사태 이후 부실대응 논란에 휩싸인 합참 작전파트의 구성 문제다. 안보전문지 ‘D·D포커스’ 5월호는 “합참의장부터 합동작전본부장, 작전참모부장, 작전처장, 합동작전과장 등 주요직위 전원이 육군 출신 인사들로 채워져 있는 것이 이번 대응에서 혼선을 빚은 핵심 이유”라고 보도한 바 있다. 합동작전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주요 인사들을 ‘지난 정부 당시 합참에서 잘나갔던 인사들’이라는 이유로 대거 좌천한 결과라는 평가다.
일련의 인사 운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국방부의 K모 실장에 관해서는, 이 때문에 청와대 일각에서도 비판적인 견해가 뚜렷하다. 안보라인 핵심에서 수차례 경질 의견을 전달했을 정도라는 것. 전임 이상희 장관 시절 현재 직위에 임명된 K실장은 김태영 장관의 부임과 함께 교체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아직까지 현직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K실장의 ‘생존능력’에 관해 한 군 당국 핵심관계자는 “대통령의 대선 캠페인을 도왔던 예비역 인사들이 ‘전 정부 인사들을 잘라낸 공신’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군과 업무연관성이 깊은 안보부처의 한 고위관계자는 “예비역 인사들이 알게 모르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구도가 안보태세를 재점검하는 과정에서 더욱 굳어지지 않을까 염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는 청와대 안보참모들이나 정보당국이 인사문제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합동성 강화 핵심의제는 ‘합참대’”
안보태세 재정비의 또 다른 축인 총괄점검회의는 5월13일 대통령 주재로 첫 회의를 열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학계와 군 출신의 균형을 맞춘 이 회의의 인적 구성 역시 예비역 인사들과 청와대 안보라인 관계자들 사이의 긴장감을 반영한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의장을 맡은 이상우 국방선진화추진위원장은 한때 안보라인이 문민 국방장관 후보로 거론했을 정도로 지지를 받은 인물. 반면 김종태 전 기무사령관 등 일부 군 출신 위원은 대통령 주변의 예비역 인사들이나 권력 실세와의 친분이 잘 알려진 이들이다.
총괄점검회의는 일단 위원들의 발제와 토론으로 안보 분야의 개혁과제와 새로운 군 혁신방안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2개월 남짓의 짧은 활동기간이 갖는 한계로 인해 그간 청와대 주변에서 논의돼온 국방개혁 방안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 문제 등 현안을 집중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국방예산 문제와 무기체계 소요검증을 주제로 국방부를 압박한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실과 ‘국방경영 효율화’를 주문해온 기획관리비서관실, 군에 대한 총괄적인 개혁방안을 긴 시간 준비해온 미래기획위원회 등의 검토자료가 우선적으로 이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기사 말미 상자기사 참조).
총괄점검회의 첫 모임에서 이 대통령은 특히 합동성 문제를 우선적으로 논의할 과제로 강조해 언급한 바 있다. 천안함 대응과정에서 육해공군의 작전 협조가 원활히 진행되지 못하고 삐걱거린 것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 그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군 사관학교를 통합하는 방안 등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을 중심으로 검토된 바 있지만, 최근 들어 급부상하고 있는 아이디어는 합동참모대학의 강화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국방대학교 산하에 있는 합참대를 독립시켜 명실상부한 합동작전 수행교리의 연구·교육 산실로 발전시킨다는 것이 그 골자다.
군 관계자들은 주로 육·해·공군의 일정 직위 이상 장교들이 합참대에서 각군 이기주의를 넘어서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도록 하거나, 국방부·합참에 배속되기 전에 이 과정을 거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 등을 거론하고 있다. 사관학교 기수가 아니라 합참대 기수로 동질감을 갖게 하자는 것이다. 이는 프랑스 등 군 간 합동성을 강조해온 서방국가에서 이미 가동하고 있는 시스템. 합참대를 합동작전 연구와 기획의 중심고리로 만들어 관련 역량이 일정 수준 이상 확보되면, 궁극적으로는 합참대를 미국의 합동전력사령부(JFCOM) 같은 조직으로 격상해 명실상부하게 군 전체를 아우를 수 있도록 한다는 복안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천안함 가라앉자 떠오르는 우려
천안함 사태의 충격이 군 구조 개편이나 합동성 강화처럼 미뤄져오던 과제를 단행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바람직한 일이지만, 걱정스러운 부분도 적지 않다. 먼저 시간의 문제다. 일련의 논의과정이 구체적인 실행방안으로 도출되고 인사와 시스템 재편으로 이어지기까지 상당기간이 소요될 것임은 당연한 일. 청와대는 합동조사단의 조사가 마무리되고 이를 바탕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을 통해 국제사회와의 공조대응 방안을 설정한 후에야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수뇌부 인사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인 군 개혁 과제는 당연히 그 이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최소 2개월을 잡고 있는 총괄점검회의의 논의가 마무리돼야 하는 만큼 갈 길이 먼 셈이다.
더욱이 안보특보 등 신설된 직위와 새로 입성한 인물들이 업무에 적응해가며 기존의 안보라인과 손발을 맞추는 데도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앞서 살펴봤듯 그 과정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첨예하게 이견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보니 여기서도 지연이 만만치 않을 듯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논의과정을 설정하는 데도 적잖은 논란이 빚어졌다면 이를 실행하는 데 얼마나 많은 충돌이 있을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 것.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는 동안 지금까지 논의돼왔던 국방예산 문제 등 각종 개혁방안은 올스톱될 수밖에 없다. 당장 내년도 국방예산만 해도 한창 국가재정전략 차원에서 논의돼야 할 시점이지만, 천안함 사태 이후 군사력 분야 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보니 한 발짝도 나가기 어려운 형국이다. 여기에 향후 군 수뇌부 인사를 둘러싸고 예비역이나 정권 실세들의 ‘입김’이 구설에 오르기 시작하면 상황은 극단적으로 복잡해질 수 있다. 어떻든 임기 절반 동안 운영돼온 안보 시스템을 백지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대선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안보 분야 참모로 관여했던 한 인사는 선거가 끝난 직후 기자에게 “‘국방은 군의 전문영역’임을 주장하는 예비역 인사들과 ‘군사 분야의 경영적 합리화’를 추구하는 학자 출신 참모그룹 사이의 대립이 근본적인 갈등구조로 자리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대통령이 국방 분야를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미뤄두는 동안 이 같은 대립은 상당부분 수면 아래 잠복해 있었던 것이 사실. 그러나 천안함이 가라앉으면서 당시의 우려는 극적인 형태로 부활하고 있다. 안보 시스템의 효율성이 이전에 비해 도리어 후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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