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호

대북전략 목표는 북한 체제붕괴 저지와 ‘동북 4성’(동북 3성+북한) 구축

中, 21세기 동아시아 질서 = 조공체제(朝貢體制) 전략 세워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l.com│

    입력2010-10-01 17: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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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이 바라는 21세기의 동아시아 질서는 조공체제(朝貢體制)로의 복귀다.
    • 중국이 동양과 서양이라는 표현 대신 중서(中西), 즉 중국과 서양을 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그동안 삼동심원(三同心圓) 전략을 대외전략으로 추진해왔다.
    • 대만, 홍콩, 마카오 등 아편전쟁으로 빼앗겼던 자국의 영토와 독립을 주장해온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 자치구를 자국의 영토에 완전 통합시킨 뒤 북한, 파키스탄, 미얀마 등 국경을 맞댄 국가들을 자국에 종속시킨다는 정책이다.
    •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중앙아시아 각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미국을 동심원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 마지막 단계다.
    • 중국이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북한을 전폭 지지한 것,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잇단 방중의 이면에는 모두 이런 전략이 숨어 있다.
    대북전략 목표는 북한 체제붕괴 저지와 ‘동북 4성’(동북 3성+북한) 구축

    5월3일부터 7일까지 중국을 비공식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중국의 고사성어 칠종칠금(七縱七擒)은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풀어준다는 뜻으로, 상대를 제압하되 강압적이기보다는 마음으로 굴복하게 만드는 책략을 말한다. 이 고사성어는 삼국지(三國志)에서 제갈량(諸葛亮)이 남만(南蠻)의 왕 맹획(孟獲)을 사로잡은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남만은 중국의 역대 왕조가 남방 민족을 멸시하여 일컫던 이름이다. 남만은 현재 중국 윈난(雲南)성 서부로, 미얀마 동북부와 맞닿은 국경지대다. 미얀마의 다수종족인 버마족은 중국-티베트계 민족으로, 10세기경 윈난성에서 남하해 에야워디강 중류 유역에 터전을 마련했다. 중국에선 미얀마를 표(驃:당나라), 포감(蒲甘:송), 면(緬:원), 면전(緬甸:명청) 등의 이름으로 불렀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볼 때 미얀마는 중국의 조공국(朝貢國·tributary state)이었다.

    미얀마 군사정부의 최고지도자인 탄 슈웨 장군이 9월7일부터 11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7년 만에 베이징을 찾아갔던 탄 슈웨 장군의 방문 목적은 11월7일 실시 예정인 총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탄 슈웨 장군은 그동안 미얀마 군정을 지원해온 중국에 총선 이후 출범할 미얀마 민간정부와도 밀월 관계를 더욱 강화해줄 것을 요청했다. 탄 슈웨 장군이 이끌고 있는 미얀마 군정은 1988년 집권 이래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에 대한 가택연금을 비롯해 민주화운동 세력과 반체제 인사들을 탄압하는 등 철권통치를 해왔다.

    이 때문에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미얀마에 대해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해왔으나, 중국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미얀마 군정은 지금까지 끄떡없이 버텨왔다. 중국은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미얀마 서부 시트웨항에서 중국 윈난성 성도 쿤밍(昆明)을 연결하는 2380㎞ 길이의 송유관과 천연가스관 건설 공사를 따내는 등 각종 경제적 이익을 얻어냈다. 2013년 이 파이프라인이 완공되면 중국은 말라카 해협을 완전히 우회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은 이미 미얀마를 통해 인도양 접근권을 확보했으며, 미얀마 영토인 일부 섬에도 군사기지를 건설, 레이더 등을 배치하고 있다.

    대국굴기의 속셈

    중국인은 항상 중화(中華·Middle Kingdom)주의를 자랑스럽게 내세워왔다. 중화주의는 화이(華夷)사상에서 출발했다. 중원 대륙의 왕조만 문명화한 중화국(中華國)이고, 주변국은 미개한 이적(夷狄)의 나라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사상이다. 중국 역대 황제는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라고 했고, 나라가 아닌 천하(天下)를 다스린다고 말해왔다. 중국 역대 왕조는 현대적으로 볼 때 제국이었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제1차 아편전쟁(1840~42)에서 패배하기 이전까지는 아시아의 유일한 초강대국이었다.



    중국은 현재 공식 국호인 중화인민공화국의 약자나 준말이 아니다. 이미 기원전 7세기 주나라 시대 문헌에서부터 중국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중국이 중화제국을 지칭하게 된 것은 춘추전국시대와 진나라 시대를 거쳐 한나라 시대부터 시작됐다. 이후 중국의 역대 왕조는 주변국들과 주종관계를 맺고 조공(朝貢)을 받아왔다. 중국의 역사교과서가 중국 역대 왕조에 조공하고 책봉을 받은 아시아 국가들을 지방정권이라고 부르면서 마치 식민지처럼 기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편전쟁 이전에 조선, 류큐(琉球), 베트남 등이 중국과 조공-책봉 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중국을 종주국이라고 불렀다. 중국은 주변국들을 관리하면서 안전을 보장해주었고, 주변국들은 사신을 보내 특산물을 바치면서 중국의 앞선 문물을 수입했다. 아편전쟁에서 서구에 패배한 이후 청나라의 몰락과 함께 중화제국은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게 됐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내몰린 것이다. 중국인들이 1842년(아편전쟁 패배와 불평등조약 체결)부터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1949년까지를 굴욕의 세기라고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북전략 목표는 북한 체제붕괴 저지와 ‘동북 4성’(동북 3성+북한) 구축

    6월27일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왼쪽)이 후진타오 중국 주석과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G2(주요 2개국)의 반열에 오른 중국이 중화제국의 패권 전략을 다시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도광양회(韜光養晦·실력을 숨기고 때를 기다린다)의 모습을 보이던 중국이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바탕으로 유소작위(有所作爲·적극적으로 개입해 자신의 뜻을 관철시킨다)의 노선을 뚜렷하게 드러내고 있다. 특히 중국은 한 걸음 나아가 대국굴기(大國起·큰 나라로 우뚝 선다)의 속셈을 드러내고 있다. 대국굴기란 초강대국이 되려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 세계 패권국가가 되기 전까지는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립 구도를 피해야 한다는 전략까지 폐기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그동안 주장해온 화평굴기(和平起·평화적으로 우뚝 선다) 노선은 립 서비스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화평굴기는 미국이 제기하는 중국 위협론에 대한 반대 논리일 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이 남중국해를 자국의 영해로 간주하면서 핵심 이익 지역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중국은 이를 위해 미국과의 충돌도 불사한다는 입장까지 보이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벌인 것도 미국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면에는 21세기의 동아시아 질서를 조공체제(朝貢體制)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선 동양과 서양이라는 표현 대신 중서(中西), 다시 말해 중국과 서양으로 말하고 있다. 중서라는 말은 아편전쟁 이전의 표현이다. 중서는 아시아 또는 동아시아를 아시아(동아시아) 속의 중국이 아니라 중국 속의 아시아(동아시아)로 본다는 뜻을 담고 있다. 중국이 21세기의 중화제국으로 부활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과 주변국들 사이의 관계는 이미 어느 정도 아편전쟁 이전의 조공체제로 복귀했다. 중국이 그동안 이른바 삼동심원(三同心圓) 전략을 추진해왔기 때문이다.

    ‘동양과 서양’이 아닌 ‘중국과 서양’

    중국은 첫 번째 동심원 전략으로 대만, 홍콩, 마카오 등 아편전쟁으로 빼앗겼던 자국의 영토를 회복하고, 분리 독립을 주장해온 신장 위구르와 티베트 자치구를 자국의 영토에 완전 통합시키는 계획을 세웠다. 중국은 홍콩과 마카오의 주권을 이미 영국과 포르투갈로부터 넘겨받았으며 대만과는 지난 7월 자유무역협정(FTA)과 같은 효력이 있는 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을 체결함으로써 일종의 경제 통합을 이뤘다.

    중국은 두 번째 동심원 전략으로 자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북한, 파키스탄, 미얀마를 자국에 종속시키려는 정책을 구사하고 있다. 파키스탄의 경우, 중국은 매년 상당한 군사 및 경제지원을 해주고 있으며 지난 2월 650㎿급의 원전 2기 건설을 지원해 주기로 했다. 중국은 인도가 미국과의 밀월 관계를 바탕으로 핵무기 증강을 비롯해 군사력을 대폭 강화할 가능성을 우려해왔다. 중국이 파키스탄이라는 카드를 이용해 인도를 적절하게 제어하려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분쟁을 비롯해 그동안 서로 견원지간이라고 할 만큼 관계가 좋지 않았다. 양국이 핵폭탄을 경쟁적으로 개발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으로선 파키스탄에 원전을 건설해 줌으로써 인도는 물론 미국에까지 견제구를 던진 셈이다. 중국과 파키스탄은 2006년 11월 FTA를 체결한 바 있다. 미얀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미얀마 군정이 정권을 유지할 수 있도록 각종 경제 및 군사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미얀마에 대한 제재 결의안이 통과되는 것도 저지해왔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파키스탄과 미얀마는 중국의 조공체제에 편입돼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대북전략 목표는 북한 체제붕괴 저지와 ‘동북 4성’(동북 3성+북한) 구축

    7월22일 평택 2함대사령부를 찾은 미 항모 조지워싱턴 승조원들이 천안함 선체를 살펴보고 있다.

    중국의 세 번째 동심원 전략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과 중앙아시아 각국과의 관계를 강화해 이를 바탕으로 미국을 동심원 밖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중국과 아세안은 지난 1월1일부터 FTA를 발효시킴으로써 이미 대중화경제권을 구축하게 됐다. 중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도 상하이협력기구(SCO)를 결성해 사실상의 반미동맹을 만든 바 있다.

    중국은 북한을 철저하게 자국에 종속시키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지난 3월26일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으로 침몰한 이후 중국은 일방적으로 북한을 편들어주고 있다. 중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채택한 의장성명에서 북한을 규탄하는 문구가 들어가는 것을 끝까지 저지했다. 특히 중국은 미국과 한국의 서해 연합 군사훈련을 강력히 반대, 이를 관철시켰다. 미국과 한국은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 마지못해 동해에서 연합군사훈련을 실시했다.

    중국은 또 기회 있을 때마다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말은 한반도의 현상유지(status quo) 를 원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한반도에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남북한이 현 상태로 공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한반도에서 충돌이 생기면 가장 큰 피해를 볼 쪽은 한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얘기다.

    세계적인 석학이자 문명비평가인 프랑스의 기 소르망 파리정치대학 교수는 중국은 한반도의 통일을 원치 않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중국의 대(對) 북한 전략을 분석해온 소르망 교수는 북한은 사실상 중국의 속국이라면서 북한은 중국 외교가 서방에 역사적인 설욕전을 펼치게 해주는 무대이자 카드라고 분석했다. 소르망 교수는 또 중국 지도자들은 북한에 대한 역사적 종주권을 강조한다면서 이들은 미국 외교관들이 한반도 상황을 논의하기 위해 베이징을 방문하는 것에 희열을 감추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중국이 현 시점에서 가장 중요하게 추진하는 전략은 북한 체제의 붕괴를 막는 것이다.

    북한은 사실상 중국의 속국

    중국의 대표적인 한반도 전문가들은 2009년 6월6일 베이징 대학에서 열린 비공개 정세토론회에서 제2차 핵실험(같은 해 5월25일)을 실시한 북한에 대해 어떤 정책을 추진할 것이냐를 놓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전략파는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전통파는 미국이 자국의 경쟁국인 만큼 북한은 전략적 부담이 아닌 자산이라고 반박했다. 전통파는 이에 따라 북한과의 동맹 관계를 강화하면서 북한을 자국에 편입시키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의 대세는 전통파 쪽으로 기울었다. 사회를 맡은 쉬량(徐亮) 베이징외국어대 교수는 조선이 서방의 패권에 맞서 핵무장 국가가 되는 것이 오히려 중국에 유리하고 동북아의 안정을 강화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토론 내용을 종합 정리했다. 쉬 교수는 북한에 대한 제재 반대, 북한 정권의 붕괴 저지 등의 주장을 담은 보고서를 공산당에 제출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전통파의 주장대로 북한 전략을 추진키로 결정했다. 특히 중국이 이런 정책을 결정한 배경에는 건강이 좋지 않은 김정일 위원장이 급사할 경우, 북한 체제가 붕괴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대북전략 목표는 북한 체제붕괴 저지와 ‘동북 4성’(동북 3성+북한) 구축

    2008년 4월27일 서울시청 앞 성화봉송로에서 티베트 독립을 지지하는 국내 단체들과 티베트인의 기습 시위가 일어나자 중국 유학생들이 이를 막으려 해 덕수궁 앞이 아수라장을 이루고 있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중국이 현재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북한의 핵 보유가 아니라 북한 체제의 붕괴다. 중국은 북한 체제가 붕괴돼 수많은 난민이 국경을 넘어오고, 남한 주도로 통일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중국으로 볼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북한은 미국을 저지할 수 있는 완충지역이며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다. 중국으로선 북한과 기존관계를 강화하는 것이 국익차원에서 긴요하다고 본 것이다.

    중국이 이른바 대북 관리 정책을 추진한 시점은 바로 원 총리가 2009년 10월5일 북한을 방문했을 때라고 할 수 있다. 원 총리는 당시 평양에서 동쪽으로 100㎞ 떨어진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묘를 참배했다. 이곳에는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미군 폭격으로 숨진 마오쩌둥(毛澤東) 전 국가주석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을 비롯해 인민해방군 병사 134명이 묻혀 있다. 원 총리가 자동차로 왕복 4시간이나 되는 곳을 직접 방문한 것은 매우 파격적인 행보였다. 원 총리의 행보는 마오안잉의 희생으로 상징되는 북중 우호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은 이때부터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 1874호의 이행도 느슨하게 해왔다.

    김정일, 올해 두 차례나 중국 방문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올 들어 두 차례나 중국을 방문했다. 김 위원장의 5월3~7일 방문은 천안함 사태 때문에 이뤄진 것이었다. 김 위원장은 천안함 사태로 유엔 안보리 제재 조치를 받을 경우 자칫하면 체제가 붕괴될 것을 우려, 중국의 지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중국은 천안함 침몰의 원인이 북한에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사실상 북한의 잘못을 알면서도 눈감아줬다. 스인훙(時殷弘) 중국 런민(人民)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중국이 당시 김 위원장 방문을 허용한 것은 중국의 북한 지지를 국제사회에 알리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김 위원장은 5월5일 베이징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역사적 혈맹임을 과시했다. 후 주석은 양국 우호관계를 시대의 흐름과 함께 발전시키고 대대손손 계승하는 것은 양국이 가진 공통된 역사적 책임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양국의 선대 지도자들이 손수 맺어 키워낸 전통적 우의 관계는 시대의 풍파와 시련을 겪었지만 시간의 흐름과 세대교체로 앞으로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흔히 북중의 혈맹 관계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을 의미하는 순망치한(脣亡齒寒)으로 표현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이 고사성어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말한다. 마오쩌둥은 6·25전쟁 당시 북한 김일성의 파병 요청에 1주일간 수염도 깎지 않고 고민한 끝에 북중 관계를 이 고사성어로 설명하면서 인민해방군을 참전시켰다. 순망치한 관계는 북한과 중국이 1961년 7월11일 체결한 조중 우호협력 조약에 그대로 적시됐다. 이 조약은 어느 한쪽이 무력 침공을 당하거나 개전상태에 놓이면 상대방이 군사 원조를 제공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중국의 지지를 확인한 김 위원장은 5월7일 귀로에 중국 랴오닝(遼寧)성 성도 선양(瀋陽)에 있는 인민해방군 전사자들의 묘역인 항미원조 열사능원(烈士陵園)을 방문해 참배했다. 김 위원장은 그동안 중국을 모두 다섯 차례 방문했지만 이 묘역을 참배하기는 당시가 처음이었다. 건강도 좋지 않은 김 위원장이 이곳을 찾은 이유는 혈맹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중국은 6·25전쟁을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고 부른다. 미국에 대항해 북한(조선)을 도와준 전쟁이라는 의미다. 북중 정상회담 이후 중국은 북한의 혈맹임을 과시하듯 서해상의 한미연합훈련을 강력히 반대하는 등 북한을 편들어주었다.

    8월26일부터 30일까지 김 위원장이 중국 동북 3성의 주요 도시를 방문한 것은 북한 국내 문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김 위원장의 현재 최우선 과제는 3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만들어 3대 세습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중국이 김정은을 인정할 것인가’하는 문제다.

    조선시대 국왕들은 세자를 세울 때 중국에 주청사를 보내 책봉을 청했다. 중국 역대 황제는 세자 후보가 조선에 대한 중국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중국 중심의 동아시아 질서를 교란할 인물이 아닌 한 조선왕이 주청한 대로 세자를 책봉해왔다. 스인훙 교수는 김정일은 방중을 통해 후계문제에 더 나은 환경을 만들려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내우외환의 열악한 상황을 돌파하고 원만하게 후계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후 주석은 8월27일 지린(吉林)성 성도인 창춘(長春)에서 김 위원장과 가진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조 친선을 시대와 더불어 전진시키고 대를 이어 전해가는 것은 쌍방 공동의 역사적 책임이라고 밝혀, 북한의 3대 세습 체제를 사실상 승인했다. 김 위원장은 조중 친선은 역사의 풍파와 시련을 이겨낸 친선으로 세대가 바뀌어도 달라질 것이 없다면서 양국 간 친선의 바통을 후대에 계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조선 중앙통신 8월30일자 보도)

    중국은 3대 세습 체제를 인정하는 대신 북한을 자국 경제에 종속시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보였다. 후 주석이 김 위원장을 베이징이 아닌 창춘에서 만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중국은 김 위원장에게 동북 3성 주요 도시들의 발전상을 둘러보고 북한도 이를 따를 것을 권고했다. 실제로 김 위원장은 창춘을 비롯해 지린, 하얼빈(哈爾濱), 투먼(圖們)의 산업시설과 아버지 김일성의 항일 유적지 등을 방문했다.

    중국의 김정은 승인

    중국은 현재 랴오닝 지린 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 3성에 대한 개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이를 위해 북한을 동북 3성 발전의 배후 기지로 삼으려 하고 있다. 이른바 중국의 동북 4성 편입전략이다. 중국 정부는 이런 구상 아래 창지투(長吉圖 창춘-지린-투먼을 축으로 하는 개발계획) 개발 개방 선도구 계획이라는 대규모 두만강 유역 개발계획을 수립하고 대대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창춘에서 두만강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역을 단일 경제 벨트로 묶어 동북아 물류 거점으로 삼겠다는 것이 목표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11월 2020년까지 창춘과 지린 및 옌볜(延邊)자치주의 투먼 일대 약 7만3000㎢에 대한 개발계획을 발표했다. 이 지역 인구는 약 1090만명, 면적은 남한의 약 73%에 달한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두만강에서 동해로 통하는 뱃길이 확보돼야 하기 때문에 북한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중국이 나진항 1호 부두의 개발권과 사용권을 북한으로부터 따낸 이유다.

    중국은 나진항을 통해 현재 포화상태인 다롄(大連)항의 물류수송을 원활하게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중국은 이와 함께 청진항의 3호와 4호 부두를 연결하는 길이 314m의 연결부두 독점 사용권을 확보하고 현재 3000t 규모의 크레인을 설치하고 있다. 또 투먼~청진 구간 140여 ㎞의 철로에 대한 사용권도 확보했다. 이로써 중국은 사실상 북한을 통한 동해 진출권을 확보했다. 중국은 지난 6월1일 훈춘(琿春)과 북한 함경북도 은덕군 원정리를 잇는 두만강대교 보수 공사를 마치고 이를 개통시켰다. 두만강대교는 나진항까지 연결된다.

    중국 국가 해관총서는 훈춘-나진항-상하이를 잇는 석탄수송 해상 항로의 개설을 승인했다. 중국은 올해 시범적으로 훈춘에서 생산되는 10만t의 석탄을 이 항로를 이용, 상하이 와이가오차오(外高橋) 부두를 통해 남방에 공급할 계획이다. 이 항로 운항이 본궤도에 오르면 연간 150만t의 동북 물자가 나진항을 거쳐 남방으로 수송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10억위안(약 1700억원)이나 되는 자금을 들여 새 압록강대교를 건설해 주겠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유사시 중국군의 진입 루트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그동안 반대해왔던 북한은 중국의 경제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새 압록강대교 건설에 동의한 바 있다.

    북한=중국의 ‘동북 4성’

    중국의 적극적인 투자는 북한을 자국의 경제권으로 흡수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이다. 중국 언론들은 자국의 대북 전략을 ‘입술과 이가 서로 의지해서 미래를 열어간다(脣齒相依 活未來)’는 새로운 표현으로 미화하고 있다. 경제 대국으로 도약한 중국이 북한 경제를 거대한 원심력으로 끌어들인다면, 북한은 중국의 ‘동북 4성’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중국과 북한 간 교역규모는 매년 증가추세로 지난해에는 26억8000만달러에 달했다. 이 같은 무역의 확대는 북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 무역의 70%를 점유하고 있고, 북한에 석유의 90%, 소비재의 80%, 식량의 45%를 공급하고 있다.

    북한은 과거 6·25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현재도 중국의 지원이 없다면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중국의 전략은 김정일 체제 이후, 또는 한반도 통일 이후까지 한반도에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북한 경제를 자국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중국의 당초 전략은 김정일 정권이 붕괴할 경우 북한 난민 수백만 명이 동북 3성에 몰려들 것이라는 우려에서 비롯됐다. 중국은 이 전략을 발전시켜 아예 북한 경제를 자국에 편입시키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국은 또 북한에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하고 있다. 미국 헤리티지 재단의 한반도 전문가인 브루스 클링너 선임 연구원은 ‘북한의 정권 교체, 미국엔 어떤 의미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4월7일자)에서 중국은 북한이 통제 불능 상태가 됐다고 판단되면 군사적 개입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클링너 연구원은 중국은 난민 지원 등 인도적 임무, 치안 유지 등 평화유지 임무, 핵 시설·물질 통제 임무 등을 북한에 대한 군사 개입 상황으로 분류하고 있으며, 중국의 군사 개입은 기본적으로 한반도 통일을 막기 위한 북한의 안정화와 북한 체제 회복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북한의 붕괴가 불가피하다고 판단되면 중국은 미군이 북한 지역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중국의 이해를 관철시키기 위한 행동에 돌입할 것으로 지적했다. 클링너 연구원은 중국은 북한 체제가 회복될 가능성이 없더라도 중국 군대의 한반도 철수를 조건으로 내걸고 한국이 미군의 38선 이북 진주 저지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안드레이 란코프 전 호주국립대 교수도 “중국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경우 중국이 북한 지역에 대한 ‘평정’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면서 “중국의 개입은 결국 북한 내 친중 정권의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은 북한 군부의 친중파와 은밀하게 접촉해왔다. 중국이 북한의 급변 사태에 대비하는 것은 천안함 사태처럼 북한이 예측하기 어려운 행동을 함으로써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 조치를 받을 경우 자칫하면 북한 체제가 붕괴될 수 있음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중국의 동북 4성 편입 전략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동북공정’이다. 동북공정은 중국 동북지방의 역사, 지리, 민족 문제 등과 관련된 주제를 중점적으로 연구하는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다. 특히 중국 정부는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를 비롯한 고조선과 발해 등 한국 고대사와 관련된 역사를 자국의 역사로 왜곡해왔다. 중국이 고구려사 등을 자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의도는 남북통일 이후 동북아의 질서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을 역사와 경제를 고리로 중국에 묶는다는 포석이다. 중국의 이 같은 전략은 한반도 통일 이후 동북아의 패권 경쟁을 염두에 두고 있다. 중국은 해양세력인 미국과 일본이 한반도를 발판으로 만주를 거쳐 시베리아까지 진출하는 것을 막는 동시에 오히려 한반도에 영향력을 강화해 미국과 일본을 견제하려는 의도까지 갖고 있다. 역사는 한 국가의 문화의 뿌리이자 정신이다. 역사는 국제사회에서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각종 영토분쟁의 원인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한반도에 이미 한쪽 다리를 들이민 셈이다.

    또 다른 전략 ‘동북공정’

    한무제(漢武帝·기원전 156~87년)는 중국인이 꼽는 가장 걸출한 제왕 중 한 명이다. 한무제는 실크로드 진출을 가로막았던 북방의 흉노족과 15차례나 전쟁을 벌였다. 흉노족을 제압한 한무제 덕분에 중국 역대 왕조는 실크로드를 장악함으로써 ‘천하의 중심’임을 과시했다. 한무제는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식민지로 삼았다. 한무제는 중계무역을 통해 국력을 키우던 고조선이 흉노족과 연결 가능성이 있자 이를 차단하고 동북아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고조선을 침공한 것이다.

    한무제의 통치기간은 중국이 대내외적으로 국력이 가장 강성했던 첫 전성기였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업적을 남겼다면, 한무제는 중국이라는 봉건국가의 틀을 수립한 제왕이다. 중국에서는 과거의 제왕이나 영웅에 빗대어 현재의 지도자를 교묘하게 비판하거나 칭송하는 전통이 있다. 굴욕의 세기에서 벗어나 제국으로 다시 도약하는 중국을 현재 통치하고 있는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21세기판 한무제’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다시 말해 중국 공산 정권의 시조인 마오쩌둥은 진시황으로, 후 주석은 한무제로 각각 비유할 수 있다.

    현재 한반도의 시곗바늘은 60년 전으로 되돌려 진듯하다. 북한의 공산왕조는 더욱 강력하게 체제를 구축하고 있지만, 남한은 해방 정국처럼 이념 논쟁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국가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 역사는 똑같이 되풀이되지는 않지만 동북아의 국제 상황은 다시 1세기 전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꼭 1세기 전 한반도는 운명의 해를 맞이한 바 있다. 대한제국은 1910년 일본에 강제 병합됐다. 일제의 식민 통치를 받던 한반도는 2차대전 이후 해방을 맞이했으나, 미국과 소련의 힘의 균형에 따라 분단됐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고 아직까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소련의 붕괴와 함께 냉전시대가 종결되자 분단국가였던 동서독은 통일됐으나, 한반도는 이런 기회마저 놓치고 아직도 냉전시대의 망령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특히 천안함 사태 이후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의 주도권을 놓고 치열하게 다투면서 냉전시대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우리의 선택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최대 교역국이 된 중국과 안보의 핵심 동맹인 미국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칠 수도 없다. 중화주의를 통해 강력한 제국을 꿈꾸는 중국과 이를 이끄는 후 주석 등 공산당 지도부의 ‘대계’를 직시하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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