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환상 소설’<br>이탈로 칼비노 역음, 이현경 옮김, 민음사, 664쪽, 2만원
여행의 시작, 파리의 묘지들
페르-라셰즈 역에서 내려 묘원으로 들어가 짐 모리슨과 에디트 피아프의 묘지를 둘러본 뒤, 그 즈음 프랑스 전역을 강타하고 있던 미국 영화 ‘인셉션’의 배경음악으로 되풀이되어 흘러나오던 피아프의 ‘아니, 난 후회하지 않아’를 흥얼거리며 언덕길을 걸어 내려갔다.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19세기 총체소설 ‘인간 희극’의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와 역시 19세기 신비로운 시와 소설을 쓴 낭만주의 시인 제라르 드 네르발. 둘은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었다. 역사가를 자처하며 19세기 유럽의 풍속사를 소설로 기록하고자 했던 야심가 발자크는 장편 ‘잃어버린 환상’에서 뤼시앙이라는 기자와 루스토라는 비평가를 등장시켜 꿈과 현실 사이에 놓인 괴리와 절망을 ‘환상’의 상실로 포착해 그려내면서 100편에 가까운 단편과 중편, 장편으로 구성된 ‘인간 희극’의 대미를 장식한다. 이때, 발자크가 제목으로 삼은 ‘환상’이라는 용어는 다양한 차원에서 새삼 주목을 요한다.
소설을 지칭하는 용어는 그것에 대한 오랜 전통을 가진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픽션(fiction), 또는 로망(roman), 또는 노블(novel)이 그것이다. 허구라는 의미의 픽션은 환상의 동의어로 통한다. 이때의 환상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거나(비현실), 현실을 넘어선 어떤 것(초현실)을 뜻하는 판타지(fantasy)가 아니다. 환영(幻影) 또는 헛것을 의미하는 환상(illusion)이다. 환상이 낳은 병이라는 ‘보바리즘’의 출처인 플로베르의 장편소설 ‘마담 보바리’의 여주인공 엠마 보바리에서 알리바이를 찾을 수 있다. 소녀시절 삼류 소설에서 읽은 파리 상류 귀부인들의 삶을 좇느라 욕망의 노예가 되어 파멸해간 가련한 여자의 삶이 소설의 내용이다. 위에서 이탈로 칼비노가 말하는 ‘환상’은 엠마가 사로잡힌 그것과 종류가 다르다. 이탈로 칼비노가 ‘세계의 환상 소설’로 독자에게 소개하는 것은 모든 소설의 속성 중 하나인 환상이 아닌, 소설 세계를 이루는 다양한 층위 중 ‘하나의 장르로서의 환상’을 가리킨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이탈로 칼비노는 남미의 마르케스 보르헤스와 더불어 세계 환상 소설의 3대 대가로 불린다. ‘세계의 환상 소설’은 이미 ‘보이지 않는 도시들’ ‘나무 위의 남작’ 등 이탈리아 특유의 환상 소설을 출간해 세계적으로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그가 19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는 소설에서 특유의 분류법으로 환상 소설을 선별해 묶어낸 것이다. 나는 그의 섬세하고도 예리한 안내를 따라가다가 살짝 샛길로 빠져 파리를 무대로 펼쳐지는 세 편의 소설과 또 다른 환상의 세계에 빠졌다. 제라르 드 네르발의 ‘마법에 걸린 손’과 오귀스트 드 비예르 드 릴라당의 ‘진실보다 더 진실한’, 그리고 기 드 모파상의 ‘밤’이 그것이다. 이탈로 칼비노는 환상 소설을 두 가지로 분류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곧 ‘시각적인 환상’과 ‘일상적인 환상’. 그에 따르면, 네르발의 ‘마법에 걸린 손’은 전자에, 릴라당의 ‘진실보다 더 진실한’과 모파상의 ‘밤’은 후자에 해당된다. 파리를 무대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이들이 실어 나르는 서사의 내용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우선, 네르발이 창조한 환상의 첫 장면과 중간의 일단을 보면,
1. 도핀 광장
내가 보기에 루아얄 광장에 그렇게 웅장하게 무리 지은 17세기 건물들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이 세상에 없는 것 같다. 돌림띠와 귓돌로 중간 중간 테를 두른 벽돌 건물의 정면을 바라보거나, 해 질 무렵 눈부신 햇빛으로 붉게 물든 높디높은 창문들을 볼 때면, 흰 담비 털이 달린 붉은 법복을 입은 판사들이 앉아 있는 법정에 서 있을 때와 똑같은 경외심을 느끼게 될 것이다. (중략)
4. 퐁 네프
앙리 4세 때 지은 퐁 네프는 그의 치세 기간 중 가장 중요한 기념비가 되었다. 어마어마한 공사가 끝나고 열두 아치가 있는 다리가 센 강을 가로질러 수도의 세 구역을 더욱 긴밀하게 연결하자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흥분했고 한없이 기뻐했다. 다리는 곧 할 일 없는 수많은 파리 시민이 만나는 장소가 되었고 그 결과 마술사, 연고 장수, 소매치기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다.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강물에 물레방아가 돌 듯 군중을 따라 움직인다. -제라르 드 네르발, ‘마법에 걸린 손’에서
마치 17세기로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세밀하게 파리를 그려낸 이 소설은 파리 센 강 중(中)에 있는 두 개의 섬 중 시테 섬의 두 명소 퐁 네프 다리와 다리 중간과 접해 있는 도핀 광장을 무대로 외스타슈 부트루라는 재단사의 기이한 손 사건을 다루고 있다. 간략한 줄거리를 보면 이렇다. 군인과의 결투에 처한 재단사 부트루는 연금술사에게 마법을 청하게 되고, 이 마법으로 군인을 처단한다. 하지만 곧 경찰에 쫓겨 도핀 광장의 고명한 판사를 찾아가게 되는데, 도움을 청하러 간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마법에 걸린 손이 판사를 공격한다. 이에 그는 교수형을 받고 감옥에 갇히는데, 이때 집시가 재단사를 찾아와 손을 요구한다. 그런데 사형이 집행될 때 재단사로부터 분리된 손이 마법사를 향해 달아난다.
집행인은 욕을 하면서, 항상 옷 속에 가지고 다니는 큰 칼을 꺼내 악령 들린 팔을 두 번 쳤다. 놀랍게도 팔이 튀더니 피가 묻은 채 사람들 속으로 떨어져,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둘로 갈라졌다. 팔이 지나갈 수 있도록 사람들이 모두 피했기 때문에 팔은 곧 가야르 성의 작은 탑 밑에 도착했다. 여기서 손가락들이 게처럼 성벽의 돌출부와 갈라진 틈을 잡으며, 마법사가 기다리고 있는 창문까지 기어 올라갔다. (중략) “이 사건은 오랜 시간 동안 기이하고 초자연적인 이야기에 목말라 있던 사교계나 서민들 사이에서 주요 화제가 되었고, (중략) 진지하고 양식 있는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로 받아들이겠지만 난롯가에 모여 앉은 어린이들을 다시 한 번 즐겁게 해줄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제라르 드 네르발, ‘마법에 걸린 손’에서
칼비노가 이 작품에서 흥미롭게 포착한 시각적 환상이란 우리가 분명하게 볼 수 있는 ‘손’이 일으키는 마법을 ‘상상해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달리, 일상적 환상의 세계는 매일 밤 파리를 산책하던 모파상의 경험으로부터 창조된 ‘밤’의 일단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나는 밤을 열렬히 사랑한다. 누가 조국이나 애인을 사랑하듯 나는 밤을 사랑하는데, 본능적이고 깊은 무적(無敵)의 사랑이다. (중략) 나는 때로는 어두운 교외로, 때로는 파리 근교 숲으로 가서 걷는다. 그곳에서는 내 누이들인 동물들과 내 형제들인 밀렵자들이 배회하는 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격렬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우리를 살해한다. 그렇지만 내게 벌어진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기 드 모파상, ‘밤’에서
불현듯 찾아오는 일상의 공포
이탈로 칼비노는 이 소설을 최소한의 환상이 사용된 효과적인 예로 제시한다. 일상이라는 어마어마한 덩어리를 섬세한 눈으로 관찰해 분류하고, 분류해낸 삶의 세목들을 정밀하게 소설로 그려낸 단편 작가로 정평이 난 모파상의 소설을 접해온 독자에게 이 소설은 낯설게 다가올 것이다. 모파상은 ‘밤’에서 무의식의 잡히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심연의 정체를 그리고 있다. 그것은 악몽으로, 불현듯 찾아오는 일상의 공포 같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잡히지 않은 것,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언어로 표현해 하나의 길을 내고, 형상을 창조해내는 것이 소설(예술)의 본질 중 하나다. 곧 일상적 환상이란 우리가 살면서 느닷없이 마주치는 설명할 수 없는 공포나 꿈을 꾸는 중에는 서서히 답답함이 가중되다가 결국 그 무게에 짓눌려 깨고 나면 분위기만 느껴지는 악몽의 세계와 유사하다. 모파상의 ‘밤’은 마지막까지 작가가 무슨 얘기를 하려고 하는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 혼란스러운데, 작품을 내려놓는 순간, 그러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상에서 마주치는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을 환기하는 순간, 소설은 의외로 선명하게 우리에게 자국을 남기며 공명(共鳴)을 일으킨다.
나는 불로뉴 숲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오래, 아주 오래 머물렀다. 이상한 전율이 온몸에 흘렀고 생각지 않은 강력한 감정이 살아났으며 거의 광기에 가깝게 생각이 들떴다. 오래, 오래 걸었다. 그리고 되돌아왔다. 처음으로 나는 이상하고 새로운 일이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렸다. (중략) 새벽 두 시였다. (중략) 나는 고함을 질렀다. “도와줘요. 도와줘요. 도와줘요.” 나의 필사적인 외침에도 아무런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중략) 난 센 강가에 도착했다. 얼음같이 차가운 공기가 강에서 올라왔다. 센 강은 아직 흐를까? 난 알고 싶었다. 계단을 찾아 밑으로 내려갔다. (중략) 나는 다시 올라갈 힘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나도…거기서…배고픔으로…피로로…추위로…죽어갈 것이라는 것을… -기 드 모파상, ‘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