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과서가 없다’는 점은 영국의 초등교육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 교과서가 없으니 대부분의 수업은 교사의 재량껏 이뤄진다. 한국 학교에서는 교과서 진도를 나가고, 그 진도에 맞춰 시험을 치르는 것이 가장 중요한 듯하다.
- 그러나 영국 학교는 여기에서 자유롭기에 그때그때 독창적인 수업이 펼쳐진다.
- 자연스럽게 ‘통섭(通涉)’의 배움이 몸에 밴다.
킬러먼트 초등학교의 여학생 교복을 입은 희원이. 노란 폴로셔츠와 감색 스웨터. 그리고 회색 주름치마다.
희원이는 2005년 5월생이니 이제 만 다섯 살, 한국 나이로는 여섯 살이다. 한국에 있었다면 내년도 아닌 내후년 3월에야 학교에 들어갔겠지만 영국의 취학 연령, 아니 스코틀랜드의 취학 연령은 매년 3월 기준으로 만 48개월을 넘기면 된다. 그러니까 올해는 2005년 3월부터 2006년 2월 사이에 태어난 어린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취학 연령은 다르다. 잉글랜드에서는 2004년 9월부터 2005년 8월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올해 9월에 학교에 입학한다. 스코틀랜드보다 반년 늦게 학교에 입학하는 셈이다. 대신 잉글랜드 초등학교는 6년제이고, 스코틀랜드의 초등학교는 7년제이다. 그리고 잉글랜드 학교에는 ‘0학년’, 흔히 ‘리셉션(Reception)’이라고 하는 취학 전 준비 과정 1년이 있다.
방학과 개학 날짜도 다르다. 여름이 유난히 짧은 스코틀랜드에서는 8월 중순이면 새 학기가 시작되지만, 잉글랜드의 학교들은 9월 초에야 개학을 한다. 올해 스코틀랜드 초등학교는 8월16일에 개학한 반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초등학교들은 그보다 3주 늦은 9월6일에야 비로소 개학을 했다.
저렴하고 개성 있는 교복
정면에 보이는 학교 현관은 늘 잠겨 있어서 사무실로 통하는 벨을 눌러야만 들어갈 수 있다.
그런데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교복을 막스 앤 스펜서나 세인즈버리 같은 큰 슈퍼마켓에서 팔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격도 비싸지 않다. 바지 한 벌에 8000원, 스커트는 6000원, 흰 셔츠 두 장에 6000원 하는 식이다. 그래서 학기 초가 되면 영국 엄마들은 슈퍼마켓에 가서 교복을 한 아름 사다가 세탁기에 마구 빨아서 입히고, 한 해가 지나면 해진 교복들을 내버린다. 정말이지 경제적인 시스템이다.
희찬이와 희원이가 다니는 킬러먼트 초등학교의 경우 교복 상의인 반팔 폴로셔츠와 감색 스웨터, 우비 겸용 파카, 체육복 상의 등은 학교에서 직접 판매한다. 상의에는 모두 학교 마크가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지와 스커트는 모두 회색이나 감색으로 색만 맞추면 된다. 그래서 이런 바지와 스커트는 슈퍼마켓에서 사다 입힐 수 있다. 또 넥타이를 매고 흰 와이셔츠를 입는 정장 형태의 교복도 있다. 이처럼 교복이 한 가지로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그 안에서 나름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며칠 전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이 왔길래 읽어보니 ‘몇월 며칠에 학급 단체사진을 찍으니 이날은 학교 타이를 매고 셔츠를 입혀서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아무튼 희원이를 학교에 보내는 내 마음은 정말이지 애틋했다. 우리 나이로 이제 겨우 여섯 살인 녀석이 어떻게 학교를, 그것도 외국 학교엘 가겠나 싶었다. 그러나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격언은 어린아이에게도 통하는지, 희원이는 첫날부터 교복 입고 구두 신고 가방 메고서는 오전 9시에 학교 운동장에 딱 줄을 서서 선생님을 기다렸다. 별로 놀라거나 겁먹은 표정도 아니었다.
이야기가 조금 옆길로 새는 듯싶지만, 영국 학교는 학생말고는 학교 건물에 들어갈 수가 없다. 등교 시간 외에는 늘 학교 문이 잠겨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조차 등교 시간인 오전 9시 이전에는 학교 건물에 못 들어간다. 9시에 따르릉~하고 수업 시작 종이 울리면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은 우루루 현관 앞으로 와 학년별로 줄을 선다(이 줄서기를 ‘라인 업’이라고 한다). 그러면 각 학년 담임선생님들이 현관에 나와서 자기 반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간다. 오전 9시가 지나면 학교로 들어가려는 사람은 학생이든 학부모든 현관에서 벨을 누른 후 학교 사무실에서 나와 문을 열어줘야만 들어갈 수 있다.
빗물에 산딸기 씻어 먹는 하굣길
아이들이 등하교 때 오가는 학교와 집 사이의 산딸기 숲. 가끔 새끼를 데리고 다니는 여우가 나타난다.
하교 때도 마찬가지다. 4학년, 그러니까 우리 나이로 열 살이 될 때까지는 학부모가 하교하는 아이를 반드시 데리러 와야 한다. 처음에는 매일 오후 3시에 희찬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는 게 큰일이었는데, 요즘 머리가 좀 커진 희찬이는 친구들과 함께 집까지 걸어오면 된다며 엄마를 학교에 못 오게 한다.
희찬이가 굳이 엄마를 나오지 못하게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코너 숍’이라고 하는 구멍가게가 하나 있어서 거기서 친구들과 10펜스, 20펜스쯤 하는 불량식품 사먹는 재미에 맛을 들인 것이다. 아이들 주먹보다 조금 작은 캐러멜이나 이른바 ‘쫀득이’라고 불리는 젤리 등 한국의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불량식품들과 종목도 비슷하다. 희찬이는 매일 오후 3시 반쯤이면 이런 젤리를 하나 입에 물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들어선다. 단짝 친구인 스튜어트를 데리고 올 때도 있다.
학교에서 집으로 오는 길 사이에는 숲으로 난 지름길이 있다. 이 숲에는 가끔 여우도 출몰하고 여름이면 산딸기가 지천으로 열린다. 희찬이 말로는 아이들과 함께 가끔 산딸기를 따먹는데 그 맛이 그렇게나 기막히단다.
“아니, 산딸기를 그냥 먹어? 씻지도 않고?”
내가 놀라 물어보니 희찬이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아냐. 산딸기를 어떻게 그냥 먹어. 빗물에 씻어 먹으니까 걱정하지 마.”
“뭐? 빗물? 빗물에 어떻게 씻어 먹는다는 말이니?”
“응. 애들 다 그렇게 먹던데? 스튜어트는 목 마르다면서 빗물도 그냥 꿀떡꿀떡 마셨어.” 아아. 과연 괜찮을까….
이렇게 오빠가 학교 다니는 모습을 옆에서 본 희원이는 나름 학교에 대한 기대가 컸다. 희원이는 뭐든 오빠에게 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오빠처럼 학교 가서 친구들 사귀고, 산딸기도 따먹고, 교복도 새로 사야겠다 하고 다짐을 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학교에 들어가면 그토록 바라던 발레 클래스도 데려가주고 피아노 레슨도 시켜주기로 약속했으니 이래저래 학교를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거다.
아무튼 희원이는 ‘에이그. 저 콩알만한 것을 어떻게 학교에 보내나’ 하는 내 걱정을 보기 좋게 배반하고 너무도 씩씩하고 의젓한 모습으로 학교엘 갔다. 사실 나는 등교 첫날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희원이의 뒷모습을 보며 눈물까지 찔끔거렸는데 말이다. 그리고 입학한 첫 주에는 매주 금요일마다 ‘착한 어린이’에게 주는 사과 스티커를 못 받았다고 엄청 속상해하더니 두 번째 주 금요일에 보란 듯이 사과 스티커를 받아와서는 제 방문에 척 하니 스티커를 붙여놓았다.
값싼 종일반 유치원을 찾아라
사실 희원이가 학교에 가기까지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지난해 가을 글래스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 그러니까 2009년 봄부터 나는 아이들의 영국 학교 진학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가는 희찬이는 바로 초등학교 4학년에 진학해야 했다. 영국의 초등학교는 오전 9시에 시작해 오후 3시에 끝난다. 그러면 희원이는? 만 4세인 희원이는 아직 취학 연령이 안 돼 학교에 갈 수 없고 너서리(Nursery)라고 하는 유치원에 가야 했다.
문제는 이 유치원들의 학비가 대부분 너무나 비싸다는 데 있었다. 한국식 ‘종일반’은 한 달에 100만원쯤이나 했다. 세상에! 강남의 영어유치원도 아닌데 유치원비가 100만원이 뭐야? 영국은 복지정책이 워낙 잘돼 있는 나라니까 유치원비 정도는 걱정할 게 없겠지 하고 생각했던 나는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희원이도 영국 초등학교에 바로 진학할 수 있을 줄로만 알고 있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영국 초등학교에는 ‘리셉션’이라는 입학 전 준비 과정이 있고, 리셉션에는 취학 1년 전인 네 살짜리 아이들이 들어갈 수 있다. 리셉션 과정의 학비는 무료이고 초등학교와 똑같이 오후 3시에 끝난다. 그러면 희찬·희원이가 학교에 있는 오후 3시까지는 내가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런데 웬걸, 2009년 봄에 입학 관련 서류를 챙기면서 학교에서 보내온 외국인 학생용 입학 안내서를 꼼꼼히 읽어보니 희원이는 ‘유치원’에 가야 한다고만 나와 있었다. 어디에도 리셉션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결국 궁금증을 못 이기고 학교의 외국학생 담당 사무실에 국제전화를 해보니 스코틀랜드의 교육제도는 잉글랜드와 다르며, 리셉션은 잉글랜드에만 있다고 했다. 스코틀랜드의 초등학교에도 무료로 운영되는 병설 유치원이 있긴 하지만, 오전에만 수업을 해서 12시에는 부모가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종일반이 있는, 비싸지 않은 글래스고의 유치원 찾기’가 시작됐다. 스코틀랜드 교육청 홈페이지, 글래스고 시의회 홈페이지 등등을 깡그리 뒤져가며 수없이 메일을 보내고 또 보낸 결과, 운 좋게도 글래스고 시에서 운영하는 공립 유치원을 몇 군데 찾아낼 수 있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하며 학비는 점심값 포함해 한 달에 30만원 정도. 그 정도면 더 바랄 나위가 없는 조건이었지만, 스코틀랜드 학부모들 역시 공립 유치원 종일반이 드물게 좋은 조건이라는 정도는 다 아는지라 유치원 입학 경쟁이 만만치 않았다. 나는 공립 유치원에 아이를 입학시키지 못하면 희원이를 한국의 할머니 댁에 맡겨두고 가야 하는 처지여서 마음이 타들어갈 듯 급했다.
결국 5월에 억지로 런던 출장을 만들어 런던에서 글래스고까지 영국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글래스고 대학에서 가장 가까운 공립 유치원을 찾아가서 내 사정을 설명하며 울먹울먹 통사정을 하니 마음씨 좋은 원장 미세스 켐벨은 “그 이야기를 하러 한국에서 글래스고까지 왔느냐”며 입을 딱 벌렸다. 결국 미세스 켐벨이 특별히 희원이를 위해 한 자리를 마련해줘 그 해 가을 희원이는 포트로즈(Fortrose) 유치원의 종일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나중에야 알고 보니 공립 유치원의 종일반에 아이를 넣으려면 엄마가 직장에 다니거나, 나처럼 풀타임 학생이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싱글맘이어야만 했다. 아무튼 나는 런던에서 글래스고까지 날아가는 수고를 감수한 끝에 희원이를 한국에 남겨두고 오지 않아도 됐던 것이다. 이 모든 해프닝은 결국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교육제도가 다르다는,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생겨났다.
영국의 유치원비는 유럽에서도 가장 비싼 수준으로 악명이 높다. 어느 통계에 따르면 유치원 종일반의 평균비용이 주당 30만원쯤 되고, 런던 지역은 최고 70만원 선이라고 한다. 웬만한 유치원 종일반에 보내려면 엄마 월급의 반 정도가 들어가는 셈이다. 이 때문에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직장을 그만두는 영국 엄마도 적지 않다고 한다. 영국인도 아닌 희원이가 공립 유치원의 종일반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정말로 행운이었다.
시험도 없고, 교과서도 없고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던 영국의 복지 정책이 상당부분 후퇴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 듯하다. 더구나 현 보수당 정부는 정부의 재정지출을 줄이기 위해 각종 교육예산을 삭감하고 있어 초등학교 이전의 보육비가 더 올라갈 가능성도 크다고 한다. 하긴 희찬이가 올해 봄까지 다니던 외국인 특별학급 역시 글래스고 시의회의 예산 삭감으로 문을 닫고 말았다.
말이 난 김에 조금 설명하자면, 스코틀랜드를 포함해 영국의 초등학교는 대부분 정원 500명에 못 미치는 작은 규모다. 한 학년이 한 반에 불과한 학교가 적지 않고, 제법 큰 규모인 킬러먼트 초등학교 역시 한 학년이 두 반뿐이다. 그나마 완전하게 두 반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고 한 반은 두 학년이 합반으로 돼 있다. 즉 1학년은 1A반과 1·2학년 합반으로 구성돼 있는 것이다. 희찬이도 4학년 때는 4·5학년 합반이었다. 희찬이에게 “그럼 4학년과 5학년이 같이 수업하니?” 하고 물어봤더니 보조선생님이 각기 다른 과목을 가르치기도 하고, 수학 같은 과목은 성적에 따라 여러 그룹이 구성돼서 수업하기도 한단다.
킬러먼트 초등학교 홈페이지를 보니 이번 학기의 전교생 수는 307명이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완전 미니학교 수준이지만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보도를 보면 잉글랜드, 웨일스의 초등학교 평균 학생 수는 240명에 불과하단다. 초등학교 한 반의 정원에 대한 정확한 규정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한 반 학생 수가 30명을 넘지는 못하게 돼 있는 듯싶다.
교복을 입고, 1학년부터 수업이 오후 3시까지 진행되고, 다섯 살부터 입학하는 것 같은 외형적인 차이도 있지만, 사실 한국 초등학교와 영국 초등학교의 가장 큰 차이점은 수업 방식에 있다. 영국의 초등학교에는 교과서가 없다. 교과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고 국어(즉, 영어)와 수학 교과서는 있지만 학생 개개인이 이 교과서를 들고 다니거나 집으로 가져오지는 않는다. 학교에서만 교과서를 보기 때문에 학부모는 아이들이 지금 어떤 과정을 어떻게 공부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행복과 발전 사이
킬러먼트 초등학교 놀이시설에서 놀고 있는 희찬이. 뒤로 보이는 잔디밭이 학교 운동장이다.
‘교과서가 없다’는 점은 영국 초등학교 교육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교과서가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수업은 교사의 재량껏 이뤄진다. 생각해보면 한국 학교에서는 교과서 진도를 나가고, 그 진도에 맞춰 시험을 치르는 것이 학교 교육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영국 학교는 이런 부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그때그때 독창적인 수업이 이뤄진다.
예를 들면 지난 봄에 아이슬란드 화산이 폭발해서 유럽 전역의 항공 교통이 마비됐을 때 희찬이의 초등학교에서는 2주일에 걸쳐 ‘화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즉 화산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원리로 폭발하게 되는지를 실험해보며 과학 수업을 하고, 화산이 폭발한 나라인 아이슬란드의 역사와 아이슬란드를 탐험한 바이킹의 이야기를 배우며 자연스레 지리와 역사 공부를 하고, 신문지와 물감으로 화산 모형을 만들며 미술 수업도 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니 아이들 처지에서는 학교 다니기가 참 재미있을 것 같다. 희찬이가 학교 다니는 모습을 가만 보면 어떤 때는 이 녀석이 학교에 공부하러 가나, 놀러 가나 헛갈릴 정도다. 아침마다 빈 가방에 물병과 점심값이 든 지갑, 그리고 필통과 노트 한 권만 넣고 달랑달랑 흔들며 학교에 가니 말이다.
가을이 되면서 하루가 다르게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요즘, 희찬이는 학교에서 한 주일짜리 숙제를 세 가지 받아왔다. 첫 번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해가 지는 시간과 동네 가로등이 켜지는 시간을 기록하는 것. 두 번째는 맑은 날 밤, 자기 방 창문에서 보이는 밤하늘과 동네 모습을 스케치하는 것, 그리고 세 번째는 1주일 동안 매일 변하는 달의 모습을 관찰해 그리는 것이다. 어찌 보면 대단히 목가적인 숙제이고, 또 어찌 보면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지구과학에 대한 흥미를 유도하는 숙제이기도 하다. 희찬이는 저녁 7시부터 한 시간 이상 가로등 켜지는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며 창문에 달라붙어 있었다. 저녁 8시5분쯤 해가 졌고, 정확히 5분 후인 8시10분에 가로등이 켜졌다.
이런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는가 하면 수학 같은 과목은 우열반이 편성되어 같은 학년도 각기 다른 클래스에서 수업을 듣는다. 한국 어린이들은 영국 학교에서 단연 ‘수학 천재’로 두각을 나타내는데, 희찬이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수학은 5학년 중 가장 수준 높은 반에서 수업을 듣는다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자기는 두 자릿수 곱셉과 나눗셈을 다 하는 건 물론이고 약분과 통분도 척척 하는데, 같은 반 아이들은 이제 겨우 분수와 소수의 원리를 배우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엄마, 그래서 애들이 나 수학이랑 미술 다 잘한다고 부러워해. 애들이 나더러 아티스트라고 칭찬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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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건 한국 어린이들과 영국 어린이들의, 아니 한국인과 영국인의 주요한 차이점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는 무언가를 잘 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움과 질투를 동시에 느끼면서 ‘나도 열심히 해서 저만큼 잘해 봐야지’ 하고 노력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반면 영국에서는 무언가를 특출나게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기보다는 순수하게 칭찬해준다. ‘나도 열심히 해서 저만큼 잘할 거야’ 같은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 듯하다. 뛰어난 사람에게는 뛰어난 사람의 삶이 있고, 내게는 나의 삶이 있다는 식의 개인주의적 태도가 만연해 있는 것이다. 그만큼 행복해질 수 있지만 또 반대로 그만큼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작다는 점, 이 점은 초등학교에서부터 나타나는 영국 사회와 한국 사회의 큰 차이점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