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호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대북 보안 불감증

비공개 신분의 최고위 탈북자 언론 인터뷰서 밝혀 … 2차 피해 우려

  • 황일도│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0-10-01 1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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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의 대북 보안 불감증

    8월15일자 ‘중앙선데이’의 관련 기사.

    “기사가 나온 뒤에도 지금까지 나에게 말 한마디 없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 유감스럽다는 말은커녕 이러저러한 이유로 얘기하게 됐다는 설명도 없었다.”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사선(死線)을 넘어온 기구한 이력 때문인지 언제나 진중하고 낮은 목소리였지만, 이번에는 새어 나오는 분노를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음이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먼저 그가 누구인지 정확히 밝힐 수 없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한다. 공학자 출신으로 북한에서 해군 무기체계 관련 직종에 오랜 기간 종사했고, 우리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낸 인물이라는 정도로 해두자. 이만큼이라도 언급하는 것은 8월15일자 ‘중앙선데이’기사를 통해 정부 최고위 당국자가 이미 공개 확인해버렸기 때문이다.

    문제의 기사는 8월12일 ‘중앙선데이’외교안보팀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관계자들과 가진 이슈 간담회 내용을 옮긴 것. 형식은 간담회였지만 실질적으로는 김성환 외교안보수석과의 인터뷰다. “정부는 (천안함을 공격한) 어뢰의 발사주체와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느냐”는 취재진의 물음에 김 수석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조사가 진행 중일 때 탈북자 한 명을 만났다. 북한 인민 대의원을 하다 5년 전 왔고 북한에서 해군 무기를 전문으로 한 과학자다. 만났을 때 놀랐다. 천안함 구조를 정말 소상하게 알고 있었다…그의 말로는 천안함을 깨기 위한 준비를 했다는 거다…또 ‘인간 어뢰로 공격한 게 확실하다’는 거였다. ‘비날론 코팅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어뢰에 타고 가서 배 밑에서 터뜨린다는 거다. 그러면 폭발 때 옷은 녹고 그 사람들은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어뢰 꼬리 부분이 남긴 하지만’이라는 게 그분 얘기였다.”



    그러면서 김 수석은 “그런 증언을 왜 당시에 공개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의 신변안전 문제가 걸렸다”고 답했다. 신변안전 문제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음에도 당시에는 공개할 수 없었던 그의 신분을 이번에는 언급한 이유가 무엇인지는 설명이 없다. 대의원 출신으로는 최초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탈북 이후 최고위급 인사가 서울로 망명했다는 이야기 자체는 탈북 직후 일부 언론에 보도됐지만, 그간 정부 당국은 이에 대한 확인을 계속 거부해왔다. 책임 있는 당국자가, 그것도 기명 발언을 통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수석의 입을 통해 그의 망명이 공식화된 것이다.

    문제는 2차 피해의 가능성이다. 해당 인사는 4월초 김 수석을 비롯한 정부 안보부처 최고위 당국자들을 시내 모처에서 만나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의 면담은 정부 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고, 그는 주선 과정에서 철저한 비공개를 요구했으며, 당국은 이를 수용했다. 그 약속이 깨진 것이다.

    그가 이렇듯 신변노출을 꺼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역시 지면으로 밝힐 수는 없다. 공개하는 순간 그 이유가 현실화될 우려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분명한 점은 언론의 미확인 보도와 최고위 당국자의 공개 확인은 그 무게감이 사뭇 다르다는 것. 그가 깨진 약속에 대해 분노하는 까닭이고,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는 이유다.

    남한 주요 언론을 모두 확인하는 북한 당국이 이렇듯 민감한 기사를 지나쳤을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다. 이를 통해 우리 측이 북한의 해상 무기체계에 관해 어느 수준의 정보를 갖고 있는지도 함께 북측에 공개됐다. 거칠게 말하자면, 한국이 미국 등 다른 주변국에 비해 훨씬 높은 경쟁력을 갖는다는 인간정보(HUMINT) 분야의 우위를 갉아먹은 행위라고 할 수도 있다.

    천안함 사건 이후 ‘신동아’는 해당 인사의 견해를 참고해 북한의 해군 무기체계 해외거래 내역 등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려는 기사를 작성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기자에게도 거듭 철저한 비공개를 요청했다. ‘고위 탈북자’ 수준의 흐릿한 언급도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기자는 이러한 요청을 존중해 관련 기사에서 정보출처를 철저히 보호했다. 기사가치를 높이는 것 못지않게 2차 피해를 막는 일도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러한 노력은 이제 의미가 바랬다. 그가 이번 사안의 기사화에는 선뜻 동의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한국 사회를 향해 할 말이 많지만 가까스로 참아왔다. (청와대 측에) 정식으로 항의하고자 한다”고 그는 말했다. 같은 시기, 딸 특채 사건으로 물러난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후임으로 김성환 수석이 가장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만일 보도대로 김 수석이 장관이 된다면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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