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핵실험 직후 청와대·국방부 지시 따라 KIDA 진행
- “300㎞로 제한한 한미협정 개정해 550㎞ 이상 신형 개발해야”
-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가 제기한 ‘능동적 억제전략’의 비밀
- 육군 유도탄사령부 담당? 공군 중심의 전략사령부 창설?
- 오바마 행정부가 제안한 ‘지역형 맞춤 MD’와 맞교환 방안
- 중국·러시아 반발 불가피, 나로호 사업 등 타격 입을 수도
복수의 당국자에 따르면 이에 대한 정부의 지침을 받아 정책 현안 보고서를 작성한 실무주체는 한국국방연구원(KIDA)이다. 지난해 4월 미사일 발사실험과 5월 2차 핵실험으로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능력에 관한 위기의식이 고조되던 초여름 시작된 관련 작업은 항공무기체계의 획득정책이나 비용분석 분야에 오랜 기간 종사해온 KIDA의 전문연구진이 주로 담당했다. 수개월간 진행된 작업은 지난해 가을 완료돼 보고서 최종본이 주요 안보부처에 제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눈여겨볼 것은 보고서의 방향이 사거리 연장이 과연 필요한지 아닌지를 고루 검토하기보다는, 연장의 정책적 당위성이나 군사적 유용성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편에 가깝다는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사거리 1000㎞ 가까운 준중거리 신형 미사일을 개발함으로써 현무나 에이태킴스(ATACMS) 등 현재 한국군이 보유하고 있는 지대지 미사일이 닿지 못하는 함경북도 일대의 미사일기지까지 압도적인 화력으로 무력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 골자. 한마디로 ‘따져보자’라기보다는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는 것으로, 이는 정책보고서의 당초 목적이 무엇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공교롭게도 보고서 작성을 전후해 정부 주요 당국자들은 의미심장한 공개발언을 남긴 바 있다. 지난해 4월 한승수 당시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사거리 연장) 문제에 관해서는 국방·외교당국이 심각하게 살펴볼 수 있는 시점이 됐다”고 언급한 바 있다. 보고서 작성 작업이 마무리되던 10월에는 변무근 당시 방위사업청장이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에서 “사거리 500㎞ 이상 탄도 미사일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에도 정밀타격 능력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의지는 여러 차례 강조된 바 있다. 9월 초 대통령 보고를 마친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가 제시한 ‘능동적 대북(對北) 억제전략’이 대표적이다. 북한의 다양한 도발 유형에 대비하고 도발 의지 자체를 원천적으로 꺾는다는 이 전략의 핵심에는 북한의 핵이나 미사일 발사 또는 전쟁 징후가 포착되면 군 기지를 포함한 전쟁지휘부 시설을 선제 타격한다는 개념이 포함돼 있다. 이러한 전략을 위해 가장 먼저 거론되는 방안이 바로 북한 전역을 사거리 안에 두는 신형 탄도미사일의 개발이다.
누가, 왜, 어떻게
특히 문제의 정책보고서 작성 과정에서는 신형 탄도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예상비용을 추산하는 취지로 지난해 8월과 올해 6월 발사했던 한국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1) 개발과정 등에 쓰인 민간로켓 기술을 활용하는 방안이 함께 검토된 것으로 안다고 일부 당국자들은 전했다. 최종보고서에 관련 내용이 포함됐는지는 당국자들 사이에서도 설명이 엇갈리고 있지만, 민간로켓 기술의 탄도미사일 활용은 한국의 위성로켓 발사 시도와 관련해 국제사회가 가장 경계해온 시나리오라는 점에서 매우 민감한 사안이다.
이와 함께 해당 보고서는 실제로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를 연장할 경우 이를 현재의 육군 유도탄사령부가 함께 관리해야 할지 혹은 공군을 중심으로 새로운 관리체계를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분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300㎞ 이하의 미사일과는 달리 주변국 일부를 사거리 안에 둠으로써 전략무기(strategic weapon)로 분류될 수 있는 신형 미사일의 특성상 미군의 전략사령부(STRATCOM)에 해당하는 신규 조직을 창설해 특화된 임무를 맡기는 방안을 함께 검토한 것. 어느 쪽이 나은지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정교한 수준의 방안별 장단점 분석이 보고서에 포함됐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외에도 보유 시 적정 수량 등 담긴 내용이 극히 민감한 사안임을 감안해 해당 보고서는 작성된 후 대외비로 분류,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 등 관련부처에서는 보고서 작성 작업에 관여했던 전문가들에게 철저한 보안을 수차 당부하기도 했다. ‘신동아’가 관련 내용을 확인한 당국자들 대부분은 문제의 정책현안 검토를 KIDA에 의뢰한 것이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이라고 전했지만, 일각에서는 국방부를 중심으로 진행된 작업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분명한 것은 해당 비밀 보고서가 청와대와 국방부에 전달됐고, 양측 당국자들 모두 보고서의 취지와 결론을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무3C에도 민감했던 중국
한국군의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300㎞ 이내로 제한하는 것은 1970년대 미국으로부터 미사일 기술을 도입하면서 맺은 관련 지침 때문이다. 평양까지의 거리인 180㎞로 제한했던 초기 지침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이슈로 떠오른 이후인 2001년 개정돼 신의주까지 공격할 수 있는 현재의 수준으로 늘어났지만, 이후 북한이 준중거리 미사일까지 실전 배치함에 따라 미흡하다는 지적이 지배적이었다. 함경북도 화대군 무수단리 등에 들어선 북한의 주요 미사일기지는 휴전선으로부터 300㎞를 넘어서기 때문. 이를 보완하기 위해 한국군은 미사일 지침의 제약을 받지 않는 크루즈미사일을 집중적으로 개발해왔고 최근에는 1500㎞급인 현무3C 미사일을 실전 배치했다는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크루즈 미사일은 음속의 7~8배로 비행하는 탄도미사일보다 속도가 훨씬 느리므로 북한군이 엄청난 밀도로 구축해놓은 대공방어망에 의해 요격당하기 쉽다는 약점이 있다. 특성상 탄두중량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파괴력도 떨어진다. 따라서 그간 군 주변에서는 북한은 물론 주변국을 견제할 수 있는 안보역량을 구축하기 위해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를 1000㎞ 이상으로 늘여야 한다는 여론이 적지 않았다.
사실 한국의 공학적 기술수준만 놓고 보면 사거리 연장은 그리 어려운 과제가 아니다. 미사일 지침이 개정될 경우 사거리 500㎞ 이상의 탄도미사일은 6개월 내에, 1000㎞ 이상은 1, 2년 내에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이 군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 사거리 연장의 장애물은 기술 개발의 어려움이 아니라 국제정치적 변수라는 것이다.
사거리 연장을 통해 탄도미사일 사거리안에 들어올 수 있는 주변국들은 사뭇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사거리 1000㎞ 범위에는 중국 산둥성과 만주 대부분, 베이징 일부까지 포함되고, 러시아의 경우 극동함대사령부가 포진한 블라디보스토크가 들어간다. 현무3C 배치 소식이 알려진 7월 중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한국이 몰래 칼을 갈아온 것이 증명됐다”며 “한국이 천안함 사건을 핑계로 감히 뛰어들지 못했던 금지구역에 뛰어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현무3C보다 위력이 훨씬 강한 탄도미사일의 경우에는 반발이 더욱 격할 수밖에 없다.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기술의 국제적 확산에 민감한 미국 역시 반가워할 이유가 없다. 한국의 탄도미사일 사거리 연장이 자칫 북한에 장거리 미사일 개발의 명분을 줄 우려가 있기 때문. 특히 워싱턴의 눈으로 보자면, 이는 유사시 정밀타격 능력의 상당부분을 미국 측이 제공하기로 한 그간의 안보 공약을 한국 정부가 신뢰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특히 사거리 연장을 위한 지침 개정의 키를 워싱턴이 쥐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미국 측의 원론적인 자세는 넘어서기 쉽지 않은 관문이다. 최근 들어 이 문제에 대한 한국 측의 입장이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되자 미국 측 역시 반응을 내비치고 있지만, 주한미군과 워싱턴의 기류가 사뭇 다르다는 게 당국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지난해 한승수 총리의 관련 발언이 논란을 일으킨 직후 프랭크 팬터 주한미군 기획참모부장은 한미 연례안보협의회 등을 통해 개정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으나, 이후 논의과정에서 워싱턴 국방부와 국무부는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패키지딜, 그 가능성과 위험성
이러한 미국 측의 우려를 돌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최근 정부 내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아이디어가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와의 연계다. 한국이 MD체계에 일정부분 참여하는 대신 그 반대급부로 탄도미사일의 사거리 연장을 인정받는 일종의 ‘패키지딜(package deal)’인 셈. 미 본토에 대한 미사일 공격의 방어까지 포괄하는 전통적인 개념의 MD 대신 동북아 지역에 국한된 방어체제라면 중국 등 다른 국가들이 반대할 명분도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게 그 주요 근거다.
전임 부시 행정부와 달리 오바마 행정부는 지역 차원의 중단거리 탄도미사일의 위협을 중시하면서 동북아와 유럽, 중동 등 지역적 특성에 맞게 단계적으로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른바 ‘맞춤형 지역 MD’의 강화다. 이에 따라 미국 측은 지난해 12월 한미 외교·국방 국장급 워싱턴회의에서 맞춤형 지역 MD 개념을 설명하는가 하면, 국방부와 국무부를 통해서도 한국 정부에 동참을 제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이클 시퍼 미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부차관보는 3월6일자 ‘동아일보’ 기고문을 통해 이를 공개 언급하기도 했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MD 참여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한 바 있다. 특히 최근 미일관계가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면서 미일 간 MD 공동구축 문제가 도마에 오르자, 한국의 MD 참여를 동맹 강화의 중요한 발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는 인식이 조금씩 힘을 얻는 추세다. 일단은 북한이나 주변국의 미사일 전력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할 수 있을뿐더러, ‘안보 무임승차’에 대한 미국 측의 불만 어린 시선도 일정부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한국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이지스 구축함의 관련 체계를 일부 업그레이드하면 맞춤형 MD의 핵심인 SM3 요격미사일을 장착할 수 있기 때문에 비용부담이 이전에 비해 상당부분 줄었다는 점도 핵심 논거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유럽에서 MD 추진이 러시아의 반발에 밀려 사실상 무위로 돌아간 것에서 알 수 있듯, MD 문제는 경제적 비용 문제보다는 국제정치 이슈로서의 성격이 훨씬 크다. 이와 관련한 한국의 행보를 지켜보는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의 시선이 여전히 만만치 않은 것.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 석상에서도 MD 참여 문제가 집중적으로 토론된 바 있지만 참석자들 사이에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엇갈려 분명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천안함 사건 이후 중국이 이명박 정부의 한미동맹 강화 노선에 불만스러워하는 현재 상황은 MD 참여가 현실화할 경우의 파장을 가늠하기 더욱 어렵게 만든다. 탄도미사일의 사거리 연장과 MD 참여가 맞교환 형식으로 동시에 진행된다면 반발은 배가될 수밖에 없다.
‘큰 뜻’ 정해졌다면
사거리 연장 미사일의 개발이 본격화할 때 예상되는 또 다른 후폭풍으로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문제가 있다. 2001년 미사일지침이 개정된 직후 한국은 역시 사거리를 300㎞로 제한하는 이 체제에 가입한 바 있다. MTCR이 미사일 기술의 자발적 수출 통제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구속력이 약한 편이기는 하지만, 우주개발을 위해 선진국으로부터 민간로켓 기술을 도입하기 위한 전제조건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의미가 적지 않다. 탄도미사일의 독자적 사거리 연장이 궤도에 오르면 최악의 경우 MTCR 탈퇴가 불가피하고 나로호 발사 등을 위한 기술교류 역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커진다.
이러한 우려와 관련해, 정부 당국자들은 문제의 비밀 보고서를 포함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이슈는 논리개발과 비용분석, 로드맵 도출 등의 도상계획일 뿐 구체적인 기술개발 작업에 착수한 것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한마디로 아직까지는 정치적 의미와 효과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 앞서 설명한 변 전 청장의 국회 발언이 논란이 되자 방사청은 언론에 “기초적 자원의 자료수집 등을 가리킨 것이 체계 개발 등 본격적인 연구개발을 의미한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한 바 있다. 이를 통해 북한과 주변국에 정밀타격 능력에 대한 한국의 의지를 과시함으로써 북핵 문제 등 관련 협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술적 카드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 게 정부 측 인사들의 해석이다.
그러나 한미 미사일 지침은 시제품의 제작과 발사실험 단계부터 적용될 뿐 기술개발 자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다시 말해 지침 개정 없이도 사거리 연장을 위한 연구개발 작업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뜻이다. 독자적인 사거리 연장 계획이 이명박 정부가 그간 공언해온 ‘동맹 강화를 통한 대북 억제력 확보’ 방침과는 사뭇 괴리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구체적으로 실행하기까지는 여전히 큰 결심이 필요하겠지만, 지난해의 비밀 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큰 뜻’이 무엇인지는 확인된 셈이다. 이 문서가 두고두고 동북아 국제정치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