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사시대부터 한반도와 역사를 함께해온,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우포늪, 찬란했던 고대 국가의 영화를 간직한 고분군, 그리고 전국 최고의 수온과 수질을 자랑하는 부곡온천. 여기에 4계절이 아름다운 화왕산이 자리 잡은 경남 창녕군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녹색관광지다.
어디 그뿐인가. 한국 사람치고 부곡온천을 모르는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온천 관광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1980년대 이후 부곡온천은 관광버스를 대절해서라도 한 번쯤 다녀와야 하는 필수코스처럼 인식되던 온천 관광 명소다.
유서 깊은 역사의 고장
녹색관광 취재차 9월2일 서울을 출발해 경남 창녕으로 향했다.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호법IC까지 가서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여주에서 다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서울에서 4시간이면 충분히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창녕이 자리 잡고 있다.
창녕군청이 위치한 읍내 곳곳에는 가야시대 왕족의 묘로 추정되는 고분군이 여럿 있다. 봉분의 크기가 조금 작아 경주 고분군의 축소판처럼 보이지만, 여기저기 산재한 고분군은 창녕이 가야시대 중요한 도읍지였음을 짐작게 했다.
창녕군 오종식 문화해설사는 “창녕군은 옛 가라국의 일부로서 비화가야의 도읍이었다”고 소개했다. 창녕읍에 소재한 고분군은 6가야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어엿한 독립국가로서 비화가야가 창녕에 존재했음을 방증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오 해설사는 “신라 진흥왕척경비가 창녕에 있는 것 역시 한때 신라를 위협할 만큼 비화가야의 세력이 막강했음을 짐작게 한다”고 했다. 신라 영토를 대폭 넓힌 정복군주 진흥왕은 영토를 확장할 때마다 척경비를 세웠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창녕에 있다. 읍내 중심부에 위치한 석빙고 역시 창녕이 일찍이 세도가가 살았던 곳임을 말해주는 사적지다.
창녕에서는 가야는 물론 신라의 문화유적도 여럿 찾아볼 수 있는데, 진흥왕척경비(국보 제33호)와 함께 국보로 지정된 동삼층석탑(제34호)이 대표적이다.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과 유사한 모양의 동삼층석탑은 8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1965년 해체 이후 한동안 방치돼왔던 석탑은 10여 년 전부터 ‘석탑 지킴이’를 자임한 혜일 스님 덕에 국보로서 제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혜일 스님은 “불국사 삼층석탑은 CCTV까지 설치하면서 철저하게 관리하고 있는데, 동삼층석탑은 해체할 때 콘크리트로 밑받침을 해놓아 콘크리트가 부식되면서 석탑이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었다”며 “다 같은 국보인데 관계 당국에서 기울이는 정성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석가탑과 비슷한 모양의 동삼층석탑은 현재 상륜부가 사라진 상태라 어딘지 부족한 느낌을 준다. 혜일 스님은 “통일신라시대 조상님들이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석탑을 조성하셨듯이 천년이 지난 현 시점에 남북통일을 염원하며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듯 석탑에 상륜부를 붙여드리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원시 숨결 가득한 자연생태계 보고
국보 제34호 동삼층석탑 지킴이 혜일 스님.
우포늪이 자연생태의 보고라 일컬어지는 것은 이곳에 15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시연꽃과 부들, 마름, 골풀, 창포, 자라풀 등 식물만도 500여 종에 달하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노랑부리저어새와 큰고니를 비롯해 참매와 황조롱이, 원앙 등 조류도 160여 종이 서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우포늪 어디를 가더라도 새소리를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다.
주변부를 포함해 8.54㎢에 달하는 넓은 습지에는 붕어와 메기, 피라미 등 어류도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다. 이 가운데 특히 붕어가 많아 우포늪 인근 식당에서는 늪에서 잡은 붕어로 요리한 붕어찜을 맛볼 수 있다. 물론 습지보호지역이어서 관계기관의 허가를 받은 이들을 제외한 일반인의 어로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
우포늪을 제대로 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우포늪생태관에 들러 대략적인 설명을 듣는 것이 좋다. 온몸을 움직이며 ‘늪의 정의’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노용호 관장의 얘기는 평생 잊히지 않을 정도로 귀에 쏙쏙 들어온다. 생태관 인근에는 시간이 부족한 관람객이 자전거를 타고 돌아볼 수 있도록 자전거를 저렴한 가격에 대여해준다.
우포늪은 사진작가들의 출사지로도 유명하다. 특히 물안개가 낀 우포늪에 조각배가 떠가는 모습을 찍기 위해 맑게 갠 이른 새벽이면 어김없이 사진작가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일출 전 우포늪을 카메라에 담는다.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
‘신동아’ 취재팀은 우포늪의 일몰 풍경을 촬영한 데 이어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우포늪을 찾아 일출 광경도 카메라에 담았다. 동행한 송미령 문화해설사는 “물안개 낀 우포늪의 장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사진작가들이 이른 새벽부터 찾아온다”며 “우포늪의 신비로운 아침 풍경을 보려는 일반 관광객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물안개 낀 우포늪을 감상하기에는 일교차가 큰 가을부터 겨울, 이듬해 봄까지가 적기”라고 귀띔했다.
창녕에 들러 우포늪을 둘러봤다면 빼놓지 말고 찾아가봐야 할 문화유적지가 또 하나 있다. 신라 8대 사찰 가운데 하나였던 관룡사가 그곳이다.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관룡사는 대웅전과 약사전 등 보물 4점과 문화재 4점을 보유한 문화유산의 보고다. 특히 관룡사를 지나 서쪽으로 약 600m를 올라가면 용선대라는 너럭바위가 나오는데, 이곳에는 동쪽을 바라보는 석조석가여래좌상이 천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창녕군청 생태관광과 공영필 계장은 “용선대 석가상은 건강과 평안을 기원하면 효험이 있다고 알려져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며 “이곳에서 정성으로 기도를 드리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했다.
용선대와 관룡사를 뒤로하고 남동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부곡온천관광단지가 나온다. 우포늪을 둘러보고 용선대를 오르느라 지친 다리를 쉬기에는 온천욕이 안성맞춤이다. 부곡온천은 우리나라 온천 가운데 수온이 가장 높은 78°C의 온천수가 솟는다. 유황 알칼리성으로 마그네슘과 규소, 염소 등 10여 종의 무기질이 함유돼 있어 피부병과 신경통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양파 시배지 창녕
높은 수온의 온천수가 풍부해서 그런지 부곡온천의 대중탕 온도는 여느 온천지보다 높게 설정돼 있었다. 가장 낮은 대중탕 온도가 39°C 정도이고 46°C, 54°C나 되는 탕도 마련돼 있다. 단점(?)이라면 냉탕의 온도가 20°C 이상으로 미지근하다는 점이었다. 하루 이용 가능한 온천수가 6000t에 달하는 부곡온천은 국내 최고의 온천 명소다. 내년에는 이곳에서 대한민국 온천대축제가 열릴 예정이다. 현재 부곡온천단지는 분수공원을 조성하고 가로수 길도 온천을 테마로 새롭게 조성하는 등 새 단장이 한창이다.
공영필 계장은 “온천대축제 개최를 계기로 우포늪과 화왕산 등 주변 관광지와 문화재를 연계한 관광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우포늪과 부곡온천 못지않게 창녕군이 자랑하는 농산물은 양파다. 창녕은 우리나라에서 양파를 최초로 재배한 지역이다. 이 때문에 창녕에서는 양파를 활용한 특산품이 많이 생산된다. 양파고추장과 양파국수, 양파냉면, 양파진액과 숙성시킨 흑마늘, 양파장아찌 등이 대표적이다. 2008년 람사르 총회 때 공식 건배주로 쓰인 와인 ‘우포의 아침’에도 양파 성분이 함유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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