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숲의 꽃사슴들이 호수를 찾아 더위를 식히고 있다.
보양이란 양허증을 치료한다는 뜻으로, 보양약은 양(陽)이 모자라는 병증에 쓰는 약이다. 양허증의 대표적인 증상은 추위를 몹시 타는 것, 허리·무릎·다리에 힘이 없는 것, 배가 자주 아픈 것, 설사를 자주 하는 것, 오줌이 자주 마려운 것, 정력이 약화되는 것, 몽설(夢泄·몽정)과 유정(遺精·정액이 저절로 흘러나오는 것) 등이다. 보양을 한다는 것에는 좋은 음식과 좋은 약을 먹어 몸 상태를 좋게 하고 양기를 강화해 수명을 늘일 수 있다는 생각이 담겨 있다.
녹용은 누구나 먹을 수 있었을까. ‘조선왕조실록’은 녹용을 얻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임을 보여준다. 태종 17년의 윤5월9일자에는 “녹용 사냥에선 열에 하나도 얻지 못합니다. 때는 5월에 당하여서 (녹용을 자르는 시기가 5월임) 농사에 방해가 되고 또 절실히 필요한 약은 아니니 숫자를 감해주십시오”라는 보고가 기록돼 있다. 정조 8년의 기록에서도 “대저 공물로 바치는 녹용 한 대의 값이 거의 200금에 가까운데 그 근원의 폐단을 캐봐야 합니다”라는 상소를 볼 수 있다. 녹용이 일반 백성에게는 언감생심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녹용의 품질도 문제가 됐다. “약원에 올린 용재를 보고서 번번이 얼굴이 찡그려져 차마 목구멍으로 넘기지를 못하겠으니 이와 같이 하고서 어찌 신령한 효과가 있기를 바라겠는가”라는 대목도 볼 수 있다.
녹용의 보양 효과는 정력 강화의 의미가 크다. 이런 점은 녹용의 생태와 관련해 추론한 것이다. 불로장수의 비법을 소개한 도교 서적 ‘포박자’엔 “종남산에 사슴이 많은데 항상 한 마리의 수컷이 백수십의 암컷과 교미한다”는 내용이 있다. ‘본초강목’의 저자 이시진도 이 사실에다 “사슴은 성질이 매우 음탕하다”는 그의 해설을 보탠다. 한편으로는 사슴의 생태를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약효에 힘을 싣는다. “먹을 때는 서로 부르며, 행보할 때는 동행하고, 모여 있을 때는 뿔을 외부로 향해 둥근 진을 쳐서 적의 공격을 방어하며, 누울 때는 입을 꼬리 쪽으로 향해 독맥을 통한다”라고 썼다. ‘독맥을 통한다’는 표현은 약효를 잘 설명한다. 독맥은 해부학적으로 머리뼈와 척추뼈를 연결하는 부위를 말한다.
척추뼈 속에는 척수액이 있고 그 내부에 신경조직이 있다. 내부 신경조직은 척수액이 감싸주면서 식혀야 할 정도로 뜨거운 에너지를 함유하고 있다고 본다. 한의학에서도 독맥은 ‘태양의 길’이라 하여 모든 양기를 감독하는 기관이라고 정의한다. 독맥 속의 뜨거운 에너지를 선천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기라 하여 ‘원기’라 하며, 녹용은 바로 이런 뜨거운 에너지인 독맥을 흐르는 원기와 양기를 돕는다고 설명한다.
사슴의 뿔을 관찰하면 보다 구체적이다. 수많은 동물의 뿔 중에서 뿔 속에 피가 흐르는 것은 녹용밖에 없다. 뿔은 머리뼈의 연장으로 차갑고, 그 안의 피는 따뜻하다. 뜨거운 피가 차가운 뼈를 밀고 올라가 튀어나온 모습으로, 안에 있는 양적인 힘이 아주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녹용은 뼛속의 생명력을 강하게 만들며 조혈기능 및 양적인 에너지가 그 어떤 동물보다 강력하고 힘차다. 따라서 뼈에 양적인 힘이 부족해 생기는 골다공증, 소아의 성장부진, 허리 통증에 유효하다고 정의하는 것이다. 또한 해면체인 남성의 성기에도 혈액을 용솟음치게 하며 채워준다는 의미에서 ‘양도를 흥하게 한다’고 일컫는다.
보양약의 상징인 녹용
녹용은 수사슴의 갓 자란 뿔을 채취·가공해 말린 것이다.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녹용은 매화록, 마록, 뉴질랜드산 등이 있는데, ‘본초강목’에 따르면 마록을 기원으로 삼는다. 마록은 ‘원용’이라고도 하는데, 효능이 가장 뛰어나며 열이 있는 사람은 약간 띵한 느낌이 올 정도로 약효가 강하다.
녹용을 오래 두어서 차츰 칼슘이 침착되고 골질화해 굳어진 뿔은 녹각이라고 한다. 또한 뿔이 돋아나온 이듬해에 절로 떨어진 것은 낙각이라 한다. 녹용, 녹각, 낙각은 용도는 비슷하지만 녹각이 녹용보다 훨씬 못하고, 낙각은 그 가치가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떨어진다. 그 밖에 사슴뿔을 푹 고아 우려낸 물을 다시 졸여서 엉기게 한 것을 녹각교라고 하고, 그 찌꺼기를 가루낸 것을 녹각상이라고 한다.
‘본초강목’엔 녹혈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녹혈주는 사생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얻은 것으로, 그는 약초를 채취하러 산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었다. 그러다 사슴 한 마리를 붙잡아 채혈한 다음 피를 음용하고 나니 귀가시에 기혈이 충성하여 통상인과 다른 점이 있었다”라며 효과를 은근히 암시하고 있는 것.
눈길을 끄는 것은 ‘본초강목’이 은중감이란 사람의 기록을 빌려 사슴 중에서도 흰 사슴을 최고로 친다는 점이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흰 사슴의 기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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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에는 사슴이 많다. 여름밤이면 사슴들이 시냇가에 나가 물을 마신다. 한 사냥꾼이 시냇가에서 숨어보니 몇 천 마리 가운데 한 마리 사슴이 으뜸이고 빛깔이 흰데 그 등 위에는 머리털이 하얀 늙은이 하나가 타고 있었다. 이 얘기는 자순 임제의 ‘남명소승’에 나오는데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백록담(白鹿潭)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런 전설의 영향인지도 모른다.
녹용도 모든 사람에게 다 효과가 좋을 순 없다. 머리에 열이 집중되는 뜨거운 소양인이나 태양인에게 머리로 혈액이 용솟음치게 하는 것은 오히려 독에 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