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호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 축적 현황

총 1조3000억원, 연 이자 500억원…국민·하나·신한·HSBC에 분산예치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1-05-23 13: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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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국에 흩어져있는 미군기지를 하나로 모으는 평택기지 건설사업. 2007년 ‘신동아’는 한국이 매년 미군 측에 제공하는 방위비분담금이 당초 미국 측이 부담하기로 했던 새 기지 건설비용으로 쓰이기 위해 쌓이고 있음을 특종 보도한 바 있다. 4년이 지난 지금 기지이전 비용은 두 배로 늘어났고, 정부 설명과 달리 이는 한국 측 부담으로 귀결되고 있다. 그 사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방위비분담금 축적분은 시중은행에 예치돼 막대한 이자를 미 국방부에 송금하고 있는 것.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진 것은 전혀 없는 한국 정부의 무능과 부실, 그 실체를 후속 취재했다.
    주한미군의 방위비분담금 축적 현황

    2009년 1월15일 서울 도렴동 외교통상부 청사에서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 조인식을 치른 유명환 외교부 장관(오른쪽)과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 대사.

    “미 2사단 이전 비용을 방위비분담금으로 보전한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정말 모멸감을 느끼는데, 그건 정말 우리 외교안보팀의 애국심을 의심하는 거죠.…방위비분담금은 주한미군 주둔비용에 대한 것이지 2사단 이전비용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우리는 그 어떤 정부보다 그런 사명감이 막강합니다. 딴 건 몰라도 그건 의심하면 안돼요. 적어도 노무현 대통령 정부에서는 그런 일 없습니다.”

    미군기지 이전협정에 대한 한미 양측의 협상이 마무리되던 2004년 9월, 노무현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핵심관계자가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남긴 말이다. 7년의 시간이 지났고, 주한미군기지 이전사업은 본 궤도에 오른 지 오래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에서 절대로 없다’던 일은 2002년부터 지금까지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지난 3월29일 국방부는 평택 현장에서 이전사업 추진 설명회를 열고, 2016년 완료될 이 사업에서 한국이 부담할 비용이 건설비와 사업지원비를 합쳐 8조8900억원 내외라고 밝혔다. 이는 이전협정에 대한 국회 비준 당시를 기준으로 3조3000억원가량 늘어난 것. 일정 지연으로 건설비가 늘어난 데다 당초 계산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평택시 지원비와 기반시설사업, 환경오염 정화사업, 이주단지 조성 등에 필요한 비용이 추가됐기 때문이라는 게 국방부 측 설명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총 14조원 가까이로 예상되는 이전비용 가운데 4조7000억원 가량의 미 2사단 관련부분은 미국 측이 부담한다고 당초 협정에 규정돼 있다는 사실이다. 용산기지는 한국 측이 먼저 이전을 제의해 이전비용을 우리가 부담하지만 2사단은 미 측이 먼저 제의했으므로 미국이 부담한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신동아’는 2007년 4월호를 통해 “주둔비가 부족하다며 방위비분담금의 증액을 요구해온 주한미군사령부가 2002년부터 한국 정부가 지급한 분담금의 상당 부분을 금융권에 예치해왔으며 그 총액은 8000억원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다. 다음호에서는 “8000억원은 재(再)예금을 거쳐 대부분 미국계 금융회사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서울지점에 예치돼 있으며, 여기서 매년 나오는 수백억원의 이자수익이 정산을 통해 미 국방부로 입금되고 있다”고 전했다.



    당시 주한미군사는 방위비분담금을 영내 커뮤니티뱅크에 예치하고, 커뮤니티뱅크가 이를 다시 BOA 서울지점에 양도성예금증서로 예치했다. 커뮤니티뱅크는 ‘BOA 군사금융부문(military banking division)’이 미 국방부와 계약을 맺어 위탁경영하는 기관. 커뮤니티뱅크와 BOA 서울지점은 사실상 같은 계열사이므로,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방위비분담금이 미국 금융회사 계열사끼리 주고받으며 막대한 운용이익을 남기는 ‘눈먼 돈’으로 변한 셈이었다.

    주한미군이 이렇듯 엄청난 방위비분담금을 쌓아놓은 이유는 앞서 설명한 2사단 이전비용으로 전용하기 위해서였다. 협정에 따라 미국 측이 부담한다던 비용의 대부분을 실제로는 한국이 제공한 방위비분담금으로 메우겠다는 것. ‘방위비분담금으로 2사단 이전비용을 보전해주려 한다’는 2004년 당시의 의구심이 사실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연장에 또 연장?

    ‘신동아’ 보도는 다양한 파장을 일으켰고 정부의 대(對)국민 기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국회와 시민사회단체들을 중심으로 커졌지만, 노무현 정부는 임기 말까지 이를 교정하기 위한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관련 당국자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은 것은 물론 당초의 공언이 지켜지지 않은 데 대해 해명조차 없었던 것.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상황이 더욱 악화되어, 2008년 말 한국 측은 그간 쌓인 분담금의 이전비용 전용은 물론 2013년까지 같은 방식으로 축적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미국 측 요구를 수용하기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 직후 미국 측이 분담금 전용 기간을 2019년까지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국방부 측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더욱 커졌다.

    ‘신동아’의 최초 보도에서 4년여가 지난 지금, 주한미군이 축적해둔 방위비분담금의 규모는 2010년 말 현재 1조3000억원을 넘어섰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산술적으로 보면 매년 1300억원 이상이 쌓여온 셈. 3.5% 내외의 최근 CD금리를 단순 적용해도 연 500억원 가까운 이자가 생긴다. 이 같은 추세가 그대로 유지된다고만 가정하면 미국 측이 2사단 이전 완료시점으로 언급해온 2019년까지는 총 2조5000억원가량의 분담금이 전용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앞서 설명한 대로 2002년부터 2007년 사이에는 축적된 자금이 BOA 서울지점에 예치돼왔지만, 일종의 ‘내부자 거래’에 해당한다는 ‘신동아’의 문제제기 이후 이 구조는 상당부분 바뀌었다. BOA 서울지점에 예치되는 자금 규모를 점차 줄이고 국내 다른 시중은행으로 분산해 예치하게 된 것. 이 때문에 2008년 이후 국내 시중은행들 사이에서는 커뮤니티뱅크의 예금을 유치하기 위한 마케팅전이 치열했다는 게 금융권 인사들의 말이다. 2010년 말 현재 커뮤니티뱅크 명의의 예금 1조3000억원은 국민, 신한, 하나, HSBC은행에 분산돼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앞서 밝혔듯 커뮤니티뱅크 운영과정에서 발생한 영업이익은 매년 정산을 통해 미 국방부로 입금되고, 대신 미국 정부는 BOA 측에 관리 수수료를 지급한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용역계약 공시문서에 따르면 수수료 규모는 5년 단위로 5000만달러가량. 다시 말해 미 국방부는 5년치 커뮤니티뱅크 운영 수수료에 준하는 돈을 1년마다 꼬박꼬박 이자로 벌어들이는 셈이다.

    다만 커뮤니티뱅크가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경비는 이렇게 입금되는 돈에서 제외된다. 최근 수년 사이 BOA 측이 커뮤니티뱅크 직원들의 직급구조를 상향 조정해 임금을 인상하고 사무실을 리모델링하는 등 ‘성과잔치’를 벌인 것은 쌓여가는 분담금으로 인해 영업이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과 관계가 깊어 보인다. 어차피 쓰고 남은 돈이 미 국방부로 입금되는 것이므로 마음 놓고 써도 되는 구조인 셈. 커뮤니티뱅크는 평택 신설기지에도 대규모로 확장한 사무실과 영업점을 지을 예정이다.

    동맹의 신뢰

    신설되는 평택 미군기지는 1465만m²(약 444만평) 규모로 단일 미군기지로는 세계 최대 크기를 자랑한다. 이 기지의 입지를 결정하는 데는 항구와 공군기지가 인접해 있어 유사시 주한미군 자산을 다른 분쟁지역에 보내는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이 용이하게 달성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는 게 당시 미국 정부관계자들의 설명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부상하는 중국의 코앞에 최대 기지를 만들어둠으로써 미국의 대중(對中)압박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국제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 요컨대 새 기지는 상당부분 미국 측 필요에 의해 건설되는 것이지, 단순히 주한미군의 근무여건을 개선하거나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방어하는 데만 쓰이는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앞서 계산한 대로 당초 이전협정에서 미국이 부담하는 것으로 규정됐던 4조7000억원 가운데 최소한 2조5000억원가량은 한국이 제공한 방위비분담금을 통해 충당될 것으로 보이고, 여기에 한국 정부가 보증하기로 한 1조7000억원 규모의 미군 임대 가족주택을 결합하면 실제로 미국이 부담해야 하는 돈은 5000억원 내외로 줄어든다. 총 14조원의 이전비용 가운데 미국 측 부담은 3~4%에 그치게 되는 셈이다. 실제로 주한미군 측은 지난해 SCM을 앞두고 “미국이 부담할 6억달러 가운데 의회가 3억달러밖에 승인하지 않았다”며 분담금 전용기간 연장을 한국 측에 요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애국심’까지 거론하며 공언했던 노무현 정부는 스스로 한 약속도 지키지 못했고, 그 과오를 바로잡겠다던 이명박 정부는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이를 추인했다. 그러는 사이 한국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자금은 은행에서 잠자고 이자는 고스란히 미 국방부 계좌로 입금되고 있다. 힘 있는 동맹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국민의 신뢰다. 지난 10년간 쌓여온 천문학적인 방위비분담금과 이를 방조해온 한국 정부의 무능이야말로 그 신뢰를 뿌리부터 배반하는 장본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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