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종 악재에 둘러싸인 ‘선거의 여왕’
- 완전국민경선 방식 개혁 공천 가능성
- 북한 리스크 극복해야
- 선거 당일에도 영향 미칠 SNS
- 총선 승자가 대권도 거머쥔다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 9일 한나라당 쇄신 원칙을 밝히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박근혜 위원장이 이끄는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위기에 빠진 당을 추슬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지 여부가 관건이다.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진보 정당은 야권통합 효과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과정에서 확인됐듯이 표심이 기존 여야 정당을 부정하고 제3의 세력으로 이동할지 여부도 관심사다.
북한 김정은 체제의 움직임,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권력의 등장, 수도권과 부산·경남 민심 등 19대 총선의 승패를 가를 변수가 많다. 4·11 총선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를 짚어봤다.
1 공천 개혁 이뤄질까
선거의 시작은 공천이다. 각 정당은 지역구 245곳의 출마 후보와 비례대표 54명을 합쳐 299명(18대 총선 기준)의 후보자를 내세워야 한다. 여야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천 방식을 마련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등장 이후 기존 공천 방식으로는 유권자에게 감동을 줄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한나라당의 공천 개혁 논의가 정치권을 달구고 있다. 한나라당 비대위는 1월 9일 총선 공천 기준을 제시했다. 핵심은 전체 지역구 후보자의 80%(196개 지역구)를 완전국민경선(open primary·투표자가 자기의 소속 정당을 밝히지 않고 투표할 수 있는 예비선거) 방식의 당내 경선으로 뽑고 나머지 20%(49개 지역구)는 공천심사위원회가 낙점하는 전략 공천으로 선정한다는 것이다. 이때 전략 공천 대상지는 주로 한나라당 텃밭인 강남권과 영남이 될 것이라고 한다.
오픈프라이머리가 제대로 시행되기 위해선 공직선거법 개정이 필요하다. 한나라당이 최종적으로 이를 채택하는 경우 민주통합당도 국민 정서상 반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먼저 완전국민경선제를 채택하려 했지만 1월 15일 전당대회에 전념하느라 선수를 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비대위 안은 당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부적인 방식이 어떻게 정해지든 인지도가 높은 현역 의원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일반 국민이 당내 경선에 참여하는 오픈프라이머리는 국민에게 공천권을 준다는 명분이 있지만 경선 비용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은 데다 조직 동원력이 있는 현역 의원에게 유리하게 진행될 수 있다.
당장 정치 신인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신인들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현역 프리미엄을 줄이기 위해 1대 1 구도의 오픈프라이머리를 진행하는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전략공천 문제와 관련해 대구지역 한 의원은 “가슴 아프지만 나를 포함해 대구·경북의 의원들이 전략공천의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2 신인, 여성 공천 성공할까
한나라당은 비례대표 후보 선정에서도 새로운 방법을 시도할 방침이다. 그동안 각 당의 비례대표 후보는 계파별 나눠먹기 밀실 공천이란 지적을 받아왔다. 거액의 공천헌금이 오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한나라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는 이런 부조리를 타개하기 위해 하향식 배심원단 제도와 상향식 국민참여경선 제도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민주통합당도 공천개혁에 나섰다. 제1원칙은 국민참여경선의 대폭 확대다. 전국 245개 지역구 가운데 70%가량을 경선에 부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히 일부 지역은 지난 서울시장 후보 경선 때처럼 배심원 제도를 도입할 가능성도 있다.
나머지 30% 선거구에선 전략공천이 이뤄지게 된다. 이는 호남 등 비교적 당선 가능성이 높은 곳에 경선 없이 지도부가 공천을 주는 것으로, 정치신인 등용에 쓸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의 15% 이상을 여성으로 채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18대 총선 때 민주당의 지역구 여성 공천 비율은 8%였다.
여야는 30대 후반~40대 초반 연령층의 유망주를 영입해 지역구 선거에 내세우려고 한다. 한나라당의 경우 지방대학을 나와 현지에서 활동하는 젊은 전문가들을 영입해 공천하자는 의견이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3 박근혜 대세론에 의문도
한나라당의 총선 사령탑은 어떤 형태로든 박근혜 비대위원장일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박 위원장이 ‘선거의 여왕’이란 이름값을 할지 주목된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와 중앙선관위에 대한 디도스(DDoS·분산서비스 거부) 공격 사건을 계기로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등판해 당 쇄신에 나섰지만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최근 전혀 예상치 못한 전당대회 돈 봉투 파문이 불거졌다. 이런 악조건에서 박 위원장이 얼마나 개인기를 발휘할지는 의문이다. 심지어 이번 총선이 ‘박근혜 대세론’을 완전히 허무는 계기가 될 것이란 전망마저 나온다.
당내 정몽준·홍준표 전 대표와 정두언 의원, 김문수 경기도지사 등 이른바 비박(非朴) 세력이 ‘박근혜 흔들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점도 부담이다. 지금 상태라면 박 위원장의 개인기가 총선에서 먹혀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만일 한나라당이 개헌 저지선인 100석 이하의 당선자만 내는 참패를 당할 경우 ‘박근혜 무용론’이 제기될 것이란 관측도 많다. 대선 출마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의미다.
박 위원장은 일단 ‘구태 정치’를 완전히 뿌리 뽑는 과단성을 보임으로써 리더십을 과시하고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겠다는 각오를 하고 있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과 관련해 “당헌·당규가 굉장히 엄격하게 돼 있다. (당 대표 시절) 참회하는 마음으로 당헌·당규를 엄격히 만들고 그대로 실행했다”며 “당헌·당규를 칼같이 지켰으면 한나라당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비리 의원 처리, 나아가 총선 공천 과정에서 특유의 원칙과 소신을 지켜나가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하지만 이런 각오와 유권자가 박 위원장을 보는 시각은 별개다. 비대위의 인적 구성에 대한 비판이 당 내부뿐 아니라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팽배한 사실을 감안하면 안철수 바람 이후 흔들린 박근혜 대세론이 회복되기 어려울 것이란 견해가 있다. 지금 시점에 박 위원장이 앞장서 비대위를 꾸린 자체가 실책이란 지적도 나온다.
결론적으로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한 영남권에서는 ‘박풍’이 다시 불 소지가 있지만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과 캐스팅 보트를 쥐고 있는 충청권의 표심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2012년은 ‘선거의 해’다. 그러나 오히려 기존의 정치인들은 부정되고 제도권 밖의 인물들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다. 그 상징적 인물이 안철수 원장이다. 당연히 안 원장의 선택에 따라 정치권이 요동치고, 4·11 총선의 최대 변수가 된다.
4 안철수 마케팅 등장
안 원장은 지난해 12월 1일 기자들에게 4·11 총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정가에 떠돌던 ‘안철수 신당’을 만들지 않겠다고도 했다. 하지만 ‘안철수 신드롬’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여야 모두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으로 휘청거리면서 ‘안철수 대안론’이 다시 거론되고 있다.
현재로선 안 원장이 이번 총선은 비켜갈 가능성이 높다. 총선판이 어떻게 요동칠지 짐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섣불리 발을 담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신 총선 결과를 지켜본 뒤 자연스럽게 차기 대권경쟁의 대안으로 부상되는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대선 직행설’이다.
그러나 총선과정에서 일부 후보들이 ‘안철수 마케팅’에 나설 수 있다. 2008년 18대 총선 때 많은 후보가 사용했던 ‘박근혜 마케팅’처럼 광범위하진 않겠지만 일부에서 “당선되면 안철수와 함께 정권을 창출하겠다”는 식의 구호를 외치는 경우다. 이렇게 되면 ‘안철수 효과’가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총선 판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실제로 수도권의 한나라당 친이계 의원 일부와 민주통합당 의원 중에서도 안철수 마케팅을 준비 중인 사람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호남에서 서울로 지역구를 옮기겠다고 선언한 민주통합당 김효석 의원이 1월 6일 펴낸 저서의 제목은 ‘김대중, 노무현 그리고 세 번째 희망을 찾아’였다. 그가 지목한 세 번째 희망은 안 원장이다. 김 의원은 “안철수는 국민의 자신에 대한 기대, 그 속에서 자신이 담당해야 할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꼭 본격적으로 정치를 시작한다는 뜻은 아니어도 우리 사회 변혁을 위해 무엇인가 시도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이는 ‘안철수 마케팅’의 신호탄이 아닐 수 없다.
총선에 대비해 신당을 만들고 있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도 ‘안철수’를 거론했다. 박 이사장은 1월 11일 장기표 녹색사회민주당 대표와 함께 중도신당인 ‘국민생각(가칭)’ 창당 발기인대회를 열었다. 이 자리서 그는 “30명 정도의 현역의원이 참여할 것으로 본다. 안철수 원장과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결국 안 원장은 총선 이후 단행될 소지가 큰 정계개편을 통해 정치의 한복판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1월 8일 교수 채용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기 전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정치에 대해) 열정을 갖고 계속 어려운 일을 이겨나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해 정치 참여 의지가 있음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
정가 일각에서는 총선 과정에서 안 원장이 ‘메시지 정치’를 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본다. 직접 선거에 관여하지는 않겠지만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박원순 후보를 간접 지원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젊은 층 유권자에게 투표독려 같은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영향력을 행사하는 형태로 정치적 입지를 다질 가능성도 있다.
5 김정은 변수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김정은 체제의 등장도 총선 구도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단 북한의 지도체제 급변 자체는 그다지 큰 변수가 되지 않을 전망이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한의 체제변화가 총선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응답이 우세했다.
다만 ‘북한 리스크’ 관리 능력 측면에서 어느 정당이 우월할지에 대한 평가는 선거 표심에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금은 여야 모두 통일재원 마련을 위한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통일재원 문제가 화두로 떠오른 상황이다. 유권자 입장에선 과연 어느 정당이 통일시대에 대비한 시스템을 갖출 역량이 있는지 평가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김정은 체제가 최근 남한 내 종북(從北)세력에게 ‘선거정국에 적극 개입하라’는 지령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대남혁명 전위기구인 반제민전(반제민족민주전선) 웹사이트 ‘구국전선’은 최근 “진보세력의 대단합을 더 높은 수준에서 이룩함으로써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역적패당에게 결정적 패배를 안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에도 국내 주사파 등 종북·친북 세력에 반정부투쟁 등의 지침을 내려왔던 구국전선 사이트가 선거에 개입하겠다는 의도를 노골화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이후 치러진 6·2 지방선거 때도 “한나라당 압승 시 전쟁이 날 것”이라는 등의 위협을 했다. 또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엔 현 박원순 서울시장을 ‘민주대통합 후보’라며 옹호한 바 있다.
6 SNS 초강력 태풍
따라서 북한은 이번 총선을 앞두고도 특정세력에 대한 지지를 부추기는 정치선전을 펼 가능성이 높다. 한나라당 박근혜 위원장은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당시 ‘북핵’ 위기가 터졌을 때 ‘여성 리더십’의 불안감으로 이명박 후보에게 지지율 역전을 당한 경험이 있다.
한나라당 비대위는 1월 9일 SNS를 통한 국민소통을 활성화하기 위해 의원별 SNS 활동을 평가하는 ‘SNS 역량지수’를 개발, 공천심사에 반영하기로 했다. 진보세력의 전유물처럼 돼 있는 SNS의 위력에 얼마나 화들짝 놀랐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이용해 각종 현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실어 나르는 SNS는 이번 총선 결과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빠른 전파력을 가진 SNS는 이미 지난 몇 번의 선거에서 실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SNS는 대학생 등 상대적으로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 유권자들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이고, 특정 후보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등 기존의 정치공식을 바꿔버렸다.
헌법재판소는 최근 SNS, 이용자제작콘텐츠(UCC), 블로그 등을 활용한 선거운동의 족쇄를 풀어주는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인터넷 매체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하는 자체를 규제한 공직선거법 제93조 제1항에 대해 제기된 헌법소원 심판사건에서 ‘인터넷 매체를 통한 선거운동을 금지한다고 공직선거법 조항을 해석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이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1월 13일 허위사실 유포나 비방 등 다른 조항에서 금지하는 행위만 아니면 투표 당일에도 인터넷 선거운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키로 했다.
이 결정은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19대 총선부터 SNS를 통한 선거운동을 규제할 수단이 사라져 정당이나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반대 등 자유로운 의사표현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선 SNS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총선과 대선에서 필패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당장 한나라당은 쇄신안의 일환으로 ‘SNS 소통 강화’를 제시했다. SNS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관련 전문가를 영입하고 당 사무처에는 SNS 관련 로드맵을 만들어 제출하도록 했다. 민주통합당 역시 ‘2012 총선 승리 SNS 완전정복 가이드북’을 발간한 후 현역 국회의원 및 당협위원장을 상대로 교육을 실시 중이다.
선거권자로서 ‘SNS의 위력’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직접 참여해보는 일도 이번 선거의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심판론’은 4·11 총선 과정에서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야당이 청년실업과 대학등록금 인상, 주택정책 실패, 측근 및 친인척 비리 등과 같은 MB 정부 4년 동안의 실정(失政)과 부도덕성을 집중 부각할 태세다.
7 MB 정부 심판론
MB 정부 심판론은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아들 명의로 구입한 서울 내곡동 사저 비용 조달 문제가 최근 다시 불거진 만큼 야당의 파상공세가 예상된다. 18대 총선 당시 보수정권 창출의 혜택을 보며 수도권에서 대거 당선된 ‘MB돌이’들이 이번에는 다시 금배지를 다는 데 MB가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야당뿐 아니라 여당인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총선 승리를 위해선 이명박 정부를 털고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른바 ‘MB와의 차별화론’이다. 박근혜 위원장이 비대위를 구성하면서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비판적인 학자들을 주로 영입한 것도 차별화 전략의 일환이란 평가가 많다.
이런 가운데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과 박형준 전 정무수석, 이동관 전 홍보수석 등 대표적인 MB맨들이 이번 총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어 주목된다. 특히 임 전 실장이 옛 지역구인 경기도 성남 분당 을에서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와 ‘빅 매치’를 벌일 경우 이번 총선의 최대 격전지 가운데 한 곳이 될 것이다.
이밖에도 정진석 전 정무수석, 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 김연광 전 정무비서관, 김희정 전 대변인, 이상휘 전 홍보기획비서관, 김형준 전 춘추관장, 이성권 전 시민사회비서관, 정문헌 전 통일비서관, 함영준 전 문화체육비서관, 정인철 전 기획관리비서관 등 총선 출사표를 던진 청와대 참모 출신이 적지 않다. 이들이 ‘MB 심판론’과 ‘차별화론’의 역풍을 어떻게 헤쳐나갈지도 흥미롭다.
8 아, 수도권 민심이여
한나라당 수도권 출신 가운데 특히 서울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현역 의원들은 총선을 앞두고 공포에 젖어 있다. 지난해 몇 차례 선거에서 확인된 성난 서울 민심이 가라앉을 줄 모르는 까닭이다. 이들은 총선에서 강남권 일부를 제외한 모든 곳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궤멸할 것이란 괴담이 국회 주변에 나돌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선에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는 46.4% 득표에 그쳐 범야권 단일후보로 나서 53.2%를 얻은 박원순 후보에게 7.2%포인트 차이로 꺾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를 총선 지역구별로 봤을 때 한나라당은 전체 48곳 중 7곳에서만 승리했다는 데 있다. 18대 총선 당시 48개 지역구 중 40곳에서 승리를 거둔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새해 들어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파문 등으로 민심이 더 악화됐다는 분석이 많기 때문에 서울의 한나라당 의원들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은 이미 인천과 경기도 등 수도권 전체로 확산돼 있다고 봐야 한다. 반면 새 지도부 예비경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의 한 대표 후보도 돈 봉투를 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당장은 한나라당만큼 큰 타격을 입고 있지는 않다.
위기감을 느낀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은 의정보고서 등에서 한나라당 색채를 아예 지우고 있다. 차라리 당이 깨지기를 바라는 기류마저 감지된다. 지금처럼 어려운 상태에서 당을 떠나면 ‘배신자’로 낙인이 찍히지만 당이 해산되고 재창당 수순에 들어가면 그 틈을 타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다. 박근혜 위원장이 주변의 거듭된 건의에도 불구하고 ‘재창당’을 고려하지 않는 이유도 그 과정에서 이탈자가 대거 발생할 것으로 우려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9 PK ‘문·성·길’ 바람
원외에서 원내 진입을 시도하는 정치신인들도 한나라당을 꺼리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의 한 지역에서 오랫동안 선거 준비를 해온 모 씨는 얼마 전 출마 희망지역을 고향인 지방으로 급선회했다. 그는 “새로 옮긴 곳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서울에서 어렵게 공천을 받더라도 본선에서 당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가게 됐다”고 말했다.
부산·경남 유권자의 탈(脫)한나라당 기류도 심상치 않다. 이곳은 대구·경북과 함께 한나라당의 텃밭으로 간주돼온 지역이지만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이 기세를 올리고 있다. 특히 부산에서 ‘문·성·길’로 불리는 세 사람이 선봉에 서 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문성근 국민의 명령 대표,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다.
부산의 중견 언론인은 “지역에서 이번처럼 한나라당이 맥을 못 추는 것은 처음 봤다”며 “MB 정부의 전반적인 실정, 특히 부산의 염원이었던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 수도권 논리에 따라 백지화된 일이 민심을 크게 악화시킨 것 같다”고 말했다.
현지 민주통합당 인사들은 부산·경남의 전체 의석 35개 가운데 10개 이상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역정치권의 일반적인 관측도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 등과 선거연대를 성사시켜 시너지 효과를 낼 경우 10석 이상 확보가 무리한 목표만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반면, 영남권의 또 다른 축인 대구·경북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여전히 한나라당이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역 의원 개개인의 인기는 바닥세지만 정당 지지율에서는 한나라당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다. 따라서 공천 물갈이만 제대로 이뤄진다면 이번에도 대구·경북의 27개 의석 전부를 한나라당이 싹쓸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수도권 등에서 한나라당 후보들이 고전할수록 대구·경북에는 반작용이 일어나 표가 결집할 것으로 보인다.
10 적지(敵地) 출마자
지역주의 극복을 기치로 내걸고 소속 정당의 취약지역에 과감하게 뛰어든 현역 의원들의 선전 여부도 흥미를 끈다. 민주통합당 소속 가운데는 경기도 군포에서 3선을 하다가 고향인 대구지역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의원이 대표적이다. 대구에선 17대 총선 때 조순형 의원, 18대 총선 때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진보 후보로 각각 출마한 적이 있지만 모두 실패했다.
김 의원은 “대구는 30년간 일당독식의 아성으로 남아 있는 곳”이라며 “박근혜 위원장의 텃밭인 대구를 총선과 대선의 최대 격전지로 만들겠다”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그는 또 손학규·정동영·정세균 의원 등 당내 대선후보군과 3선 이상 중진 의원들에게도 한나라당 강세 지역 출마를 촉구하고 있다.
반면 박근혜 위원장의 핵심 측근인 이정현 의원(비례대표)은 민주통합당의 아성인 광주 서구에 출사표를 던졌다. 이 의원은 지난 17대 총선 때 광주에 출마해 0.7% 득표라는 참혹한 성적표를 받았지만 이번에 재도전한다. 이 의원은 “27년간 노랑 일색이었던 호남에 파란 새싹을 키워달라고 간절히 호소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