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7월 10일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선언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웃고 있다.
박 전 위원장 경선 캠프 측에선 “박 전 위원장은 대통령이 되면 참 잘할 텐데 선거를 치르기에는 참으로 힘든 사람”이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한 캠프 관계자는 “박 전 위원장은 정치보다 통치를 먼저 배운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며 “언제나 통치 개념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표를 얻어야 하는 선거에서는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런 그지만 대권을 거머쥐기 위한 ‘권력의지’는 남다르다.
1등 프리미엄을 누려라
정치권 안팎의 많은 이가 ‘박근혜 대세론’을 우려한다. 미국이든 우리나라든 어느 대선에서든 늘 추격하는 도전자가 대세론에 안주한 1등 주자를 이겼다고 말한다. 2002년 대선 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뒤집어보면 박 전 위원장의 최대 강점은 1등 프리미엄이며 이를 최대한 활용하는 게 첫 번째 대선 승리 비책이다.
박 전 위원장은 이번 대선 경선 캠프 홍보·미디어본부장으로 변추석 국민대 디자인대학원장을 영입했다. 변 본부장은 LG애드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20년 동안 실무경험을 쌓고 한일월드컵 공식 포스터 제작에 참여한 국내 최고의 광고디렉터 중 한 명이다. 4·11 총선 때는 “침대는 과학이다”는 카피를 만들어낸 광고 카피라이터 조동원 씨를 홍보기획본부장으로 영입했다. 조 본부장은 총선 때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빨간색 로고를 만들어내 고루한 기존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탈피하는 데 성공했다.
홍보 분야 최고 전문가를 영입할 수 있었던 건 박 전 위원장이 1등 후보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여야 모두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커 인재 영입이 원활하지 않다는 점에서 박 전 위원장의 1등 프리미엄은 빛을 발할 수 있다. 박 전 위원장의 승부수는 ‘인물’이다. 야권이 9월 1차 민주당 경선, 11월 2차 안철수 원장, 통합진보당 후보와의 단일화 이벤트로 유권자의 시선을 끌 때 박 전 위원장은 새로운 인물을 영입해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여야를 막론하고 민주당의 손학규 상임고문 정도를 제외하고는 그 어느 후보보다 압도적으로 오랜 기간 대선을 준비해왔다. 그러다보니 그동안 준비해 온 인물과 정책면에서 우위를 보일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 결과 국정운영 능력 측면에서는 그가 다른 후보들을 압도하고 있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캠프 관계자는 “후보들 중에 대선 전에 자신 있게 ‘섀도 캐비닛(예비내각)’을 발표할 수 있는 후보는 박근혜밖에 없다”며 “정치판을 기웃거리는 인물이라면 모를까 유능한 인물이라면 다른 후보에게 가려 하겠나. 그런 프리미엄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세론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대세론의 가장 큰 함정은 “나 혼자서도 이길 수 있다”는 지나친 자신감이다. 그러나 ‘51대 49’라고 점칠 정도로 박빙 승부가 예상되는 이번 선거에서는 한 표가 아쉽다. 박 전 위원장이 지금처럼 본인의 소신을 강조하느라 포용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측근들에 둘러싸여 외연 확대에 실패한다면 이회창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수밖에 없다.
주변의 숨통을 틔워줘라
박 전 위원장은 정무적인 사안에 있어 본인의 판단에 강한 신뢰를 갖는 듯하다. 그동안 정치적 고비마다 박 전 위원장이 스스로 선택한 정무적 판단이 지금의 ‘지지율 1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2009년 세종시 수정안 논란이다. 당시 지지층인 보수 세력과 수도권으로부터 비난이 쏟아졌지만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며 세종시 원안을 고수했다. 이 덕분에 박 전 위원장은 ‘승부처’인 충청에서 가장 앞선 대선 주자가 됐고 이번 4·11 총선에서 충청 지역 1당을 이뤘다.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에도 성공하는 계기가 됐다.
4월 11일 제19대 국회의원선거 개표 방송을 보며 웃고 있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측근에선 비대위원장 수락을 반대했지만 예상외의 승리로 1등 대선 주자의 이미지를 굳혔다.
이번 총선 기간에 당에서는 국회의원 쇄신안을 비롯해 다양한 공약을 준비했지만 박 전 위원장은 “메시지에 혼선이 생긴다”며 민생 공약인 ‘가족 행복 5대 약속’만을 반복해 홍보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선거 유세 때 ‘100% 대한민국’과 ‘우리의 이념은 민생’이라는 모토를 반복해 전달하며 국민 통합과 민생 메시지를 정확하게 전달했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이 강조하는 원칙이나 소신이 ‘표’를 얻기 위한 정무적인 판단과 부딪칠 경우 정무적 판단에 귀 기울일 수 있게 주변에서 도와줘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박 전 위원장의 ‘불통’ 이미지를 확산시킨 경선 룰 논란이 대표적이다. 한 친박 인사는 “경선 룰과 같은 원칙의 문제는 박 전 위원장으로서는 중이 제 머리를 못 깎는 지점”이라며 “당 지도부가 일찌감치 경선 룰 논의 기구를 만들고 논의를 마치는 모양새로 경선 룰 국면에서 벗어났어야 했는데 당 지도부가 박 전 위원장 눈치를 보느라 오히려 결과적으로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정두언 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 건도 마찬가지다. 박 전 위원장은 의원총회에 참석하기 전 △대국민 사과 △정 의원 스스로의 해결 △이한구 원내대표 7월 임시국회 이후 사퇴라는 3가지 해법을 내놨다. 박 전 위원장은 당장 원내대표를 교체하면 7월 임시국회에서 총선 때 내걸었던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공약 후속 법안 처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미 사퇴를 선언한 이 원내대표의 한시적 복귀는 ‘여론을 피해가기 위한 쇼’라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많은 의원이 의총에서 “원내대표를 당장 교체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했지만 당 지도부는 박 전 위원장의 뜻대로 결정했다.
한 캠프 관계자는 “박 전 위원장이 큰 틀에서 탁월한 정무 감각을 보이지만 간혹 지나치게 본인의 원칙, 소신의 굴레에 빠져 헛디디는 행보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당 지도부나 주변 측근이 잘 판단해 박 전 위원장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리해주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권과 차별화된 경제민주화
박 전 위원장은 2007년 대선 출마선언문에서 ‘줄푸세’를 주장했다.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질서를 세우자는 이 공약은 시장경제주의에 입각한 내용이었다. 그랬던 그가 5년 뒤 대선 출마선언문에서는 그와 정반대의 결을 가진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 그는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이후 5년 동안 꾸준히 자기 변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금융권의 탐욕에 대해 천착했고, 2009년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후 박 전 위원장은 지난해 2월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법안을 발의해 복지 이슈를 선점했다. 실제 전반적인 사회 흐름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강조해온 이명박 정부의 경제기조에 염증을 나타내며 ‘양극화 해소’ ‘공정사회’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의 화두와 맞아떨어진다.
한 캠프 핵심 인사는 “2009년 스탠퍼드대 강연 이후 2010년 ‘정의란 무엇인가’ 책 열풍, 2011년 자본주의 4.0, 2012년 경제민주화 논란으로 이어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박 전 위원장이 이슈를 선점했다”며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의 보수적인 이미지를 복지와 경제민주화로 돌려놓은 것이 5년 내내 지지율 1위를 달릴 수 있는 비결”이라고 자평했다.
박 전 위원장은 향후 대선 본선 때도 30, 40대와 수도권 표심을 잡기 위해 경제 분야에서 더 ‘좌클릭’ 행보를 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국민은 아직도 그를 ‘가장 보수적인 후보’로 인식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가 말하는 경제민주화와 야권에서 말하는 경제민주화의 차이점을 정확히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구체적인 해법을 제시하지 못할 경우 오히려 국가 재정을 파탄하는 포퓰리즘에 편승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안철수 지지율 떨어뜨려라”
경제 전문가들은 이미 경제민주화의 구체적인 해법들이 다 제시돼 있기 때문에 야권과 차별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게다가 재벌 지배구조 개선에 손을 대지 못할 경우 반쪽 경제민주화가 될 수밖에 없고 그 부분을 손댈 경우 보수진영의 역풍도 만만치 않다는 점에서 운신의 폭도 넓지 않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의 경선 일정이 본격 시작된 가운데 박근혜 경선 캠프는 경선을 넘어 대선 본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경선 과정에서 상대 후보들의 네거티브 전략으로 인한 이미지 손상을 최소화하고, 김문수·김태호·임태희·안상수 후보와는 되도록 감정싸움을 하지 않고 ‘화합’형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이는 본선 이후 김문수 지사와의 협력을 통해 보수 우파의 불안감을 없애고, 김태호 의원을 통해 미래 변화 이미지를 도모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캠프 핵심 인사는 “7, 8월에는 점수를 더 따기보다 현재의 위치를 유지하다가 9, 10월 야권과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면 압도적인 국정 운영 능력을 앞세워 차별화된 인물과 정책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본선 때 글로벌 경제위기 이슈가 본격 제기될 때 정치적 이벤트로 야권연대에 몰입하는 야권을 ‘불안한 세력’으로 몰아가면서 성장동력 제시와 재정건전성을 감안한 책임 있는 복지정책으로 ‘안정된 수권 능력’을 보여주겠다는 전략이다.
박근혜 경선 캠프는 강력한 경쟁자인 안철수 원장에 대해서는 점점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박 전 위원장은 직접적 비난을 자제하고 있지만 홍사덕 캠프 공동선대위원장, 최경환 총괄본부장 등이 공격 전면에 나섰다. 안 원장의 지지율을 최대한, 빨리 떨어뜨려 그가 야권 후보의 손을 들어줬을 때 파괴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판단한다. 캠프 관계자는 “지난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40% 지지율 후보가 5% 후보를 지지했기 때문에 파괴력이 있었다”며 “안 원장 지지율이 10%대로 떨어질 경우 누구를 지지하든 그 표가 결집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아킬레스건 정치적 대처
‘박근혜 용인술’의 또 다른 키워드는 견제와 균형이다. 예전부터 좌장을 두지 않는 그는 어느 한 쪽으로 힘이 쏠리는 것을 철저히 경계한다. 캠프 정책위원회에는 경제민주화의 창시자 김종인 전 의원과 삼성 출신의 현명관 전 전경련 상근부회장을 함께 배치했다. 김 전 의원과 이한구 원내대표가 한동안 경제민주화를 두고 설전을 벌이도록 방치한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다.
선거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조직’도 느슨하다. 최대 사조직인 국민희망포럼이든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사조직이든 무리하게 세를 확장하려는 움직임이 덜하다. 대선 때 고려대 조직을 총동원했던 이명박 대통령과 달리 박 전 위원장 출신대학인 서강대는 상대적으로 조용한 것이 단적인 예다.
박 전 위원장이 넘어야 할 산은 그 이외에도 많다. 최대 아킬레스건은 ‘과거형’ 인물 이미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는 건 큰 자산이자 동시에 부담이다. 야권에서는 끊임없이 유신이나 5·16 군사정변에 대해 물고 늘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는 이번 출마선언문에서 아버지의 상징인 ‘국가주의’에서 국민 개개인이 중심이 되는 ‘국민주의’로 전환을 선언했다. 아버지를 뛰어넘는 ‘업그레이드 박정희’를 선포한 것이다.
2007년 7월 19일 당 국민검증토론회에서 제기됐던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6억 원 수수 의혹 △성북동 주택 취득 경위 △최태민 목사 관련 의혹 △육영재단, 영남대, 정수장학회 관련 의혹은 다시 한 번 야당의 공격 소재가 될 공산이 크다. 박 전 위원장 측은 5년 전 한 번 다 걸러냈기 때문에 큰 파괴력이 없으리라 기대하지만 국민에겐 새롭게 들릴 수도 있다. 특히 그를 잘 모르는 20, 30대 젊은 층에게는 더욱 먹혀들어갈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박 전 위원장은 지난해부터 네거티브 대응팀을 가동해왔다. 현재 김회선 의원이나 유영하 변호사 등이 캠프와 별도로 이 작업을 비밀리에 진행 중이다. 이 팀에서 1차적으로 사실에 대한 자료 수집과 공격 대응 포인트를 정한다. 그러나 캠프 측은 이번 네거티브 대응의 경우 팩트 검증보다 정치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는 걸로 보고 있다. 사안마다 무시할지, 비판 발언만 할지, 고소·고발로 강력하게 대응할지, 박 전 위원장이 직접 나설지, 대변인 차원에서 할지 이런 정무적 판단은 결국 캠프가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