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작권은 北 급변사태 때 한국군 투입 위해 환수
- CODA 사항 무너졌다…동맹 유지하며 미군과 협조해야
- ‘미국식 보복’ 아닌 자위권 행사 차원의 날렵한 대응을
- 대통령과 합참은 지휘관들에게 작전 위임하라
- 비대한 합참 쪼개 합작사 만드는 국방개혁 필요
2월 22일 대통령 당선인 시절 한미연합사를 찾아 제임스 서먼 연합사령관(왼쪽)과 함께 설명을 듣는 박근혜 대통령. 안보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연합사령관을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가동하려는 한국 내 ‘무늬만’ 평화옹호세력의 뒤에 종북(從北)세력이 숨어 있다. 북한의 위협이 고조되면 적잖은 이가 전쟁 공포심에 스스로 자세를 낮춘다. 그리고 일부는 ‘나와 내 가족이 살아갈 나라가 전운에 휩싸여서는 안 된다’는 명분으로 북의 위협에 당당하게 맞서기를 극력 회피하는 ‘평화애걸세력’이 된다. 그때 평화세력으로 위장한 종북세력이 “북한과 일전을 각오하고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이들을 ‘전쟁광’으로 몰아붙여, 보수세력을 한순간에 소수파로 전락시킨다. 그러다 위기가 끝나면 종북세력의 술수에 말려들었던 평화애걸세력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보수적 성향과 태도를 취한다. 이런 ‘널뛰기’가 반복되면 많은 이가 북의 위협을 운명으로 받아들여 일전불사 의지를 꺾게 된다. 북한이 남한을 강하게 흔들며 기다리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었다면…”
박근혜 정부는 널뛰기 현상을 극복할 수 있을까. 실패한다면 이명박 정부처럼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직진하는 ‘이름만 보수’가 된다. 이 전 대통령은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 뒤에도 북한이 한국에 대해 조준격파사격을 하겠다고 위협하거나 연평도 포격 사건을 저질렀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지도력에 흠집이 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실패는 보수파의 실패를 넘어 대한민국의 굴욕으로 이어진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거대한 산업·정보국가인 대한민국은 그간 쌓아올린 경제적 성과가 허물어질 수도 있는 전면전을 결심해야만 하는 것일까. 여러 안보 전문가를 만나 그 해법을 들어봤다.
“이승만 대통령이었다면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 때 한미연합사령관을 불러 조인트를 깠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공격당하고 우리 국민이 희생된 전쟁행위가 일어났으니 신속히 북한을 응징하고 재도발을 막을 방법을 내놓으라고 다그쳤을 겁니다. 왜 우리 대통령들은 연합사를 다룰 줄 모릅니까. 한미연합사는 미국의 군대가 아니에요. 법적으로도 우리가 50% 지분을 갖고 있어요. 병력은 우리가 훨씬 더 많습니다. 더 중요한 건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만든 부대라는 사실입니다. 그런 목적이 흔들리면 대통령은 연합사령관을 불러 대책을 마련하라고 호통을 쳐야 합니다. 연합사가 맡을 임무도 구체적으로 지시해야 합니다.”
안병태 전 해군참모총장이 거침없이 쏟아낸 말이다. 그는 열변을 이어갔다.
“그렇게 안 하면 미국은 움직이지 않아요. 보세요,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했는데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들에겐 현상유지가 최선이기에 오히려 한국군이 단독 대응하지않을까 하는 것만 신경쓸 겁니다. 이 구도를 깨려면 미국을 움직여야 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이 연합사령관을 불러 조인트라도 까면서 군사적 대응을 포함해 압박 강도를 높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는 역대 대통령의 리더십을 비교하기도 했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은 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하면서도 필요하면 미국 대통령과 ‘맞장’을 떴습니다. 6·25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 사령관에게 국제정세에 대해 강의했잖아요. 이 대통령과 맥아더는 서로 인정했기에 뜻이 잘 통했습니다. 이 대통령은 맥아더의 후임인 리지웨이, 클라크 사령관을 아들 다루듯 하면서 지시를 내렸습니다.
“통수권은 연합사에 안 넘겼다”
박정희 대통령은 카터 미국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철수하려 하자 연합사를 만들어 오히려 한미동맹을 강화했습니다. 주한미군도 박 대통령과 뜻을 같이해서 미 8군 참모장 싱글러브 소장은 ‘워싱턴포스트’를 통해 한반도 정세가 변했다며 주한미군 감축에 반대하는 항명까지 했어요. 대통령은 미군과 미국을 그렇게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이 북 핵시설 정밀폭격을 검토한 1994년 1차 북핵위기 때 김영삼 대통령이 클린턴 미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절대로 안 된다’고 한 게 미국을 잘못 다루게 된 시초입니다. 김 대통령이 연합사령관을 불러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보기나 했나요? 북한을 정밀폭격하겠다는 얘기가 나왔으면 연합사령관에게 정밀폭격의 방법, 북폭에 따른 북한의 반격 억제 방안 등 구체적인 계획을 들어보고 ‘해도 좋겠다’ ‘안 되겠다’를 판단해야 하는데, 무조건 안 된다고 했으니 북한만 만세 부른 것 아닙니까. 그렇게 군을 모르고, 작전을 모르고, 미국을 모르고, 미군을 다룰 줄 몰라서야….
SLAM-ER을 달고 출격하는 F-15K. 북한 도발 시 SLAM-ER로 주석궁을 격파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안 전 총장은 1990년대 중반 ‘대양해군’을 내세워 우리 해군이 3척의 이지스 구축함을 보유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지스 구축함이라도 있으니 여차하면 우리는 여기에 탑재한 해성 함대지 미사일로 북한 전략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 그는 “많은 국민과 정치인이 통수권, 지휘권, 작전권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합사에 전시작전통제권을 줬다 해서 통수권을 넘긴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보장한 통수권은 우리 대통령이 갖고 있어요. 통수권은 주권(主權) 사항이라 대한민국이 무너지지 않는 한 넘겨서도 안 되고, 넘길 수도 없는 겁니다. 통수권은 군정권과 군령권으로 나뉘는데 그것은 분명히 우리 대통령이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권한을 군이 위임받아 행사할 때는 지휘권이라고 합니다. 지휘권에는 인사, 예산 편성과 집행 등 많은 것이 포함되기에 작전권보다 훨씬 큰 개념입니다. 우리 군에 대한 인사와 예산 집행은 우리 군이 하고 있어요. 일부 언론에서 ‘전시작전지휘권’을 넘겼다는 표현을 자꾸 쓰는데, 이건 틀린 말이에요.
작전통제권은 전쟁이라고 하는 좁은 범위에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같은 지역에서 동급인 A와 B 두 부대가 작전을 하게 되면 혼란이 생길 수 있으니, A부대가 B부대를 통제하게 하는 것이 작전통제권입니다. 한국과 일본 대표팀을 섞어서 독일 대표팀과 시합하게 할 때 1명의 감독이 팀을 이끌게 하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시합이 끝나 한일팀을 구성할 이유가 사라지면 감독의 역할도 끝납니다. 한일팀이 독일팀에 밀린다면 한국은 감독에게 ‘똑바로 하라’고 기합을 줘야죠.”
동독군 탈영으로 시작된 급변사태
2011년 키리졸브 연습을 위해 한국에 투입된 미군 장비.
1989년 11월 9일 동베를린 주민들이 베를린 장벽을 넘으면서 동독엔 공산정권이 무너지고 민주정권이 들어섰다. 그 와중에 동독군의 절반 가까운 병력이 탈영하는 혼란이 일어났다. 그러자 동독에선 새로 구성된 의회가 동독 민주정부는 동독을 통치할 수 없다고 보고 동독을 서독에 합병한다는 결의를 했다. 합병을 하려면 탈영한 동독 군인과 동독 군인들로부터 무기를 회수해야 하는데, 이 일은 서독군이 들어와서 수행해야 했다.
그런데 서독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군이 갖고 있었다. 서독군이 동독에 들어가려 하자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강하게 반대했다. 당시 나토군에 대항하는 바르샤바조약기구(WTO)군이 건재했는데, 동독군은 소련 및 동유럽 국가들의 군사공동체인 WTO군의 일원이었다. 고르바초프는 “동독 국회의 서독 합병 결의는 주권을 행사한 것이라 시비를 걸 수 없지만, 나토군이 WTO의 일원인 동독에 들어오는 것은 WTO군에 대한 공격에 해당하므로 WTO군 전체 차원에서 대응하겠다”고 했다.
나토군과 WTO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처럼 공동 방어를 결정한 조약(북대서양조약, 바르샤바조약)에 따라 만들어진 기구다. 따라서 이 조약에 가입한 나라들은 회원국에 다른 나라 군대가 들어오면 자국이 공격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공동 대응할 의무가 있다. 미군을 중심으로 한 나토군과 서독 당국이 고민 끝에 찾아낸 것이 평시작전통제권이라는 새로운 개념이었다.
공동 방위는 적의 공격이 있을 때인 전시(戰時)에 하는 것이다. 전시라면 북대서양조약에 가입한 미국과 서유럽 국가 군대들은 나토군 사령부의 작전통제를 받는다. 그러나 평시엔 나토군이 가동할 이유가 없다. 서독군은 동독에 싸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동독군의 무기를 회수하는 평화 임무를 위해 가는 것이니 나토군은 서독군을 작전통제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를 찾아냈다. 그리하여 작전통제권을 전시와 평시로 나눈 뒤, 서독군에 대한 평시작전통제권은 서독이 행사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나토군과 서독군이 이러한 명분을 만들어주자, WTO 가입 동유럽 국가들을 의식하고 있던 소련은 ‘서독군의 동독 진입은 WTO국 전체에 대한 침입이 아니다’라는 출구를 마련하게 됐다. 그때 콜 서독 총리가 동독 주둔 소련군의 철수비용은 물론 대규모 경제 지원을 약속하자 고르바초프는 바로 소련군 철수를 단행했다. 그 후 서독군이 신속히 동독에 들어가 동독군의 무기를 회수하고 동독 지역을 안정화했다. 이러한 토대 위에 1990년 10월 3일 동서독은 역사적인 통일을 이뤘다.
이러한 독일 통일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본 이들이 노태우 대통령 시절 국방비서관실에 근무한 김희상 당시 육군 준장(국방비서관)과 윤일영 육군 중령이다. 한국이 미국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듯이, 북한도 중국과 ‘조중우호협조 및 상호원조조약’(중국명 中朝友好合作互助條約)을 맺고 있다. 이 조약에 따라 북한과 중국은 상대국이 다른 나라의 공격을 받으면 자국이 공격받은 것으로 간주해 함께 싸울 의무를 갖는다. 북한 급변사태 시 연합사 작전통제권하의 한국군이 북한군 무장 해제를 위해 북한 영내에 진입하면 중국은 북한이 침공당한 것으로 보고 군사력을 동원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김희상 준장 등은 그러한 사태를 막기 위해 작전통제권을 전시와 평시로 나눠, 평시작전통제권은 한국군이 갖도록 추진했다.
미국은 처음엔 내켜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 급변사태 때 중국이 한미연합사의 작전통제를 받는 한국군의 북한 진입에 반대할 개연성이 매우 높았기에 결국 동의했다. 한국은 한발 더 나아갔다. 대간첩작전 등 몇 개의 작전을 평시작전으로 규정해 한국군이 작전통제하기로 한 것이다. 이는 북한군이 와해되는 급변사태가 일어났을 때 한국군이 체계적으로 북한에 진입하는 연습을 해본다는 의미도 있었다.
평작권과 CODA 주고받은 한미
미국은 평시작통권을 그냥 주면 한국군이 단독으로 북한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보았다. 이 때문에 평시에 하는 작전일지라도 전시와 연결될 수 있는 작전은 계속 연합사령관이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해 관철했다. 이것이 ‘연합권한 위임’(Combined Delegated Authority)으로 번역되는 ‘CODA’(‘코다’로 발음)의 여섯 조항이다. △전쟁 억제와 방어를 위한 한미 연합 위기관리 △전시작전계획 수립 △한미 연합 3군 교리 발전 △한미 연합 3군 합동훈련과 연습의 계획과 실시 △조기 경보를 위한 한미 연합정보 관리 △C₄I 상호운용성이다. 이를 풀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전쟁은 평시에 급작스럽게 일어날 수도 있다. 전쟁을 억제한다는 이유로 평시에 한국군이 전방에서 대부대를 이동시키는 것은 북한을 공격하기 위한 작전일 수도 있으니, 그러한 이동은 연합사가 통제한다. 전시작전계획(북한 급변사태 시 한국군의 북한 진입 계획 포함)은 평시에 짜는 것이다. 하지만 전시를 대비한 것이니 한국군이 단독으로 만들더라도 연합사의 통제를 받는다. 한미 연합 교리와 훈련도 평시에 만들지만 전시에 대비한 것이니 역시 연합사의 통제를 받는다. 전쟁을 위해서는 평시에 조기경보 같은 정보활동을 하고 C₄I 지휘통제 체제도 구축해야 한다. 이러한 활동과 체제도 전쟁과 바로 연결될 수 있기에 연합사의 통제를 받는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인 1994년 12월 1일 한국은 평시작전통제권을 가져왔다. 하지만 CODA 때문에 평시작전통제권 중에서도 핵심 사항은 계속 연합사의 통제를 받게 됐다. 일본은 평화헌법 9조에 따라 전쟁을 부인하지만, 9조를 교묘하게 해석하는 ‘해석 개헌(解釋 改憲)’으로 일본 방위에 필요한 무장을 갖춰나가고 있다. CODA는 한국군의 입에 물린 재갈이 분명하지만,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강도가 현저히 달라진다. 평작권 환수에 깊이 개입했던 한 예비역 육군 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평시작통권 환수는 북한 급변사태를 내다본 우리의 준비였고, 미국은 CODA로 이를 제한했다. 그때부터 우리는 CODA를 조금씩 무력화했다. 일본의 해석 개헌처럼 CODA의 규제 폭을 축소해온 것이다. 좋은 예가 제1차 연평해전과 대청해전, 연평도 포격전 등이다. 그러한 전투를 치르면서 우리는 연합사의 승인없이 최전방 지역으로 함정과 전투기를 출동시켰고, K-9 자주포를 쏘았다. 이를 지휘통제하기 위해 C₄I 체제를 사용했다. 제대로 보복을 하지 않아 그렇지, 연합사 승인 없이 그 직전 단계까지 행사한 것이다. 이게 바로 천안함 사건 후 이명박 대통령이 거론한 자위권 행사다. 국민은 우리 군의 대응이 부족했다고 여기겠지만, 우리 군은 CODA 아래서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
‘자위권’이라는 금과옥조
유엔사는 한국 방위와 함께 정전(停戰)체제 유지를 제일의 임무로 삼는다. 정전체제가 유지되면 한국은 침략을 받지 않으니 두 임무는 동일 목표를 지향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전면전은 하지 않고 기습 공격하는 도발만 반복한다면, 한국군은 유엔사 교전규칙에 묶여 제대로 대응을 못하게 된다. 이 때문에 한국군 지휘관들은 유엔사 교전규칙과 CODA를 북한의 대남도발 대응을 억제하는 양대 족쇄로 본다. 한국군은 CODA를 와해시키듯 유엔사 교전규칙을 사문화시킬 수 있을까. 안병태 전 총장은 이렇게 지적했다.
“교전규칙엔 ‘자위권’이라는 금과옥조가 있다. 정전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확전은 않더라도 정당방위 차원의 자위권만큼은 확실히 보장하고 있다. 우리 함정이 침몰했고 우리 병사가 희생됐으면 지휘관들은 자위권을 행사해야 한다. 사태가 일단락된 후 보복 차원에서만 대응하려고 하니, 그런 작전은 자위권이 아니라는 시비가 불거진다. 사태가 벌어졌을 때 총력을 다해 반격하는 것이 우리 군의 운신 폭을 넓히며 국민을 안보불안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이다.”
대응과 보복을 구분하지 마라
해성 함대지 미사일을 탑재한 구축함으로 구성된 해군 7기동전단.
“교전규칙이나 CODA는 조약이 아니다. 미국이 정전체제 유지를 희망하니, 우리가 대응을 자제하기로 미국에 동의해준 것뿐이다. 따라서 북한의 도발이 어느 선을 넘으면 호되게 갈겨줘야 한다. 하지만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하므로 북한이 도발하면 교전규칙 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위권을 행사한다는 의견 정도는 교환해둘 필요가 있다.”
미군은 단계별로 전투를 한다. 적이 급습하면 현장 지휘관이 대응한다. 대응이 미흡하면 여타 부대를 동원해 보복한다. 그래도 계속 공격해오면 적을 궤멸하는 전쟁을 한다. 미국은 대응과 보복과 전쟁을 분명하게 구분한다. 덩치가 작은 유럽 국가나 이스라엘이 싸우는 방식은 이와 다르다. 이들은 대응, 보복, 전쟁을 분명하게 구분하지 않는다. 주은식 예비역 육군 준장은 이렇게 말했다.
“독일로 대표되는 유럽 국가들과 이스라엘의 전술은 한마디로 전격전(電擊戰)이다. 적이 작은 공격을 해왔을 때 대응이나 보복만 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바로 따라 들어가 궤멸하는 전쟁을 한다. 미국은 야구와 미식축구를 좋아한다. 야구는 1~9회(回)로 싸우는 단계를 나누고, 공격과 수비도 초(初)·말(末)로 구분한다. 미식축구도 밀리는 쪽은 뒤로 확 물러나 새로 스크럼을 짠 후 대응한다. 미군은 이런 식으로 단계를 분명히 해서 싸우는 전통이 있다.
독일과 이스라엘은 축구 식으로 싸운다. 축구는 어느 한쪽이 압박해 상대 진영에서 혼전이 벌어져도 골을 못 넣으면 이기지 못한다. 밀리던 쪽이 공을 멀리 걷어낸 뒤 한 선수가 달려들어 번개같이 골을 넣으면 이긴다. 단 한 번 찾아온 기회를 승리로 연결시키는 것이 축구의 묘미다.
한국군은 미군과 너무 오래 작전을 해서 그런지 미군 식으로만 싸우려 한다. 우리는 종심(縱深)이 짧은 나라라 미군처럼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스크럼을 짜서 보복할 여지가 없다. 전격전을 선보인 독일군, 6일전쟁을 이끈 이스라엘군처럼 자위권을 행사해야 할 기회가 왔을 때 적을 박살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위권을 재해석해, 행사할 수 있는 준비를 철저히 해놓아야 한다.”
자위권을 제대로 행사해 보복까지 할 수 있었던 절호의 기회가 연평도 포격전이었다. 천안함 사건의 진실을 밝힌 후 이명박 대통령은 5·24담화에서 자위권을 행사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연평도 포격전 때 이 대통령이 “공군기를 동원해 북한군을 폭격할 수 없느냐”고 묻자 군 출신 참모들은 “공군기 동원은 CODA 사항이라 연합사령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엉뚱한 소리를 해, 자위권을 행사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人의 장막’ 걷어내야
대통령의 판단을 그르치는 이러한 ‘인(人)의 장막’을 걷어내는 것이 한국이 해야 할 최우선 국방개혁이다. 이 문제는 세 가지로 풀어야 한다. 첫째, 자위권을 행사한다고 천명했으면 대통령은 ‘원칙대로 하라’고 지시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이 일으킬 수 있는 도발을 면밀히 예측해 정리한 다음, 각각의 도발에 대한 한국군의 대책을 치밀하게 마련해야 한다. 사태가 벌어지면 어떤 사태인지 판단해 그에 맞는 대책을 바로 실행하면 된다.
둘째, 현장 지휘관도 승리할 수 있는 대응책을 마련해놓아야 한다. 박정성 예비역 해군 소장과 김동식 해군 소장은 각각 제2함대 사령관으로 재임하던 1999년과 2009년, 제1차 연평해전과 대청해전에서 승리했다. 두 제독의 설명을 종합하면 승리의 비결은 ‘세트피스(set piece) 작전’이었다. 축구의 프리킥이나 코너킥 작전처럼 사전에 각자 역할을 정해놓고 수없이 연습했다가, 실제로 그 상황이 벌어졌을 때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여 골을 넣는 게 세트피스다.
두 제독은 서해 5도에서 북한 함정이 시도할 작전을 정확하게 예측해 대책을 세워놓고 장병들에게 꾸준히 실전 연습을 시켰다. 고속정에 실린 벌컨포는 분당 3000발까지 쏜다. 따라서 잠깐만 쏴도 불덩어리처럼 뜨거워져 더 이상 사격을 못한다. 박정성 사령관은 이런 점까지 고려했다. A고속정이 사격하면 B, C고속정이 대기하고 있다가, A고속정 포신이 뜨거워져 사격할 수 없으면 B, C고속정이 뒤이어 연사(連射)할 수 있도록 훈련시켰다.
세트피스 작전과 합작사 창설
이렇게 대응해서 북한군이 퇴각하면 흥분한 우리 정장들은 자칫 퇴각하는 적 함정을 향해 사격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함정의 퇴각으로 남북 함정 간 거리가 벌어지면 북한군은 우리 함정을 향해 대함 미사일을 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걸려들면 축구 경기가 그런 것처럼 순식간에 승패가 뒤바뀔 수 있다. 두 제독은 북한 함정의 퇴각으로 양측 사이가 벌어졌을 때 우리 함정을 철수시켜 완벽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이런 식으로 현장 지휘관은 저마다의 정교한 세트피스 작전을 준비해둬야 한다.
세 번째는 비대할 대로 비대해진 합참 개혁이다. 연합사는 10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 정도 인력으로 작전계획 5027과 우발계획 5029 등을 짜고, 그 계획대로 부대를 돌려보는 키리졸브 훈련 등을 소화해낸다. 평시작전통제권을 가진 한국 합참은 그 열 배에 가까운 인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연평도 포격전 당시 청와대와 더불어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했다. 이는 합참이 작전사령부 기능을 하지 못하고 행정사령부가 됐다는 얘기다.
작전사령부는 작전 전문가들로 단출하게 짜여 있어야 순발력 있게 움직인다. 합참은 비작전 전문가까지 다 들어와 있는 ‘종합사령부’라 유사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국방개혁을 거론할 때마다 합참에서 작전 기능을 독립시켜 합동작전사령부(합작사)를 만들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미국은 9개의 합작사를 갖고 있다. 최고 작전사령부인 합작사를 못 만들면 한국군은 위기시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
북한군에도 ‘제갈공명’은 있다. 한국의 대응이 강경해질 것 같으면 북한은 북한을 무대로 한 도발을 한다. 북한에서 장거리 로켓을 쏘거나 핵실험을 하는 것이다. 한국이 유화적으로 돌아서면 직접 도발을 기획한다.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기 전 이명박 정부는 그전 해에 원칙적 합의에 이르렀다가 무산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고 노력했다. 합참은 이에 호응해 2월 16일 모든 경계강화조치를 해제하라고 지시했다. 1월 말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은 북한군의 일제사격으로 긴장이 고조돼 있었는데도. 그렇게 우리가 긴장을 풀었을 때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다.
북한이 도발하는 시기와 방법, 장소는 대개 한정돼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은 북한이 종심 깊은 곳에서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는 것인데, 그것까지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전제조건은 미군이 조기경보위성으로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기립(起立)을 알려주는 것이다. 이런 협조를 받으려면 박 대통령은 연합사령관과 긴밀히 협조해야 한다.
북한군 대거 탈영 유도해야
우리의 안전을 지키면서 종심 깊은 곳에서 기립한 북한 미사일을 제거하려면 미사일로 타격해야 한다. 한국군이 보유한 미사일 가운데 종심 타격을 할 수 있는 것으로는 현무-2와 미국제 ATACMS(에이타킴스) 지대지 탄도미사일, 현무-3 지대지 순항미사일, 해성-2 함대지 순항미사일, SLAM-ER 공대지 순항미사일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탄두 중량이 크고 정확도가 높은 것으로는 F-15K 등에서 발사하는 SLAM-ER이 꼽힌다. 다음은 이한호 전 공군총장의 지적이다.
“북한이 도발하면 원점 타격을 하겠다고 하는데, 원점을 때려봐야 미사일 기지 한두 곳 부수는 것뿐이다. 북한군 지휘부도 때리겠다는데, 군 지휘부는 지하에 있어 큰 피해를 못 입힐 것이다. 북한군은 인명을 중시하지 않아 많은 병사가 희생돼도 별로 당황하지 않는다. 따라서 원점이나 지휘부 타격과 함께 주석궁이나 금수당의사당 같은 곳을 날려버릴 필요가 있다. 호전적인 자일수록 자기가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 더 겁을 집어먹는다.”
비대한 합참에서 합작사를 떼어내는 것이 당장 어렵다면 합참이 최고 작전사령부 기능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연합사와 합참을 경쟁시키듯 지휘해야 한다. 연합사가 못하겠다고 하면 합참을 동원하는 배짱을 부려야 하는 것이다. 이름은 ‘대응’이지만 실제로는 ‘보복’에 버금가는 작전을 날렵히 수행하고 다음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안보 전문가들은 북한 도발을 우리가환수한 평시작전통제권을 제대로 사용해보는 기회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대응에 성공하면 북한 내부가 ‘충격과 공포’에 빠져 병사들이 대거 탈영하는 진짜 급변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고 봤다. 위기는 위험과 함께 기회도 제공한다는 것을 꼭꼭 짚어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