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핵보유 국가로 인정받아야 우리가 산다.”
지난 2월 3차 핵실험을 앞두고 북한의 핵심 권력층에서 심각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정치국 위원 등 당을 중심으로 한 온건파는 핵실험이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고립을 가속화하고 그 결과 주민들의 삶이 더욱 피폐해질 것을 우려하며 반대했다. 반면 최룡해 인민군총정치국장 겸 당 중앙군사위원 등 군부 세력은 핵실험을 통해 핵보유국가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며 맞섰다고 정통한 대북 소식통이 밝혔다. 이에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최룡해 등 군부 강경파의 손을 들어줬다는 것이다.
이 소식통은 “핵실험으로 인한 유엔의 대북(對北) 제재 결의안(2094호)은 예견된 것이었다. 핵실험으로 중국도 등을 돌리고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더 고립돼 주민의 삶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논리로 장성택이 핵실험을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세력 대 세력의 대충돌로 볼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만약 장성택이 김정은의 지시에 반기를 들었다면 가차 없이 숙청됐을 것이다. 당시 갈등은 곧 봉합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외부 적 만들어 내부 위기 돌파
이를 계기로 김정은 집권 이후 2인자로 군림하던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의 입지가 좁아졌을 것이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장성택의 처이자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 중앙위원회 위원이 현재 와병 중이라 구심점이 없어진 틈을 타 이 같은 갈등이 불거졌고, 김정은이 최룡해 등군부 강경파를 중심으로 단일 절대독재체제를 굳히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김정은 등장 이후 최룡해는 북한의 공식 서열에서 장성택보다 앞선다.
북한 고위층의 내부 갈등설이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3월 13일자 ‘중앙일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중순께 평양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위해(危害)하려는 시도가 있었다고 한다. 북한의 대남공작을 총괄해온 정찰총국 내부에서 세력 다툼이 벌어져 총격전까지 발생했다는 것. 정찰총국은 2009년 노동당 작전부, 대외연락부(사회문화부), 35호실(조사부), 인민무력부 산하 대남 조직인 군 총참모부가 통폐합된 조직인데, 주도권을 놓고 노동당 작전부와 대외연락부 출신들이 갈등하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 지난해 7월에는 리영호 군 총참모장이 군 내에서 파벌을 형성했다는 이유로 해임된 바 있다.
지난해 3월에는 북한 정세에 정통한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마크 피츠패트릭 비핵화 군축 프로그램 담당 국장이 북한 지도부 내의 권력 대립 가능성을 시사했다. 지난해 북한은 2월 북-미 합의 발표 2주 뒤쯤 갑자기 기존의 태도를 바꿔 장거리미사일(광명성 3호 1호기·실제 발사일은 4월 13일)을 발사하겠다고 선언했는데,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를 주장하는 군부 등의 강경파에게 반대 의견을 밝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근 북한의 남북한 불가침협정 폐기, 도발 위협 등 강경한 대외 발언들도 이 같은 내부 분란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3월 11일 경실련통일협회 좌담회에서 “김정은 정권의 안위를 위협하는 여러 상황이 발생한 나머지 외부의 적(남한과 미국)을 만들어 내부 위기 상황을 정면돌파하려는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전쟁준비로 내몰고 있지만 상층부의 바람과 달리 민심 이반 현상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3월 12일 브리핑에서 정확한 숫자를 밝히진 않았지만 올해 들어 북한군 탈영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적으로 식량이나 생활 여건이 좋지 않고 군 기강도 무너져 탈영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사회를 파고든 한류(韓流)로 인해 이를 제어하려는 단속반과의 마찰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안보 관계자에 따르면 북한 일부 주민들이 한국 상품을 시장에 감춰두고 ‘남품(南品)’이라고 소개하며 비싸게 판매하고 있는데 이를 단속하는 일명 ‘폭풍군단’과 주민 간에 승강이가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사상문화적 침투’ ‘부르주아 문화’ 등으로 매도하고 있지만, 주민들 사이에는 ‘남조선풍’ ‘날라리풍’ ‘황색바람’ 등으로 불리며 한류가 지속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드라마와 영화뿐 아니라 가요, 상품, 패션 등으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