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호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산 이들이 혁명은 무슨…”

이석기 지도한 김영환 前 민혁당 중앙위원장 직격탄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13-09-23 14: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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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李가 민혁당 재건한 듯…北 주도 통일이 목표
    • “전향하려면 선(線), 돈 내놓으라”며 내게 대들어
    • 혁명은 어림없지만 시설 파괴 충분히 할 세력
    • 민혁당 RO는 지하당 지도받는 중간단계 조직
    • 내가 지도한 이상규, 김미희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산 이들이 혁명은 무슨…”
    ‘변절자’ ‘배신자’라는 말이 따라붙었다. 따르던 이들이 ‘선’(線·북한접촉망)과 ‘돈’(자금)을 넘기라고 대들었다. 김영환(51)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 1980~90년대 ‘주사파의 대부’다. 팸플릿 ‘강철서신’을 통해 주체사상을 전파했다. 운동권 전반에 반미친북 분위기를 확산시켰다. 1991년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났다. 1992년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을 창당했다. 1997년 민혁당을 자진 해체했다. 이후 북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민혁당은 김영환·하영옥·박○○ 씨 3인으로 중앙위원회를 구성했다. 중앙위원장을 맡은 김 연구위원이 하영옥·박○○ 씨를 지도했다. 박 씨는 민혁당 해체에 동의했으나 하 씨와 이석기 의원은 “전향하려면 선과 돈을 넘겨라”고 요구하면서 해체를 거부했다. 이 의원은 민혁당 2인자이던 하 씨의 지도를 받았다. 민혁당 내 직책은 경기남부위원장. 서열은 김 연구위원, 하 씨, 박 씨, 최○○ 씨 다음으로 5위 정도였다.

    1997년 7월 하 씨가 김 연구위원, 박 씨가 떠난 조직을 장악했다. 하 씨는 이 의원에게 경기남부위원회와 함께 영남위원회를 관리하라고 지시했다. 이 의원은 하 씨의 지도를 받으면서 조직 재건에 힘썼다. 하 씨는 1998년 남파간첩 원진우를 만나 ‘광명성’이라는 대호(이름 대신 쓰는 암호)를 부여받았다. ‘재건(再建) 민혁당’ 총책으로 인정받은 것. 원진우가 탄 잠수정이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격침됐는데, 잠수정에서 하 씨와 접선한 내용이 담긴 문서가 발견되면서 민혁당의 실체가 까발려졌다.

    하 씨는 1999년 검거돼 8년형을 선고받았다. 2003년 4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이 의원은 3년여간 도망 다니다 2002년 검거됐다. 2003년 8·15 특사로 석방됐다. 김 연구위원도 체포됐으나 전향한 사실이 참작돼 공소 보류로 풀려났다. 박○○ 씨는 자수했다. 현재는 국제관계 전문 변호사로 활동한다. 이 의원은 노무현 정부 때 특사로 풀려난 이후 암행하다 2012년 4·11 총선 때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2번으로 출마하면서 수면 으로 떠올랐다.

    내란 지향, 내란 경향성



    최근 국가정보원은 이 의원을 이른바 ‘RO(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조직)’의 총책으로 지목했다. 이 의원은 형법상 내란음모, 내란선동 혐의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의원과 통진당은 ‘날조’ ‘조작’이라며 반박 한다. RO의 뿌리가 민혁당이라는 게 국정원의 판단이다. 민혁당이 재건된 것으로도 보고 있다.

    그렇다면 1992년 민혁당을 결성한 김 연구위원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민혁당 중앙위원장 시절 하 씨를 통해 이 의원을 지도했다.

    ▼ 이 의원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을 어떻게 읽었나.

    “내용을 쭉 살펴보니 전쟁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와 관련해 일관되게 얘기하고 있더라. 전쟁이 발발하면 북한에 호응해 폭동 같은 것을 일으키자는 게 골자다. 그런 행동은 내란보다 더 용납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 내란음모 혐의가 적용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추상적 내용일 뿐 구체적인 게 없어서….”

    ▼ 당신이 이끌던 민혁당도 혁명을 추구했다.

    “혁명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한국에서 혁명은 법적으로 내란이다. 치밀하게 준비한 것은 아니지만 추상적으로 혁명하자는 말을 많이 했다. 군대는 어떻게 할 것인지, 경찰은 어떻게 할 것인지, 그런 식의 얘기를 나눈 적도 있다. 민혁당 결성 전부터 우리끼리 그런 얘기를 나눴다. 1980, 90년대에도 운동권에서 혁명 얘기를 많이 했지만 내란음모죄로 처벌된 적은 없다. 국회에 들어가 있는 사람의 언행을 과거 학생들의 얘기와 똑같은 비중으로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혁명을 꿈꿔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이야기다. 그렇더라도 내란음모죄가 적용되려면, 사법 안정성이라는 측면에서 국회에 제출한 체포동의서에 나온 내용 이외에 구체적인 활동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경기동부와 통합진보당 일부 인사들이 내란에 대한 강력한 지향과 경향성을 가진 것은 분명하다.”

    김 연구위원이 이 의원을 처음 안 것은 1989년 반제청년동맹을 조직하면서다. 반제청년동맹 지도부는 김영환, 하영옥, 박○○, 이석기, 김○○ 씨로 이뤄졌다. 이들이 반제청년동맹을 결성한 배경은 이러했다.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산 이들이 혁명은 무슨…”

    1999년 9월 9일 국가정보원에서 엄익준 당시 2차장이 민혁당 간첩단 사건의 압수증거물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민중의 자주적 투쟁은 자연발생적 성격을 극복하고 과학적 지도사상과 전략전술에 의해 목적의식적으로 지도되지 않으면 민중의 투쟁이 승리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에 따라 우리의 ‘R(혁명) 운동’은 반미자주화, 반파쇼민주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3대 강령을 내세우고 나아가게 되었다.”

    이 의원이 총책으로 알려진 RO의 조직원은 결의 다짐에서 지도성원(상급조직원)이 “우리의 수(首·우두머리)는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비서동지(김정일)”라고 대답했다. 또 “나는 누구인가”라고 물으면 “R가(혁명가)”라고 말했다. 반제청년동맹의 ‘R 운동’과 R이 오버랩된다.

    非이념적, 맹목적 종북세력

    김 연구위원, 이 의원이 지도부로 활동한 반제청년동맹의 지도사상은 주체사상이다. 한국을 ‘미(美) 제국주의 침략자들과 그 앞잡이들에 의해 가혹하게 유린되고 있는 식민지 반(半)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했다. ‘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해 미제를 축출한 후 현 정부 타도, 민족자주정권 수립, 북한과의 연방제 통일, 사회주의 국가건설’이 투쟁 목표였다.

    김 연구위원은 ‘이석기 그룹’이 당시의 정서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다고 단언했다.

    “대단히 시대착오적이고 잘못된 것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 대학 다닐 적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 과거에는 주체사상 등 이론을 연구하던 사람들이 운동을 주도했는데, 지금은 반미활동을 하며 북한 노선을 추종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비(非)이념적이면서 맹목적인 종북세력인 것이다.”

    공안당국 관계자는 “RO는 ‘언제든 검찰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터라 학습자료를 문서화하지 않고 말로 전달해 암기하게 했다”면서 “다만 민혁당 공소장은 검찰에 발각돼도 이적(利敵)성 시비를 피해갈 수 있는 자료였기에 직접 종이로 볼 수 있는 학습자료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RO가 학습한 것으로 알려진 민혁당의 강령, 당헌, 투쟁목표 등은 다음과 같다.



    ·한국 민중의 권익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민족민주혁명당’은 인간 중심의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한다.

    ·우리는 당면해서 민족자주권을 쟁취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하며,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한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넘쳐나는 완전히 자주화된 사회를 건설한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가장 귀중히 여긴다. 사람을 귀중히 여기는가 그렇지 않은가가, 모든 활동의 첫째가는 기준이다.

    ·대중 속에 깊이 들어가 생사고락을 같이한다.

    ·동지를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한다.

    ·목숨을 바쳐 조직을 보위한다.

    ·사람의 자주성을 높이고 창조적 능력을 강화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민주적 중앙집중제의 원리를 기본으로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의 원리를 중심으로 조직을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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